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부모 마음 3
* * *
대가리 박기.
혹은 원산폭격 자세라고 하던가.
양팔로 뒷짐을 지며, 두 발과 머리만으로 삼각형 형태를 만들어 바닥에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자세이다.
군대는 아직 안 가본 나였지만, 똥군기는 가득한 시골 고등학교를 다녔었기에 받아본 경험은 있었다.
내가 다닐 당시만 해도 당연하듯 쓰던 체벌 방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졸업하자마자 너무 가혹하다는 말과 함께 금지되었다고 한다.
잘된 일이긴 하지만 묘하게 억울해서 그 고등학교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아무튼 이러한 대가리 박기는 신체적 체벌이 흔했던 옛날엔 흔했을지 몰라도 명백한 가혹행위다.
요즘 시대엔 맞지 않지만 남아 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해왔다.
“으으음……!”
“이 자세, 꽤 어렵네요……!”
그런데 그런 사라져야 할 악습을 지금 여기서 잠시나마 실현시켰다.
내가 살던 원룸집 옥상.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군인도 박수 칠만큼 완벽한 대가리 박기를 실시하고 있는 두 남녀라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당연히 내가 시킨 거다.
가혹행위고 뭐고 다 개나 줘버리라지.
내 생활공간을 초토화시키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더 나아가 내 방을 사이비 종교 의식 현장으로 만들었으며, 종국에는 배를 채우겠다고 서로의 살점을 베어 먹으려고 한 미친놈들에게 합당한 벌이 필요했다.
악습도, 악법도 상황에 따라선 이용하기 나름.
신이시여, 오늘만 정의롭고도 싸가지 없는 교관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
“후우…….”
그렇게 벌을 주는 건 좋은데, 서늘한 비에 머리를 식히자 이 짓도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들이 막나가는 이유를.
이들의 가치관은 전적으로 게임 속 세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이 도를 지나치는 행동을 보이는 것도 이쪽 세상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거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의 행동이 나쁘다고 말해도 실제로 피부에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이 필요하다. 이 녀석들이 이쪽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내가 그것을 잘 할 수 있을까?
누굴 가르쳐 본 건 게임에서 뉴비에게 쓸모 있는 팁 알려줄 때 말고는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체벌을 써먹을 수밖에 없겠어.’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듯 체벌이라는 행위에도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잘한 짓을 하면 상을 주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면 벌을 준다.
동물에서부터 인간에게까지 통용되는 교육의 기본 아니던가.
교육할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 두 사람에게 몸으로 익히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해선 안 될 짓을 하면 혼이 난다’. 그 규칙만 몸에 새겨줘도 그들에게 충분한 자제력이 될 테니까.
무식하긴 해도 효과 있는 방법이었다.
‘생각해보니 웃기네. 연애도 안 해본 솔로가 덩치 큰 애들의 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게.’
허탈한 웃음을 내뱉으며 다시 레반과 레테라를 바라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임에도 두 사람은 꾀 한 번 부리지 않고 착실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특히 여성은 신체 구조상 이 자세를 유지하는 게 힘들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레테라 넌 괜찮아? 여자는 무게 중심이 상반신에 쏠려 있어서 균형을 잡긴 힘들 텐데.”
좀 쉬운 자세로 완화시켜줄까라는 생각에 꺼낸 말이지만 의외로 레테라는 사양했다.
“걱정 마세요, 아버님. 전 재주가 좋아서 이 정도 균형을 잡는 건 일도 아닙니다.”
기량을 중심으로 키운 게 전투 외에도 드러나는 건지 레테라는 벌써 요령을 잡은 모양이다.
자세가 고통스럽기커녕 오히려 내가 걱정해줬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이대로 좋은 거 맞나? 벌을 주는 의미가 없는 거 같은데.
그때 레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주가 좋긴 무슨. 남자와 다를 바 없이 가슴이 빈약해서겠지.”
그건 레테라를 향한 시기라기 보단, 부모의 관심이 다른 형제에게 쏠려 토라진 아이의 투덜거림에 가까웠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의 말이 레테라를 다이렉트로 자극했다는 것일 거다.
“아버님. 잠시 자세를 푸는 걸 허락해주시겠어요? 이 예비 탈모를 족쳐버려야 할 것 같아서요.”
상기되었던 레테라의 목소리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냉기가 흘러넘쳤다.
대가리를 박은 자세 때문에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왠지 안 보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사자의 갈기처럼 풍성한 머리카락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레반이 발끈한다.
“누가 예비 탈모야? 내 모근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강하게 살아갈 거라고.”
“오늘부터 탈모가 될 거야. 내가 네놈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아버릴 거거든.”
“해보시던가.”
“못할 줄 알고?”
후오오오오……!!
뭐지? 이렇게 습기 찬 밤이건만,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피부를 따끔거리게 하는 바람이 휘몰아친다.
설마 이게 소설에서 글자로만 접하던 살기(??)라는 건가?
이 녀석들이 내 방을 습격했던 날 느꼈던 것보다 훨씬 본격적이었다.
마치 굶주린 맹수 무리 한가운데에 끼어있는 것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무의식이 저들의 근처로 가지 말라며 경고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완벽한 대가리를 박기 자세를 취한 이들이 살기를 뿜어봐야 얼마나 무섭겠는가. 오히려 우스꽝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두려움과 우스움이라는 기묘한 부조화에 멀미마저 일어난다.
“싸울 거냐?”
언짢음이 묻어나는 내 목소리를 감지한 두 사람에게서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다퉜냐는 듯 서로에게 관심을 끊고 대가리 박기 자세에 열중한다.
내 말은 충실히 따르고,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들에게 전혀 없었다. 그 점 하나 만큼은 다행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친 사고들이 전부 악의 없이 저지른 일이란 뜻이니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빨리 이놈들에게 이쪽 상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큰일 나겠어…….’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하나하나 가르쳤다간 날이 다 갈 것 같고, 이 옥상에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있는 걸 누군가에 들켰다간 뒷감당이 어려워질 테니까.
때마침 자리를 옮기려는 생각을 긍정해주는 울림이 들려왔다.
꼬르륵…….
텅 빈 배가 밥 달라고 아우성칠 때 그 특유의 울림.
고개를 들어 레반과 레테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바닥에 대가리 박은 자세 그대로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놈이 낸 소리입니다’라고 고자질하듯이.
소리는 하나였으니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별로 따져서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한 사람이 소리 냈을 뿐이지 배고픈 건 둘 다 마찬가지일 테니까.
오죽 배고팠으면 서로의 살점을 도려내 카니발리즘을 벌이려 하겠는가. 이 망할 것들…….
나는 깔고 앉았던 무너진 옥상문에서 몸을 일으켰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
난 바보다.
편의점에 들어선 직후 나는 생각 없는 자신을 원망했다.
현재시간 밤 11시 22분.
레반과 레테라를 갈구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해버렸다.
지금 시간이면 문을 연 음식점도 없을 테니,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하나 자각했다.
레반과 레테라가 너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도시 한가운데에서 판금 갑옷과 가죽 갑옷을 걸친 남녀라니, 이질감이 엄청났다.
싸운 흔적이 그대로 피부와 갑옷에 남아 있어서 그 사실감은 배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전장에서 구르고 있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더욱이 심각한 건, 그러한 문제를 편의점에 들어설 때 알바생이 보인 반응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점이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깊은 밤중이라 마주치는 사람도 없고, 녀석들의 독특한 생김새에 익숙해졌다 보니 깨닫는 게 늦어버렸다.
“어, 어, 어서오세……요.”
알바생이 어색한 목소리로 접대 멘트를 날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하기 귀찮다는 듯 시큰둥한 자세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손님이 들어와서 힐끗 시선을 던지다 그대로 넋을 빼앗겨 버린 저 꼴을 보라.
갑자기 가게 안으로 들어선 외계 생물체라도 발견한 표정이다.
내가 황급히 변명했다.
“아! 이 근처에서 영화 촬영을 하던 외국인 배우들입니다. 마침 야식을 먹고 싶다고 하셔서.”
“그, 그러신가요?”
그것은 SNS에 찌든 현대인의 본능이었을까.
알바생은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더니, 자신이 쥔 휴대폰의 카메라 렌즈를 두 사람에게 향했다.
자신이 목격한 충격적인 광경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었다.
덥썩!
카메라 셔터가 눌리기 직전, 나는 알바생의 손목을 낚아챘다.
사진을 찍는 걸 허용했다간 SNS를 통해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세상으로 퍼질 게 불 보듯 뻔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존재를 감춰야 할 내게 있어서 무척이나 좋지 않은 일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사진 촬영은 곤란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절박한 심정을 담은 눈빛이 통한 걸까.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알바생은 순순히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레반과 레테라의 존재가 신기한지 그들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조각 같은 외모는 TV에서조차 보기 쉬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알바생의 시선에 도리어 내가 부끄러워졌다.
중2력이 충만하던 학생시절 노트에 끄적인 자작 캐릭터를 남에게 들킨 기분이랄까.
실제로 레반과 레이티는 내가 공을 들이면서 만든 캐릭터들이다.
내 취향, 동경, 혹은 이상으로 여기던 남성상과 여성상이 그대로 담긴 셈이다.
그게 새빨간 타인에게 노출됐는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움찔!
“……!”
그러다 불길한 기척을 느끼고 재빠르게 뒤돌아보았다.
내 미적거리는 모습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레반과 레테라가 알바생이 무슨 짓을 했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얼굴을 심각하게 굳히고 한 손을 검집에 가져다 댄 채 상체를 숙였다. 짐승 두 마리가 당장이라도 표적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그 기척을 눈치 챈 내가 뒤돌아서서 그들의 어깨를 붙잡았다.
“먹을 거 사 올 테니까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두 유 언더 스탠?”
손이 얹어진 견갑에서 ‘끼기긱’ 소리가 날 만큼 강하게 그들의 어깨를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동안 그들이 친 사고가 쌓이고 쌓이다 한이 되어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여기서 더 문제 일으키기만 해봐. 쇠파이프 들고 너희 엉덩이를 신나게 두들겨 주마.
“아, 예…….”
“알겠습니다…….”
효과가 있었는지 두 사람은 위축된 듯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 안쪽 손님용 테이블에 억지로 레반과 레테라를 데려다 앉혀 놓았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얌전했던 그들은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도시의 풍경은 옥상에서 지내면서 익숙해졌지만 건물 내부를 구경하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출입구는 하나뿐인가? 안쪽에 공간이 더 있는 듯한데.”
“만일에 사태가 일어나면 이쪽 유리벽을 깨부수고 탈출하면 되겠어.”
“그땐 내가 아버님을 데리고 탈출할 테니 네가 시간을 끌어라.”
“무슨 개소리야. 네 그 멧돼지 같이 큰 덩치의 용도가 뭔데? 내가 아버님을 데리고 달아나는 동안 화살받이로 써먹기 위해서잖아.”
“뭐, 이 새꺄?”
“뭐, 이 새꺄.”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한다.
이 자식들, 구경하는 줄 알았더니 그냥 습관적으로 주변 지형물을 파악해 전투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는 중이었다.
이쪽 세상도 저쪽과 마찬가지로 몬스터와 광인(?人)들이 날뛰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게다가 의견 조율조차 잘 되지 않는지 서로에게 으르렁대기까지 한다.
빨리 먹을 걸 쑤셔 넣어 저놈들의 입을 닥치게 하는 게 이 동네 평화를 위한 최선의 행동일 것이다.
‘뭐, 컵라면 정도면 되겠지.’
아닌 게 아니라 그 정도밖에 못 사준다.
내 지갑 사정이 그리 좋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소고기의 씹는 맛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큰맘 먹고 사버린 대가였다.
물론 그 소고기는 맛조차 보지 못하고 두 망할 놈들의 싸움에 휘말려 장렬히 산화해버렸다.
지급되기로 한 보험금이 들어올 때까진 며칠은 걸리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편의점에 구비된 컵라면 중 가장 싼 것을 사기로 했다.
싸지만 맛이 있어서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컵라면이었다. 그런데 저놈들 매운맛은 잘 먹으려나?
‘그래도 달랑 컵라면 하나만 먹이는 건 좀 찜찜한데……. 삼각 김밥 정도는 같이 사줄까.’
특별 서비스라고 생각하며 삼각 김밥 몇 개를 집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 내딛기도 전에 걸음이 멈췄다.
‘잠깐. 그러고 보니 녀석들에겐 이쪽 세계에 오고 나서 기념할 만한 첫 식사잖아? 컵라면에 삼각 김밥만으론 모양이 안 살지. 라면에 치즈를 얹는 것 정도는 내 지갑도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인심 좀 더 써서 깊은 맛을 더 하기 위해 뿌려 먹는 치즈까지 챙겼다.
이번에야말로 카운터로 향하려던 그때, 한쪽 진열대에 놓인 소시지와 핫도그 등의 가공육이 눈에 밟혔다.
‘그러고 보니 그 둘은 제법 몸 쓰는 녀석들이잖아? 만화 같은데 보면 그런 전사 타입 녀석들이 열량은 엄청 섭취하던데, 최소한 고기 정돈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끝이 없었다.
잠시 뒤, 음료수와 디저트로 먹을 과자와 아이스크림까지 사고 나서야 카운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바생은 아주 진수성찬을 차렸다는 얼굴로 쌓인 물건의 바코드 찍어갔다.
결국 내 소지금이 감당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물건을 고르느라 고생 좀 했다.
나야 뭐 병원 밥을 먹고 왔으니 안 먹어도 괜찮았다. 그 두 사람이 배불리 먹어준다면 충분…….
“…….”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스스로의 정신 나간 행태를 자각할 수 있었다.
뭐지, 이것은?
한 명의 자취생으로서 허용되어선 안 될 이 과소비는 뭐냐고?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에 도달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 본 나는 그대로 카운터를 두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부모 마음이 되어버렸잖아, 썩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을!!!!!!!!!!!!!!”
알바생은 갑자기 소리 지르는 나를 미친놈 보듯이 바라보았다.
레반과 레테라는 다행히 눈치라는 게 좀 생긴 것인지 바로 튀어나오지 않고 검 손잡이에 손을 댄 채 이쪽을 살필 뿐이었다.
갈군 게 효과가 있단 점은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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