〈 260화 〉 용사1
* * *
흡혈귀 그녀는 지금의 위치에 까지 도달하는 데 까지 정말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누구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그녀는 정말 많은 일들을 격험했고 그런 경험에서 나온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주관에 있어서 다른 행성의 고통은 하나도 신경쓰지 않은 채 그들의 세계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용사의 생각은 아무리 용사가 흡혈귀의 친구라고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 세계의 일은 우리 세계에서 끝내야지 다른 세계에 까지 고통을 확산 시키는 건 분명 잘못된 인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용사라는년이 이딴 짓을 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용사가 처음 자신들의 세계와 아직 성장하지 못한 인간들의 세계를 연결했을 때 부터 꾸준하게 용사를 찾아가서 이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밝혔다.
용사는 이미 자신의 죽는 것이 정신이 팔려서 다른 세계의 인간들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녀는 포기 하지 않았다.
용사가 하는 일은 틀림없이 잘못되어 있었으니까.
자신은 그 일을 막아야만 했으니까.
그녀를 막지 않는다면 저쪽세계가멸망하거나 큰 고통을 당할 것이 눈에 띄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용사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용사는 오랜 시간동안 고통받았고 무슨 수를 써서든 죽고 싶어했다.
이미 망가져 버린 그녀에게는 다른 세계는 물론 그녀의 오랜 친우또한 방해물이 될수가 없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것을 용사에게 확인하기 위해서 그녀를 찾아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사가 다른 세계를 침공하는 것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용사는 자신이 죽기 위해서 지금의 스텐스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흡혈귀가 몸을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의 사실이 과연진실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네가 여기는 왠 일이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단단히 깨졌었잖아. 설마 지금 정도면 내 화가 가라 앉았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찾아온 건 아니겠지?"
자신을 찾아온 흡혈귀에서 용사는 표정을 찡그리며 웃었다.
아주 오래 전 같은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던 동료는,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죽음을 방해하는 방해물 정도로 여겨졌다.
"네 화가 가라앉을리가 없지. 네 평생의 숙제를 내가 방해했는데 말이야."
"그걸 아는 년이 나를 찾아와? 이번에는 색다른 방식으로 고통받고 싶은 가 보지? 아니면 뭐야. 고통에 눈을 떠서 나한테 최대한 많은 고통을 달라고 찾아온 거야?"
용사가 빈정거리며 웃자 흡혈귀는 표정을 굳혔다.
용사를 탓하는 듯한 굳은 표정이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를 꺼낼 거라는 신호가 들어가 있는 굳은 표정이었다.
흡혈귀 측에서 먼저 그런 표정을 지으니 용사도 마냥 가볍게 대응할 수는 없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저쪽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왔어."
"그걸 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분명히 아주 강한 사람인 것 맞지만 그렇다고 다른 세계랑 나랑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논리적인 비약이야."
흡혈기가 비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끝까지 발뺌하겠다는 거지?
"저쪽 세계에는 대삼림이라는 곳이 존재해."
"..."
용사가 표정을 굳히고 흡혈귀를 노려봤다.
그녀의 반응에 흡혈귀는 자신이 제대로 된 곳을 찔렀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중앙에서 알 수 없는 마나가 뿜어져 나온다고 하더라고? 그 마나가 어느 대삼림이든 똑같이 발견된데, 진짜 신기한 일 아니겠니? 어떻게 모든 대삼림에서 같은 성질의 마나가 뿜어져나올 수가 있지? 마치 한 공간에 있는 마나가 저쪽세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잖아."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용사가 표정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다가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하아...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대삼림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건 나랑 관련이 많은 일이야."
용사가 계속해서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세계간의 연결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힘이 들거든, 아마 대삼림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마나는 내가 그 세계와 우리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마나일거야."
흡혈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용사 성격상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부 말해주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고 하나의 대삼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도 어마어마한 수준인데모든 대삼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용사의 것이라니, 용사의 마나가 얼마나 많은지 제대로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뭘 그런 표정으로 보고 있어? 거의 확신하고 있던 이야기잖아. 너희쪽에선 내가 다른 세계와의 연결을 시작한 주체라는 걸 거의 확정지은 거 아니었어? 그런 게 아니라면 오히려 실망인데?"
"알고 있었다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밝혀서 놀란 것 뿐이니 흡혈귀님 놀리지 말라요!"
입을 열지 못하는 흡혈귀를 대신해 모아가 대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흡혈귀 측 사람들은 세계간 연결의 주체가 용사인 것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거 하나 드디어 알았다고 날 찾아온거야? 무슨 협박을 하려고?"
"협박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너한테 물으려고 온 거야. 만에 하나라도 네가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면 우리쪽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용사가 피식하고 웃음을 내 뱉었다.
"너희들 참 웃겨, 다른 세계는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이 우리 세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 세계는 이미 망한 세계나 마찬가지야. 정지되어 있는 세계라고, 너희가 다른 세계를 신경 쓰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일단 우리 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어?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남의 세계를 지켜주려다 우리 세계의 유일한 기회가 사라진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냐고."
용사가 천천히 일어나 흡혈귀의 앞에 섰다.
"생각을 좀 하고 배려를 좀 해줘. 나는 저쪽 세계에 건너가서 죽기만 하면 끝나고 나를 따르는 애들 중에서 10%정도 되는 애들도 자신이 죽을 수 있으면 상관이 없는 애들이야. 그리고 그런 애들이 아닌 다른 애들도 한 번 건너가면 파괴행각을 하지 않을거야."
"대신 그 세계가 우리세계처럼 변하겠지. 오래 묵은 괴물들이 잔뜩 건너가는 데 세계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뭐? 가만히 앉아서 죽을 거야? 저 세계로 넘어가면 지금의 삶보다 훨씬 나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거냐고!"
두 여인의 대화는 평행선을 그리듯 계속됐다.
서로가 원하는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녀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상대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들은 허공에 소리쳤다.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좋아, 네가 뭘 원하는 지는 알겠어. 우리가 저쪽세상에 침공하지 못하게 하고 불쌍한 내가 자살을 하지 못하게 만드려는 거잖아. 안그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굳이 하나의 세상을 멸망시키면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룰 필요는 없잖아."
"그러면 그 좋은 방법을 찾아오고나서 말을 하던가, 아무런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은 년이랑 더 이야기하기는 싫어."
용사가 흡혈귀의 가슴을 슬쩍 미니 그대로 밀려나 반대쪽에 있는 벽에 부딪혔다.
"커흡!"
용사가 흡혈귀의 가슴을 밀자 흡혈귀의 가슴에 있던 피의 마나가 빠른 속도로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나한테 이야기 하고 싶으면 일단 피의 마나부터 안정화 시키고 얘기하길 빌게."
용사가 흡혈귀에게 비소를 짓자 모아가 앞으로 나섰다.
"이건 너무하다요!"
"너무하긴 무슨, 너무한 건 너희들이지"
용사가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자 그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진영이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했다.
"후우우..."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남은 용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강한 공허함을 느낀 용사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그녀는 빨리 이 세계를 탈출하고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