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침대 불편할 텐데 잘 잤냐?”
눈을 뜬 직후, 보인 도민은 언제 잠들었냐는 듯 멀끔한 모습이었다. 무거워진 눈을 들어 올리며 서훈이 피곤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선배는 언제…….”
“새벽에 깼어, 너도 곧 검사 갈 시간이니까, 잠 깨고.”
몇 마디를 뱉던 서훈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이제 막 일어나서인지, 목소리가 영 탁하게 갈라져 있었다.
별걸 다 신경 쓴다며 혀를 찬 도민은 검사 잘 받으라는 말과 함께 호출기를 확인하고 다시 급하게 병실을 나섰다.
그렇게 꼬박 이틀에 걸쳐 서훈은 여러 가지의 검사를 시작했다.
일은 도민이 거의 다 도맡아서 진행 시켰고, 빠르게 이어지는 검사는 종종 찾아오는 인턴이 서훈에게 설명해 주는 식이었다.
크게 괴로워할 만한 검사는 거의 없었고, 갑자기 몰아닥치는 통증도 미리 진통제를 처방해 놓은 도민 덕분에 금방 사그라들었다.
서훈은 꼭 중병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틀간의 병원 생활이 썩 나쁘진 않았다. 밍밍해서 입에 맞지 않은 병원식도 며칠은 버틸 만했다.
도민은 그 후로도 몇 가지의 검사를 더 권유했다. 이유인즉, 복부 통증의 원인으로 종양이나 혹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는 조용히 도민의 말을 경청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 *
그렇게 모든 검사를 끝낸 늦은 밤.
저녁을 대충 넘기고 쉬던 서훈의 병실로 도민이 불쑥 들이닥쳤다. 그것도 어쩐지 어두워진 기색으로.
“잠깐 괜찮지?”
“예, 괜찮긴 한데 이 시간엔 어쩐 일로…….”
예상치 못한 방문인 듯 상체를 일으키며 그가 도민을 향해 의외라는 시선을 보냈다.
“다행이네, 자고 있을 줄 알았거든.”
“그렇게 바른 생활 어른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하긴 밤 10시도 안 됐으니까.”
할 말이라도 있는 듯, 도민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평소와는 약간 달랐다. 서훈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저기, 서훈아.”
불러 놓고도 도민은 자꾸 서훈의 기색을 살피듯 힐끔거렸다.
“저한테 따로 할 말 있어서 오신 거 아닙니까?”
“사실 그렇긴 한데…….”
그 불편하고 낯선 모습이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금세 의사 가운을 걸친 도민에게 서훈이 진중한 시선을 마주 부딪쳤다.
서훈은 바보가 아니었다.
고작 하루 이틀인데 결과가 나왔을 리 없다. 인턴도 일주일은 소요된다고 그랬고, 금방 나오는 결과는 한두 가지가 끝일 텐데.
도민은 왜 저런 표정으로 병실을 찾아왔을까.
의사의 소견으로 안 좋은 게 보이기라도 했나. 뭘까, 도대체 뭐가, 어디가 망가졌기에 저런 표정으로 찾아왔냐는 말이다.
흘러넘칠 듯 불안하게 출렁거리던 마음은 어느 사이엔가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며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서훈은 어떤 병이건 상관없다고, 어떻게든 고치면 그만이라 여겼다.
그러나 스치듯 도민의 얼굴 위로 안타까운 기색이 흘렀다. 서훈은 그가 왜 저러는 건지 알 길이 없으니, 그만큼 더 답답할 뿐이었다.
“선배.”
“…….”
“선배?”
“어? 아, 그래.”
단순한 염증 문제가 아니라는 정도는 알겠다. 그럼 또 뭘까. 덧씌워지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의문은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비대해져만 갔다.
괜히 더 긴장한 듯 서훈이 연신 바짝 마른 입술을 축였다. 도민에게 귀를 기울였지만, 한 번씩 달싹여지는 입술에선 옅은 한숨만 새어 나왔다.
“저 어디가 많이 안 좋은 겁니까?”
참다 못 한 서훈이 먼저 질문을 툭 던졌다. 그러자 영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도민이 회피하듯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입을 닫고 각자 허공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거 말이다, 췌장.”
“…췌장?”
“그, 췌장… 암인 것 같더라, 너.”
가만히 듣던 서훈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의사인 그가 오히려 대신 선고를 받은 사형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왜 선배가 저딴 얼굴이냐고. 몇 년 만에 후배랍시고 나타난 놈이 불쌍해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췌장… 암이라는 거죠?”
“그래, 췌장암.”
한숨 섞인 대답을 듣고도 서훈은 모르겠다는 듯 차분하게 도민을 주시했다.
“그게…….”
그게 정확히 어떤 병인지도 모르겠는데. 목 끝에서 막힌 문장이 소리가 되지 못한 채, 다시 안으로 꿀꺽 삼켜지고 말았다.
“딱 봐도 알겠더라, 조금만 더 빨리 찾아오지 그랬냐.”
“…….”
“하아, 참 빨리도 왔다, 새끼야.”
한탄이 짙게 밴 타박을 던진 도민이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망치로 세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긴장으로 손이 축축한 것도 모른 채, 서훈이 무언가를 참는 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많이, 많이 나쁜 겁니까?”
“그래, 자식아.”
“…….”
“손쓰기도 힘들 만큼 나빠져서 오면 어쩌자는 거야.”
급기야 어이없다는 듯 서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차라리 우는 게 편해 보일 표정으로.
“선배는… 무슨 말을 그렇게…….”
“야, 주서훈 정신 차리고.”
“사람 간 떨어지게, 선배는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고 그럽니까.”
갈수록 숨이 턱 막히며 가볍게 뱉는 말과 달리 서훈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의사가 하는 말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소리가 아예 터무니없는 건 아닌가 보다. 저 말에 심장이 내려앉고 왜 정신까지 아득해지냐는 말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는 도민은 기어이 외면하고 아래로 뚝 떨어트렸다.
“주서훈.”
손도 못 쓴다는 것처럼 말하면 듣는 사람은 어쩌라고.
심해진 복통과 함께 살이 빠진 게 고작이었다. 몸이 신호를 보내는데도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건가.
“…왜.”
달싹이는 잇새로 서훈이 뱉은 말은 고작 저 한 마디가 전부였다.
초조했어도 이런 폭탄이 떨어질 줄은 몰랐던 만큼 서훈은 그저 허망해진 눈으로 제 앞의 도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증상만 봐도 벌써 너 임마, 3기야.”
* * *
아침부터 병원을 나선 서훈은 온통 정신이 다 멍했다. 뿌연 안개라도 낀 듯 흐리멍덩해서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현실감이 없어서일지도.
누구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당장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식으로 의사에게 통보받으면 현실감 따위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데도 심각한 병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서훈은 평균보다도 건강한 편이었다.
어쩌면 그게 문제였을까. 그래, 확실히 그런 자만심이 병을 키우게 된 가장 큰 요인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심히 닿는 주차장의 텅 빈 벽을 바라보며 서훈이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췌장암이라…….”
갈피를 잡지 못한 시선을 가리듯 그가 반쯤 멍해진 제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아닐 거다, 죽을병은 아니다.
췌장암이건 뭐건 무조건 죽는다는 전제는 없다. 그 병에 걸린 모두가 죽는 것도 아니고, 치료할 돈이 부족할 리도 없으니 말이다.
현대 의학은 지금까지 상당한 발전을 이뤄 냈다. 어지간한 병도 다 고칠 수 있을 만큼 이 나라의 의료 기술도 좋았다.
문제라면 서훈의 상태.
‘도대체 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선배, 알아듣게 말을 해 주셔야 대답을 할 거 아닙니까.’
‘고통스러웠을 거 아니냐고. 3기면 자각을 못 할 리가 없는데.’
‘…….’
‘너 진짜 몰랐어? 아니면 꾸역꾸역 참았냐?’
당장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한데도 그는 자신보다 더 화가 난 사람처럼 서훈을 향해 답답한 듯 언성을 높였다.
일그러진 표정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도민은 아픈 몸을 방치한 서훈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어쩔 거냐, 이제.’
‘글쎄요, 저도 어떻게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병원에서의 대화를 곱씹으며 서훈이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곧바로 문을 닫았지만, 생각에 잠긴 듯 그는 한참 동안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 상태로 꼬박 한 시간쯤 지났을까.
뒤늦게 멀어져가는 정신을 다잡으며 서훈이 막 시동을 걸려던 그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 진아.”
―빨리 받네? 통화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어.”
발신자는 유진이었다.
멍한 정신을 유진에게 들킬까, 서훈은 본능처럼 잠시 잊었던 출장을 슬쩍 입에 올렸다.
―잘 끝나서 다행이다. 생전 안 가던 출장이잖아.
“그보다 넌 작업 좀 했어?”
―모르겠어, 하긴 했는데 그대로인 것도 같고.
“그림이 손에 안 잡혀?”
―네가 없으니까 허전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마냥 기분 좋은 듯 서훈이 속없는 사람처럼 목을 울리며 웃었다.
“서유진이 웬일로 예쁜 소리를 다 하네?”
―됐거든요, 몇 시쯤이면 도착해?
“글쎄, 생각보다 도착이 빠를 것 같긴 한데.”
―저녁은 같이 먹겠네. 며칠 내내 혼자 먹는 건 별로더라.
마치 몇 초 전까지의 모습은 연기였다는 듯 서훈은 어느샌가 평소의 능글맞은 남자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이 서방님이 보고 싶었어요?”
스피커 너머 웃기지 말라 투덜거리는 유진의 목소리가 귓가로 새어들었다.
나직이 그가 목을 울리며 웃었다. 비록 통화라고는 하나 유진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기는 싫었다.
아직은 제 머릿속도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생각할 것도 많았고.
“금방 들어갈게, 사실은 너 보고 싶어 죽을 것 같거든.”
그 한 마디를 끝으로 통화를 끝낸 서훈이 느릿하게 뒤로 고개를 젖혔다.
“사람 마음이 참… 말하고 나니, 진짜로 보고 싶잖아.”
차마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끄집어낼 수 없었다.
사실은 내가 좀 아프다고, 선배를 찾아갔더니 내가 오래 살 수 없다고 화를 내더라고.
그저 억누른 말 대신 서훈은 허공으로 닿을 길 없는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겁니까?’
‘…….’
‘이 새끼야, 그것도 시기가 다 있는…….’
‘선배!’
‘그래, 우선은 하자. 뭐든 해 보고 얘기하자고.’
병원을 나서기 직전, 도민은 그를 붙잡고 항암부터 하자는 말을 꺼냈다. 당장 입원하겠다는 대답도 할 수 없었지만.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겠지.”
씁쓸하게 맴도는 이성과 본능 사이를 저울질하며 이내 서훈이 정신을 차린 듯 시동을 걸었다.
우선 유진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