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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43화 (143/173)

〈 143화 〉 앙금 폭발 ­ 2

* * *

성향.

그것은 그 사람의 성질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길이다.

사람에겐 호불호라는 것이 있고, 똑같이 물이 절반 채워진 컵을 바라보아도 그에 대한 감상이 나뉘기도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성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게 바로 캐릭터다.

캐릭터들의 능력치는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동일하다.

외형만 다를 뿐 다른 캐릭터와의 차이는 없으며, 아무런 성격적 개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있는 거라곤 자신과 세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플레이어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자아뿐.

그런 갓난아기와 다름없는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여정과 함께 성장한다.

인형과 다름없던 캐릭터가 점차 개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캐릭터란 플레이어의 성향을 담는 그릇이자, 그들이 자각 못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게임.

사회라는 규칙에서 할 걸음 벗어나도 되는, 가상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이기에 표출할 수 있는 본성이라는 게 있었다.

레아와 스콜.

각각 신요현과 연성화의 캐릭터들인 그들은 두 플레이어의 본성을 잘 닮아 있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닮아가는 것처럼.

그들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외형에서도, 장비에서도 아니다.

바로 전투였다.

퍼어어엉!!!

터져 나오는 불꽃이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시뻘건 불길을 맨몸으로 뚫고 나오는 건 금발의 늑대.

고열의 불길이 피부와 옷의 일부를 갉아 먹는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눈앞에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레아의 주먹이 굳게 쥐어진다.

달려 나가면서 어깨 뒤까지 당겨졌던 그것이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스콜의 머리를 위를 향해 떨어진다.

의식의 틈새를 파고들 것처럼 신속하고 빠른 동작.

그럼에도 스콜이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공격을 이미 질리도록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스콜이 뒤로 몸을 날리며 빠져나가고, 표적을 잃은 레아의 주먹은 애먼 땅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앙!!!!

주먹을 내리치는 순간 일어나는 풍압에 몸에 달라붙어 있던 불꽃이 일제히 떨어져 나간다.

땅은 움푹 내려앉으며 멀리 떨어져 있던 신요현과 연성화가 몸이 비틀거릴 정도의 흔들림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흔들림이 채 잠잠해지기도 전에 레아는 다시 스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것이 글레이그 대륙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녀의 전투 성향이었다.

신요현은 레테라, 레반, 레아에 이르기까지 근접 전투 계열이다.

복싱으로 따지면 인파이터.

상대를 압박하듯 파고들어 좁은 간격에서 치고 박는 전투를 즐긴다.

반면 스콜의 전투 성향은 그녀와 달랐다.

화르르륵!!

레아처럼 파고들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며 간격을 만든다.

스콜이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그의 주변으로 타오르는 화염구 아홉 개가 만들어졌다.

그대로 팔을 뒤로 당기자 화염구들이 마치 장전되듯 손바닥 위로 모여 하나로 합쳐졌다.

연성화는 하티, 스콜의 직업을 보면 알 수 있을 원거리 전투 계열이다.

이 경우는 아웃복서.

상대와 일정 거리를 두고 행동에 대응하며 이쪽에 일격을 하나하나 확실하게 때려 넣는다. 이럴 듯 외형만 보면 둘의 성향은 전혀 달라 보인다.

그러나 이들끼리 통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력’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스콜이 손바닥 위에 올려 내지른 화염구.

그런 그를 향해 내지른 레아의 주먹이 맞부딪치며 엄청난 폭발을 만들어냈다.

그 열기와 파동은 바로 눈앞에서 대형 폭죽이 터진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신요현과 연성화.

그들의 스타일은 다를지 몰라도 언제나 강력한 한 방을 추구한다. 화끈한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성향이 맞았기 때문인지 그들은 금세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친해지게 만든 성향이 지금 칼날로 돌변하여 서로에게 향하고 있었다.

촤르르륵!!

충격에 뒤로 밀려난 레아와 스콜이 두 발로 땅 위에 브레이크 걸며 멈췄다.

방금 전 격돌에 의한 대미지는 두 사람의 몸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레아의 오른팔은 불이 붙은 채 타오르고 있었으며, 스콜의 오른손은 손바닥에서부터 이어지는 손가락 3개가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큰 대미지였겠지만, 정작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흥!”

쿠웅!!

레아는 불타고 있는 팔을 땅 속에 때려 박았다.

옷과 함께 피부를 태워먹고 있던 불꽃은 흙에 뒤덮이자 금세 꺼져버렸고, 레아는 그을린 팔을 아무렇지 않게 뽑아냈다.

우드득!

스콜 또한 반대쪽 손으로 뒤틀린 오른손을 억지로 맞췄다.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산산조각 났지만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짧은 정비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콜!!!”

“레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아 씨! 돌아버리겠네!!”

레아와 스콜이 맞붙는 현장을 바라보며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어 버렸다.

이제 와서 미친 척하고 저기에 끼어들어 말리는 건 불가능하다. 터져 나오는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데굴데굴 굴러 나올 것이 뻔하다.

설령 운 좋게 저들에게 다가간다고 해도 얌전히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다.

단단히 발동 걸린 그들이라면 나 따위는 집어던져 버리고 바로 싸움을 이어가고도 남았다.

“뭐야, 대체! 저 녀석들 왜 갑자기 싸우는 거냐고!”

당혹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연성화가 격전지를 크게 돌아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직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긴급 상황에선 기존에 있던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는 게 현명한 판단일 거다.

“백번 양보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왜 멈추라고 해도 멈추지 않는 건데!? 이제까지 스콜이 내 말을 듣지 않은 적은 없었어!”

싸움이 벌어지자 연성화는 당장 멈추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그러나 스콜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에겐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플레이어를 향한 캐릭터의 충성심은 연성화도 익히 알고 있을 테니까.

아마 당연한 듯 여겨왔던 상식이 무너진 기분일 것이다.

반면 난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녀보다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 캐릭터가 반항기 온 건 처음이구나?”

“반항기!?”

생각지도 못한 용어에 연성화의 당혹감은 더 커졌다.

“확실히 캐릭터들은 우리를 우직할 정도로 잘 따르긴 해. 하지만 충성과 복종은 다르잖아? 저들도 마찬가지야.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스스로 신변에 위험이 가는 행동을 하려하면 작정하고 반항하거든.”

일례가 예전에 겪었던 첫 번째 이벤트였다.

흑룡 아그나벨리어스가 나타나 모든 걸 쓸어버리는 판국에 내가 스스로의 목숨 우선순위를 뒤로 두려 하자 레반과 레테라가 단단히 빡쳤었다.

그때 그들은 내 명령도 듣지 않고 멋대로 동맹인 하티를 죽여 탈출 티켓을 빼앗으려 했다.

내가 몸을 던져 막지 않았다면 진짜로 그 자리에서 사단이 났을 것이다.

레아의 경우는 조금 다를지라도 근본은 같았다.

레아가 그동안 유독 반항적으로 굴었던 건, 내가 연성화와의 사건에 미련이 남아 아직도 속으로 괴로워하고 있음에도 그저 묻어두려 하기 때문이었다.

“자학, 혹은 자해적인 선택. 그것이 저놈들에겐 폭발 트리거야.”

캐릭터들은 우리들이 다치는 꼴은 물론 괴로움을 참는 꼴조차 두고 보지 못한다.

그럴 상황이 닥치면 반드시 무언가라도 하려 움직인다. 플레이어의 의사 없이도 말이다.

“우리가 헤어지고 돌아가면, 이번에도 혼자 괴로워해댈 것이라는 걸 알고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고 싶은 거지.”

“…….”

그 말을 듣고 연성화는 말없이 레아와 스콜의 격전지를 바라보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돌이 튀기고, 불꽃이 뿜어지고, 피가 튀기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 처참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 하나 나나 연성화에겐 닿지 않았다.

돌가루 하나조차 근처로는 날아오지 않는다.

저들은 그저 이성을 잃고 감정만을 앞세운 채 싸우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날뛰고 싶은 거다.

그것을 이해한 듯, 냉정을 되찾은 연성화가 물었다.

“그럼 저 둘의 싸움은 어떻게 멈출 거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싸우다 지치면 알아서 멈추겠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하필 저 둘이라서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

콰아아아아아아앙!!!!

레아의 얼굴을 통째로 짓이기려는 불꽃과 스콜의 모든 골격을 뭉개버릴 듯 날려대는 주먹을 보라.

누가 저들을 한때 함께 여행한 동료라고 생각할까.

연성화의 PVP는 항상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났지만, 그것이 여기서도 반영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화해하는 거겠지.”

나와 연성화의 생각은 일치했다.

화해하기만 한다면, 저 날뛰는 맹수들을 얌전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안 된다는 거 알잖아?”

“그렇지.”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화해한다고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멸신검 문제는 차라리 미친개한테 물렸다는 기분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 모른 척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안 돼.”

“너나 나나 참 바보 같을 정도의 황소고집이잖아.”

나와 연성화는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낄낄댔다.

이 순간만큼은 잠시만이라도 옛날로 돌아간 거 같았다.

슬픔이 감도는 웃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싫어하는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야 할 때가 있다.

공통된 목적을 위해, 혹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묵히고 행동해야 하는 게 어른으로서 강요되는 사회 덕목이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로 친한 사람의 앞에선 정신 연령이 어려지는 법이다.

지금 화해하면, 분명히 옛날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선 미처 해결하지 못한 앙금이 남는다.

상대에 대한 의혹, 의심.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남아있길 바라지 않는다.

상대를 인정하기 때문에 거리낌 한 점 없는 당당한 모습으로 대하고 싶었다.

역시 허울뿐인 화해는 우리에게 무리다.

오히려 레아와 스콜을 더욱 자극해 폭주시키는 결과만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차선책을 사용하기로 했다.

“녀석들이 제때 달려올 수 있으려나?”

지원군들을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지만, 레반과 레테라의 휴대 전화가 꺼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의 번호를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그들은 아직 오서연 씨와 같이 있을까.

일단 레반과 레테라 대신 오서연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보려고 했다.

[~~~♬]

그 순간 타이밍 좋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연성화와 함께 살펴본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랑이 제 말하면 온다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있는 말이겠지.”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건 오서연의 이름과 전화번호였다.

딱 좋은 타이밍이긴 하지만 괜스레 불안했다.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는 건 같이 있는 맹수들이 또 무슨 사고를 쳤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서연 씨…….”

[오라버니이이이이이이!!!!]

[형니이이이이이이이임!!!!]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소리 폭탄에 내 한쪽 청각이 순간적으로 마비되었다.

‘지­잉!’하고 울리는 귀를 부여잡고 휴대폰을 반대쪽 귀로 옮기며 외쳤다.

“내 고막을 터트릴 셈이냐, 인마!!”

한편, 연성화 쪽에서도 연락이 왔는지 그녀는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여보세요? 하티?”

[주인님!! 기뻐해주세요!!]

역시나 들려오는 건 하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 환희에 젖어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어요!!]

“……뭐?”

연성화가 의아함을 드러낼 때, 내 쪽 휴대폰에서도 충격적인 보고가 이어졌다.

[트릭을 밝혀낸 건 아닙니다!! 멸신검의 행방을 알아낸 것도, 가져간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 것도 아니죠!! 하지만……!]

그들이 찾아낸 건, 어쩌면 나와 연성화가 그토록 바라고 있었던 제 3의 길.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 숨통을 조이는 듯한 답답한 상황을 풀어낼 수 있는 또다른 퍼즐 조각.

[이 사건에 끼어 있어요!! 오라버니도! 연성화 씨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새로운 용의자의 출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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