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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73화 (73/173)

〈 73화 〉 첫 이벤트 ­ 2

* * *

컨디션 회복에는 8시간 이상의 수면만 한 게 없다.

무작정 8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게 아니라 렘수면 주기에 맞춰 주는 게 좋다.

자기 전에 스트레칭과 따듯한 우유 한 잔이 있다면 더욱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거다. 피곤할 때면 항상 사용하는 방법이다.

홍련마을에 갔다 온 피로를 풀기 위해 나는 여느 때처럼 긴 숙면을 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지 못했다.

내가 일어나는 타이밍을 알고 있었기라도 한 듯 울리는 휴대폰 알림음 때문이었다.

[첫 이벤트 공지 알림 From. 위드 소프트웨어.]

“뭐, 시팔?”

아침부터 쌍욕이 튀어나오기에 충분할 만큼 그 회사의 이름은 이제 내 안에서 최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사장부터가 정상이 아니니까.

그런 위드 소프트웨어의 공지라고?

제목부터가 불길함을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자였다. 그렇다고 확인 안 할 수도 없었기에 그것을 누르며 들어가 보았다.

공지라고 했건만 정작 별 다른 내용은 없었다.

대신 어느 동영상 사이트의 링크 주소만 떡 하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율 이놈이 이번엔 꾸미는 건가 생각하며 그것을 눌러보았다.

휴대폰 화면이 동영상 사이트로 넘어가더니, 실시간 스트리밍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엔 59이라는 숫자 적혀 있었고, 그것은 초마다 점차 하나씩 숫자를 줄여갔다. 방송 시간 카운트다운이 분명했다.

화면 아래에는 ‘SoR 시즌2 첫 이벤트 개발자 코멘트’라는 방송 제목이 적혀 있었으며, 그 아래로는 ‘위드 소프트웨어 공식채널’이라는 채널 이름이 있었다.

위드 소프트웨어의 공식 채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스트리밍 화면 옆에는 채팅창이 있었지만, 그것은 현재 막혀 있었다.

유저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지 않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방송을 키자마자 쏟아져 나올 각종 쌍욕들을 예방하기 위해서일까.

채팅창이 막혀 있는 대신 그 위로는 현재 스트리밍 시청자 숫자가 나와 있었다.

시청자 26명.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가며 카운트가 20초를 남길 시점에선 30명을 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나와 같은 플레이어라는 걸 확신했다. 플레이어만이 이곳에 초대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57명에 도달할 것 같지 않았다. 방송을 보지 않으려는 플레이어도 있는 걸까?

방송 시작 카운트가 10초를 남길 즈음, 나보다는 다른 녀석들과 같이 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그들을 불렀다.

“레반! 레테라!”

그들은 내가 외치고 불과 2초를 지나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냈다.

레테라는 요리를 하고 있었는지 앞치마를 두른 채 방문을 열고 나타났고, 레반은 마당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는지 웃통을 벗고, 한 손에는 대검을 짊어진 채로 창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오라버니!?”

“형님! 부르셨습니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온 그들에게 나는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위드 소프트웨어……. 율 그 녀석의 공지 방송이야.”

율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들의 표정은 보란 듯이 썩어 들어갔다.

하긴 그 놈과 관련되어서 좋았던 기억이 단 하나도 없긴 하지.

나는 방송 화면을 보기 편하도록 전체화면으로 바꿨다.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온 레반, 레테라와 함께 그것을 바라보았다.

곧 카운트다운이 끝난다.

3…… 2…… 1…….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고 검게 암전되었던 화면이 어느새 밝게 변했다.

화면 속에서 처음으로 비춰진 것은 우리들 눈에 익은 장소였다.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거라고 해도 믿을 삭막한 사장실. 그 중앙에 사장용으로 쓰이는 검은 의자가 등을 보이며 세워져 있었다.

그 의자가 돌연 빙글 돌아갔다.

고급스러운 그 의자에 앉아 있는 건 후줄근한 검은 츄리닝을 입은 남자였다.

­Hey~! 안녕하신가, 제군들. 나 기억하지? 너희들이 좋아하는 사장님, 율이야.

꼴에 방송에 나온다고 평소보다 폼을 잡는 게 보였다.

물론 우리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살벌했다.

“좋아하긴 개뿔이.”

“정말로 죽이고 싶은 녀석이군.”

“죽이는 방법만 알아낸다면 바로 그냥……!”

특히 율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해있는 레반과 레테라는 살기를 숨기지도 않았다.

괜히 옆에 있는 나까지 오싹해지는 기분이지만,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

우리가 그런 반응을 보고 있을 때 화면 안의 율은 다 안다는 듯이 턱을 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채팅창은 막아 놨지만 난 너희들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려. 반응이 참 다양하네. 보자마자 질색하는 녀석, 죽이겠다고 벼르는 녀석, 괴물 녀석이라며 벌벌 떠는 녀석, 내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듯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녀석. ……근데 섹시하다고 하는 녀석은 뭐야? 난 남자한테 흥미 없거든? 꺼져.

저 말이 진짜인지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율이 보여준 초월적인 면모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건 진짜일 것이다.

……그럼 저 미친놈한테 섹시하다며 호감을 드러낸 남자가 있다는 소리인데? 제정신인가?

세상엔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고 느끼며 나는 이어지는 율의 말에 집중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튜토리얼과 게임 개요를 알려준 지 오늘로 열흘째야. 게임 캐릭터가 이쪽 세계에 건너온 지도 어느덧 20일이 흐른 셈이지. 시간 참 빠르지? 아니면 몇 놈에겐 느렸나? 아무튼, 그동안 너희는 어떤 행보를 보였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율은 곧 손을 내저었다. 예의상 물어본 거니 대답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처럼.

­물론 나야 다 지켜보았지. 다른 플레이어를 찾겠다면서 산골 마을까지 가는 녀석, 산속 깊은 곳에 은둔하는 녀석, 겁이 질려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녀석, 캐릭터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비참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는 녀석, 돈이 될만한 쪽으로 이용하려고 머리 굴리는 녀석, 자기 캐릭터에 푹 빠져 헤벌레 하고 있는 녀석, 도대체 이 게임에선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 건지 하나하나 확인해보고 있는 녀석. 사람마다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 그것을 하나하나 지켜보는 매력은 너희들은 이해 못할 거야.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관음증 환자야.

이 녀석은 왜 이벤트 공지라며 방송을 켜놓고 딴 얘기만 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혹시 말에 숨겨진 힌트라는 게 있는 이벤트가 아닌가 해서 그의 말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들으며 기억했다.

­그렇게 귀담아 들어도 힌트 같은 거 없어. 그냥 공지 시작 전 가벼운 잡담이니까.

이 새끼, 분명 나한테 말한 거다.

­뭐, 지루해하는 녀석도 많으니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

어른이 본다면 예의 없다고 욕할 만큼 지 좋을 대로 의자에 앉아있던 율이 자세를 고쳤다.

진지한 자세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작은 동작으로 청중의 의식을 끌어 모으는 쇼맨쉽에 불과하다.

­너희들은 이제껏 존재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게임에 참가했다. 하지만 새로운 체험을 하더라도 그게 반복되면 정형화되고 쉽게 질려버리거든. 그래선 안 되겠지. 컨텐츠가 없어서 지루해하는 플레이어들을 구제하는 것도 게임 마스터의 역할 아니겠어?

웃기는 궤변이나 하고 자빠졌다.

SoR를 업데이트나 이벤트 한 번 없이 7년간 방치한 놈이 누구야?

SoR의 개발자이자 운영자인 녀석은 태연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혹시 일상이 지루해졌나?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막 억눌러왔던 걸 발산하고 싶지 않아? 그런 녀석을 들을 위해 괜찮은 심심풀이 거리를 준비했다.

그 말과 함께 화면 아래에서 자막이 떠올랐다.

특정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는 글. 그것은 놀랍게도 내가 아는 장소였다.

­10월 16일 오전 10시. 신월시로 와라.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다. 그저 신월시 영역에 들어와 있다면 어떤 플레이어든 참가 의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벤트에 참가하게 된다. 혹여 신월시에 거주하는데 이벤트에 참가하기 싫은 녀석들은 그날 오전 10시에 맞춰 잠시 나가 있으면 돼. 몰랐다거나 몇 초 늦어버렸다는 변명은 안 통하니까 주의하라고.

나는 긴장했다.

이 녀석, 무슨 생각이지?

도시 하나를 아우르는 영역이라고 하나 플레이어를 한 장소에 끌어다 모으는 짓이었다.

다수의 플레이어를 모아서 뭘 생각인 거야?

상대가 상대인 만큼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벤트의 내용이 뭐냐고?

이쪽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화면 속의 율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이번엔 또 어떤 정신 나간 소리가 튀어나올까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직접 와서 확인해.

“…….”

­그럼 공지는 이걸로 끝. 모두 즐거운 게임 하라고~.

그걸로 끝이었다.

율은 정말로 자기 할 말만 마치고 그대로 방송을 종료해버렸다.

까맣게 암전되어 더 이상 변화가 없는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들 사이에선 침묵이 감돌았다.

덥썩.

나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딴 게 뭔 공지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분노를 담아 휴대폰을 내던졌다. 벽이 아니라 이불 위에 던진 것이 내 최소한의 이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휴대폰을 집어던져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벤트 내용이 궁금하면 직접 와서 확인해 보라니, 세상에 어떤 게임 이벤트를 이딴 식으로 한단 말인가?

“어떡하죠, 오라버니?”

“참가하실 겁니까?”

“……잠깐 기다려 봐. 생각 좀 해보자.”

휴대폰을 내던지고 씩씩 거리던 나는 두 사람의 물음에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아 생각에 집중했다.

어떡할까?

가기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안 가기엔 찜찜하다.

메리트와 디메리트가 불분명하니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율이 하는 짓이니까 뭔가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꾸미고 있다는 건 분명한데…….

“흐음…….”

고민은 깊어졌지만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불 위에 던져둔 휴대폰에서 암전되었던 화면이 빛을 낸 것은.

[띠리링]

알림음 소리.

갑자기 멈췄던 방송이 진행 된다 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문자가 온 것이다.

뭐지? 혹시 공지가 더 있는 건가하며 휴대폰을 집고 문자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오서연 씨?”

문자를 보낸 것은 오서연 씨였다.

율의 이름뿐인 비서.

평범한 인간이지만, 율의 수상하고도 위험한 행보를 보며 그를 감시하기 위해 비서로 남아 있기로 결심한 그녀였다.

나와 연락처를 교환은 오서연 씨는 율이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는 낌새가 보이면 나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그런 그녀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

바로 그것을 확인한 난 일순 경직되었다.

짧으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그녀의 글 때문이었다.

「신월시에 오지 마!!」

얼마나 다급하게 보냈는데 평소에 하던 경어마저 생략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거기에 뭐가 있는지 문자로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내려는 그때,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답장이 왔다.

하지만 그건 글로 된 답장이 아니었다.

전송된 건 단 한 장의 사진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율의 사진이었다.

마치 셀카 모드로 찍은 것처럼 화면에 가까이 다가온 율은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브이(V)를 날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편으로 밧줄에 꽁꽁 묶여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오서연 씨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사냥감 매달아 놓듯 묶어놨군요.”

“설마 저대로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옆에서 함께 사진을 들여다보며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는 두 사람의 말은 무시했다.

그보다는 오서연 씨를 묶어놓은 밧줄에 붙은 웬 종이 한 장에 시선이 갔다.

아마도 율이 붙인 듯한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스포일러 금지」

뭔지 몰라도 이벤트의 내용을 내게 말하려 했기 때문일까.

오서연 씨는 율에게 제압당해 벌을 받듯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일단 그녀가 위험한 건 아닐 것이다.

사진 속에 찍힌 그녀의 표정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있는 것이라면 우려와 걱정.

제발 그곳에 가면 안 된다는 듯, 사진을 통해서 우리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자.”

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것 때문에 신월시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저렇게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일이 그곳에서 일어난다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또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마저 휘말려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서 뭐가 일어나는 건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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