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화 (10/173)

〈 10화 〉 아버님이라 부르지 마 ­ 1

* * *

휴대폰을 열었다.

읽지 않고 쌓아둔 문자가 몇 개 있었다. 그 동안 일이 정신없이 흘러가서 정리도 못하고 있었네.

그래봤자 문자를 주고받을 만한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천생이 아싸였으니까, 나는.

3개 정도는 스팸 문자다. 바로 스펨 차단을 박고 다음 문자를 확인하다.

내가 알바로 일하던 편의점 사장님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근무 시간이 됐는데 왜 오지 않느냐로 시작해서, 부모님과 연락이 닿은 건지 몸조리 잘하라는 문자, 내 근무 시간을 대신할 새로운 알바를 구했다는 문자 등등.

그 뒤로 연락이 전혀 없는 걸 보니 사실상 잘렸다고 봐야겠지.

휴대폰을 덮고, 테이블 위에 턱을 괜 채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밤중의 어둠처럼 내 앞날이 깜깜하게 느껴졌다.

원래 살던 원룸방은 초토화됐고, 알바 자리는 사라지고, 앞으로 어떡한담…….

내가 이런 마음고생을 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맞은편 자리에 앉은 두 애물단지들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현대 먹거리의 놀라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 닭꼬치라는 음식, 엄청 맛있습니다!”

“이 컵라면이라는 음식도요!”

“어, 그래……. 잘됐네. 많이 먹어라.”

걸신들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허겁지겁 테이블에 쌓인 음식들을 먹이 치우기 시작한 레반과 레테라.

나는 그들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고 쭉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들이 꼴 보기 싫어서가 아니다.

행복한 얼굴로 내가 사 온 음식들을 먹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훈훈함을 느꼈다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좀 봐줘. 아무리 내가 만든 게임 캐릭터들이라지만, 집도 없고 일자리로 없는데 녀석 부모 노릇까지 하라는 건 무리가 있잖아.

“…….”

게임 캐릭터……라.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어떻게 이쪽 세계에 오게 된 거지? 게임 속 세계에 있던 이 녀석들은 나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있던 걸까?

게임 속 아이템이나 스킬 등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도 쓸 수 있는 건가?

생각해보니 나는 이 녀석들에 대해 아는 거라곤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상대방을 알 필요가 있는 건 저쪽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후릅…….

“응? 왜 그러세요, 아버님?”

매운맛과 잘 맞는 건지 라면컵을 들고 국물을 마시던 레테라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물어왔다.

초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먹고 신세계를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짓던 레반도 뒤늦게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선을 마주했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버님?”

“으음……. 그게 말이지.”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호칭 문제부터 해결할까?”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외국인처럼 보이는 미남미녀가 동양인 청년을, 그것도 나이 차이도 거의 없어 보이는 남자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건 엄청난 위화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카운터에 서 있는 알바생이 아버님이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던진다면 할 말 다 한 거지.

어쩌면 이미 머릿속으로는 세기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버님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이 그냥 편하게 요현이라고 불러. 존대도 안 해도 돼.”

일단 호칭만 바꿔도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이 반쯤 줄어들 것이다.

나머지 반은 이들의 옷차림을 해결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건 날이 밝는 대로 옷가게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묘했다.

툭.

철퍽.

라면컵이 레테라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다. 남아 있던 국물이 쏟아져 나와 바닥을 적신다.

레테라는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반 쪽도 마찬가지였다.

한 입 먹고 신줏단지 모시듯 붙잡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표정을 내게 향했다.

그들의 뒤로 더러워진 바닥 때문에 뒷목 잡는 알바생이 보이는 건 덤이다. 나도 편의점 알바였으니 저 기분 알지.

알바생에게 눈짓으로 미안함을 전하고 있을 때, 잔뜩 흥분한 듯한 레반과 레테라가 테이블 위로 바짝 몸을 내밀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버님!? 저희로는 안 된다는 겁니까?!”

“아버님을 아버님이라 부를 수 없다니! 어째서 그런 가혹한 처사를!”

이건 또 뭔 소리야.

존대 빼고 호칭 좀 바꾸자는 소리 좀 했을 뿐인데, 왜 호부호형 금지당한 홍길동 같은 반응이 돌아오는 건데?

“가혹하고 자시고 너희들의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너무 눈에 띈다고. 너희들의 외모와 나를 비교해봐. 이게 어디 봐서 부모자식간의 외모냐. 내가 말했지, 눈에 띄는 행동은 최대한 삼가라고.”

내 말에 그들도 문제점을 알아준 모양이다.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그들은 이윽고 진지하게 눈을 빛내며 자신의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 얼굴 가죽을 벗겨내 인상을 바꾸면 해결되는 것이겠지요?”

“필요하다면 다리의 중간을 자른 뒤 이어 붙여서 신장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대가리 박을래?”

어머니, 아버지.

제가 질풍노도였던 시기, 두 분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삐뚤어진 태도를 고치지 않았을 때도 이런 기분이셨습니까? 뒷목에서부터 혈압이 끓어오르는 기분입니다.

이놈들, 진심으로 얼굴 가죽 벗기거나 다리를 잘라내는 게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게임 속에서도 스스로의 몸에 칼집 내서 신체를 개조하려 든 미친놈은…… 젠장. 의외로 많았구나.

스스로 절대적인 존재로 거듭나겠다며 자기 몸을 키메라로 개조하는 연금술사.

폭식에 미쳐서 턱을 위장까지 갈라놓은 비곗덩어리 괴물.

신의 지혜를 탐하다 뇌를 다른 무언가로 갈아 끼운 미친 마법사 등등, 당장 떠오른 것만 해도 몇 개인가.

나야 금방 익숙해져서 걸어 다니는 아이템 상자, 혹은 경험치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다르다.

그 역겨운 광기를 직접 대면하고, 이겨내며, 결국 익숙해진 채 살아온 것이다.

현실에 나타난 그들을 보니 SoR의 세계관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피부에 좀 와 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거부반응이 이해된다는 건 아니었다. 겨우 호칭이 아니던가.

“뭐가 문제인 거야? 내가 너희들을 만들었다고 한들 굳이 아버지라는 호칭을 고집할 필요는 없잖아? 애초에 난 게임 시스템에 따라 너희들의 모습을 커스터마이징 한 것뿐이지 진짜 부모도 아니라고.”

그 물음에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지금 자신의 안에서 휘몰아치는 다양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듯, 그들은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중에서 먼저 운을 뗀 것은 레반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싸늘한 돌바닥뿐이었습니다.”

“……?”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빛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석실(??). 전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누군가가 지어준 듯한 ‘레반’이라는 이름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영혼 없는 인형처럼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죠. 그때 저의 몸을 움직이는 ‘의지’를 느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하아……. 이 게임을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레반이 들었다던 목소리. 그리고 그의 말이 그려내는 이미지를 나는 알고 있다.

봉인된 탑.

튜토리얼 지역이자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장소.

이것은 레반이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 그가 나를 인식했을 때의 이야기, 우리들의 모험이 시작됐을 때의 이야기였다.

레테라도 시점만 다를 뿐 레반과 같은 광경을 떠올리는 듯 눈매를 그윽하게 좁혔다.

“제 것이 아닌 타인의 의지가 움직이는 몸,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저희는 신기하게도 그것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의지에 떠밀려 석실을 나섰죠. 그러다 거대한 미로와 그곳을 떠도는 거대한 괴물과 마주쳤고요.”

추악한 골렘.

튜토리얼 보스이자 처음으로 그들을 막아서는 장벽.

나야 처음 싸우는 게 아니었으니 괜찮았지만 그들에겐 어땠을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채, 공포감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적과 마주하는 건.

“그리고 저희를 움직이는 의지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처럼 강대해 보이는 괴물과 싸우라고 등을 떠밀었죠. 솔직히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송구스럽지만…….”

“……미친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할 말은 하는 레테라와 레반.

이제껏 미친놈들이라고 여기던 녀석들에게서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는 건 꽤나 복잡한 심경이었다.

혹시 이들이 이런 막 나가는 성격이 된 게 내 책임은 아니겠지?

“하지만 괴물과 싸우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저희 안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투지였고, 갈망이었으며, 긴장감이자 환희였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몸이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운 도전 욕구였죠.”

“…….”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들은 나와 정신이 이어졌었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었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가졌던 적을 향한 투지, 승리를 향한 갈망, 그것을 목전에 두었을 때의 긴장감과 환희.

그 모든 것이 열기로서 이들에게 전해졌다.

정말로 서로의 정신이 연결된 것처럼.

그건 환각도 착각도 아닌 진실이었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세상을 여행하면서 저희는 언제나 당신의 존재와 함께했어요. 패배하면 당신과 함께 분해했고, 승리하면 당신과 함께 기뻐했으며, 새로운 지역과 함께 세상의 비밀을 밝혀나갈 때마다 당신과 함께 모험심에 두근거렸죠.”

“가혹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었지만 단 한 번도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저희를 지켜보며 함께 모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에게 있어서 당신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고, 여겨서도 안 될 커다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마디라도 당신을 소홀히 대할 수는 없어요.”

“당신을 향한 저희의 모든 태도가 당신에게 표하는 모든 경의이자, 감사이고, 호의인 것입니다.”

레반과 레테라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숙였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이 이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한 여운이 우러나오는 예였다.

이것은 과거에 정신이 연결되었던 여파인 걸까. 그들이 표하는 예가 단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예의를 차리지만 진짜 속마음은 감추고 있는 현대인 사이에선 느껴보지 못한, 노골적이면서도 꾸밈없는 감정이었다.

감정이 힘을 가진다는 게 이런 것일까.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대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없는 온기가 심장 부근을 감돈다.

너무 따스하고 안심이 돼서 살짝 눈물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옆에 있는 알바생은 슬쩍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있었…… 아니, 잠깐 기다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제 3자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바닥을 더럽혔기 때문인지 바닥을 닦을 대걸레를 들고 다가온 알바생이 근처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알바생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배우 분들이 연기 잘하시네요. 영화 개봉되면 꼭 보러 갈게요.”

“아, 예…….”

우리들의 대화를 중간부터 듣게 된 알바생은 아무래도 연기 연습을 한 줄 아는 모양이다.

영화배우라고 변명한 게 이렇게 적용될 줄은 몰랐다.

오해를 풀어줄 필요성은 없었기에 그냥 이대로 놔두기로 했다.

어쨌든 알바생이 바닥을 치우는 동안 나와 레반, 레테라 사이에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진지하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도중에 끊겨버렸으니 당연했다.

대화 끊긴 동안 나는 그들을 관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이토록 진지하게 나를 마주대해 오는데, 나 또한 진지하게 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이들의 말은 한 마디로 이거였다.

난 이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존재이기에 결코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호칭일 뿐인지만, 그것이 변함으로서 혹여 자신들의 관계가 변하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마저 비춰졌다.

이게 이들의 본심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이 녀석들은 뭐지?

난 이들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나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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