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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36화 (36/173)

〈 36화 〉 역린과 목줄 ­ 3

* * *

“뭐, 뭐야? 저놈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안일혁은 황당했다. 부하들이 감시하고 있기로 한 레반과 레테라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사람 다섯을 박아버리고 들어온 입구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안일혁은 곧 눈에 익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전에 두 사람의 동태를 감시에 보고하기로 했던 덕구가 문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달아나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 서 있었던 것이다.

“덕구, 너 이 새끼!! 배신 때린 거냐?!”

“허억?! 그, 그게……!”

덕구는 얼굴이 새파래진 채 그 자리에서 허둥거렸다.

저놈 하나 때문에 일이 망쳐버렸다는 걸 안일혁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나이프로 그의 눈깔을 파내버리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던 이유는 순전히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두 인영 때문이었다.

레반과 레테라.

언젠가 영상으로만 본 적이 있는 소름끼치는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창고 내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한쪽에 만일을 대비해 데려온 수십 명의 부하들이 있건만, 그들 중 그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분명 쪽수는 안일혁 쪽이 훨씬 많건만, 겨우 단 두 명의 존재감만으로 모두 압도당해 버린 것이다.

“야.”

레테라가 먼저 입을 연다.

그녀와 레반의 눈동자는 정확히 요현을 짓누르고 있는 세 명의 장정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네, 네……?”

요현을 누르는 장정들은 덩치가 아깝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을 만큼 크게 어깨를 움찔 거렸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눈만 마주친 것으로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건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몸이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번엔 레반이 이어서 말했다.

“네놈들 지금 누구에게 손 대고 있는 거냐?”

장정들의 눈은 요현을 억누르고 있는 자신들의 손으로 향했다.

맹수 앞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행동이 무엇일까? 그건 분명 맹수의 눈앞에서 그들의 새끼에게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일 거다,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그들 사이에서 울린다.

문뜩 자신들이 새끼에게 손을 댄 어리석은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스륵.

레반과 레테라가 걸음을 옮기면서 짊어지고 있던 물건의 천을 푼다. 그들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처럼 흘러내린 천이 길게 이어진다.

풀어진 천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칼집이었다.

조폭들이 자주 쓰는 회칼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도검 따위가 아니라, 고대나 중세에서나 쓸법한 디자인을 보고 잠깐의 황당함이 스쳤다.

스르릉……!!

그들이 손잡이를 잡고 뽑자 대검과 한손검의 서늘한 빛이 조명 아래에서 들어났다.

그건 틀림없는 진검이었다.

그 서늘한 예기를 시각으로 접하자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황당함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히이이이익!!!”

진검을 들고 점차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두 사람의 눈빛을 이기지 못한 장정들이 비명을 지르며 요현에게서 떨어졌다. 안일혁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안일혁은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들에게 욕할 수가 없었다.

압도당하고 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요현을 놓아줬어도 레반과 레테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숨 막히는 기세도 거두지 않았다.

억눌려있다 풀려난 요현이 다쳐 있는 모습을 확인할 탓일까.

그들의 분노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와 주변의 모든 걸 휩쓸어버릴 듯 했다.

창고를 지탱하는 철골에서 ‘끼기긱’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나고 조명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그들을 뒤덮은 그림자가 짐승의 형상으로 변하고, 자신들의 분노를 달랠 피를 찾아 단숨에 내달리던 그 순간이었다.

“레반! 레테라!”

요현의 목소리가 그들을 막았다.

분노로 일그러진 그들의 형상을 그는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보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그냥 좀 넘어진 것뿐이거든.”

““…….””

“아무도 죽이지 마. 부탁이야.”

요현이라고 갑자기 자신을 납치하고 겁박한 살모사파가 밉지 않은 건 아니다.

이들은 모조리 두들겨 패 경찰에 넘기고픈 마음은 있어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여긴 그들이 있던 SoR가 아니다. 죽이고 부숴야만 살아갈 수 있던 그곳과는 다르다.

요현은 두 사람이 이쪽 세계에 적응에서 살아가기 원하지, 분노에 휩쓸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들의 부모로서도, 형제로서도, 주인으로서도 말이다.

“……오라버니는 물러 터졌어요.”

레테라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은지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역시 목줄은 오라버니가 쥐고 있는 게 안심되네요.”

“형님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던 그들의 살기는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휘두를 듯 했던 무기를 거두며 두 사람은 요현의 뜻을 존중했다.

그들의 기세에서 해방된 창고 안의 사람들은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큼은 그들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날뛸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요현도 안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큰 사태까지 번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꽈악!!

“?!”

갑자기 요현의 목을 휘감은 팔이 그를 압박했다. 그리고 시야 한 구석에서 번뜩이는 나이프의 끝이 요현의 머리를 향했다.

뱀의 독니를 닮은 듯한 저 나이프를 요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안일혁의 나이프였다

“둘 다 꼼짝 마!! 허튼 짓 했다간 이 새낄 죽여 버리겠어!!”

“저건 또 뭐야…….”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머저리가 있었나?”

안일혁이 요현을 인질로 잡고 위협하자 레반과 레테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잠잠해지려 했던 분노가 다시 새어나올 기미가 보인다.

“꼼짝 말라고 했지!! 진짜 이 새끼 죽는 꼴 보고 싶어!?!!”

푹!

나이프의 끝이 요현의 눈과 광대뼈 사이의 살을 파고든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이대로 눈알까지 꿰뚫어버리겠다는 것 같았다.

그 탓에 레반도 레테라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나이프는 요현에 몸에 맞닿아 있는데 비해 자신들과 그들의 거리는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 사람이 초인적인 신체를 가졌다 한들, 이 거리에서 요현을 상처 하나 없이 구하는 건 힘들었다.

요현은 자신의 목을 압박하는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힘을 주며 말했다.

“무슨 짓이냐, 빌어먹을 자식아? 기껏 최대한 좋게 끝내려 하고 있는데.”

“닥쳐! 내가 말했지? 이 바닥에서 체면이 중요하다고. 겨우 단 두 명에게 쫄아서 인질을 놓아주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난 비웃음거리가 되는 거라고!”

“저 두 사람에게 쪼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솔직히 하는 짓 보면 나도 가끔 쫀다니까.”

“닥치라고 했지!!”

퍼억!!

안일혁의 무릎이 요현의 옆구리를 차올렸다.

갈비뼈 사이를 파고드는 고통에 요현을 얼굴을 구기며 신음을 흘렸다.

“형님!!”

“오라버니!!”

“움직이지 말라고!!”

안일혁은 요현에게 향한 나이프를 거두지 않은 채 레반과 레테라를 견제했다.

그러고서는 한 쪽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뭘 멍하니 있어!! 당장 공격하지 않고!!”

“네!? 하, 하지만…….”

“내가 이놈을 잡고 있는 동안 저놈들은 아무것도 못해! 당장 단체로 밟아버려!”

“그래도…….”

부하들에겐 이미 처음에 압도당했을 때의 충격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뿐일까. 자신들의 것보다 훨씬 리치가 긴 무기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함부로 달려들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새끼들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던 안일혁은 다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 당장!!”

““…….””

요현을 인질로 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명령까지 하는 안일혁의 작태에 레반과 레테라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또 다시 섬뜩한 감각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안일혁은 요현이라는 인질을 믿었다.

피가 새어나올 만큼 나이프를 얼굴에 짓누르며 그가 다시 한 번 외쳤다.

“이 녀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거냐!! 당장 무기 버리고 꿇으라고!!”

“……칫.”

“……할 수 없지.”

기분 더러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안일혁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다가 틈을 봐서 요현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 생각이었다.

그들이 무기를 놓으려 하자, 그제야 용기를 얻은 부하들이 저마다의 연장을 들고 다가왔다.

털그렁!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은 두 사람이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꿇지 마!!!”

터져 나온 요현의 목소리가 그들의 행동을 막았다.

안일혁이 얼굴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새끼가! 닥치고 있어!!”

“너나 닥쳐!! 레반! 레테라! 거기서 무릎 꿇는 순간 난 너희를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형님…….”

“오라버니…….”

나이프가 위협하듯 더욱 깊숙하게 파고드는 대도 요현은 기세를 굽히지 않고 외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레반과 레테라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내가 키운 캐릭터들이야!! 최고가 되길 바라며 키운 캐릭터라고!! 내 노력과 자긍심을 담고 있는 게 바로 너희들이란 말이야!! 그런 너희가 이따위 허접한 새끼 따위에게 무릎 꿇는 건 절대 용서 못해!!!”

“닥치라니까!!”

퍼억!!!

방금 전처럼 무릎이 요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이번엔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제법 위험한 감각이 전해졌다.

그러나 요현의 기세는 한 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딴 허접에게 지지 마!! 굽히지 마!! 남의 약점이나 잡고, 자기보다 약한 놈만 노리면서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는 천하의 등신 머저리 새끼니까!!! 자기보다 강한 녀석을 만나니까 아까부터 다리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진짜 이딴 놈 앞에 무릎 꿇을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닥쳐, 이 씨팔 새끼야!! 닥쳐!!”

퍽!! 퍼억!! 퍽!!

안일권의 무릎이 요현의 옆구리를 마구 찍었다.

요현의 옆구리가 멍들다 못해 피가 새어나와 옷을 더럽힌다.

그의 눈도 멀쩡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기어코 눈알을 파고든 나이프 때문에 시야 한 쪽이 빨갛게 물들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쿨럭…!!”

그러나 요현은 멈추지 않았다.

피비린내가 섞인 숨을 내뿜고 나이프가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함부로 누군가를 죽이지 말라는 건, 사회라는 규칙을 지켜야하는 이 세상에서 너희와 함께 살고 싶어서야!! 하지만 그게 언제나 참고만 살라는 건 아니야!! 누군가가 불합리하게 너희를 짓밟고 억압한다면 참지 마!! 반항해!! 도전해!! 전부 뒤집어 엎어버려!!!”

“씨발 놈아……!! 제발 닥쳐!! 부탁이니까 제발 닥치라고!!”

안일권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일 지경이었다.

왜 이 약해빠진 새끼는 쫄지 않는 거지?

오른쪽 눈과 왼쪽 옆구리가 피범벅이 됐는데 왜 자꾸 반항하는 거야?

저 두 괴물은 왜 무릎을 꿇다 말아?

왜 무기를 다시 집어 드는 거야!?

왜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야!! 대체 왜!!

안일혁은 절박함에 이성을 잃어갔고, 요현은 고통 때문에 의식이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라도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내가 허락한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너희들 마음 가는 대로 날뛰어버려어어어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아!!!!!!”

안일혁은 괴성을 지르며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이젠 뒷일을 생각도 않고 요현의 목을 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안일혁이 나이프를 치켜세우는 순간 레테라가 던진 한손검이 그의 팔을 잘라버리며 지나간 탓이다.

“끄허어억?!!”

절단면에서 뿜어지는 붉은 피.

거기에 놀란 안일혁이 팔을 감싸 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에게서 풀려난 요현은 앞으로 쓰러졌다.

기절할 듯한 고통을 견디면서 외쳐댄 탓에 온몸이 식은땀에 절여 있었지만, 그래도 의식을 잃은 그의 모습은 할 말 다할 수 있어서 후련해보였다.

한손검을 던지는 것으로 요현을 구해낸 레테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이걸 어쩌지? 너무 화가 나. 이렇게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분노는 처음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와. 너무 화가 나는데 너무나 기뻐. 뭐야, 이거? 내가 미친 건가?”

“화가 나는데 기쁜 게 미친 거라면 나도 미친 거겠지. 형님의 말씀이 내 안을 감돌아서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어.”

“난 오라버니의 상태를 살필게. 떨거지들은 맡겨도 되지?”

“그래. 저놈들을 좀 쓸어버리고 나면 이 분노도 사라지고 기쁨만 남겠지. 야, 거기 너.”

“네, 네엡?!”

레반이 시선을 향하자 입구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덕구가 차렷 자세로 답했다.

“입구 닫아라. 넌 도와준 게 있으니 특별히 살려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반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그의 모습이 나타난 건 반대편에서 연장을 들고 있던 건달들의 사이였다.

자세를 낮춘 채 한계까지 대검을 당겼던 레반이 단숨에 검을 휘두른다.

대검을 휘두른 자리에 모든 물체가 잘려나가고, 공포가 어린 비명이 터지며, 검풍에 따라 피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그 폭풍 속에서 레반은 마구 날뛰었다.

마음껏 날뛰라던 요현의 말처럼.

한편, 쓰러진 요현을 향해 다가던 레테라는 그 옆에 있는 안일혁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피가 멈추지 않는 팔을 붙잡은 채 레테라를 향해 호소하듯 말했다.

“사, 살려……!!”

“살려줘? 너 참 이상한 말 하는구나?”

레테라는 그의 머리 위에 발을 얹었다.

콰직!!!

레테라에게 짓밟힌 안일혁의 머리통은 수박이 부서지듯 터져나갔다.

머리를 잃고 남은 신경계로만 움찔거리는 몸통을 그녀는 그저 길 가던 중 밟아버린 벌레 정도의 시선밖에 주지 않았다.

레테라는 그 시체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요현에게로 향했다.

“넌 자신을 살려줄 수 있던 유일한 인물을 자기 손으로 해친 거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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