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게임 마스터로서의 존재 1
* * *
“여어, 오랜만이네. 아니면 금방 다시 만났다고 말해야 하나?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1주일 전이지? 1주일 만에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건가? 넌 어떻게 생각해? 의견 좀 말해줘.”
가볍다.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지독한 혈향과 죽음의 냄새가 퍼지는 골목길에서 저 목소리도, 걸음도, 그 무게도 너무나 가벼웠다.
눈앞에 떡하니 시체가 있건만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런 율의 모습을 보니 그 동안 그를 다시 만나면 묻고 싶었던 것도, 따지고 싶었던 것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분노가 뒷목을 타고 올라올 뿐이었다.
“너 이 자식.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뜨겁게 끓어오르는 걸까. 차갑게 가라앉는 걸까.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격정이 목소리에 담겨 흘러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 하러 왔긴? 플레이어들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도록 노력하는 건 게임 마스터로 가져야 할 당연한 덕목이라고?”
“……뭐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율은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 나에게로.
그것을 다른 두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멈춰!”
“그 이상 다가오지 마!”
레반과 레테라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목적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나에게 다가오게 두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무기도 없이 맨손이지만 두 사람의 투기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율이 가지는 기괴함을 한 번 경험했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단단히 각오한 것 같았다.
율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두 사람을 거슬리기는커녕 기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안 본 사이에 자제력이라는 것 좀 키웠구나, 멍멍이들아. 주인이 교육을 잘 시켰나봐? 하지만 나쁜 짓 하러 온 건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으르렁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며 율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것으로 대치는 끝났다.
콰아아아아앙!!!!
사람의 몸이 바닥에 쓰러질 때 날만한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레반과 레테라는 그 굉음을 흘리며 바닥 위로 쓰러졌다.
그뿐일까. 시멘트 바닥이 마치 늪이라도 된 것처럼 두 사람의 몸을 파고 들어간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을 짓누르는 듯이.
바닥에서 진동이 진해진다.
두 사람을 짓누르는 압력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든 그 압력을 이겨내고 몸을 일으키려는 두 사람의 몸이 부들부들 떨림으로서 일어난 진동이었다.
“이건……!?”
“‘베벨 그래비티’……!!”
강력한 중력장을 만들어내는 SoR의 마법.
중력의 변화가 일어난 영역의 색깔이 회색에 가깝게 변해간다. 그 안에 있던 레반과 레테라도 마찬가지였다.
베벨 그래비티 마법이 일어날 때의 특징이었기에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게임 상의 마법은 이렇게 완전히 캐릭터를 구속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다. 기껏해야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정도.
기존의 상식을 깨부수는 듯 위력부터가 다른 마법을 선보인 율은 쓰러진 두 사람의 위를 폴짝 뛰어넘고 내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 죽은 배진환을 안고 있는 나를 재미있는 걸 바라보듯이 쳐다보았다.
“표정 봐라? 잘 만하면 때리겠어?”
“……사람이 죽었어.”
“보면 알아.”
나는 정중하게 배진환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었어.”
“알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어. 그냥 커피나 마시며 잠시 게임 이야기를 나누던 게 전부였지.”
“그것도 알지.”
“그래도 그와 나누는 대화는 즐거웠어.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좋은 사람이었다는 게 느껴졌어.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서 살해당했다고.”
“너무 속상해할 필요 없어. 은신과 기습을 전문으로 하는 게 바로 암살자 캐릭터잖아? 모르고 당할만해.”
꼴에 위로 해주는 듯 말하는 율.
그러나 엇나간 그 내용에 뒷목을 타고 오르던 분노가 결국 정점을 찍었다.
퍼어억!!
도저히 내 주먹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분노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는 녀석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혀, 형님!?”
“오라버니!?”
중력에 짓눌린 채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하던 레반과 레테라가 그 모습에 놀라 외쳤다.
알아. 안다고.
내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놈에게 송곳니를 드러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단 말이야. 레반과 레테라조차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녀석이니까.
그런데 뒷일 같은 건 더 이상 생각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도 많이 참은 거다.
이 망할 자식의 면상을 후려치지 않았다간 당장 내가 홧병 때문에 뒈질 것 같았거든.
“그래. 암살자에게 죽었다. 네가 재밌겠다는 이유로 현실에 불러들인 그 캐릭터에게 죽은 거라고!!!”
한 번 선을 넘어버린 거 더 이상 거리낄 거 없다는 듯 나는 녀석에게 있는 그대로의 분노를 드러내었다.
내 주먹에 먹고 고개가 돌아간 율은 맞은 부위를 매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으음~. 주먹이 빈약해. 요즘 학생들은 이래서 문제야. 게임과 공부에만 열중하지 말고 운동도 해야지, 운동도.”
“개새끼야!! 언제까지 장난칠 생각이야!!”
분노를 드러내도 단 한 치도 바뀌지 않는 율의 태도에 녀석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러자 율은 히죽 웃었다.
감히 자신을 때리고 멱살까지 붙잡은 것에 대한 살의를 드러내는 미소가 아니었다.
마치 케이스 안에 작은 동물이 부리는 재롱을 구경하기라도 하는 듯한 미소였다.
“리처드 조던 개틀링. 181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전쟁으로 전장에 끌려가는 젊은이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다수의 병사를 대신할 수 있는 살상력을 가진 개틀링 기관총을 발명. 그러나 기관총은 오히려 전쟁에서의 대량학살만 불러올 뿐이었지. 의사였던 그의 이름은 이젠 대량학살 병기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어.”
“뭐……?”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 1833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스톡홀름 출생. 광산 등에서 사용되는 폭약의 폭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그러나 사람들이 덜 죽기 바라며 만들었던 다이너마이트는 오히려 전쟁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사용됐지. 그 자는 곧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어.”
의도를 알 수 없는 소리에 나는 멍하니 율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깨달아놓고 모른 척 하는 것일까. 녀석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흔들린다.
그것이 즐거운 듯 녀석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우스운 일이지 않아? 좋은 의도로 발명한 물건들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다는 게. 그런데 후세의 사람들이 욕하는 건 그 물건으로 사람들을 죽이는데 사용하기로 한 자가 아니라 그것을 발명한 자들이야. 왜 그것을 사람에게 쓴 자들의 광기는 모른 척 하는 걸까?”
자신이 준 캐릭터로 충분히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에게 죄가 있는 거지,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
율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개소리 마!!”
한순간 흔들렸지만 일갈로 녀석의 말을 끊어냈다.
확실히 그가 말한 위인들은 지금도 불명예스럽게 기억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과 율은 명백 다르다.
“너는 이렇게 될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캐릭터라는 검을 플레이어들에게 쥐어줬지! 완전한 미필적 고의잖아!!”
“뭐, 그렇긴 하겠네.”
이 자식은 부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뭐 어때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 다시 한 번 분노가 치솟아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억!!
“그러니까 빈약하다니까. 그렇게 때리면 네 손만 아플 거다. 아니, 아프진 않으려나? 지금 분노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돌아가고 있지?”
그러나 율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던 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분명 때리고 있는 건 난데 오히려 내 주먹이 뻐근해지고 정신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헛소리 작작 좀 안 할래?!”
“진정해. 그렇게 성내며 진 빼봤자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고, 죽인 자는 잡히지도 않아.”
대체 이놈은 정신세계가 어떻게 되었기에 이다지도 뻔뻔하단 말인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으로 분노를 드러내건, 이 녀석에겐 단 한 치의 반성은커녕 변심조차 없을 것이다. 드넓은 바다에 조약돌을 던져봤자 파문이 일기는커녕 파도에 먹혀 사라지는 것처럼.
이건 분명 그런 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에 이놈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급한 불을 먼저 꺼야 한다.
“……그놈 어디 있어?”
“누구?”
“모른 척 하지 마! 방금 그 암살자를 보낸 플레이어인 거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아아, 그놈? 물론 알고 있지. 알기만 할까?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
자랑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던 율은 어느 순간 고개를 좌로 기울이며 물었다.
“근데 왜 내가 왜 가르쳐줘야 해?”
“이 개자식이……!!”
“너희들이 뭘 하든 난 관여 안 해. 난 그냥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게임판 주변만 정리해줄 뿐이야. 찾아서 족치고 싶은 놈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는 건 네가 해야 할 일이지.”
꾸욱……!!
녀석의 멱살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진정해라. 아무리 분노를 쏟아내 봤자 이놈은 끄떡도 안 한다는 걸 이해했잖아. 다른 방법을 찾는 거다.
“……좋아. 그럼 네가 바라던 대로 해주지. 배진환 씨의 죽음과 거기에 얽힌 사정을 세상에 알려주겠어! 방송이든 신문이든 뭐든 이용해서 네 존재와 이 빌어먹을 게임을 까발리겠다고!”
나로선 그리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이 게임과 율의 존재를 전국민이 알게 되면 무슨 파란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게임에 사망자가 나온 이상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이 사태를 알아버린 자로서 뭐라도 해야 했다.
“오. 그거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불을 지르듯 판을 크게 벌리려는 내 의도를 파악한 건지 율이 감탄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시체가 없는데 어떻게 알릴 거지?”
“……!?”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없다.
분명 뒤에 있던 배진환의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율의 멱살을 놓고 양손과 옷을 살폈다.
분명 시체를 안을 때 묻었던 피마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혈향과 싸늘하게 식어가는 체온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뭐야, 이 녀석!? 무슨 짓을 한 거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내가 경악할 때, 율의 말이 이어졌다.
“난 말이야. 즐겁게 게임을 관전 중에 옆에서 훈수를 두며 흐름을 방해하는 녀석들이 정말 싫어.”
이 녀석은 또 무슨 소릴 하는 걸까.
과부화 된 뇌로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고 율을 돌아보았다.
“TV뉴스나 신문 같은 언론도,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억제력도, 갑자기 옆에서 끼어들어서 게임판을 어지럽히는 건 싫거든.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거야. 시체 처리하려고. 게임 마스터가 시체 청소부라니, 웃기지? 그런데 이번엔 불곰파처럼 시체를 대신 처리해줄 녀석들도 없잖아. 귀찮지만 직접 나설 수밖에.”
마치 게임 보드판 위에 올라오려 하는 고양이를 사전에 치운다는 식으로 말하며 그는 미소 지었다.
“혹여 너희들이 방송국을 무력으로 점령해서 대국민 방송으로 진실을 떠들어도 세상엔 단 한 치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보장할게.”
“…….”
미친 새끼다.
살면서 지금까지 다양한 미친 새끼를 봤지만 이놈이 정말 압도적으로 미친놈이다.
“……아무 일도 없다고?”
“응.”
“사람을 죽여도? 그 행위에 대한 디메리트가 없다는 거야?”
“물론. 설령 사람들이 수천 명이 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유명 아이돌 가수를 죽인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하루만 지나면 기억 자체가 왜곡되고, 영상 기록물도 사리질 거야.”
씨익, 하고 입꼬리를 올리는 율의 순수한 표정이 순간 악마와 같게 비춰졌다.
“이 게임 마스터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게임을 즐기면 돼.”
“…….”
나는 아무 말 없이 근처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집어 들었다.
암살자가 나에게 투척했던 단검. 그 이전엔 배진환의 뒷목을 꿰뚫었던 그것도 피 한 방울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의 손잡이를 잡고 몇 번 휘둘러본 나는 그대로 율을 향해 휘둘렀다.
덥썩!
그러나 단검의 끝이 율의 목을 자르기 전에 튀어나온 그의 손에 내 손목을 잡아챘다.
도저히 율을 죽이지 않고선 이 끔찍한 상황이 끝날 거 같지가 않다. 그런데 죽일 방도가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넌 대체 인간을 뭘로 보는 거야?”
“우주 최고의 멸종 위기종 보호동물. 그래서 자꾸만 괴롭히고 싶어지지.”
이죽대는 녀석의 말에 분노가 강해졌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단검의 끝은 녀석의 목과 맞닿기 직전에 단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다.
율은 애쓴다는 듯 혀를 차더니 말하였다.
“그동안 네 심정을 헤아려 주어서 얌전히 맞아주었지만, 이 이상의 게임 마스터를 향한 공격은 제재 대상이다만? 죽을 수도 있어.”
“죽여보든가.”
이미 이성을 잃기 직전인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송곳니를 보이며 낮게 으르렁대는 내 모습은 레반이나 레테라와는 다른 형태의 짐승을 닮아 이었다.
푸욱!!!
다음 순간, 붙잡혔던 내 손목이 자유로워지며 단숨에 내질렀다.
칼이 살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가 선명히 몸 안으로 전해지며 뇌리까지 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단검을 내질렀던 내 손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사라진 단검은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꿈이나 환각 따위가 아니다.
가슴을 파고 든 칼날이 갈비뼈를 끊고 심장을 관통한 감각이 소름 돋을 만큼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단검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율을 바라보았다.
“원하시는 대로.”
그놈은 끝까지 장난치는 듯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