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3화 (103/173)

〈 103화 〉 나의 스테이터스 ­ 1

* * *

인기 없는 동네 야산이 하룻밤만의 기괴한 변모를 일으켜 단숨에 미스터리 매니아의 인기 스팟이 된 지 이틀째 되는 날.

주머니가 두툼해지긴 했지만, 아침 밥상은 자취생활에 비하면 조금 나아진 정도로 소박했다.

우리 아버지가 말하길, 돈이란 힘이란 같다고 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남부러울 것 없어지지만, 마구 휘두르고 다녔다간 뒷감당이 어려워지고 괜히 갈등 빚는 일만 늘어난다고.

보너스로 받은 월급을 친구들이랑 술 처먹는 데 썼다가 어머니에게 얻어터진 직후에 하던 말이라서 영 모양새는 안 살긴 하지만, 그 의미만큼은 공감했다.

벌써부터 씀씀이가 커졌다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나 돈 많아졌다고 주변에 홍보하는 꼴도 아니고, 소지금에 맞게 생활양식을 억지로 바꿈으로써 허세 가득한 만족을 얻을 욕심도 없다.

아직은 계란프라이와 동네 마트에서 파는 스팸, 하얀 쌀밥만으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평소와 다를 거 없는 만찬을 굳이 식사를 할 필요는 없던 녀석들과 나누기 위해 탁자에 둘러앉을 때였다.

내가 만들어준 계란프라이를 하늘이 내린 성물인 것마냥 우러러보며 먹지를 못하고 있는 두 바보 녀석을 바라보다 문뜩 입을 열었다.

“운동을 좀 해볼까 해.”

““네?””

레반과 레테라는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건강관리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봤자 게임 폐인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까. 평균보다 신체가 둔하거든. 평소엔 신경 안 쓰는 일이었는데, 지난번 이벤트를 겪고 몸이 둔해빠졌다는 걸 실감했어.”

나는 노릇노릇하게 익은 스팸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내가 운동한다고 해서 너희들의 미친 스펙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걸림돌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해.

“형님은 걸림돌이 아닙니다.”

“저희만 있었다면 분명 넘지 못했을 위험도 있었어요.”

두 사람이 불만인 듯 얼굴을 찡그리며 항의했다.

철부지 어린애 같은 반응에 무심코 웃음을 흘리며 먹기 좋게 잘라낸 스팸을 하얀 밥과 함께 입 안으로 퍼 옮긴다.

짠맛과 단맛의 조합, 식감, 향.

역시 이게 최고다.

씹던 음식물을 목 너머로 넘기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마운데, 결국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 싸우게 될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뻔히 보이는 내 문제점을 무시하고 지나갈 순 없어.”

이번 이벤트에서 레반이나 레테라나 체력 소모가 심했다. 그 때문에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을 견뎌야 했던가.

점차 강한 몬스터들이 연달아 쏟아져 나오는 환경상 체력 소모는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만약 실제 게임이었다면, 그리고 그 장소에 그들만 있었다면 흐름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 훨씬 수월하게 흘러갔겠지.

그러지 못한 이유는 내 존재 때문이다.

치열한 전투 도중에도 내 쪽을 신경 쓰며, 위급한 경우엔 나를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기에 쓸데없는 체력 소모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 밖에도 너희들의 전투가 현실에선 엄청 빠르다는 걸 실감했어. 내가 게임으로 들여다보고 있던 세계는 우리들 수준에 맞게 필터링하기라도 한 모양이야. 단 1초라도 너희들에겐 많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잖아? 만약 위급상황 때 내가 0.1초라도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너희들도 나를 지키기 한결 편해지지 않겠어?”

“그건…….”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헬데트와 처음 마주쳤을 때를 떠올려보자.

그때 달려드는 헬데트에게서 나를 지키기 위해 두 사람은 부상을 입어야 했다.

내가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선 단 0.1초의 차이라도 그들에게는 10초 이상의 시간을 벌어준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래서 운동 좀 하려고 해. 찾아야 할 플레이어는 많고, 작살내야 할 플레이어도 늘었지만, 지금으로선 큰 단서가 없어. 하지만 이벤트라는 변수가 있지.”

스팸 하나를 입안에 던져 넣고, 역할을 마친 젓가락을 손가락 위에서 빙빙 돌렸다.

밥상머리 앞에서 좋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레테라의 환상적인 펜 돌리기를 보고 난 뒤부터 손에 잡힌 길쭉한 물체를 돌리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타악.

어느 순간 그것을 멈추고, 젓가락의 끝을 두 사람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이번엔 자율참가였지만, 만약 율이 강제참가 형식의 이벤트를 만든다면 반드시 플레이어끼리 만나게 될 거야. 싸우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일어나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대비하고 싶어. 이제 알겠지?”

“그런 거였습니까.”

“확실히 그런 대비라면 나쁠 거 없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단련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해준 모양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

“혹시 두 사람이 나를 단련시켜줄 수 있겠어?”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돌변하는 것을.

뭐랄까, 학생 때 자주 읽던 해적 만화의 밀짚모자 주인공을 닮았다고 할까?

나를 향해 과하게 두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

자신의 동료를 늘리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지체할 것도 없이 탁자 위로 몸을 내밀며 내 제의를 수락했다.

“물론입니다, 형님! 저와 함께 근력을 단련하도록 하죠! 형님이 바위도 깨부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 근육돼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어요, 오라버니! 수십, 수백 개의 칼이 쏟아져도 전혀 위태롭지 않은 기량을 익히게 해드릴게요!”

뭐냐, 이 상황은.

근력파(?)과 기량파(?)의 수장들이 자신들의 유파를 익히라며 동시에 스카웃 제의를 해오고 있다.

그들의 과한 호응에 부담스러워진 내가 고개를 뒤로 빼며 말했다.

“별로 난 바위를 깨부술 생각도 없고, 쏟아지는 수백 개의 칼 앞으로 걸어갈 생각도 없어. 그냥 너희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면 된다고.”

“아닙니다, 형님! 근력이란 힘! 힘이란 그 자체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무기!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기량이란 곧 신체의 밸런스와 자유로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고자 한다면 이것만 한 게 없죠! 오라버니에게 꼭 필요한 건 이쪽이에요!”

이놈들은 날 초인으로 만들고 싶기라도 한 건가.

맨손으로 괴물들과 싸울 수 있는 이 녀석들의 영역까지 도달하려면 평생이 걸려도 부족할 것 같다만?

아무튼 자신의 권유를 방해하는 상대방을 노려보기 시작한 두 사람을 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근력도, 기량도, 단련만 한다면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둘 다 단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에게 숨겨진 무술적 재능이 있는 게 아닌 이상에 말이다.

그렇다고 하나를 고르자니 뭐가 나에게 맞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도 납득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분야를 계속 밀어붙일 게 뻔하고.

어떻게 하지?

‘……!’

영감이 떠올랐다.

처음엔 그냥 스치듯이 지나는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지금 상황에 딱 맞을지 모르겠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네.”

제법 게이머다운 발상이라 생각하며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갑작스런 행동에 레반과 레테라는 서로를 노려보는 걸 그만두고 거실에서 벗어나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메모지와 펜을 가지고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탁자 위에 메모지를 올리고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에게 메모지에 적은 내용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두 사람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이건…….”

“……스테이터스?”

내가 메모지에 적어내린 건 SoR와 같은 형식으로 나열된 스테이터스 목록이었다.

그건 레반의 스테이터스도, 레테라의 스테이터스도 아니다.

숫자가 나타나야 되는 칸을 모두 공란 남긴 완성되지 않은 스테이터스.

그 이름 칸엔 바로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 신요현 레벨: 1 직업: 플레이어 (무직) 생명력: 지구력: 체력: 근력: 기량: 지성: 신앙: 행운:

“이쪽이 너희들도 알아보기 쉽지 않겠어?”

“오라버니, 이건 대체…….”

레반과 함께 건네받은 메모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레테라가 물었다.

나는 멈췄던 식사를 이어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내 신체 능력을 측정해줘.”

“네?”

“전에 너희들의 스테이터스 보여준 적 있지? 그것처럼 내 신체 능력을 숫자로 재 달라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놀랐는지 두 사람이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일부러 후하게 측정하면 화낼 거야.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평가해서 스테이터스를 완성해줘. 그리고 근력이든 기량이든, 내가 조금 더 재능이 있는 쪽을 중점으로 단련한다. 그편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 이거면 둘 다 불만 없지?”

레반과 레테라는 나에게서 메모지로 시선을 옮겼고, 이내 서로를 바라보았다.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을 캐릭터가 측정해서 스테이터스로 표현한다는 얘기.

신박한 방법이었지만 특별히 토를 달만 한 요소는 없었다.

받아들이기로 한 건지 레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측정 방식은 어떻게 합니까?”

“그건 너희가 판단하기 쉽겠다고 생각하는 걸로 정해. 나도 성실히 임할 테니까.”

“알았습니다.”

레반과 레테라는 바로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메모지를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웃음을 흘렸다.

내 스테이터스를 만든다니, 뭔가 어린애의 장난 같으면서도 게이머의 로망이 서려 있는 작업이었다.

그들에게 냉정하게 평가해달라고 한만큼 나도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테스트를 대비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식탁에 남겨진 음식들을 싹 비웠다.

***

먹은 음식들이 소화되고, 레반과 레테라가 충분한 토론을 나눌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공터를 찾았다.

움직이기 편한 복장으로 입은 나는 정면에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들 중 레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절벽가슴과 얘기를 나눈 결과 일단 기본 스탯 중 지성, 신앙, 행운 이 세 수치는 빼기로 했습니다. 저희도 전문적으로 단련한 분야가 아니라서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습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단련하고 싶은 건 육체 쪽이니까.”

“그럼 가장 위부터 천천히 확인해보도록 할까요.”

레테라가 말을 받으며 내가 건네준 메모지를 확인했다.

가장 위에 있는 건 당연히 생명력 스탯이었다.

“생명력이란 말 그대로 생존에 직결되는 스탯이에요. 생명력의 수치가 곧 HP 수치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네요. 생명력이 늘어날수록 HP가 늘어나고, 치명적인 공격에도 잘 죽지 않게 되죠. 그리고 HP 0가 되면 죽는다. 간단하죠?”

“이걸 확인하기 위해 형님에게 상처 입힐 수는 없으니, 이것은 구두 질문으로만 측정하겠습니다.”

확실히 HP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겠다고 칼로 쑤실 수도 없으니 이건 이렇게 측정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성실히 대답하기로 하며 레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형님은 심장이 멈춘다면 몇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습니까?”

…………뭔 질문이야, 이거?

나는 황당함을 느꼈지만 레반과 레테라의 표정은 진지했다.

“진지하게 대답해주세요, 오라버니.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건 저희에게도 심각한 피해에요. 대미지가 지속적으로 들어오죠. 이걸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계산하면 오라버니의 생명력을 측정할 수 있어요.”

장난은 아닌 모양이다.

설마 죽음에 이르는 시간으로 HP양을 잴 줄 몰랐던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하면서도 예전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혈류의 흐름을 떠올려 보았다.

혈액의 흐름이 멈추면 당연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

그렇게 뇌가 대미지를 입고 점차 되돌릴 수 없게 되고,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되더라?

“으, 으음……. 일단 몇 초만에 의식을 잃고, 3~5분이 지나면 그대로 사망하지 않을까?”

“크흑……!”

고민해서 내뱉은 대답에 레반은 마치 가슴 아픈 대답을 들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테라를 돌아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역시 형님의 몸은 심각하게 연약하시군.”

“몇 초조차 의식을 유지할 수 없다니……. 적어도 10분 이상은 버텨주시면 좋았는데.”

“잠깐. 내가 연약한 거냐?

그렇게 따지면 70억 인구 전부 연약할걸?

심장이 멈췄는데도 개의치 않고 멀쩡히 돌아다닌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이미 좀비라고!

“그럼 너희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이놈들은 대체 얼마나 버티길래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레반과 레테라는 별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대략 2시간입니다.”

“전투 중이 아니라 가만히 있다는 게 전재라면 3시간은 버틸 수 있겠네요.”

“…….”

좀비가 눈앞에 있었다.

내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이 없는 동안 레테라는 메모지를 들어 빈 스테이터스 칸에 펜을 갖다 댔다.

“육체에 어떤 대미지가 들어와도 견딜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바로 생명력의 의미죠. 아무튼 오라버니의 생명력 스탯은 1이에요. 한없이 0에 가까운 일이라는 게 너무 걱정이지만요.”

거침없이 생명력 칸에 숫자 1을 표시하는 레테라의 모습을 보며 나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캐릭터가 만들어질 때 기본 스탯은 전부 10이다.

전직 등을 하면서 스탯에서 손해가 생기지 않는 이상 10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즉, 내 생명력 스탯은 갓 태어난 두 사람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나…… 아무래도 이 녀석들의 능력을 너무 가볍게 본 걸지도…….’

진짜 이 녀석들 기준으로 내 스테이터스를 재게 해도 되는 것일까.

벌써부터 결과가 예상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은 멈출 수 없었다.

근력과 기량 중 어느 것이 더 나에게 맞는지 만이라도 판단하기 위해 나는 다음 테스트를 이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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