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41화 (41/173)

〈 41화 〉 콘크리트의 던전 ­ 4

* * *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말라고.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위드 소프트웨어 사장이라고 밝힌 남자는 내 혼란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실실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도저히 사장처럼 보이지 않는 남자였다.

아무렇게나 뻗은 머리카락에 옷은 검고 후줄근한 츄리닝. 나이도 나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게 정말 사장이라고? 그냥 사장인 척 하는 동네 백수 아니야?

게다가 방금 전 정신 나간 자기소개가 진실이라면, 이놈은 SoR의 개발과 출시, 운영 모든 걸 혼자서 해왔다는 얘긴데…….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눈앞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안 될 건 뭐 있어? 게임 캐릭터가 현실로 나온 마당에 말이야.”

“……!”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내가 겪고 의문을 품고 있는 괴현상이 정확히 언급되었다.

어떻게든 그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줄곧 의문이었어. 그 녀석들이 현실로 나오게 된 원인이 뭔지. 그리고 그들이 나온 타이밍과 동시에 서비스를 종료한 위드 소프트웨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정확히 봤네. 맞아. 난 그들이 현실에 나오는 이유를 아주 잘 알아.”

그 사이에 커피를 다 마신 듯,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며 남은 커피를 탈탈 털어내던 그는 다시 고개를 내리며 싱긋 웃었다.

“내가 그들을 이 세계로 불렀거든.”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너무나 가볍게 드러난 진실에 혹시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가볍게 내뱉은 말에는 이상하게도 무게가 있었다. 그것이 정말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듯한 무게였다.

만약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면, 이 녀석은 사람을 선동하는 게 특기인 희대의 천재 사기꾼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진실이라면?

그럴 경우엔 이 남자는 뭐지?

“……당신 누구야?”

“아까 말했잖아? 사장 겸, 총괄 디렉터 겸, 디자이너 겸…….”

“말 돌리지 말라고. 댁이 말한 직책 중 게임 캐릭터를 불러낼 수 있는 것 따윈 없었어. 아니, 애당초 인간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잖아.”

그렇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한들 0과 1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끌고 올 수 있다면 그건…….

콰직!

다 마신 커피잔을 그가 두 손으로 눌러 찌그러뜨렸다.

플라스틱 재질치곤 가볍게 찌그러진 컵이 그의 두 손의 감싸였고, 다시 두 손을 떼었을 때 컵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마치 마술처럼. 혹은 기적처럼.

“네 스스로 생각해봐.”

“…….”

아무런 속임수도 없다는 듯이 사라진 컵을 감쌌던 두 손바닥을 보여주며 그는 웃었다.

“SoR에서도 그랬잖아? 명확한 것 하나 없는 단서들을 되짚고 쫓아가다가, 결국 아무도 도달한 적이 없는 신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거지. 만약 내가 지금 진짜 나에 대해 밝힌다고 해도, 넌 이해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게 될 걸?”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동네 백수 같은 모습의 남자가 회사 사장이라니, 게임 캐릭터를 현실로 불러냈다니 하는 것만으로도 현실감이 붕 뜨는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면 쉽게 받아드릴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과유불급이라고, 이 남자에 대해 파고드는 건 일단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다.

“그래. 그럼 그 문제는 나중으로 넘어가고, 다른 것 좀 물어보고 싶은데?”

“좋지. 게임 캐릭터들을 불러들인 이유?”

“아니, 그것도 나중에. 나와 함께 온 두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

현재로선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레반과 레테라.

사라진 두 사람에 대해서도 눈앞에 남자가 관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물음을 받은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그놈들 화장실 간 거 아니었어?”

“네가 모르면 어떡해?!”

어이가 없는 그의 대답에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보니 두 사람의 소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뭐야? 신비주의의 흑막 같은 냄새를 풀풀 풍겨놓고, 그들이 사라진 것엔 관여 안 했다는 거야?

그때였다.

어느 한 곳을 바라보는 듯 했던 눈앞의 남자가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은 건.

“아, 미안, 미안! 하나에만 집중하면 다른 곳엔 신경을 안 쓰는 것에 습관이 들었거든. 그래야 상정 외의 사태를 즐길 수 있게 되니까.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 거 같네.”

이쪽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혼자서 납득하던 남자는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에 여기에 불청객이 들어온 건 알고 있지? 내가 메시지도 보냈잖아.”

그 말에 스치는 건 병원에서 만난 무언가에 홀린 듯 했던 남자였다.

그는 분명 내 손목을 잡고 이렇게 말했었다.

「초대장이 없는 자는」 「들어올 수 없다」

「빨리 와라」 「심심해 죽겠으니까」

그때 그 남자의 말이 이 녀석의 메시지였던 걸까.

확실히 실실 웃는 악동 같은 미소가 닮아 보이긴 했다.

처음 보았을 땐 소름끼치는 경험이었지만, 막상 불러낸 본인과 만나 보니 김이 새는 게 느껴진다.

진짜로 그게 그냥 용도로 사용한 거였어?

그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그때 내가 엄청 심심했거든. 그래서 그 녀석들을 가지고 놀 간이 던전을 만들었지.”

“간이 던전?”

“별 거 아니야. 그냥 이 건물에 특정 공간을 모두 이어붙인 게 다지. 궁금하면 한 번 체험해볼래?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 될 걸?”

“……아니, 됐어.”

장난 끼가 가득한 남자의 표정에서 불길함을 느낀 난 그의 제의를 거부했다.

뭔지 몰라도 그 던전에 들어갔던 세 남자가 하마터면 정신병원에 입원할 뻔했다는 거지? 그럼 가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그 던전이 왜?”

“던전의 입장 조건이 초대장을 가지지 않은 자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거니까.”

“뭐?”

황당해진 나는 주머니 속에서 사진을 꺼내들었다.

나는 이곳으로 인도한 단서가 된 사진. 뒤에는 여전히 휘갈겨 쓴 글씨로 ‘초대장’라고 적혀 있었다.

“초대장이라면, 이거?”

“맞아.”

“가지고 왔잖아!”

“너만 가지고 있는 거지. 다른 두 사람은 아니잖아? 그래서 너만 손님용 공간에 이동하고, 나머지는 던전에 입장한 거지.”

“그딴 게 어디 있어!”

“여기 있지. 원래 게임은 만드는 놈 마음대로야.”

억지 같지만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들이 미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뭔가를 더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걸 허락해주지 않은 듯 남자가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따라와. 그 녀석들을 만나게 해줄 테니까.”

“…….”

찝찝한 기분이긴 하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다가,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물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었다.

“근데 댁은 이름이 뭐야?”

“율.”

그는 짤막하게 그렇게만 했다.

순간 내가 이해를 못한 듯하자 그는 씨익 웃으며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성도 없고, 표현할 한자도 없어. 그냥 율이라는 소리 자체가 내 이름이야.”

***

스스로의 이름을 율이라고 밝힌 그는 걸어가면서 말을 이어갔다.

“뫼비우스의 띄라고 알아? 중간이 한 번 꼬였을 뿐인 게 전부인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1면 물체지. 앞뒤가 구분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앞뒤가 없어. 면을 따라 움직이면 안쪽과 바깥쪽을 전부 확인할 수 있게 되지. 내가 만든 던전도 그래. 정신없이 공간이 이어진 것 같지만 결국은 한 길이야. 마지막엔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어.”

“미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거든. 중2병이야? 독특한 무언가에 끌려?”

던전에 대해 말해준다더니 뫼비우스의 띠로 꾸며놨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직접 보지 않고 말만으로 이해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아니면 이 녀석이 일부러 어려운 말로 말하기 때문이거나.

하지만 율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뭐든지 미친놈이라던가, 중2병이라던가 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건 안 좋은 버릇이야. 그건 자신이 아는 틀 안에 상대의 말과 행동을 가둬두는 것. 그 사람을 이해하길 포기하는 행동이지. 내 비서도 그렇던데, 이래서 범인 사이에 있는 천재가 고생하는 건가봐.”

“자기더러 천재라고 말하는 거지? 안 부끄러워?”

“오히려 나는 겸손하게 말하는 건데? 언젠가 너에게도 찾아올 거야.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것을 이해해야만 하는 순간이.”

“미안하지만 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도 최대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만?”

그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좁은 복도를 지나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조금까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미로 같은 공간을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온 공간은 처음 건물에 진입했을 때 보았던 1층부터 5층까지 뚫려 있는 공간이었다. 저 아래 우리가 들어온 깨진 유리문이 보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될 거야.”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놓은 난간에 몸을 기대며 율은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말했지? 던전의 구조는 뫼비우스의 띠라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든 결국은 외길뿐이야. 연결된 모든 장소를 지날 수밖에 없지.”

그 말과 함께 율은 손가락으로 1층 바닥을 가리켰다.

“봐. 마침 왔네.”

“……!”

그 시선을 따라가던 나는 곧 바닥에 금이 가는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저편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부슨 듯한 진동과 울림이 전해진다. 그것이 점차 커지고, 이내 바닥을 뚫어내며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앙!!!!

바닥이 터져 나오고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은발을 뒤로 묶고, 한손검과 방패를 거머쥔 여인이었다.

“레테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드디어 나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 것도 한 순간. 이내 표정을 굳힌 그녀의 몸이 선이 된 건처럼 쭈욱 이어지며 사라진다.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벽을 차오르며 각층마다 나 있는 난간을 밟고 올라간 그녀는 순식간에 내가 있는 5층까지 당도했다.

레테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내가 아니었다.

만나서 반갑다는 듯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율에게 그녀의 시선과 함께 살기가 쏟아진다.

“……?! 레테라, 잠까……!!”

미처 말리기도 전에 레테라의 검이 빛을 뿜었다.

그것은 정확히 율의 미간을 꿰뚫으려 날아갔고.

파지지직!!!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레테라의 검끝은 율의 이마와 거의 맞닿기 직전의 위치에서 멈췄다.

마치 무언가에 붙잡힌 듯 공중에 떠있는 레테라의 모습에 놀라 내가 말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진정해.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어떻게든 나아가 율의 이마를 꿰뚫고 싶은지 부들부들 떨려오는 검 끝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여긴 던전 밖. 저긴 던전 안. 닿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툭.

율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검을 퉁기자 레테라의 몸은 한계까지 응축된 용수철에 밀려나듯 뒤로 날아갔다.

그대로 레테라의 몸이 벽과 부딪치는 듯 했지만, 레테라는 빠르게 날아가는 와중 공중에서 자세를 잡고 다가오는 벽을 발로 박찼다.

콰앙! 쾅!

벽을 차고, 천장에서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남기며 몸을 날린 레테라가 또 다시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이번엔 율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이미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는데 무리해서 공격을 감행할 만큼 그녀는 막무가내가 아니었다.

콰각!!

검을 나와 율의 머리 위 콘크리트 벽에다 박고 그녀는 거꾸로 몸을 뒤집었다.

거꾸로 매달린 레테라는 사나운 눈으로 지근거리에서 율을 노려보았다.

험한 일을 해온 건달들조차 버티지 못하던 그 시선을 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받아내었다.

“누구야, 너?”

“율. 이 회사의 사장 겸……. 흠, 이것도 자주 말하니 질리네. 아무튼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는 인간이다.”

“인간이라고? 웃기고 있네. 너 같은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어!”

레테라는 전에 없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다.

뭐지? 확실히 대화하면서 절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느낀 나지만, 겉보기엔 한낱 무직 백수처럼 보이는 게 율이었다.

무엇이 레테라의 적개심을 이렇게 자극 한 거지?

적의가 어린 시선을 던지던 레테라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자와 떨어져주세요, 오라버니! 가까이 해서는 안 돼요!”

“뭐?”

“너무하네……. 난 너희들이랑 놀려고 불렀을 뿐이지, 딱히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내 안위를 걱정하며 말하는 그녀 말에 율은 유감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가식적인 반응에 레테라는 사나운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이 보이지 않는 벽이나 치우지 그래?”

“어째 벽을 치우자마자 내 목을 베어버릴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지지만……. 뭐 어때.”

별로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 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짓궂은 장난을 꾸미는 악동 같은 미소였다.

“하지만 한참 게임이 진행도중 관리자가 멋대로 강제종료 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 너희들도 게임 캐릭터라면 한 번 스스로 던전을 빠져나와봐.”

“뭐라고?”

“아, 걱정 마. 공평하게 힌트는 줄 거야. 이 던전을 만든 건 확실히 나지만, 그걸 유지시키고 있는 건 던전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는 보스 몬스터야. 그놈을 쓰러뜨리면 던전은 사라져.”

하찮은 장난질에 화가 난 건지 레테라의 머리카락이 불꽃처럼 치솟았고, 그런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는지 율은 히죽히죽 웃음을 흘렸다.

“보스 몬스터라니……. 그놈이 어디 있는데?”

내가 묻자 율은 손가락을 위로 향한다.

“마침 네 또 다른 캐릭터가 데려오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말과 함께 천장이 터지듯 파편을 토해내며 무너져갔다.

거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상처투성이인 레반의 모습과…… 저, 저게 뭐지?

“!!!!!”

레반과 함께 나타난 수십 개의 손과 눈, 입 등을 가진 괴물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천장에서 몸을 내밀었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비주얼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율이 장난치듯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자아. 내가 말한 대로의 시간이 왔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것을 이해해야 되는 순간이. 저게 뭔지 이해할 수 있겠어?”

“어어……. 일단 크툴루 신화에 나오면 어울릴 것 같은 녀석이네.”

너무 기괴한 나머지 조금 전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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