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95화 (95/173)

〈 95화 〉 이벤트의 뒷풀이 ­ 1

* * *

삑.

버튼 하나로 화면이 암전된다.

율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는 깍지 낀 손을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웃음이 가득한 그의 얼굴은 아주 만족스럽게 보였다.

“아~ 재밌었다.”

마치 한편의 재미있는 영화라도 본 듯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때 그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것은 플라스틱 찻판이었다.

빠악!!

“뭐 하는 짓이야?”

감정이 실린 일격이었지만 율의 머리카락만 흩날릴 뿐 정작 머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전혀 데미지가 없어 보이는 율은 감히 사장의 머리를 후려치는 악독한 비서를 돌아보았다.

잔뜩 흥분한 채 절반이 꺾여 덜렁거리는 찻판을 들고 있는 오서연이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거기서 TV를 꺼요!?신요현 일행은 어떻게 된 거냐고요!?”

이벤트의 막바지.

가짜 신월시에 남아 있는 건 신요현의 파티만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율과 오서연은 TV를 통해 계속 그들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가오는 흑룡의 공격에서 아슬아슬하게 티켓을 붙잡은 그들이었지만, 그 순간 흑룡이 일으킨 폭발의 빛이 모든 걸 집어삼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망할 사장은 거기에서 만족하며 TV를 꺼버린 것이다.

아직 그들이 무사히 탈출했는지 보지 못했는데!

마치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부모님이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TV를 꺼버린 듯한 기분이다.

분노와 염려로 복잡한 표정을 짓는 오서연의 표정이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싱글벙글 미소를 지우지 않던 율이 말하였다.

“어차피 못 봐. 방금 그걸로 저쪽 신월시에 남은 인원은 단 한 명도 없게 됐거든. 비칠 대상이 없으면 이 TV에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그 말을 그들이 탈출했다는 거예요?”

“글쎄?”

율은 명확한 답을 피했다.

물론 그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오서연과 함께 이벤트를 관람하기 위해서 TV를 꺼냈을 뿐이지,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플레이어들의 동태를 살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순순히 알려줄 정도로 그는 성격이 좋지 못했다.

상대가 간절히 알고 싶은 게 있다면 전부 밝히지 않고 살살 뿌려주는 게 묘미이다.

“아무도 없다는 건 이벤트 참가자가 없다는 뜻. 모두 죽었다는 의미도 포함돼.”

“뭐라고요?”

“아! 어쩌면 셋 다 무사히 탈출했을 수 있지. 아니면 누군가 한발 늦어져서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누가 죽었을까?”

바닥에서 율은 들뜬 발걸음으로 사장용 의자에 다가가더니 폴짝 뛰어서 앉았다.

그대로 몸을 눕힌 율의 발끝은 리듬을 타듯 까닥거렸다.

“넌 보지 못하지만, 마지막에 레벨 업 알림 메시지가 떴었거든. 아마 샌드웜을 마지막으로 경험치 100%를 달성했나 보지. 그런데 왜 하나만 떴을까? 혹시 캐릭터 둘 중 하나는 살아남지 못한 게 아닐까? 아니면 한 사람은 레벨 업 하기엔 경험치가 부족해서 단순히 뜨지 않은 걸까? 그리고 레벨 업 한 캐릭터는 살아 있을까? 혹시 레벨 업 한 직후 죽어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반전으로 둘 다 죽어버린 건 아닐까? 그 메시지는 떠올랐지만 과연 플레이어는 보았을까? 어쩌면 메시지를 확인 못하는 상태에서 덧없이 레벨 업 알림만이 울린 게 아닐까? 최악의 경우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게 아닐까? 아니지. 진짜 최악이라면 전부 죽고 홀로 살아남은 경우가 아니겠어? 남겨진 녀석은 어떤 기분일까? 네 의견은 어때? 솔직하고 기탄없이 말해봐.”

“솔직하고 기탄 하나 없이 말해드리죠! 당신 진짜 짜증 나요!!”

세상에 이 정도로 사람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또 있을까.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경우를 장난치듯 늘어놓으며 모두 일일이 상상하게 만들다니.

차라리 저주를 퍼붓는 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겁이 많아 늘 한발 물러나 있던 오서연이 이렇게 흥분하며 율에게 직설적인 말을 내뱉겠는가.

“정 궁금하면 직접 가보지 그래? 녀석들 집은 알고 있지? 이벤트에서 탈출하면 이벤트에 진입했을 시기에 있던 그 자리에 돌아오게 돼. 신월시에서 성월시까지라면 택시 타고 1시간 정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네가 갔을 즈음 돌아와 있을 거야.”

“가요! 가고말고요!”

오서연은 망설일 것도 없다는 듯 바로 자기 책상으로 달려가 가방을 쌌다.

그런 그녀에게 율이 말한다.

“근데 아직 퇴근 시간 안 됐다만?”

“병가 낼게요!”

“병가라……. 사유는?”

“상사에 의한 고혈압!!”

“인정한다. 잘 갔다 와.”

율은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고, 오서연은 성큼 걸어 나가더니 신경질적으로 사장실 문을 닫았다.

그 모습에 율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기 죽을지 모를 팔자에 근처에서 누가 죽는 꼴은 못 보겠다는 멍청한 놈의 이상. 현실적으로 보자면 유치하고 핸디캡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 하지만 거기엔 단점만 있는 건 아니지. 공감하고 응원하며 아군이 되어주는 사람이 생기거든.”

그건 요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위급할 때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달아나라는 자와 신의를 지키고자 하는 자.

신뢰도의 차원이 다르다.

신요현은 스스로 어린애의 생떼 같다며 자조하지만, 그걸 실현하려는 그의 의지와 행동은 착실하게 아군을 만들고 있었다.

율에게 화를 내며 신요현을 만나러 나간 오서연도 그중 하나였다.

요현이 겪은 고난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지켜봐 온 그녀로서는 감정적으로 내버려 두기 힘든 모양이다.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니까.”

모 만화에 나오는 사신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율은 입꼬리를 올렸다.

즐거운 그의 기분을 대변하듯 콧노래를 흘리던 그는 어느 순간 노래를 멈추고 감았던 눈을 떴다.

“오호.”

그의 눈은 천장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건 명백히 다른 장소에 있는 무언가였다.

제법 빨리 움직인다, 율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매를 좁혔다.

“그럼 난 멍청이 비서가 없는 동안 손님맞이할 준비나 해볼까?”

율이 인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들은 변화하길 멈추지 않는다.

이번 이벤트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즐거움이 움직이고 있었다.

***

노인을 잡아먹는 늑대가 그려진 어느 간판 아래.

가벼운 외출복 복장을 한 여성이 테라스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직 여성이라기보단 소녀에 가까운 외모.

꾸미는 걸 싫어하는 건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지만, 이목구비가 잘 잡혀있다 보니 별로 티가 나지 않고 묘한 매력을 풍겼다.

그러나 남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듯한 성격이 꾹 다문 입에서부터 엿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연성화.

현재 학교를 땡땡이치고 작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여긴 자신의 캐릭터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율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말했던 이벤트.

연성화는 그것에 참가하지 않고 상태만 지켜보려 캐릭터만 보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월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확인하고 교외에 있는 이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캐릭터의 소식은 없었다.

그대로 소식이 끊긴 것이다.

미리 건네주었던 휴대폰으로 몇 번이나 연락을 시도해보았지만, 계속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참다못해 신월시에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각은 인정 못 한다는 걸까.

율이 제시한 시간을 넘기면 신월시에 있어도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찾아다녔지만,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른 뾰족한 수단이 없었기에 연성화는 약속했던 카페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점심시간을 넘어가도록 소식이 없는 휴대폰만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드륵. 털썩.

그때, 누군가 연성화의 건너편 의자를 꺼내며 앉았다.

또 헌팅인 걸까. 조금 전에도 그런 남자가 있긴 했다.

한숨을 쉰 연성화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테이블 건너편을 노려보려다가, 이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헌팅남이 아니라 그녀의 캐릭터가 앉아 있던 것이다.

“하티!”

“저 왔어요~!”

이벤트에 의해 사라졌었던 하티가 손을 흔들며 연성화를 향해 밝게 미소 지었다.

잠깐 못 본 사이에 변한 하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신성한 느낌의 사제복 곳곳이 찢기고, 흙먼지에 더러워졌으며, 피부와 머리카락은 살짝 그을리기까지 했다.

코스프레라고 변명하고 다녔던 하티의 옷차림이 온화한 성직자에서 전쟁터에서 굴러먹다 온 성직자 쪽으로 바뀌어 있었다.

명백히 전투를 치른 흔적이다.

비전투 직업이지만 신체 자체는 초인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하티가 이 정도가 될 정도면 역시 심상치 않은 이벤트였으리라.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아무 문제없다는 듯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에 연성화는 안도했다.

무슨 일이 있었든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크나큰 안도감이 들었다.

약간 부드러워진 표정의 연성화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하티의 귀환을 반겼다.

“또 헌팅하려는 남자인 줄 알았잖아. 아까도 몇 놈 그러다가 지금은 곤죽이 되어서 골목길에 널브러져 있는데.”

“아. 아까 골목길로 들어가던 구급차가 그거였나요? 괘씸하게 주인님을 헌팅하려 하다니…… 당장 가서 숨통을 끊어버릴까요?”

실실 웃고 있던 하티의 표정이 돌변했다.

신성모독 당한 광신도의 표정이 저러지 않을까 싶은 연성화는 그녀를 말렸다.

“하지 마. 넌 어떻게 된 게 저 녀석보다 융통성 있고 남들과 잘 어울리면서 왜 나와 관련된 일이면 그러니?”

연성화의 손가락이 바로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녀들의 테이블과 이웃한 테이블. 거기에서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연성화와 등을 맞대는 형태로 앉아 있는 그는 하티처럼 그녀의 캐릭터였다.

연성화는 총 두 명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조금 전에 헌팅을 걸어오던 남자들을 다져놓은 뒤 골목길에 버려둔 것도 이 남자다.

후릅…….

남자는 한 손으로 커피를 마시며 다른 한 손으로는 두꺼운 책을 넘겼다.

동료라고 할 수 있는 하티가 귀환했음에도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단 한 번을 돌아보지 않으니 하티의 시점에서 보이는 건 그의 회갈색 머리카락이 전부였다.

그런 태도에 익숙한 건지 하티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말했다.

“그야 주인님이 소중하니까 그렇죠. 그래도 우리 수호기사님이 주인님을 잘 지켜주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마법사다.”

“그럼 수호마법사라고 부르죠, 뭐.”

남자의 짧은 대꾸에 하티는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어?”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연성화는 자세를 고치며 본론을 꺼냈다.

하티는 대답하기에 앞서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연성화에게 건넸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거 같네요. 완전히 단절된 세상으로 날아간 건지 그동안 연락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휴대폰에 찍혀 있는 건 신월시와 똑 닮은 도시와 그것을 파괴하는 몬스터 집단이었다.

그것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연성화에게 하티가 설명을 이어갔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신월시와 똑같이 생긴 세상으로 이동 했었어요. 처음엔 이동되었다는 사실마저 인지 못 할 정도로 감쪽같이 옮겨졌죠. 그 뒤 하늘에서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렸어요. 몬스터들의 출현은 웨이브 형식으로, 1시간 간격마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나요.”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야…….”

좋지 않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 정도로 과격인 일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시 안에서 수많은 몬스터와 벌이는 서바이벌이라니.

다양한 몬스터의 종류만큼 수많은 변수가 도사릴 텐데, 자신이 그곳에 있었어도 무사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지경이다.

“아마 경험치 획득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 같던데, 웨이브가 진행될수록 사태가 더욱 험해져서 경험치 따윈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살아남기에 급급해져요.”

“넌 거기에서 어떻게 돌아온 거야?”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일정 확률로 탈출 티켓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처음엔 아무런 갈피도 잡지 못해서 도움을 좀 받았어요. 아! 이 사람들이에요.”

사진을 넘기면서 하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연성화는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인물들이 찍힌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이 사람들은…….”

“저와 협력했던 사람들이에요. 계속 지켜본 바로는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인 거 같아서 제가 협력을 요청했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 아시나요? 주인님을 알고 있던데요.”

“알다마다. 전에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야. 플레이어인가 아닌가 확인해보기 위해 갔었는데, 역시 플레이어였구나…….”

연성화가 말한 모임이 뭔지 기억난 하티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이제야 좀 앞뒤가 맞춰졌다.

“아. 그때였나요? 확실히 저희를 대동하고 가면 이쪽이 플레이어라는 걸 들킬 우려가 있다며 먼 곳에서 대기시켰죠.”

“그래. 그리고 근처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며 나에게 돌아오라며 문자를 보냈었지. 덕분에 확신은 얻지 못한 채로 모임을 나왔었고.”

한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던 연성화는 사진에 찍힌 세 사람 중 하나, 신요현을 콕 집으며 물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때, 이 남자는?”

다른 두 남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캐릭터. 플레이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충실한 하인에서 잔혹한 괴물까지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주인인 신요현에 대한 판단이 중요했다.

연정화의 손가락을 따라 신요현의 모습을 바라보던 하티는 곰곰이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그냥 바보예요.”

“……뭐?”

생각지도 못한 표현에 연성화가 당황했지만, 곧 작은 미소와 함께 이어지는 하티의 말에 집중했다.

“신뢰할 수 있는 바보라고 할까요.”

하티는 신요현과 만난 뒤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함께 협력해서 몬스터 웨이브를 방어해낸 일, 헬데트 무리에게 쫓기다 숨은 지하에서 정보를 공유한 일, 레이드 몬스터 암글라드를 사냥한 일, 한번 봐주었던 플레이어가 뒤통수치고 달아난 일, 숨통이 조여 오는 상황에서 하티에게 중요한 탈출 티켓을 넘겨준 일.

그리고 사대룡 중 하나인 흑룡의 출현과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발악까지.

“그 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전 분명 살아남았을 거라 생각해요.”

“…….”

연정화의 반응이 이상했다.

처음엔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그녀는 도중부터 묘한 기색을 띠더니 마지막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주인님?”

그런 연성화의 모습을 이상하게 느낀 하티가 그녀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계속 생각에 잠겨 있는 연성화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녀의 뒤편에서 반응이 나왔다.

터업.

“닮았군요.”

그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마치 그도 하티의 이야기를 듣다가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닮기만 한 걸 거야.”

그의 말에 드디어 연성화가 입을 열었다.

복잡함을 넘어 심란하기까지 한 모습의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

띵동~!

위드 소프트웨어가 있는 무재시에서 성월시까지 다이렉트로 달려온 오서연은 요현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가 요현의 집 주소를 알고 있는 건 당연했다.

율의 심부름이긴 했지만 그녀가 직접 소개해주지 않았던가.

“신요현 씨! 안에 계세요!?”

정문에서 큰소리로 그를 불러본다.

안에서 반응은 없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까? 아니면 돌아왔지만 밖으로 나올 만한 몸 상태가 아닌 것일까?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정문 쪽은 잠겨있지 않았다.

‘근데 이 집 귀신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끼기긱 거리는 철문의 녹슨 소리가 귀신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면서, 오서연은 이곳이 원래 유명한 심령 스팟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요현은 문제없이 살고 있는 듯하지만, 주변에 귀신급 비정상적인 존재를 둔 그와 가녀린 회사원인 그녀가 같을 리가 없었다.

어쩐지 집 안으로부터 누군가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 그냥 돌아갈까……?’

아까는 흥분한 나머지 율 앞에서 대범하게 굴었지만, 사실 그녀는 겁이 많았다.

어차피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집인데 그냥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라며 정원 중간쯤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오서연 씨…….”

화들짝!!

“시, 신요현 씨?!”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간 떨어질 듯 크게 놀라며 오서연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뒤에 나타난 인물들의 모습을 본 그녀는 더욱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몸 여기저기가 해지고 그을린 신요현이 레반과 레테라에게 양쪽으로 부축받은 채 정원으로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꼴은 엉망이지만 다행히도 중상은 아닌 것 같았다.

대신 10일 밤낮을 야근한 회사원 같은 피로가 신요현의 두 눈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율, 그 새끼한테 전해주세요…….”

신요현을 부축하는 레반과 레테라도 피로가 극에 달했는지 걸음걸이가 영 불안정하다.

그들은 열린 정문을 넘어 정원으로 들어왔고, 요현의 말이 이어진다.

“한 번만 더 이딴 이벤트 만들면…… 본사 건물에 불 질러버리려 간다고…….”

털썩!!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함께 바닥 위에 쓰러졌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에 힘이 풀린 것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