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34화 (34/173)

〈 34화 〉 역린과 목줄 ­ 1

* * *

……!

레테라와 레반. 둘은 동시에 이변을 눈치 챘다.

작은 소음이었다.

그냥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공기 중의 작은 진동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작은 울림에서 요현의 흔적을 느낀 레타라가 읽던 책을 닫았고, 레반 대가리를 박던 자세를 풀었다.

다시 한 번 공기 중의 소리에 집중해본다. 작은 소리마저 놓치지 않으려 그들은 숨마저 멈췄다.

­야, 이 씹…… 읍!

무언가가 입을 막은 듯 터져 나오려던 욕설이 억눌린다. 틀림없는 요현의 것이었다.

그것을 인지했을 때, 그들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챙그랑!!

현관을 통해 나가는 시간조차 아깝다.

창문을 깨부수며 밖으로 뛰쳐나간 그들은 담장을 밟으며 다시 한 번 도약했다.

타악!

두 사람의 맨발이 흙먼지가 감도는 길 위에 떨어졌다.

그들의 앞에 있는 건 요현이 다녀온다던 편의점. 그러나 가게 내부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앞에는 조금 전까지 냉장고 안에 있던 듯 차가운 물기가 맺혀 있는 음료수 캔이 있었다. 요현이 즐겨 마시는 거였다.

요현은 여기에서 사라졌다. 짐승에 가까운 후각과 청각으로 그들은 그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가 문제였다.

또다시 레아가 요현을 납치한 걸까. 그것은 아니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그들은 레아의 기척을 기억했다. 일정거리 내에 접근했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럼 누구지?

레테라의 눈은 흙먼지 위에 남겨진 타이어자국을 향했고, 레반은 멀어지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빠르게 시선이 서로에게 오가고, 두 사람이 다시 몸을 날렸다.

멀어져가는 자동차의 흔적을 쫓아 달리던 그들이 골목을 휘돌아 큰 길로 나섰다.

부르르릉!! 빵빵!

큰 길로 나오자 보이는 건 길을 지나다니는 대량의 차량이었다.

퇴근시간 겹친 것일까. 수많은 차가 지나는 도로는 혼잡하기만 하다.

한발 늦었다.

그들이 쫓던 차량은 이 혼잡스러움 속에 그 모습을 감춰버렸다.

요현과 함께.

““…….””

그때, 그들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멀리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조차 말이다.

***

“오! 움직인다, 움직여! 역시 그 애송이가 중요한 인물이었나 봐!”

여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뒷산.

그곳 어느 나무 꼭대기에는 수상한 남자 셋이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살모사파에서 파견된 조직원들로, 멀리서 여관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혼자 밖으로 나온 요현의 모습을 보며 기회라고 판단한 그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납치조에 연락을 했고, 결국 그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각자 쌍원경을 눈에 대고 레반과 레테라를 지켜보던 그들은 솔직한 감탄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엄청 빠르네, 저 녀석들. 언제 여관을 나왔는지 보지도 못했어.”

“정말 아슬아슬했다니까! 달리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잘못하면 차량의 꼬리가 잡힐 뻔했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삼인조는 중 두 사람은 작전의 성공을 자축하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동료들이 소란스러워지자 여전히 쌍원경으로 레반과 레테라를 주시하고 있던 조직원이 타박을 주었다.

“소란 좀 떨지 마. 표적 납치는 성공했지만, 아직 저 두 인간 감시하는 건 남았어.”

“에이, 덕구야. 그렇게 빡세게 할 게 뭐 있어? 저놈들에게 중요한 인물이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반쯤은 이긴 거라고. 이런 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왜 그래?”

확실히 그랬다.

살모사 조직은 돈이나 적 제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한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특히 잘 애용하는 방법이 대상의 자식이나 애인을 납치하는 거다.

아무리 강한 힘이나 권력을 가졌다 한들, 소중한 사람이 있을수록, 그리고 그것이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그 사람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법이다.

다른 두 사람은 기겁하며 뛰쳐나간 레반과 레테라의 반응으로 볼 때 이미 이긴 승부라고 확신했다. 덕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되지 않았다.

함께 있던 파트너가 무슨 일을 당한 건지도 모른 채, 고간이 파열되어 병원으로 실려 간 걸 직접 목격한 탓일까.

자신이 붙잡은 게 정말 약점인지, 아니면 약점이되 괴물들을 날뛰게 할 역린인지 알 수 없었다.

‘젠장. 그 영상을 본 탓이야. 잊어버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덕구가 쌍안경에서 눈을 뗐다. 그러고 양팔을 문지르며 거기에 돋아난 소름을 없애려 했다.

안일혁과 정 실장이 영상을 확인한 다음, 덕구 또한 그 영상을 보았다. 그게 아직 뇌리에 남아 있는 탓이었다.

사람이 가진 눈이 그 정도까지 섬뜩하게 보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진짜 사람일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응?”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쌍안경으로 감시에 집중한 덕구는 멍한 목소리를 흘렸다.

마치 어이없는 무언가를 목격한 것처럼.

그 반응에 다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두 조직원이 물었다.

“왜 그래, 덕구야?”

“……없어.”

“뭐?”

“없다고! 그 두 사람!”

덕구가 목격한 건 바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저곳에는 분명 레반과 레테라가 서 있었다.

그런데 팔에 돋아난 소름을 문지르려 시선을 뗀 단 몇 초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쌍원경으로 아무리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두 사람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경악이 담긴 덕구의 목소리에 두 조직원도 따라서 긴장하며 쌍원경을 들었다.

“뭔 헛소리야! 유령도 아니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는 게 말이 돼!?”

“여관 쪽을 살펴봐! 거기에 돌아간 걸지도 모르잖아!”

세 개의 시선이 사방을 샅샅이 살폈다.

여관 쪽을 살펴보고, 좁은 골목 쪽도 살펴보고, 심지어 쓰레기통 옆 그늘마저 살펴보았다.

그러나 레반과 레테라는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상호 형님께 연락해! 혹시 모르니까 위쪽에 알려야겠어!”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걸 느낀 덕구가 쌍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바로 돌아와야 할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들려온 건 덕구의 온몸을 소름에 뒤덮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야, 근육돼지. 너 골드 리트리버라는 개 알아?”

“몰라.”

“……?!?!!”

동료가 아닌 낯선 남녀의 목소리에 덕구는 숨을 멈췄다.

“전에 오라버니가 유튜브라는 걸로 보여준 적이 있는데, 아주 귀엽더라. 영상 속 주인이 목줄을 놓으니까 그것을 물고 잡아달라는 듯 쫄레쫄레 따라오더라고. 왠지 우리랑 비슷하지 않아?”

“확실히 그렇군.”

“목줄이 떨어졌다면 주인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마음껏 돌아다녀도 될 텐데, 그 개는 굳이 목줄을 주인에게 쥐어주려고 했어. 목줄을 쥔 주인이 이끄는 대로 다니는 것 자체가 좋은 듯이.”

몸이 떨려온다.

험한 일을 반복해온 덕구의 인생에서 이렇게 몸이 떨려오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태평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는 뒤쪽을 돌아보지도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누굴 죽이려고 하면 오라버니는 안 된다고 하고, 함부로 눈에 띄지 말라고 하고……. 뭐든지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제약을 줘. 하지만 난 그런 오라버니를 따르는 게 전혀 싫지 않았어. 오라버니 그 자체가 좋았고, 그와 함께 다니는 것도 목줄을 찬 강아지가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것마냥 모든 게 즐겁기만 했어.”

“우연이군. 나도 그런데.”

“그치? 그런데 어떤 갈아 마셔버릴 녀석들이 우리의 목줄을 가진 오라버니를 데려가 버렸네?”

“목줄 풀린 짐승들이 얼마나 위험하지도 모르는 머저리들이지.”

“특히 주인을 정말로 좋아하는 짐승들에게서 말이야.”

“뜯어 먹혀 봐야 정신 차리려나?”

후욱! 후욱! 후욱!

덕구는 거친 호흡을 반복했다. 강하게 숨을 몰아쉬지 않는 한 사정없이 자신을 짓누르는 공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과한 호흡으로 뇌에 산소가 평소 이상으로 주입되자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서 용기를 얻은 덕구가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 등 뒤를 확인했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거기엔 레반과 레테라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있던 거리에서 이곳 뒷산까지의 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자신의 동료인 두 조직원은 각자 그들의 손에 목이 졸린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 ……!!”

“케……!! ……억!!”

눈빛으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듯한 그들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이미 한참 전부터 호흡이 되지 않은 건지 얼굴빛이 새파래지고, 간헐적인 발버둥도 점차 줄어들어 갔다.

그제야 레반과 레테라는 붙잡은 조직원들의 목을 놓아주었다.

쿵! 쿠웅!

그들은 그대로 나무 밑으로 떨어져 널브러졌다. 살아는 있는지 움찔거리고 있긴 하지만, 의식을 되찾고 도망가기엔 글러 보인다.

덕구가 떨어진 이들에게 시선을 주자 레테라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걱정 마. 죽이진 않았어. 네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지 모를 일이잖아?”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를 대비해 살려두었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만큼 덕구는 평화롭게 살아오지 않았다.

이번엔 레반이 입을 열었다.

“네가 할 일은 간단하다. 우리를 형님의 곁으로 데려다 놓는 것. 우리의 목줄을 다시 형님께 되돌려 놔라.”

“오라버니가 우리의 목줄을 쥐는 것만이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알아들었어?”

덕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그들이 알아보지 못할까 봐 목에 무리가 갈 만큼 세차게 끄덕였다.

조직에 대한 충성, 배신의 대가. 그딴 건 무엇 하나 덕구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다. 그뿐이었다.

***

이런 X같은 인생.

손발이 결박되고, 험상궂고 냄새나는 아저씨들 사이에 끼여서 이동하는 내내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다.

지난 1주일간 내가 겪은 일들을 돌아보자.

주거지 파괴, 병원 입원, 환자의 고통 따윈 신경도 안 쓰는 포션 치료, 인생 게임 하나가 서비스 종료, 미믹에게 머리 뜯어 먹힐 뻔함, 집 나간 첫째에게 납치, 마약으로 인한 쇼크 경험.

여기까지만 해도 평생의 술안주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인데, 이젠 하다하다 위험해 보이는 아저씨들에게 납치냐.

아무래도 그거와 관련된 거겠지? 레반이 신월시에서 일으켰던 소동.

혹여 이렇게 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진짜로 일어날 줄이야.

그나저나 어디로 이동하는 거지?

눈을 안대로 가려 있어서 확인할 수 없다.

그나마 나를 사이에 둔 양옆의 남자 중, 그나마 땀 냄새 덜 나는 놈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기……. 절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

반응이 없다. 다른 쪽을 공략해볼까.

이번엔 반대쪽 남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목적지를 알려줄 수 없다면 하다못해 얌전히 운전해서 가주지 않을래요? 가뜩이나 멀미하는데 눈까지 가리면 더 심해질…….”

퍼억!!!

복부를 파고드는 묵직한 무언가가 내 말을 끊는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고, 방금 말을 걸었던 방향의 남자가 낮게 읊조렸다.

“조용히 해, 새꺄. 죽기 싫으면.”

“…….”

협박성 짙은 말.

이런 식으로 납치된 인질에게 겁을 주고 핍박하여 우위를 점하려는 모양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겁을 먹고 아무 말도 못 하겠지.

그런데 난 이상하게 겁이 나지 않았다.

이들보다 더 무서운 녀석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비주얼적으로 공포 그 자체인 괴물에게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서 담력이 세진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레반과 레테라를 견제하기 위한 인질이 나인 이상 함부로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냉정한 계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나를 휘어잡으려고 하는 녀석들에게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옛날 성격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내가 왜 왕따를 주동하던 놈들의 대가리를 돌로 찍었던가.

불합리한 그 상황이 빡쳤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빠아악!!!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는 몸을 일으키며 방금 전 남자의 턱에 머리를 들이박고 있었다.

“크억!?”

“뭐야, 이 새끼?!”

“이 자식, 진짜 죽고 싶어!?!”

“어디 죽여 봐, X같은 새끼들아아아아아아!!!!!”

나는 그대로 승합차가 뒤집힐 기세로 마구 날뛰었다.

***

약속 장소에 나와 있던 정 실장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세웠다.

부하들은 시켰던 대로 신요현이라는 남자를 납치해서 데려왔다.

머리가 봉두난발이고,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졌으며, 한쪽 뺨은 빨갛게 부어올라 코피마저 흘리고 있는 상태라는 게 문제였지만.

“읍! 읍!”

천으로 만든 재갈을 입에 물었음에도 아직도 날뛰려는 듯 버둥거리는 신요현을 보며, 정 실장은 마찬가지로 여기저기가 혹이 나거나 멍들어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분명 깨끗한 상태로 데려오라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실장님.”

“이놈, 겉보기와 달리 완전 독종입니다.”

“그냥 인질 말고 우리 조직에 스카웃하는 건 어떻습니까?”

“…….”

납치하러 갔던 부하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니 살짝 흔들리는 정 실장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