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앓다-66화 (66/67)

❦외전 1-4

서훈이 미리 찾아 놓은 가게로 들어가며 유진은 괜히 걱정했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예상보다 훨씬 쓸 만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게는 언제 찾았어?”

인테리어를 짧게 훑어보며 유진이 의아한 듯 서훈에게 물었다.

“일부러 검색을 좀 해 봤지. 여기가 가장 추천이 많더라고.”

“한국 사람들 입에 잘 맞을 것 같아.”

다행히 오픈 직전이라, 가게를 들어간 타이밍도 제법 좋았다.

금세 음식이 나오자 한입 먹고는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평을 말했다.

“흠, 예상보다는 느끼함이 적네.”

“그러게, 외국에서는 가게 잘못 고르면 난감해지던데.”

여행 전부터 찾아 놨다며 서훈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깔끔한 인테리어도 좋았고, 맛까지 제법 괜찮았다.

가게를 나선 뒤에는 그녀는 배도 적당히 꺼트릴 겸, 서훈과 함께 근처를 구경하며 거닐었다.

확실히 나라마다 그 특색이 달라서인지, 한국하고는 다른 특유의 멋이 느껴지는 듯했다.

사람이 많은 길가에서 그는 곁에서 나란히 걷는 유진에게 부쩍 더 신경이 쏠려 있었다.

“적당히 좀 놔, 내가 꼬마도 아닌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한국보다 좋지 않은 치안이 걱정인 눈치였다. 굳이 괜찮다는 데도 끌어안은 어깨에서 절대로 팔을 풀지 않았다.

“으이그, 괜찮다니까.”

“치안을 믿을 만한 나라가 생각보다 적어.”

“그거 은근히 과보호야.”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부터 하냐, 유진이 작게 투덜거렸다.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유진이 다시 카메라를 위로 들었다. 그림처럼 예쁘게 지어 놓은 골목이며 근처의 풍경을 찍기 위함이었다.

뭘 그렇게 찍냐는 서훈의 시선을 무시하며 유진은 꿋꿋하게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단순한 산책에서도 두 사람의 관광은 그 결이 다른 탓이었다.

아마도 직업의 차이 때문이리라.

건성으로 구경하는 서훈과 달리 유진은 눈에 띄는 건물이며 골목 하나까지도 사진으로 그 증거를 남겨 놓으려는 쪽이었다.

좁은 땅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은 건물들을 대부분 높게 세우고는 했다. 외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었으니, 그만큼이나 풍경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산책 삼아서 걸어 다녔을까.

괜찮은 사진을 건져보겠다며 서훈보다 한참이나 앞서 나가던 유진이 실수로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탁-!

놀란 듯 그대로 멈춘 채, 유진이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어? 저게 왜?”

호텔에 있어야 할 드림캐처가 아닌가.

이상하다, 저게 왜 주머니에서 나오지. 서훈이가 집어넣었나. 갸웃거리는데 뒤에서 놀란 서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아, 너 괜찮아?”

“어? 아, 으응.”

“그러게 같이 가자니까.”

바로 뒤따라온 서훈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허리를 수그리려는 순간, 앞에서 먼저 뻗어진 손이 드림캐처를 주워 들었다.

금세 수그리던 허리를 곧게 편 유진이 자신에게 주려던 손이 멈추자 미간을 잘게 찡그렸다.

“저기…….”

“허, 이런 것이 어째서…….”

재차 상대를 불렀지만, 그는 자신이 쥔 드림캐처를 빤히 내려다보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맙소사, 이런 물건이 어째서.”

어쩐지 조금 다른 의미로 난처했다.

딱 봐도 성직자로 보이는 복장이 아닌가. 하필이면 부딪쳐도 신부님이라니, 곤혹스러울 수밖에.

어색하게 웃으며 유진이 재차 물건을 쥔 성직자를 작게 불렀다.

“저기요, 저기.”

“예? 아…….”

“죄송하지만 그거 제 물건인데.”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성직자가 얼핏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방금 부딪치신 분이죠?”

“네, 그때 바닥으로 떨어졌나 봐요.”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이 돌려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조심하세요, 귀한 물건 같은데.”

“…예? 무슨…….”

“뭐든요. 앞으로 이건 특히 더 잘 챙기시고.”

드림캐처를 돌려주며 그 성직자가 무언가 알 길 없는 눈으로 유진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아마 상대가 성직자가 아니었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했을 거다. 그만큼이나 주시하는 눈길이 관찰하듯 날카로워져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받았으면 얼른 이리와.”

“어? 어, 알았어.”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서훈도 그 묘한 느낌을 알아차린 듯했다. 뒤에서 돌연, 팔을 잡아당기며 왜 그러냐는 듯 유진을 성직자의 시야에서 가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아닙니다.”

“방금까지 계속 제 부인을 쳐다보시던데.”

아니라며 손을 내젓는 상대가 못마땅한 듯 서훈이 인상을 썼다.

“아닙니다, 단지 그 물건이 독특해서.”

“흔한 드림캐처입니다만.”

가볍게 받아치는 서훈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롭게 성직자를 살폈다.

‘고작 그것 때문이라고?’

성직자처럼 구는 사기꾼인가. 딱 봐도 유진에게 할 말이 남은 얼굴이었다.

한번 품기 시작한 의문은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가지를 뻗쳐 나갔다. 상대도 그걸 느꼈는지 서훈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부디 두 분에게 신의 가호가 이어지기를.”

마치 축복이라도 내려 주듯 그 한마디를 던진 뒤, 성직자가 잽싸게 그들에게서 멀어져갔다.

“뭐야, 저건 또.”

길가에서 부딪친 성직자의 말이 잊히지 않은 탓일까. 확실히 드림캐처를 주워 주면서 건넨 말들이 꽤 의미심장하기는 했다.

이 작은 드림캐처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어쩌면 그래, 괜히 신경이 쓰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구경하러 와 놓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까의 일이 떠오르는지 유진은 한 번씩 멍해지고는 했다.

“진아, 서유진.”

“…어, 나 불렀어?”

“오자고 조른 사람이 멍 때리면 어떻게 하냐.”

“미안, 오늘따라 정신이 좀 산만하네.”

유진이 뺨을 문지르며 쓰게 웃었다.

“그럼 적당히 봐, 한 번 더 와도 괜찮으니까.”

“웬일이야, 오기 싫어했으면서.”

의외라는 듯 눈을 치켜뜨자 어차피 호텔 근처인데 안 될 것도 없다는 듯 서훈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 올렸다.

“싫을 건 없지. 조금 지루해서 문제지.”

“어쨌건 다시 오기로 약속한 거다?”

“뭐, 네가 꼭 와야겠다면 나는 별 상관없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유진은 한 번 더 들르기로 약속을 받고 나서야 미련이 남는 듯 붙들고 있던 발을 떼어 냈다.

따로 보려던 게 있으니 더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내일 다시 보자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그나마 돌아가자는 서훈을 따라 움직여질 만큼.

* * *

다음날, 서훈과 함께 호텔을 나선 시각은 어제보다 늦은 오후였다.

어제까지는 꽤 선선했는데 하루 사이, 볕이 상당히 강해진 느낌이었다. 오히려 더 늦은 시간에 나왔는데도.

크게 더위를 타지 않는 서훈에 비해 유진의 짜증지수는 유독 더 높아져 있었다.

“어제는 괜찮더니 날이 왜 이래, 오후인데.”

“흐음, 어제보다 확실히 해가 강하네.”

오만상을 찌푸리는 유진에게 장난을 치듯 서훈이 가볍게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넌 왜 혼자 멀쩡해?”

“내가 더위를 잘 안 타잖아, 알면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불공평한 기분이잖아.”

걸치고 나온 옷은 자신이 더 시원하게 입질 않았나. 괜히 서훈에게 눈을 흘기며 유진이 해를 가리듯 머리 위로 손을 펼쳤다.

손바닥을 펼쳐 봤자 이걸로 그늘이 만들어지진 않겠지만, 그대로 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여긴 듯했다.

“부채라도 갖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것도 챙겨왔어?”

불쑥 되묻는 서훈의 표정이 별걸 다 챙겼다는 기색이다.

“내 맘이거든. 짐 쌀 때 보이길래 그냥 넣었어.”

“그래, 우리 부인님 마음이기는 하지.”

“그 묘한 뉘앙스는 뭐야? 주서훈 지금 나한테 시비 걸지?”

유진이 뾰로통하게 눈을 흘겼다.

“그럴 리가, 모시고 살아도 부족할 우리 부인님인데.”

“말은 잘하지, 우리 주서훈 씨.”

그래도 이럴 때 보면 사계절이 일정한 한국이 나은 것 같아. 투덜거리며 유진이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을 팔목에 낀 곱창 밴드로 질끈 묶었다.

금세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뒷덜미가 시원하게 트였다. 그나마 묶고 났더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다행히 바티칸까지는 멀지 않았다. 어제도 한 번 다녀온 길이라서인지, 두 번째는 도착도 더 빨랐다.

“볼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거야, 네가 관심이 적어서 그런 거고.”

“반박할 말이 없네, 사실이라서.”

하여간 이런 쪽으로는 취향이 갈린다니까.

“구경하기 싫으면 적당히 나 따라와.”

“알아서 할 테니까, 보기나 해.”

혀를 차며 앞으로 고개를 돌린 채, 유진이 서훈에게 기다리라는 듯 손을 휙휙 내저었다.

그대로 꼬박 몇십 분을 구석구석 다 돌고 나서야 유진은 만족한 듯 지루해하는 서훈과 함께 바티칸을 나섰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 높이 솟아오른 볕의 기세가 한풀 꺾여 있었다.

“주변에 편의점은 업나? 목마른데.”

“그래? 잠깐만.”

유진을 따라 걸음을 멈춘 서훈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가 건너편에서 작은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찾았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서훈에게로 휙 고개를 돌린 유진의 눈이 반가운 듯 부담스럽게 반짝였다.

“얼른 다녀와, 얼른.”

금세 장난처럼 그녀가 가게 쪽으로 서훈을 쭉쭉 떠밀었다.

“알았으니까 여기 꼼짝 말고 있어.”

“걱정도 팔자다, 으이그.”

멀어지는 서훈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 유진의 시선이 일순, 어딘가에서 딱 멈췄다.

스치듯 보인 자판의 팔찌들이 눈에 띄었다.

‘어? 전부 천연석인가?’

호기심이 생긴 그녀가 자판으로 몸을 돌린 채, 검은빛의 팔찌로 손을 뻗었다.

황갈색부터 붉은색, 옥색이며 검은색까지 작은 돌로 만들어진 팔지는 화려하면서도 원석 특유의 느낌이 담겨 있었다.

“흐음, 이 색은 딱 봐도 오닉스 같은데.”

유진이 눈을 빛내며 팔찌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까만 원석이 유난히도 예쁘다고 느끼던 그때, 음산하게 깔린 목소리가 매섭게 고막까지 파고들었다.

“용케도 잘 빠져나갔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로 오싹 소름이 돋았다.

“네? 방금 무슨…….”

“걱정 마라, 두 번은 없을 테니까.”

기겁하듯 유진이 본능적으로 물러섰지만, 조금 더 빨리 그 목소리의 손이 앞으로 뻗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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