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조금만 더.
녀석이 병실을 나갈 때까지 아주 조금만. 멀어지는 유진을 보며 서훈이 무언가를 참듯 이불을 콱 움켜쥐었다.
생전 믿지도 않던 신을 찾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살려 달라는 외침이 머릿속에서 불쑥 치솟았다.
빌어먹을 신이 만든 고통스러운 상황이겠지만, 서훈은 오늘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신이라는 존재에게 다시 빌었다.
수시로 올라오는 통증은 잠시 잠깐 그리던 꿈조차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았다.
바라는 건 그저 조금의 여유와 시간.
잠시라도 예전처럼 웃으며 아픈 모습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순간이라도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몇 초가 이렇게나 길었던가.
점차 흐릿하던 시야가 샛노랗게 변하며 내장까지 칼로 찌르듯이 아팠다. 정신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통증에 진저리를 치며 서훈이 청각을 곤두세웠다.
타―악.
이윽고 문이 닫히자 그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다급히 쏟아냈다.
“하아, 하아, 하악…….”
마지막까지 부여잡은 인내가 그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끊어지듯 튕겨 나갔다.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서훈이 겨우 제 배를 부여잡았다. 그러고도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이 침대로 고꾸라지듯 털썩 무너져 내렸다.
“…허억, 으…….”
갈수록 호흡은 더 거칠어져만 갔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검은 잔상이 흐릿하게 허공을 떠다니는데도 그게 사람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이대로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었다. 너무 아파서 정신까지 고통이 갉아먹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를 버티느니 차라리 이대로 깨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아득한 정신에도 그는 어딘가에 있을 유진을 찾았다.
‘아파, 나 너무 아프다, 진아.’
기어이 눈꺼풀마저 축 늘어지며 서훈은 고통과 함께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흐려지는 의식 너머로 누군가 제 몸을 껴안고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망가져 버린 몸은 더 이상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 * *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앉은 유진이 책상 너머의 도민을 보며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저 입에서 또 무슨 아픈 말이 튀어나올까. 긴장으로 땀이 차오른 손바닥을 쥔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말이다.”
그가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유진은 도민의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깨달음, 중환자실에 있을 서훈의 걱정으로 가득해서 흘러넘칠 듯 흔들리고 있었다.
‘맞다, 저 사람이 훈이 선배라고 했는데.’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제대로 알아들었지만, 유진은 현실을 부정하려고 애를 썼다.
저 사람이 왜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설명하는 건지, 시끄럽게 펜을 굴리는 건지, 그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선배라면서, 어떻게 냉정하게 말을 할 수가 있지? 그래도 후배인데.’
괜한 원망은 의사에게로 쏟아졌다. 냉정하게 상황을 알려 주는 그가 미워질 것만 같아, 유진은 모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요즘 숨 쉬는 것도 불편했을 텐데. 전혀 못 느꼈어요?”
“숨, 숨이요?”
“음, 그러니까 사람이 평소에 호흡할 때…….”
설명하던 도민이 돌연, 입을 닫고서 유진의 기색을 먼저 살폈다. 이대로 계속 설명해도 될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유진의 상태를 그도 민석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완전히 넋이 나갔다면 설명도 못 들을 테고, 대화를 이어 나갈 수도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과한 걱정이었나. 넋을 놓고도 유진은 그의 말에 착실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도민은 불안에 휩싸여서도 귀를 기울이는 유진을 확인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갑자기 숨이 거칠어져서 가쁘게 쉬는 그런 거.”
“아…….”
“으음, 확 통증이 오면 호흡 곤란까지도 진행될 수 있는데.”
“호흡, 호흡 곤란이요?”
놀란 듯 유진이 더듬거리며 도민에게 되물었다.
통증에 시달리는 서훈을 본 적은 있었지만, 호흡곤란이라고 여길 만큼 숨이 거칠어진 적이 있었던가. 의문은 금세 아니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이것 참. 완전히 몰랐다는 건데.”
손에 쥔 펜을 내려놓으며 도민이 나직하게 숨을 쏟아 냈다. 그 한마디가 비수처럼 그녀의 심장까지 거침없이 푹 찔렀다.
“저는, 그러니까…….”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로 유진이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도로 입을 닫았다.
전혀 몰랐다는 사실보다 왜 더 살뜰히 지켜보지 못했던 건가. 이번에는 도민이 아닌 스스로에게 원망이 몰아쳤다.
유진이 주먹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무릎 위에서 떨리는 주먹을 보며 도민이 낮게 혀를 찼다.
“그럼 혹시 급성 신부전증이라는 병은 들어보셨죠?”
다음 스케줄이 빠듯한 건지 마른 입술을 축이며 그가 조금 더 빠르게 물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추스를 시간을 더 주고 싶었으나, 환자는 서훈 혼자가 아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급성, 신부전증이요?”
“네, 그거.”
“들어 본 적은 있는데, 그게 왜…….”
불안하게 유진이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설마 합병증이라도 왔다는 걸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본 도민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도 힘든 케이스라 조심하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합병증이 온 모양입니다.”
“합병증이 오면 위험한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이번에도 까딱하다간 그대로 죽을 뻔했고.”
떨리는 몸을 유진이 가까스로 추슬렀다. 설명하는 도민도 난감한지 자꾸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잔인한 말이었다.
서훈을 걱정하면서도 그는 냉정하게 의사로서의 설명을 이어 갔고, 그 안에는 생사를 오가는 환자의 아픔이나, 보호자의 상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입을 연 도민에게선 포기하라는 말 대신, 씁쓸한 사과가 흘러나왔다.
“미안합니다,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 * *
서훈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온통 다 어둠에 잠긴 공간을 보며 서훈은 이곳이 낯선 공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호기심이나 의문은 들지 않았다. 천장은 밤하늘처럼 끝없는 어둠만이 가득했고, 누워 있는 바닥은 차갑거나 뜨거운 느낌도 없었다.
그건 꼭 무의 상태 같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나 저 멀리 서 있는 낯선 누군가도 서훈에게는 현실이라기보다 꿈처럼 몽롱했다.
몸이 아프거나 움직이기 어려운 것도 없어서일까. 서훈은 문득, 이게 꿈보단 자신이 죽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저 멀리 서 있는 사람.
지옥에서 자신을 데리러 온 사자처럼 보이는 새하얀 머리카락의 누군가를 몇 초쯤 바라보던 서훈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난 죽은 겁니까?”
죽었다면 사자일 테고, 아니라면 여기가 어딘지는 알려주겠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멀거니 응시하는 시선은 슬픔에 빠진 이의 그것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서유진의 얼굴.
‘그 여자 많이 울 텐데.’
뒤늦게 발견한 사람이 유진이면 놀랐을 텐데. 차라리 내보내지 말 걸 그랬나 보다.
서훈은 후회가 됐다.
하지만 지난 일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다.
금세 형체만 보일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 코앞으로 다가와, 서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죽었다라, 어떨 것 같아?”
어떨 것 같냐니, 물어도 뭐라고 딱 꼬집을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을 쳐다보며 서훈은 다시 또 같은 질문을 건넸다.
“난 죽은 겁니까?”
한번은 대답할 거란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게 이상했던지 아무 표정도 지을 줄 모르는 것처럼 생긴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웃음과 비슷한 것이 걸렸다.
“당신도 모릅니까?”
“글쎄…….”
“됐습니다, 모르는 거면.”
서훈은 금방 포기한 듯 시선을 다시 허공으로 옮겼다.
도대체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꿈처럼 몽롱하게 풀린 정신도, 저 낯선 사람 같지도 않은 존재와 이 낯선 공간까지 모조리 다.
여긴 어딜까, 서서히 눈앞의 존재에 관해 자신이 의문을 가질 즈음, 대답이 들려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은 죽지 않았어.”
* * *
오늘도 변함없이 유진은 멍한 얼굴로 병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언제라도 돌아올 주서훈을 기다리는 것처럼.
저 두 녀석한테만 혹시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걸까.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있는 모습을 본 민석은 병실로 들어서다 말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서유진, 너 밥은.”
“생각 없어.”
“하아, 또 종일 굶었어?”
혹시나 하고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은 어제와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똑같았다.
분명히 종일 굶었을 거다. 저러다 주서훈 깨어나기도 전에 서유진 먼저 일을 치르지 싶은 걱정마저 앞섰다.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자세냐, 너는.”
“…그냥.”
“그냥 뭐, 그러고 있으면 걔가 눈이라도 뜬대?”
“…….”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병실의 모습. 자신조차 익숙해져 가는 이 광경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였다.
그건 마치 사진으로 찍어 놓은 그대로 모든 게 멈춘 것처럼도 느껴져서, 민석은 가끔 이질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서훈이 쓰러지고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유진은 매일 저 상태였다. 뭐라고 할까. 죽음을 코앞에 둔 연인을 위해 스스로를 죽이려는 것처럼.
“주서훈이 그 꼴 보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새끼야.”
보다 못한 민석이 날 선 말투로 유진에게 성질을 냈다.
일부러 어제와 똑같은 말을 건네며 서훈을 언급했다. 어제도 그 말로 유진을 먹게 했고, 엊그제도,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그런 것처럼 오늘도.
“내 말 듣고 있어?”
“…별로 생각 없다니까.”
끝내 민석의 언성이 높아지고서야 유진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내저으면서.
“안 고파도 억지로 쑤셔 넣어.”
꼬박, 강산이 변할 시간을 함께해 온 녀석들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곁에서 함께 지낸 심정도 참담한데 저 속이야 오죽할까.
민석은 알면서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미안하고 쓰라렸다.
하지만,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는 망가져 가는 유진에게 손에 든 쇼핑백을 오늘 또 강제로 떠넘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