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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33화 (33/173)

〈 33화 〉 뱀을 죽일 땐 머리를 잘라라 ­ 4

* * *

대가리 박기.

레반과 레테라의 단골 자세였다.

그러나 이번에 대가리 박기를 실시하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덕구라고 불리는 살모사파의 조직원이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대가리를 박은 덕구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조직의 보스, 안일혁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을 한 번 정리해보자.”

“네, 네에……!”

자세가 힘든지 강제로 억눌린 목소리가 된 덕구가 답했다.

“그러니까 억배가 여자 꼬시려다가 멍청하게 허공에 넘어지고, 그 충격에 고간이 뭉개져서 지금 병원에 실려 갔다……. 지금 네가 말하는 게 이 소리지?”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의문이 안일혁의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수 있다는 게 세상살이라지만,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쓰러졌다가 피가 나올 만큼 고간이 처참히 뭉개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저, 전 제가 본 그대로를 말한 것뿐입니다……! 분명 촬영한 영상에도 그 모습이 찍혀 있을 겁니다……!”

“그래. 그래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억배 따라서 병원에 가야할 테니까. 그게 응급실인지 정신병동인지는 내가 판단하겠지만.”

“……!”

머리를 박은 덕구는 고통이 아닌 공포에 의해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카메라 영상을 빠르게 돌리고 있던 정 실장이 입을 연 것은.

“사장님. 찾았습니다.”

정 실장이 내민 카메라에는 덕구의 말대로 여자를 꼬시기 위해 길가는 남녀에게 다가가는 억배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남녀는 억배를 쿨하게 무시했고, 그것에 화가 난 억배가 주먹을 휘두르다 허공에다 삽질을 했다. 그러고는 제 기세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는 코미디 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을 들여다보는 정 실장도 안일혁도 웃지 못했다.

정말로 넘어졌다 일어선 억배의 고간이 피로 물들여 갔기 때문이다.

억배가 넘어지는 순간에도 그 무엇 하나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고간의 끔찍한 파열이라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군요. 차라리 누군가 아무도 모르게 총으로 쏴서 저격했다는 게 더 그럴듯할 겁니다.”

정 실장이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안일혁이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야. 영상 앞으로 돌려봐.”

정 실상은 순순히 영상을 앞으로 되감고 다시 재생 했다.

남녀 중 남자 쪽과 말로 다투고 분노를 참지 못한 억배가 주먹을 휘두르려는 장면이 나왔다.

“멈춰.”

안일혁의 말에 영상이 멈춘다. 그리고 그의 손이 영상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손끝이 가리키는 건 남자의 가슴에 손이 닿아 있는 억배의 손이었다.

“이거, 멱살 잡고 있는 거 맞지?”

“네에……. 확실히 멱살을 잡고 있군요.”

남자의 옷이 구겨지는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영상에 담겨 있었다. 분노한 억배가 단단히 붙잡은 거였다.

“그리고 다음 장면을 봐.”

영상을 재생하니 함께 있던 여성이 싸움을 말리려는 듯 끼어들었다.

남자를 억배와 떼어내고, 그 탓에 헛손질한 억배가 앞으로 넘어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너무 간단히 떨어지지 않았어? 분명 아까 전엔 억배가 옷이 구겨질 만큼 강하게 잡고 있던데.”

“확실히…… 이상하군요?”

보기엔 여성의 손이 억배에 손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아래로 내린 게 다였다.

그런데 그런 간단한 동작만으로 허무 하리 만큼 쉽게 억배의 손이 떨어졌다.

그뿐일까. 남자의 몸을 휘돌려 자신의 뒤편으로 이동시키는 여자의 모습은 마치 보디가드가 대상을 지키려고 이동시키는 것과 같은 목적성이 짙어보였다.

“……응?”

미심쩍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몇 번이나 영상을 되감아보던 안일혁은 뭔가를 발견했다.

“……?!?!!”

그리고 얼마만인지 모를 온 몸에 소름이 잔뜩 돋아나는 감각을 맛보았다.

“이, 이 여자 뭐야?”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이걸 보라고!”

영상을 0.1배속까지 느리게 재생하던 안일혁이 영상을 멈춘 채 한 곳을 가리켰다.

남자와 억배 사이로 끼어드는 여자의 모습.

고개는 억배를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카메라를 의식한 듯 정확히 화면의 정면을 향해 있었다.

찰나의 시간, 특이한 금색 눈동자가 찰나의 시간 동안 선글라스 바깥으로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안일혁을 따라 그 눈동자를 들여다 본 정 실장은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질 뻔했다. 안일혁의 헤집은 무릎의 통증만 아니었어도 정말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폭력 조직에 연을 두는 만큼 그도 사나운 눈빛 정도는 자주 접해왔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것들과 궤를 달리 했다.

짐승.

비유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산 채로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다우면서도 사나운 눈동자가 거기에 있었다.

영상이 이어진다.

섬뜩했던 눈빛과 달리 여성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남자를 억배에게서 떼어내고, 동시에 억배가 앞으로 넘어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무런 문제도 찾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눈동자를 떠올리면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처럼 살벌한 눈빛을 했던 사람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물러난다고?

특히 직전의 보인 그녀의 모습은 먹이를 물어 채기 직전 주변의 간을 보는 사냥꾼의 것과 비슷했다.

절대 아무 것도 안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몇 번이나 영상을 돌려보았지만 여성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과민 반응한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그때 마찬가지로 영상을 살펴보던 안일혁이 입을 열었다.

“이봐, 정 실장. 붙잡은 불곰파 녀석들이 했던 말이 뭐였지? 신홍수 녀석들을 때려잡았다던 그 녀석 말이야.”

“‘그건 인간이 아니다’, 말씀이십니까?”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안일혁일 말을 이었다.

“만약 영상 속의 여자가 영상에 찍히지 않는 방법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다면, 그건 이 여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안일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 했다.

톡톡.

그의 손가락이 카메라 화면을 두드린다.

안일혁은 영상 속 두 남녀를 가리키며 정 실장을 향해 말했다.

“애들 풀어서 이 두 녀석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모조리 알아와. 하루 시간 준다.”

***

가장 알고 싶었던 영상 속 여자에 대한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 점은 신월시에 나타난 괴물 남성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의 정보는 의외로 쉽게 손에 들어왔다.

조사를 명령한 그날 밤, 빠르게 정보를 모아온 정 실장이 안일혁의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름 신요현. 나이 22세. 현재 성월 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중학생 시절 폭력 상해 사건 하나 일으킨 것만 빼면 특별히 눈에 띄는 경력은 없습니다.”

“폭력 상해라고? 뭐지?”

“자신의 왕따를 주도하던 주동자 셋의 머리를 돌로 찍었답니다. 때문에 소년원에 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정상참작 되어서 사회봉사 6개월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어째 똘끼 하나는 우리 쪽 냄새가 나는 녀석이군.”

위스키를 들이키며 보고를 듣고 있던 안일혁이 어이가 없는 듯 중얼거렸다.

영상을 보자면 흔하디흔한 샌님 자체였건만, 보통 저런 외형으로 안쪽에 송곳니를 숨기는 녀석이 가장 성가신 법이다.

“최근에 강도 피해를 받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며칠 만에 퇴원한 걸 보면 큰 상해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원래 살던 거주지의 피해가 심해서 다른 곳에 살고 있다고 하는군요.”

“강도에게 당하면 당한 거지, 거주지 피해는 또 뭐야?”

“저도 이 부분이 이상하긴 한데……. 벽, 바닥, 천장 할 것 없이 ‘죄송합니다’라는 글자로 모조리 도배됐다고…….”

“……뭔 미친 짓이야? 저주라도 받았냐?”

평소에 미친 짓 하는 게 일상인 안일혁조차 그런 괴현상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소문이 난 건지 오컬트 매니아가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집주인은 관광명소로 삼으려다 세입자들과 크게 다투고 있다고 하고요.”

요현조차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정 실장은 다음 보고로 이어갔다.

“지금은 도시 외곽 쪽에 낡은 여관에서 지나고 있긴 한데, 조사해보니 여관 자체엔 수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다만?”

정 실장이 속 시원히 말하지 않고 뜸을 드리자 안일혁이 한쪽 눈썹을 찌푸린다.

더 이상 우물쭈물 대면 그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는 나이프가 자신의 손에 박힐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정 실상은 서둘러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거 같습니다.”

“……뭐야, 이 미친놈은?”

정 실장이 건넨 사진은 흥신소 직원 하나가 뒷산에서 여관 안쪽을 고배율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거기엔 한 남자가 두 손을 쓰지 않고 오로지 머리만을 땅에 단 채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머리가 바닥에 맞닿아 있는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요현에게 마약을 먹여버린 자신에게 마음의 짐이 남은 레반이 자숙하는 동한 반성하는 의미로 취하는 자세였다.

그러한 사정은 알지 못하고, 그저 보고로만 들었던 정 실장도 질린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6시간 동안 계속 이 자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냐고, 이 미친놈은? 서커스단원이냐?”

“이상하게도 이놈 또한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요현, 그리고 영상 속 여자와 같은 날 들어와서 셋이 같은 방을 쓰고 있다는 여관 주인의 증언을 얻었다고 합니다.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

그 말에 안일혁은 사진 속 남자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웃기는 자세 때문에 바로 깨닫지 못했지만 상당한 장신이다. 키가 180은 될 것 같았다.

심지어 옷 위로 들어나는 근육량이 만만치 않았다. 보디빌더처럼 그저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철저히 실전을 통해 단련한 듯 보이는 근육이었다.

“……신홍수가 당했다던 놈과 특징이 같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진 찍던 흥신소 직원이 하나 더 발견한 게 있는데, 뒷산에서 불에 탄 채 버려진 바이크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바이크라고?”

“네. 손상이 심해서 기종을 알긴 어려웠지만, 그놈이 타고 사라진 바이크와 같은 종류일 가능성이 높고 합니다.”

“…….”

뭔가 하나둘씩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신월시에서 사라진 괴물 같은 남자, 그리고 자신의 조직원을 고자로 만든 듯한데 증거가 없는 여자, 그리고 그들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어딘가 수상한 신요현이라는 인물 하나.

인간 같지 않은 무언가.

신요현을 보호하려 한 듯한 여자의 움직임.

그들의 숙소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남자.

부족하다. 뭔가 부족해.

“다른 건 더 없나?”

딱 하나의 퍼즐 조각이 더 필요하다.

따로 떨어져 있는 이 조각들을 정확히 이을만한 그런 퍼즐조각이.

그것만 있으면 명쾌해질 것 같은데 없으니 답답했다.

그런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 실장은 다른 곳에서 들어온 정보 하나를 더 꺼냈다.

“불곰파 조직원을 좀 더 닦달하면서 새로 들은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신월시에 나타난 괴물…… 그 놈에겐 형님이라고 부르며 모시는 사람이 하나 있다더군요.”

“형님?”

“네. 그리고 그의 앞에서 형님이라는 자를 함부로 모욕했다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까지…….”

“형님……. 형님이라고……?”

딱, 하고.

퍼즐조각이 맞춰져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안일혁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살모사파의 보스라는 직함이 어울릴 만큼 독사와 닮은 미소.

먹잇감을 포착한 미소였다.

“당장 잡아와.”

“잡아오라니…… 사진 속 남자를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놈 말고.”

척, 하며 안일혁은 정 실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손으로 찍었다.

정확히 신요현 사진이었다.

“그 빌어먹을 연놈들의 ‘형님’을 잡아 오라고.”

***

매주 금요일엔 강의가 없다.

수강신청을 할 때, 불타는 금요일을 게임과 함께 보내기 위해 악을 써가며 금요일 강의만 비워놨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이 때쯤 게임과 함께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지난주 벼락과 함께 출현한 내 캐릭터들 때문에 일상이 완전히 변해버렸지만 말이다.

‘녀석들이 현실로 나온 지 벌써 1주일이 되어가네.’

언제까지고 여관에서 생활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과 함께 살 새 주거지를 찾아 인터넷을 돌아다녀본다.

하지만 적당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좋은 장소는 가격이 비싸며, 싼 장소는 셋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어제 드디어 보험금이 들어왔어도 방세 하나 감당하기 힘든 처지였다.

높은 수준의 가격대를 보니 머리가 아파 온다.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졌다.

“어디가세요, 오라버니?”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책들에 빠져 살고 있는 레테라가 물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건지, 아니면 그냥 습관이 된 건지 그랜드 대가리 박기를 실시하고 있는 레반도 재주 좋게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요 앞 편의점에 다녀올게.”

“제가 다녀올게요!”

“아닙니다, 형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냥 여기에 있어. 잠깐 바람 좀 쐬고 싶어서 가는 것뿐이야.”

나가면서 뭐 먹고 싶은 게 있냐고 그들에게 물어봤다.

특별히 없다고 해서 내가 마실 청량한 음료수만 사고 나오기로 했다.

딸랑.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원한 음료수 캔을 한 손에 쥐고, 편의점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그곳을 나섰다.

이제 완연한 가을인지 햇살은 무덥지 않고 따듯한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햇살과 가을바람을 만끽하며 편의점을 걸어 나왔을 때였다.

끼이이익.

검은색 승합차가 달려오더니 바로 내 앞에서 멈춰 선다.

갑자기 갈 길이 가로막듯 선 검은색 승합차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그것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선 한둘쯤은 가볍게 담글 것처럼 보이는 무서운 인상의 아저씨들이 가득 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뭔가 불길함을 느끼며 발을 슬쩍 뒤로 뺐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무서운 아저씨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나를 덮쳤다.

쓰벌! 이건 또 뭐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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