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앓다-63화 (외전) (63/67)

❦외전 1-1

드디어 결혼식이 끝났다.

유진은 어딘가로 사라진 정신을 수습하며 서훈을 따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로비로 향했다.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차에 올라타던 유진이 대뜸 어딘가로 휙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든 시선이 당연하다는 듯 유진에게로 쏠렸다.

“진아, 갑자기 저긴 왜?”

곁에서 보던 서훈이 미간을 찡그리며 넌지시 물었다.

“안에다 뭘 좀 떨어트린 것 같아서.”

“호텔에? 중요한 건 내가 다 챙겼을 텐데.”

“이상하네, 그런데 왜 없지?”

그래도 손님에게 받은 물건이 아닌가. 연신 갸웃거리는 유진을 지켜보던 서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뭐길래 저러나 하는 시선이 뺨을 찌르는데도 유진은 어디에다 흘렸나, 고민할 뿐이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눈치챈 서훈이 찾아오겠다며 유진을 먼저 차에 태운 뒤,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혹시 분실물 들어온 거 없습니까?”

“분실물이라면 하나 있긴 한데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저희도 잃어버린 게 좀 있어서요.”

혹시나 싶어 카운터에 문의했더니, 누군가 가져왔다며 직원이 아래에서 분실물을 꺼내 서훈에게 건넸다.

“찾으시는 게 이거 맞나요?”

“예, 다행히 저희가 찾던 물건입니다.”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서훈이 다시 입구로 발길을 돌렸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혀를 차며 서훈이 입구에서 손에 쥔 드림캐처를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확실히 조금 독특하기는 했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깃털 모양의 액세서리가 크리스털이나 오팔처럼 묘한 빛이 감돌았다.

‘기분 탓인가? 유독 시선을 받았을 때 더 빛을 내는 느낌이었는데.’

설핏 떠올리고도 우스운 듯 서훈이 드림캐처를 손에 쥐고 유진에게로 급히 돌아갔다.

“이거 맞지?”

“바로 찾았네? 이거 어디 있었어?”

“카운터에서 분실물이라고 챙겨 놨더라고.”

“으, 진짜 떨어트렸나 보네.”

작게 웃으며 그가 유진의 손에 직접 드림캐처를 쥐여 줬다.

“이번에는 잘 챙기시죠, 부인.”

“땡큐, 새신랑님.”

그 장난기가 다분한 말투에 소리 죽여 웃으며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들 하고 가지?”

“그러게, 얼른 가셔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이 그 말이다.”

옆에서 내내 지켜보던 민석이 그런 두 사람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얼른 타라, 등을 떠밀었다.

뒤늦게 시간을 확인한 서훈이 그녀를 데리고 급히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는 그들의 뒤로 짓궂은 환호가 유리창 너머로 흘러들었다.

“하여간 다들 쓸데없이 짓궂다니까.”

괜히 민망해진 유진이 뺨을 쓸어내리며 손에 쥔 드림캐처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몰라서 티켓을 한 번 더 확인해 본 뒤, 밑으로 내린 그가 궁금한 듯 드림캐처로 흘깃 눈짓했다.

“이거 누구한테 받았다고?”

“손님한테.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던데.”

유진이 갸웃거리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가 인상을 썼다.

“모르는 사람이 준 걸 그렇게 소중히 챙겨?”

“그냥 좀, 느낌이 그래.”

“무슨 느낌?”

“행운의 부적처럼 약간 그런 느낌.”

드림캐처가 원래 그런 거라며 유진은 아까 식 직전에 만난 누군지 모를 낯선 남자를 떠올렸다.

‘더는 악몽을 꾸지 않을 거라고 했었던가?’

또렷하게 기억나는 멘트와 달리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흐릿했다. 이유를 곱씹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정신없는 와중에 스치듯이 봤으니, 금방 지워질 수도 있겠지. 아니면 제대로 보지 않았던 걸지도.

적당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흘려 넘기며 손끝으로 드림캐처를 만지작거리는데 대뜸 서훈이 뺨을 건드렸다.

“할 말이라도 있어?”

유진이 의아한 듯 손끝을 따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별로,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나 궁금해서.”

“이거 받을 때 생각.”

“드림캐처는 왜?”

“이거 준 사람이 생각이 안 나. 이상하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리자 서훈이 장난치듯 유진의 뺨을 꼬집었다.

“윽, 뭐야.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유진이 제 뺨을 잡아당기는 서훈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자 도리어 못마땅한 듯 그가 나직이 혀를 찼다.

“서운해, 이제 식 올린 신부님이 말이야.”

“…또 뭐가.”

“내 옆에서 딴 남자 생각을 하셨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더니만, 어울리지 않게 불만을 드러내는 서훈을 보며 유진이 소리 죽여 웃었다.

“설마 주서훈, 진심이야?”

“당연하지, 누군 질투도 없는 줄 알아?”

누군지도 모를 남자를 곱씹는 얼굴이 어지간히도 못마땅해 보였다.

“그것보다 질투할 연차가 아니잖아.”

“질투에 연차가 무슨 소용인데.”

“뭐, 그런가?”

“누가 들으면 갱년기 부부쯤 되는 줄 알겠다?”

그 말이 더 기분 나쁜 듯 서훈이 투덜거렸다. 민석이 저걸 봤으면 아주 꼴값은 다 떤다고 비웃었을 거다.

아직도 연애 초기처럼 질투심을 불태우는 서훈이 못내 귀엽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유진의 눈매가 즐거운 듯 아래로 휘어져 내려갔다.

“사귄 횟수로만 치면 권태기쯤은 될 걸?”

“그만큼 좋아 죽는다는 뜻이지.”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짓궂게 웃던 그가 유진에게서 드림캐처를 휙 빼앗아갔다.

“그러니 적당히 보셔.”

본능적으로 팔을 내뻗던 그녀가 포기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으니까, 그거나 다시 줘.”

“별거 아니잖아, 모르는 사람이 준 거라며.”

“그거랑 상관없이 마음에 들어.”

어서 돌려달라며 유진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고도 서훈이 떨떠름하게 드림캐처를 유진에게 다시 건넸다.

하지만 그 손길에서 서운함을 느낀 유진이 떨어지려는 찰나, 서훈의 손에 장난치듯 깍지를 꼈다.

“서운해하지 말고.”

“내가 또 언제.”

“어쨌든 좋은 날 받은 선물이잖아.”

그래서 이게 더 소중한 거야.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유진이 잡은 손을 제 입가로 가져와, 장난치듯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그제야 서훈의 잘게 구겨진 미간이 약간이지만, 다시 펴졌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이 작은 물건보다야, 서훈이 더 소중한 건 당연했다.

솔직히 다른 의도가 없진 않았다.

괜히 시작부터 삐지면 며칠 내내 시달릴 게 아닌가. 피곤해질 미래가 두려운 듯 유진은 공항에서 차가 멈출 때까지 장난처럼 서훈의 기분을 풀어 주기에 바빴다.

* * *

도착 즈음엔 이른 아침이었다.

직항인데도 꼬박 열두 시간을 비행기에서 버틴 탓인지 유진의 얼굴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피로가 짙게 묻어났다.

정혁은 미리 대기 중이던 직원에게 렌트카를 건네받은 뒤, 유진과 함께 일찌감치 공항을 나섰다.

의외로 호텔까지는 금방이었다. 피곤한 듯 침대 한편에 걸터앉으며 유진이 구경하듯 방을 한 바퀴 가볍게 훑어나갔다.

“흐음…….”

체크인할 때 업그레이드해 주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는데, 실내가 생각보다 더 넓었다.

분명히 예약할 때 두 사람은 함께 인터넷으로 리뷰를 찾아다니며 확인하고, 호텔도 직접 다 골랐었다.

그때 골라 놓은 룸이 주니어 스위트였다. 사진 상으로는 이것보다 더 작았던 것 같은데.

“훈아, 이거 주니어 스위트 맞아?”

유진이 이상하다는 듯 서훈에게 물었다.

“하아, 글쎄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서.”

“무슨 대답이 그래?”

“자기가 예약해 준다면서 형이 해 놓은 건데.”

벨보이에게 팁을 건네주고 있던 정혁은 그가 나가자마자 유진에게로 다가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버님이 대신 예약해 주셨어?”

“선물이라더라, 저번에 화상 입게 한 것도 미안했다고.”

“그래서 스위트로 잡으셨나?”

“웃어넘겨, 가격은 얼마 차이도 안 나잖아.”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서훈이 장난치듯 유진의 귓가를 간지럽게 어루만졌다

“일부러 안 그러셔도 되는데.”

유진이 난감한 듯 미간 사이를 찡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해 본 것도 있잖아, 이 정도는 충분히 받아도 돼.”

“은근히 형한테는 뻔뻔하다니까.”

“어쨌건 막내잖아, 가끔은 뻔뻔해져도 돼.”

“같이 뻔뻔해지기라도 하라는 거야?”

이 남자가 말을 해도. 기가 막힌 듯 유진이 빤히 쳐다보자 서훈이 눈을 마주치며 짓궂게도 씩 웃었다.

여전히 귓가에서 손으로 그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그 손길이 귀찮은지 콧등을 찌푸리며 유진이 탁, 쳐냈다.

“그만 좀 만지작거려.”

“갑자기 왜.”

“귀찮아, 이제 막 도착했잖아.”

어울려 줬다가는 그대로 베드인하고도 남을 분위기가 아닌가.

“으윽, 서유진 너무 냉정한 거 아냐?”

“누구보고 냉정하대, 이 남자가.”

하지만 잔뜩 불만을 드러내며 서훈이 더 바짝 곁으로 다가왔다.

“신혼여행 온 직후에 막 신랑 손 뿌리치고 말이지.”

이제는 아예 간지럽게 더듬던 손이 허리를 바짝 휘감아 당기자 유진이 맞닿은 가슴팍까지 툭 쳐 버렸다.

“적당히 해, 나 좀 쉬고 싶다니까.”

“쉬어, 누가 못 쉬게 했어?”

“들으니까, 양심에 막 찔리지 않아?”

“알았어, 이대로 내가 샤워까지 시켜 줄게.”

닿을 듯 귓가로 바짝 다가온 입술이 유혹하듯 간지럽게 숨을 불어 넣었다.

“…윽, 주서훈 너 진짜…….”

“마음에 들어? 아니면 같이 목욕이라도 할까.”

곧장 고막까지 파고든 울림을 느낀 유진의 허리로 바짝 힘이 실렸다. 말끝을 따라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옅은 습기가 담겨 있었다.

장난으로 던지는 말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진심이 느껴지자 불현듯 눈을 착 접으며 유진이 그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았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는 거지, 어디 똑같이 한번 당해 보시던가.’

얄궂은 미소를 걸친 채 닿을 듯 가까워진 얼굴을 마주 보며 유진이 아랫입술을 축였다.

“있잖아, 같이 목욕하면…….”

“…어? 어.”

“우리 신랑님이 막 서비스라도 해 주나?”

콧등을 부딪치며 다가선 입술을 작게 달싹였다.

예상대로 반응 한번 착실하다. 허리를 감은 팔이 긴장하듯 근육이 딱딱해지며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밝힌다니까.

낮게 혀를 차며 유진을 먹어 버릴 듯 다가오는 두 입술 사이로 손을 넣어서, 잽싸게 그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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