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게임 플레이 1
* * *
“크아아악!!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죽어!!”
무너져 내렸던 천장의 잔해를 일제히 날려버리며 레반이 몸을 일으켰다.
이미 대검으로 수백 번은 후려치고 베었다. 그런데 지네와 슬라임을 섞은 듯한 괴물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뻗어오는 팔을 베고, 몸체인 살덩이를 베어도 어느 순간부터 상처가 사라지며 멀쩡해진 모습으로 공격해오는 것이다.
유효한 타격 부위가 있는 건가하며 공격 부위를 계속 바꾸려고 해봐도, 끊임없이 유동하는 저 몸체는 다른 곳을 때리는 지조차 불분명했다.
지네가 움직이듯 수십 개의 팔을 움직이며 천장에서 내려오는 괴물을 노려보던 레반은 자신의 근처로 내려앉는 낯익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5층 난간에서 떨어져 내린 레테라였다.
“뭐야, 절벽가슴.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있는 곳으로 네가 온 거다, 근육돼지. 아무튼 뭔 상대기에 이렇게 질질 끌어?”
“네가 한 번 싸워봐. 녀석의 몸을 부지런히 돌아가면서 수백 번을 두들겨도 유효타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물리 내성 몬스터야?”
“상처가 생기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거 같아. 다만 이상할 정도로 피통이 많고, 재생력이 빠른 정도. 인챈트 도구가 있었다면 마법 데미지도 실험해봤을 텐데 아쉽군.”
“인벤토리를 쓸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결국 아이템 없이 전투만으로 쓰러뜨려야 한다는 건가.”
과연 게임 속에서 나온 이들답다고 할까.
주고받는 정보의 내용도 순수한 판타지 용어보단 게임 용어에 가까웠다.
“빨리 저놈을 쓰러뜨려야 해. 그래야만 여기서 빠져나가고 오라버니를 지킬 수 있어.”
“형님을 찾았나?”
“뭘 보든 놀라지 않을 각오를 했다면 오른쪽 위를 확인해봐.”
레반은 심각하게 굳은 레테라의 표정에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따라 오른쪽 위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처음엔 요현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그것을 본 순간 레반도 레테라를 따라 표정을 굳혔다.
“저 괴물 새낀 뭐야?”
레반과 눈을 마주치며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드는 율의 모습을 보고 레반은 망설임 없이 그를 괴물이라고 칭했다.
진짜 괴물이라고 칭할 존재가 머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건만, 레반도 레테라도 그쪽 괴물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SoR에는 최종 레이드 컨텐츠라고 불리는 사대룡이 존재한다.
백룡(白?). 흑룡(??). 독룡(??). 광룡(??).
강함 하나만 해도 그 세계관의 신이라 불리는 자들을 능가하며, 레이드를 성공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죽는 게 아니라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물러나게 하는 것에서 그친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둥지로 돌아간 사대룡를 쓰러뜨리면 완전한 토벌이 가능하다는 추측만 나돌 뿐이다.
추측뿐인 이유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선 사대룡의 전투력은 유저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둥지, 드래곤 레어(Dragon Lair).
그곳은 단순히 안식처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드래곤에게 있어서 가장 최적의 요소로만 이루어진 단절된 세계였다. 다른 생물이 살아갈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그곳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유저들의 캐릭터는 무시무시한 디버프가, 사대룡에겐 사기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력한 버프가 걸린다.
그렇기 레이드에서 사대룡을 격퇴했을지언정 둥지로 돌아간 그들을 완전토벌에 성공한 플레이어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레반과 레테라는 둥지에 자리를 틀고 있는 사대룡과 각각 마주친 적이 있다. 레반이 흑룡, 레테라가 광룡이었다.
사대룡 완전토벌을 꿈꾸던 요현이 그들의 둥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사대룡을 쓰러뜨릴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탐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레반과 레테라는 멀리서 본 사대룡의 느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저들이 버프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둥지에서의 사대룡의 강함은 버프가 아니었다.
그것이 사대룡의 진정한 힘이었다. 둥지 밖으로 나온 사대룡이 오히려 심각한 디버프를 받고 있던 것이다.
마치 바다생물이 육지의 정복을 꿈꾸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넓힐 야욕을 품고 그들은 자신들과 맞지 않은 세상에 나가고 있었다.
레반과 레타라는 그 피부가 떨려오는 듯 했던 사대룡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비슷했다.
요현의 옆에서 자신들을 구경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율이라는 남자.
그에게서 사대룡과 맞먹을 정도의 위험한 존재감을 느꼈다.
토벌불가 레이드 보스급의 무언가가 요현의 옆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던 것이다. 레반과 레테라가 심각해질 만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요현이 레반과 레테라를 향해 떨어지는 괴물만을 바라보며 외쳤다.
“뭐하고 있어! 빨리 피해!”
콰아아아아앙!!!
기괴한 괴물의 육중한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도 레반과 레테라는 서로 반대쪽으로 몸을 날리며 괴물의 공격반경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단 당장은 오라버니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는 거 같아!”
“젠장! 저런 괴물이 형님 옆에 있는데 불안해서 살겠나!”
“오라버니를 지키려면 우선 이 괴물부터 처치해야 돼!”
“!!!!!!!!!!”
레반과 레테라가 각자 무기를 거머쥐며 양쪽에서 달려들었고, 괴물은 지네다리 같은 수많은 팔들을 휘두르며 그들을 공격했다.
팔이 닿을 때마자 기둥이 끊기고, 콘크리트 바닥이 파이는 일격들을 피해 두 사람은 괴물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내었다.
그러나 상처를 낸 것도 잠시.
유동하는 위에서 움직이던 상처들은 어느새 몸 안으로 삼켜지듯 사라져버렸고, 괴물은 별 데미지도 없는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율이 턱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저놈들 저러다 죽겠는데?”
***
“뭐라고?”
레반과 레테라가 흉측한 괴물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잘 싸우는 듯한 모습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냥 흘러 넘길 수 없는 말이 들려와 율에게 고개를 돌린다.
방금 레반과 레테라가 죽을 거라고 말한 거 같은데?
율은 쏟아지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장비가 너무 변변치 않아. 저 괴물이 보기엔 우스워도 힘 하나는 장난 아니거든. 갑옷의 방어력으로도 다 감당하질 못할 충격이 들어오니까 회피 위주로 움직이고 있잖아.”
그 말에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반인인 내 눈엔 눈에 쫓기도 힘든 스피드와 강력한 일격들 때문에 두 사람이 선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확실히 공격 동작보다 회피 동작이 훨씬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괴물의 팔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잘라내도 재생되고, 너무 넓은 범위에서 덮쳐오는 통해 전부 대응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무기도 마찬가지야. 일격이 괴물의 몸 깊숙이 닿지 못하고 있어. 그랬다면 데미지는 미미하더라도 경직만큼은 줄 수 있어서 좀 더 편안 흐름으로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율의 말을 들을수록 점차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반과 레테라가 괴물을 상대하는 게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 그렇게 공격했는데 괴물 자체에겐 큰 데미지는 없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몸에 새겨진 상처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넌 모험의 스릴을 즐기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장비는 놔두고 적당한 장비를 차고 다니는 타입이지? 그게 여기선 독이 됐네. 이대로 있으면 저 녀석들 죽어.”
“……닥쳐봐.”
내 중얼거림은 한 귀로 흘리며 율은 김빠진 듯한 모습으로 난간에 턱을 올렸다.
뻔한 싸움은 재미없다고 말하는 듯이.
“아직 자신들이 싸우는 괴물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체력만 소모하고 있네. 이대로 있으면 가망 없지.”
“닥쳐 보라니까!”
정신 사납게 하는 그의 입을 닥치게 하고 나는 난간을 붙잡고 몸을 내밀었다.
좀 더 그들의 싸움을 자세히 보기 위해,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지 알기 위해.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투명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그들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다.
촤아악!!
“큭……!”
“레테라!!”
레테라의 견갑이 뜯겨져 나가며 그녀의 어깨에서 피가 뿜어졌다.
가뜩이나 내구도가 떨어진 갑옷이 계속되는 전투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장비가 멀쩡한 레반 쪽도 나은 건 아니었다.
작은 부상을 입더라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먹이면 이긴다는 식의 그의 전투법은 체력의 끝을 알 수 없는 괴물과의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언제나 강하고 듬직하던 그들이 계속 몸에 상처를 쌓아간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을까.
싸우지 못하더라도 지략가처럼 멋진 작전을 떠올려 이 상황을 뒤집고 싶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 지켜보는 것 밖에 못하는 건가!
고민하던 나는 이 상황을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돌아보았다.
율은 더 이상 싸움에 흥미를 잃었는지 아예 등을 돌려 난간에 기댄 채 멍 때리는 중이었다.
‘이 녀석이라면…….’
불곰파의 조직원들도 이 건물에 들어와 저 괴물을 만났지만 멀쩡하게 살아 돌아갔다.
그들이 저 괴물을 쓰러뜨렸을 리 없으니 개입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간이 던전을 만들었다고 하는 그가!
“야……!”
“혹여 저 녀석들을 구해달라는 소릴 지껄일 거면 난 그냥 간다.”
내가 말을 내뱉기도 전에 놀랍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먼저 말을 잘랐다.
나를 돌아보는 율의 표정은 조금 전과 180˚도 달라져 있었다.
장난 끼 한 점 없이, 그저 눈앞에 나를 평가하려는 게 전부인 듯한 건조하고 기계적인 시선이었다.
“난 재미있는 녀석을 좋아해. 반대로 재미없는 녀석이라면…… 뭐, 싫어하지는 않아. 다만 흥미가 안 생길 뿐이야. 흥미가 없으면 그 녀석이 어딜 가서 뭘 하든, 아니면 나가서 뒤지든 상관 안 해. 다른 재미있는 녀석이 없나 찾으러갈 뿐이지.”
“…….”
오싹했다.
순간 이 녀석의 눈이 아득한 영역에서 한낱 개미의 불과한 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딱 한 순간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레반과 레테라를 죽일지 모르는 괴물보다 눈앞에 남자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율은 히죽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것만으로도 한순간 내 몸을 짓누르던 공포가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어깨에 힘 풀어. 겨우 게임 하나에 그렇게 쫄지 말라고.”
공포를 느꼈던 것도 잠시. 레반과 레테라가 죽을지 모르는 이 상황을 그저 게임이라며 웃어넘기는 율의 모습에 내가 발끈했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야!”
“그걸 누가 정하는데?”
척. 하고 내 말을 가로막으며 그의 손가락이 나에게 뻗었다.
“내가 말했지? 자신이 아는 틀 안에 상대의 말과 행동을 가둬두는 건 그 사람을 이해하길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과정이 무섭더라도 이해하려는 걸 멈추지 마. 끊임없이 생각하고 정말로 맞는지 고민하며 끝내는 자신에게 맞게 받아들여봐. 그럼 새로운 세계가 열릴 테니까.”
“……???”
이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현실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보라는 뜻인가? 그렇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확실히 두 사람이 원래 게임 캐릭터이긴 하지만…….
“……!!!”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이것을 정말 게임이라고 쳤을 때 아직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게임 시스템이 있었다.
“인벤토리!”
“정답.”
이제 좀 머리를 굴린다는 듯 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고민에 빠졌다.
이제까지 인벤토리를 사용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전부 실패하지 않았던가?
“인벤토리를 어떻게 사용하라는 건데! 이제까지 별의별 시동어는 다 외쳐봤지만 전부 소용 없었다고!”
“어설프게 게임요소만 가져온 판타지 소설만 보고 따라하니까 그렇지, 멍청아. 네가 생각해야할 건 소설이 아니라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 게임 그 자체라고. 거기에서 인벤토리를 어떤 순서로 사용했어?”
“……?!!”
뚫렸다.
그 동안 머리 한 구석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무언가가 시원하게 뚫렸다.
그냥 말만 하면 소설처럼 모든 게 알아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게임이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고를 어지럽히는 시각이 일체 차단되어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해. 내가 SoR에서 어떤 식으로 인벤토리를 사용했지? 어떤 식으로 장비를 바꿨어?
“……메뉴 오픈.”
키보드나 마우스로 조작해서 메뉴 창을 열었던 것을 떠올리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르다. 다리 밑에서 생쇼하던 것과 뭔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변화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부가 아닌 내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인벤토리 오픈.”
게임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자 내가 그동안 모아온 수많은 아이템 목록이 머릿속에서 촤르륵 올라온다.
그중에는 너무 별 거 아니라서 인벤토리에 담아둔 줄도 모르고 잊혀졌던 아이템마저 있었다.
이럴 수가. 여기에 있었다.
‘인벤토리는 내 몸 안에 있었어!’
드디어 인벤토리를 열었다.
하지만 이 다음은 어떻게 하지?
게임에서 인벤토리를 열면 캐릭터 장비창까지 함께 떴었는데, 내 안에서 느껴지는 건 오로지 인벤토리 목록창뿐이었다.
어떻게 그들에게 장비를 전달할 수 있지? 끔찍하게 무거운 무기들을 내가 직접 꺼내서 던질 수도 없고.
그때였다. 율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보이지 않는다고 겁먹지 마. 게임 시스템을 따라서 명령어를 내려. 아무 말이건 상관없어. 네가 가진 이미지가 가장 확실하게 표현될 수 있는 말이면 충분해.”
그의 조언에 따라 게임 속 동작을 표현하는 명령어를 즉석해서 떠올리고 내려 보았다.
마치 마법사가 되어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거 같았다.
“캐릭터 지정, ‘레테라’. 무기 지정, ‘어스름한 비늘 검’.”
콰아아앙!!
그때였다. 결국 한 방을 허용하고만 레테라가 벽으로 날아가 부딪친 건.
눈을 감고 있음에도 신기하게 그 광경이 선명히 전해졌다.
“크윽…….”
레테라는 충격이 꽤 컸는지 벽에서 바로 몸을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끝장내려는 듯 흉측한 손들이 창처럼 뻗으며 날아간다.
늦지 않길 바라며 내가 외쳤다.
“웨폰 체인지! ‘환설(?雪)의 쌍마검’!”
콰가가가가아아아앙!!!!!!
무기를 교체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내가 눈을 떴다.
동시에 레테라를 향해 날아가던 손들이 벽을 두드리며 굉음을 일으켰다.
흙먼지가 피어로는 아래쪽의 풍경을 보며 나는 설마 늦은 건가 생각했을 때였다.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새하얬다.
그건 흙먼지가 아니었다.
지표면에 맺힌 새하얀 서리가 충격을 받고 일제히 솟구쳐 오른 것이다.
콰가가각!!!
동시에 수십 개의 손이 모두 일제히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것에 그치지 않고 절단면으로부터 팔이 얼어붙으며 괴물의 팔이 타고 올라갔다. 그것에 괴물이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이제야 좀 재미있어졌네.”
뿌연 서리 위로 날아가는 팔들을 보며 율은 다시 뒤돌아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흩날리는 서리를 칼질 한 번으로 거둬내며 레테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양손에 쥐고 있는 건 얼음과 눈으로 만들어진 듯이 예리하고 아름다운 쌍검이었다. 신기하게도 검끝에서부터 레테라의 손목까지 하얀 눈발이 휘돌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환설의 쌍마검을 바라본 뒤, 레테라는 옛날 생각난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무기 만드는데 참 고생 많이 했었죠, 오라버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