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앓다-65화 (65/67)

❦외전 1-3

한참을 시달리던 끝에 유진이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서훈을 뒤로 밀어냈다.

“하아, 하아, 하아.”

살짝 벌어진 틈새로 빠져나오자 뒤에서 당했다는 듯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쓸데없이 잽싸다니까.”

“칭찬으로 들을게.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침대를 벗어나던 유진이 반쯤 고개를 뒤로 돌리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신혼부터 퇴짜 맞을 줄은 또 몰랐는데.”

“누가 퇴짜를 놨다고 그래?”

“방금 덮치는데 도망가 버린 내 신부.”

굳이 또 콕 짚어서 말할 건 뭐야. 괜히 불퉁하게 입을 내밀며 시끄럽다는 듯 유진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금세 단호한 표정으로 유진이 그에게 보란 듯이 손가락을 휙 치켜세웠다.

“신혼 첫날밤이면 모를까, 낮부터 뒹굴 생각은 없거든?”

“그거나 이거나, 어차피 같이 뒹굴 텐데.”

물론, 서훈의 반응이 좋을 리 없었다.

밤이나 낮이나 시간이 조금 다를 뿐이라며 서훈은 허전해진 품이 억울한 듯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첫날밤이잖아.”

“우리가 처음인 것도 아니고, 또…….”

“달라, 어쨌건 첫날밤이니까.”

유진이 매섭게 그를 나무랐다.

“…끙.”

“넌 몰라도 나한테는 첫날밤의 의미가 달라.”

덤비려면 밤까지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직접 서훈에게 새겨 넣은 뒤에야 유진은 씻고 싶다며 아쉬워하는 새신랑을 뒤로한 채, 유유히 욕실로 들어갔다.

* * *

단호한 말 덕분이었을까.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도 서훈은 더 이상 유진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 첫날이 아닌가.

원래부터 새신랑의 인내심이란 길어 봤자 몇 시간이고, 금방 동나기 마련이었다.

“진아, 피곤하진 않아?”

“시차 때문인지 오히려 너무 멀쩡해. 그건 왜?”

“저녁도 먹었겠다, 첫날이니까.”

저녁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은근슬쩍 표정을 살피며 다가선 그가 유진에게 속삭이며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이제는 밤 맞지?”

“아직 이르긴 하지만 초저녁이긴 하니까, 어?”

별생각 없이 긍정의 답을 내리던 유진이 한 박자 늦게 그 속내를 알아차린 듯 가늘게 눈을 접었다.

‘이 남자가 어디서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처럼 해치우려고 들어?’

어림도 없다는 듯 단단한 표정으로 유진이 팔짱을 끼며 휙 눈썹을 치켜올렸다.

“주서훈 진짜 이렇게 설렁설렁 넘어가려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부터 파야지.”

“우물을 파기는 제대로 팠어? 웃겨, 넌 인간이거든요.”

허리를 휘어감은 팔을 꾹 밀어내며 코웃음을 쳤지만, 주서훈인 이런 쪽으로는 한 수 위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봤자 무 쓸모였다. 능글맞게 변한 새신랑을 그녀가 이길 수 있을 리가.

“괜찮다니까, 평소랑 다를 것도 없고.”

눈가를 이미 열기로 벌게졌는데 말은 잘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이 자꾸 어딜 올라와.”

“그럼 내려갈까? 난 그쪽도 환영인데.”

“뭐? 훈아 잠깐만.”

놀라서 빠져나오려는 찰나, 서훈의 손이 간지럽게 훑어 내려가며 잠깐 사이 유진의 시야가 뒤집히고 말았다.

“…예고라도 하라니까.”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차 하는 사이, 서훈에게 밀려 침대에 누워 버린 유진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

아직은 해가 하늘에 반절도 넘게 걸려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대신 새벽녘처럼 내리는 땅거미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약간 핀 풀린 눈길인데.’

두 팔에 갇힌 유진은 괜히 더 새초롬하게 뜬 눈을 마주했다. 얼굴 위로 천장 대신 서훈이 음흉하게 웃었다.

“웃지 마, 여기서 더 정들면 안 돼.”

“나하고 아직 더 들어야 할 정이 남아 있었어?”

점점 다가오는 입술을 느낀 유진이 그 아래턱을 꾹 누르며 밀어냈다.

“모르지, 또.”

“툴툴거리는 것도 섹시하다니까.”

“윽, 아저씨 같은 멘트.”

유진이 오만상을 쓰며 서훈을 징그럽다는 듯 노려봤다.

“이왕이면 섹시하게 봐주면 안 될까?”

“적응 못 하겠어, 그냥 평소처…….”

말끝을 완성하지 못한 채, 유진이 몸을 움찔 굳혔다.

“평소처럼 저돌적으로?”

“……!”

“뭐든 내 신부님이 원하시는 대로.”

손바닥으로 붙인 입술이 간지럽히듯 속삭이고 있었다. 달싹여지는 입술로 간지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축축하고도 은밀한 그 열기에 그나마 태연하게 굴던 유진의 뺨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서로의 체온까지 뒤섞일 만큼 서훈이 빈틈도 없이 바짝 다가왔다. 가볍게 그의 콧등이 부딪치며 유진의 얼굴로 숨이 흐트러졌다.

“서유진, 너 이제…….”

“…….”

“진짜로 평생 내 거 된 거지?”

가만히 듣던 유진이 긴장 사이로 작게 풋 웃었다.

“언제는 아니었던 것처럼 말해.”

“뭐, 완전히는 아니었으니까.”

억울한 듯 투덜거리는 눈가가 한층 더 나른한 듯 위험스럽게 빛났다.

밀착된 열기만큼이나 입가로 흘러나오는 장난이 유독 짓궂게 느껴졌다. 금세 마른 입술을 축인 서훈이 발그레한 뺨을 쓸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렸다.

한입에 삼켜 버릴 듯한 눈길에 덩달아 마른침을 삼키며 유진이 그의 목으로 제 팔을 둘렀다.

“할 거면 제대로 해, 감질나게 하면 소박맞는다?”

“예, 아무렴 어련하시려고.”

그렇게 말한 서훈은 지금까지의 인내심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다급히 덤벼들었다.

금세 몰아치듯 달아오른 두 입술이 맞물렸다. 열기를 반기듯이 그에게 두른 팔을 유진에 제게로 더 바짝 당겼다.

점점 더 짙어지는 숨결이 허공에서 달뜨게 뒤엉켰다.

“하아, 하…….”

겨우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는데 다시 또 서훈의 입술이 포개졌다.

막힌 숨결과 함께 매트리스로 깊이 짓눌렸다. 급한 손길이 열기를 머금은 채, 유진에게로 파고들었다.

부딪치는 시선엔 맹수처럼 이를 드러낸 서훈이 그녀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었다. 예민해진 몸이 시트를 스치기만 해도 파르르 떨렸다.

매섭게 퍼부어지는 열기가 버거운 듯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유진이 그의 등줄기를 따라 손을 내렸다.

슬슬 빨라지는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며 유진이 거칠어지는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곧게 뻗은 척추를 따라 끌어안은 두 팔에 더 힘을 실었다.

늘 다정하던 서훈이 유독 거칠게 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첫날밤이란 그만큼 각자 평소와 다른 긴장감을 채워 주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두 사람의 신혼여행은 여느 커플들처럼 일주일의 일정으로 잡혀 있었고, 본격적인 관광은 둘째 날로 정해 놨었다.

보통 첫날엔 시차부터 결혼식 직후이기에. 서로 피로가 꽤 심했으니 말이다.

적당히 첫날밤을 보낸 뒤, 휴식을 취하기에 그럴싸한 이유였다. 그러나 유진은 예정보다 하루를 더 쉬고서야 그나마 편하게 나갈 수가 있었다.

원인이라면 쓸데없이 날뛴 서훈에게 있었다.

‘…그만 좀, 읏…….’

‘조금만, 응? 진아, 진아.’

동거가 벌써 몇 년째인데 첫날밤이란 단어에 날뛰냐는 말이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끄덕여 주는 게 아니었다.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또 세 번이 될 줄 알았겠냐마는.

약해진 마음에 받아주기 시작했더니 서훈은 아예 작정한 사람처럼 그녀를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저녁부터 시작된 관계는 창 너머로 어둠 대신, 해가 뜰 때까지도 이어졌고, 부족한 잠을 채우고 나니 훌쩍 셋째 날이었다.

“이럴 거면 굳이 외국까지 뭐 하러 나와.”

“앞으로 자제할게, 그만 좀 풀어.”

“웃기지 마, 자제한다는 분이 아침까지 사람을 괴롭히셨어?”

어이없다는 듯 호텔을 나선 유진이 콧방귀를 꼈다.

“그게, 으음. 나도 어쩌지 못할 본능이라는 놈이 말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해, 이 짐승아.”

벌써 동거만 몇 년째가 아닌가. 결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던 생각은 유독 더 집요한 첫날밤부터 와장창 깨지고야 말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더니만, 3일째다. 서훈은 계획한 대로 호텔 근처부터 천천히 둘러보기를 원했지만, 유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작부터 깨진 일정이 아닌가.

“웬일이야 바로 내 얘기에 수긍해 주고.”

“반성이라고 치자. 신혼여행이라 너무 괴롭힌 것도 있고.”

미안한 듯 겸연쩍게 웃는 서훈의 뺨을 장난치듯 유진이 손으로 감쌌다.

“오구, 나한테 미안하긴 하셨어요?”

“이래 봬도 양심은 남아 있다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빼기는. 너도 좋았으면서 또 그런다.”

하지만 장난치며 나선 것까진 좋았는데 행선지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바티칸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거기부터 가자는 말에 서훈은 알겠다며 선뜻 끄덕였다.

대신 밥부터 먹자는 조건과 함께.

“됐어, 아침 먹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신혼여행 내내 호텔 밥만 먹을 수는 없잖아. 곧 런치니까.”

생각 없다고 거절하자 서훈은 끈질기게 유진을 설득했다.

이탈리아까지 왔는데 아직 제대로 본토 음식도 먹어 보지 못한 게 말이 되냐는 등,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어쨌거나 이탈리아는 음식으로도 꽤 유명한 나라였다. 에피타이저로는 부르스게타, 식사로는 스파게티, 생선 요리, 리조또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유진은 마음대로 하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진짜 주서훈,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 해.”

“그래서 이제 반품하고 싶어졌어?”

“할 거면 동거할 때 진작하고도 남았거든.”

“아쉽게도 이제는 반품 불가야.”

일부러 더 뻔뻔하게 말한 서훈이 씩 웃으며 감싸고 있던 유진의 어깨를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그 짓궂은 장난에 잘게 콧등을 찡그리며 유진이 그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툭 쳤다.

“며칠 사이에 더 뻔뻔해졌어, 너.”

“네가 몰라서 그래, 원래부터 내가 좀 뻔뻔해.”

“얼씨구, 그거 자랑이세요?”

“뭐, 나름대로는.”

장난으로 주서훈을 어떻게 이겨. 포기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유진이 넌지시 되물었다.

“그래서 어디부터 가려고.”

“이 근처의 괜찮은 가게들도 다 찾아놨어.”

“너무 낯설지 않으면 좋겠는데.”

“괜찮을 거야. 대표적인 음식으로 골랐으니까.”

당연하다는 그 뉘앙스를 느낀 유진이 작게 웃었다.

솔직히 그가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좋은 가게를 찾아내겠냐 싶었지만, 걱정은 지나가는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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