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일상 붕괴의 직전 2
* * *
과연 이번 보스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처음 겪는 공격 패턴에 몇 번이나 골로 갈 뻔했고, 덕분에 회복 아이템은 바닥났다.
그뿐일까. 산성 용액이라는 내구도 소모 스킬까지 있어서 지금 내 캐릭터의 방어구도 무기도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마냥 나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적 또한 마찬가지로 만신창이였기 때문이다.
보스의 체력을 나타내는 빨간 체력바가 당장이라도 없질 듯 짧아져 있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어서 신체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고 싶었다.
마우스와 키보드에 닿아있는 손끝이 가볍게 떨린다.
내가 잡고 있는 게 마우스와 키보드가 아니라 진짜 검과 방패처럼 느껴졌다.
철 특유의 차가운 감촉, 날에 서린 예리함. 검에 묻은 혈향까지 코끝에 닿는다.
그래. 이 느낌이다.
SoR를 하고 있으면 간혹 이렇게 신기한 느낌이 들곤 한다.
게임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누구는 게임 중독 증상이 아닌 거냐고 묻지만, 커뮤니티 등에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례들이 여럿 보이곤 한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든 게임이라는 극찬이 있는가 하면, 니 인생이나 살라며 까는 글도 있었다.
혹은 그러다 게임 속에 빨려 들어간다는 괴담 글도 종종 보였다.
‘뭐, 상관없지.’
중독 증상이든, 무아지경이든, 귀신에 홀린 것이든, 그도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었든 뭐든 간에 아무 상관없었다.
난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다시 눈을 뜬다. 거기에 모니터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이세상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이형의 괴물.
거대한 팔과 사나운 이빨이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다가오고 거대하고 흉흉한 눈이 나를 주시한다.
그 앞에 홀로선 나의 모습은 초라하다.
갑옷의 내구도는 한계에 가까웠고, 쥐어진 검은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금이 가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쇠를 억지로 찢는 듯한 불길한 포효.
나의 숨통을 끊기 위해 괴물이 팔을 들어 올렸다. 저무는 햇빛을 반사하는 낫 형태의 손톱이 핏빛으로 빛난다.
그 순간 내 떨림은 커졌다. 이 떨림의 정체는 공포나 절망 따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환희다.
한순간에 승패가 갈리는 아슬아슬한 이 상황을 즐기고, 그 끝에 있는 승리를 확신했을 때의 환희.
괴물의 팔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그 공격으로부터 달아나기커녕 도어 더욱 발을 앞으로 내밀며 괴물의 품으로 파고든다.
이 타이밍.
휘둘러지는 녀석의 팔에 담긴 에너지가 극에 달하기 직전.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흐름을 비틀기 위해 왼손에 쥔 방패를 휘두른다.
괴물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방패가 파고들며 놈의 팔과 맞부딪친다.
카앙!
나의 머리를 노렸던 괴물의 팔은 그 일격이 완성되기 직전에 방패에 가로막혀 방향을 잃었다.
갈 곳을 잃은 힘은 방패면을 따라 미끄러지며 애꿎은 내 옆의 빈 땅을 때렸다.
콰아아앙!!
엉뚱한 곳을 향한 헛손질로 인해 괴물의 자세가 무너지고 크나큰 빈틈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지체 없이 검끝을 녀석의 목으로 향한다.
이 일격이면 확실하게 괴물을 끝장낼 수 있었다.
‘끝이다!’
그렇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순간!
번쩍!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두 눈을 부릅떴다.
번쩍이던 하얀빛이 사라지자 남는 건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빛을 잃은 모니터 화면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뒤이어서 들려오는 굉음.
우르릉!!
벼락소리였다.
소리로 듣건대 꽤나 가까운 곳에 떨어진 듯싶다.
벼락이 지나간 뒤 세찬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만이 침묵밖에 없는 방안을 울렸다.
한동안 까만 모니터 화면과 주변에 어둠을 바라보던 나는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정전이었다.
방금 전 벼락 탓일 것이다. 내 방만 정전된 게 아닌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근처 가구들이 전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 하하…….”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온다.
오랜만에 찾아온 최고의 순간이었다.
게임 플레이 영상을 남겨놔 언젠가 내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생애 최고의 플레이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하고 싶을 만큼 짜릿한 승리가 바로 직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벼락 하나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
견딜 수 없는 깊은 빡침이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겨우 게임 하나에 너무 열 올리는 거 아니냐고?
과제를 하느라 작성해 놓은 작업물이 정전 때문에 모두 날아갔다고 생각해보라!
아니면 세계 신기록에 도전하려 도미노를 쌓던 도중 어떤 미친놈이 난입해 도미노를 걷어찼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아니면 연인과 므흣한 시간을 보내려는 순간 연인의 전남친이 찾아와 깽판을 부린다고 생각해보라!
누구에게나 심혈을 쏟아 붓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 초를 쳤으니 안 빡치고 배기겠는가?!
“크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의자를 걷어차 보지만 기분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레벨업이! 승리가! 바로 직전이었는데! 빌어먹을 벼락 새끼!!
“하아! 하아!”
한참을 날뛰다가 옆집에서 벽을 두드리며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나서야 겨우 숨을 고르며 진정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멘붕을 겪은 건 오랜만이었다.
2페이즈 끝에 쓰러뜨린 줄 알았던 보스 몬스터가 갑자기 부활 뒤 3페이즈로 뒤통수를 후려쳤을 때도 이 만큼 충격을 받진 않았는데.
아무튼, 좀 냉정해진 머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깜깜하고 창밖으로는 비 내리는 소리와 간헐적인 천둥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휴대폰의 손전등 모드를 켜서 어둠을 쫓아낼까 생각해봤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 잔량을 보고 관두었다.
아까 충전기를 꽂아놔야 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러고 보니 신발장 안쪽에 안 쓰는 양초가 있던 것 같은데…….’
처음 이사 왔을 때 왜 이런 게 있나 생각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해서였나보다. 아님 전에 살던 원룸 주인이 SM 마니아였다거나.
휴대폰 배터리를 낭비하는 것보단 훨씬 효율적으로 보이기에 양초를 찾아서 현관문 쪽으로 이동했다.
허리 높이조차 되지 않는 신발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안쪽을 뒤진다.
어둠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으로 더듬는 것으로 양초를 찾아내 손에 쥐었을 때였다.
쨍그랑!!
“……?!”
갑작스런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무슨 일인가 하며 창문 쪽을 돌아보았다.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습기 어린 바람이 방 안으로 불어오는 것이 창문이 깨져나간 게 분명했다.
‘오늘 바람이 그렇게 세던가?’
아무리 폭우가 쏟아진다고 해도 창문이 깨질 만한 강풍은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창문으로 돌을 던진 것도 아닐 것이다. 5층 높이에 있는 창문을 맞출 정도라면 이딴 미친 짓 말고 야구선수나 해야지.
그냥 창문이 낡았기 때문일까? 이 경우 수리비는 어쩐다?
원인이 뭐든 귀찮게 되어버렸다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콰앙!!!
움찔!
아까보다 더 큰 소리에 어깨를 크게 움찔거렸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옆에 있는 화장실 문이 박살이 난 듯한 소리다.
그 순간 나는 그저 운이 없어서 창문이 깨진 거란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쿠웅! 탁!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나 이외의 낯선 기척이 느껴진다.
번쩍!
번개가 치며 세상이 한순간 밝아진다.
벽에 가려져 방 안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번갯불에 맞춰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바닥에 드러난 뒤 사라졌다.
분명 나 혼자뿐이던 방 안에 누군가 있었다.
‘강도!’
지체하지 않고 신발장 옆에 있는 우산꽂이에 손을 뻗었다.
팔 하나 정도 되는 길이의 우산이 휘두르기 좋게 손에 쥐어진다.
밤중에 누군가 창문을 깨고 집안으로 침입. 이거 쥐어 패도 정당방위겠지?
이 나라는 법이 이상해서 강도라도 함부로 패다간 오히려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다던데……는 개뿔.
저쪽이 칼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뒷일 따질 때냐. 악법 지키다가 개죽음당하는 쪽이 더 웃기는 일이라고.
‘근데 어떤 자식이기에 폭우 쏟아지는 날 5층 원룸까지 기어올라 오냐?’
상대가 폭우 속에서 벽을 타고 건물을 올라왔다면 약골은 아닐 것이다. 진짜 선수를 치지 않으면 내가 위험할 수 있다.
현관 옆 벽에 기댄 채 호흡을 고른다.
보스전을 앞두고 긴장된 몸을 풀 때의 버릇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모양이다.
이내 몸과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우산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우르릉!
조금 전에 친 번개가 남긴 굉음이 뒤늦게 도착해 방안을 울렸다.
그것을 신호탄 삼아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실루엣을 향해 우산을 휘둘렀다.
“하아아압!! ……컥!!”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우산을 휘두른 순간 무언가 날아와 내 목을 틀어쥐었다.
집 안에 침입한 괴한의 손이었다.
생각보다 가늘고 부드럽다는 감상은 거기에 실린 힘에 밀려 사라졌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팔씨름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악력이 거기에 실려 있었다.
‘무슨 힘이……?!’
목을 틀어쥔 손에 내 몸 전체가 붕 하며 딸려 올라갔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무게인 육체가 솜인형 마냥 가볍게 허공을 휘돌고 바닥에 내팽개쳐진다.
쿠웅!!
“쿨럭!”
숨이 뿜어진다.
등과 뒤통수에 퍼지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겨우 의식을 붙잡는 내 눈으로 강렬한 빛이 들어왔다. 또다시 번개가 친 것이다.
그 순간 내 눈에 비춰진 것은 번갯빛을 받고 반짝이는 날붙이였다.
내가 쥔 우산은 우습게 보일 만큼 길고 예리한 흉기가 괴한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내 목을 썰어버릴 듯한 모습으로.
괴한이 번개를 등지고 있었기에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음을 느꼈다.
거기에 담긴 것은 오로지 살의.
현대 사회에선 느껴보지 못할, 거의 짐승의 것과 가까운 원초적인 살의가 거기에 있었다. 사람을 한두 번 죽여 본 것 같지 않다.
‘강도가 아니라 연쇄살인마였냐?!!’
번갯빛이 미처 사라기도 전의 괴한의 흉기가 나에게로 떨어진다.
빛을 받아서 빛나는 칼이 마치 선을 그리듯 내게로 이어졌다. 마치 선을 그리듯 슬로모션처럼 이어지는 빛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했다.
차마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눈을 감는다.
어머니! 아버지! 효도도 못 해 드리고 떠나서 죄송합니다!
콰각!!
흉기가 떨어졌다.
내 심장도 한 차례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놀란 나머지 쿵쾅쿵쾅 울려대는 박동 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잘 들리네? 심장 소리.
나 살아 있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슬그머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거대한 흉기가 단두대처럼 내 목을 토막 내기 직전에 멈춰 있었다.
흉기의 절반은 방바닥을 파고들어 가 있었다. 바닥을 브레이크 삼아 멈춘 모양이다.
‘일부러 멈췄어?’
단순한 위협이었던 걸까? 그 노골적인 살기를 떠올리자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분명 죽일 마음이었는데 변덕이라도 부리는 걸까? 괴롭힌 다음에 죽이는 쾌락살인마 유형?
X됐네. 이걸 어쩌면 좋지…….
“당신은…….”
목소리가 들렸다.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가볍게 바닥에 내리꽂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어딘가 충격을 받은 듯한 멍한 목소리에는 조금 전과 같은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눈을 뜨며 날 깔아뭉갠 여성을 바라본다.
처음엔 흐릿하게 윤곽만 보이던 상대방의 모습이었지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점차 확실하게 모습을 구별할 수 있었다.
상대방의 모습을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많이 상하긴 했지만 진짜 금속으로 만든 듯한 갑옷과 검.
방금 전까지 전쟁터에서 구르고 오기라도 한 듯 여성의 몸 곳곳에선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내 시선을 빼앗은 건 그게 아니다.
나를 내려다보는 여성의 얼굴.
동양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서양인이라 부르기에도 어딘가 어폐가 있다.
마치 판타지.
이국(?國)적이라기보단 이현실(???)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현실로 나온 것 같았다.
난 이 여성은 모른다. 하지만 이 얼굴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여우의 꼬리 같은 은발 머리와 금빛 눈동자. 결코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전에도 말했듯, 난 게임 캐릭터를 정말 정성을 들여 만드는 성격이었으니까.
나를 덮친 여성은 내 게임 속 캐릭터의 외모와 똑같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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