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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44화 (144/173)

〈 144화 〉 앙금 폭발 ­ 3

* * *

나와 연성화가 서로를 의심하기 싫으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제 3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멸신검은 퀘스트를 받은 본인 외, 그것을 공유하는 길드원이 아닌 이상 회수할 수 없다.

그리고 나와 연성화가 만든 길드의 인원은 우리 두 사람이 전부다.

새로운 인원은 받아들인 적도 없고, 늘릴 생각 자체도 없었다.

길드 자체도 키워서 세를 과시하기 보단 상대와의 교류를 보다 쉽게 만들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상대방의 접속 유무부터, 원거리 채팅, 퀘스트 공유 등.

길드란 마음이나 목적이 맞는 사람들이 맺는 친목 같은 거다.

원거리에 있음에도 서로를 가깝게 만들던 게임 시스템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서로의 목을 조이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멸신검 소실.

길드원이 아닌 자가 퀘스트 보수 아이템을 중간에 가로챌 수는 없다.

이 점은 두 사람이 몇 번이나 실험을 거듭한 끝에 확인한 사실이다. 그밖에 다른 이유로 멸신검이 사라질 가능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고약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를 이어주던 길드라는 울타리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쪽으로 작용하게 되다니.

마치 살인사건이 일어난 밀실에 친한 친구와 갇힌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죽인 게 아닌 이상, 의심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남지 않으니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용의자는 둘.

시소처럼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는 구도.

이후에 이어질 모든 갈등에 시작.

두 사람이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던 전제를, 아이러니 하게도 사건 이후에 탄생된 캐릭터들이 힘을 합하여 깨트리고 말았다.

“제 3의 인물이…… 끼어 있다고?”

나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연성화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하티에게서 같은 보고를 받았는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 3의 인물이라니!? 자세히 좀 설명해봐!! 그건 어떻게 알아낸 건데!?”

[신공 에이드멀에게서요! 그 사람, 오라버니와 연성화 씨를, 정확히는 두 분의 캐릭터인 레아와 스콜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에이드멀? NPC잖아? 그 사람에게서 어떻게…… 앗!”

그렇다.

난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도 아직도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NPC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의식을 가진 생명체라면, 그들을 게임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의사를 나눌 편법이 있을 것이다.

연성화도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어이없는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머리 좀 썼구나…….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답을 숨겨놓는 녀석은 진짜 고약한 성격인 게 분명해.”

“동감.”

출구가 있는 미로가 아닌 출구 없는 미로에서 맴돌고 있었다.

결국 이것을 게임으로 한정 지어서 진실을 찾아 헤맨 우리의 모든 노력은 괜한 고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고생을 헛고생으로 만들어버리는 쪽이 더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그때 버거 가게에서 율이 했던 말은 게임을 붙들고 늘어진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나와 연성화도 포함되고 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이 이렇게 빨리 단서를 잡을 줄 알았으면 이곳에서 부딪치는 일도 없었지.

“멸신검을 건네준 당사자의 말이라면 정보의 신빙성은 확실하고. 그래서 누구야, 그 제 3의 인물이라는 건?”

[그건…….]

콰아아아아아앙!!!!

레테라의 목소리가 이어지던 도중 커다란 폭음이 그녀의 말을 지워버린다.

이쪽이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싸움에 열중하는 두 바보들 때문이었다.

[어? 오라버니. 이 소리 뭐에요?]

“어어, 그게…….”

[스콜과 레아가 싸우고 있다구요!? 주인님 지금 어디서 뭐하는 거예요!?]

“하티, 일단 진정하고…….”

주인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 휴대폰 너머의 캐릭터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연성화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이 녀석들은 언제나 플레이어가 최우선이다.

이런 상태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는 걸 안 나와 연성화는 시선을 주고 받은 뒤, 레아와 스콜을 돌아보며 외쳤다.

“레아! 이제 싸우지 않아도 돼!!”

콰아아아아아앙!!!

“스콜! 단서를 찾았어! 일단 그것부터 들어보자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우리들이 목청껏 외쳐보았지만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폭음 때문에 소리가 닿지 않는 건지, 아니면 싸움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우리의 소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느끼면서도 최대한 말로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힘껏 외쳐보았다.

“그만해!! 이제 싸울 필요 없다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빠직.

그 소리는 내 이마에서 난 소리였을까, 아니면 분노로 세게 쥐어진 휴대폰에서 난 소리였을까.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인벤토리를 펼치고 있었다.

“‘거인족의 무쇠 그리브’, ‘고대의 파편검’, ‘대형 화약통’, 소환!!”

“뭣……?”

내 돌발행동에 연성화가 놀란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 내가 외친 아이템들이 차례로 소환되었다.

거인족의 무쇠 그리브 등급: 레어 분류: 장비 재료

「거인족 병사가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다리 갑옷. 이대로는 쓸 수 없고, 대장간에 가져가 크기를 줄여야 장비할 수 있다. 신체가 큰 거인족의 특성상,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 다리를 보호하는 갑옷이 가장 두텁고 단단하다.」

고대의 파편검 등급: 특이 분류: 특대검

공격력: 445

내구도: 90/90

필요 스탯: 근력30 신앙10

「고대 던전에 안치된 석판을 떼어내어 만든 특대검. 기이한 문양에 서린 힘인지 투박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절삭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바위가 재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쉽게 부서질 수 있다.」

대형 화약통 등급: 보통 분류: 재료

「화약을 가득 담은 100L가량의 통. 담긴 화약은 다른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다. 화력에 약하니 취급주의요망.」

쿠웅!!

우선 가장 처음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거인족의 무쇠 그리브가 땅에 떨어졌다.

둥글게 휘어진 쇠붙이의 높이는 내 신장에 두 배에 달했다.

카앙!!

그 위에 쇳소리를 내며 석판과 같은 거대한 검이 떨어진다.

검이 맞는지 의심될 만큼 무시무시한 크기의 검이었다. 날카롭게 뻗은 검날은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롭다.

파편검의 손잡이 쪽은 그리브 위에 떨어지며 걸쳤고, 나머지 검극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비스듬히 세워진 파편검의 검면 위로, 마지막에 소환한 화약통이 떨어졌다.

투웅!

탄성과 함께 튕겨 오르는 화약통.

그것은 파편검 검면을 타고 미끄러져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나나 연성화로는 저들의 격전지 근처로 다가갈 수 없다.

저들이 부딪칠 때마다 일어나는 폭음도, 충격파도, 열기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구라면 다르다.

평범한 화약통이라도 저쪽 세계의 물건은 이쪽 세계의 물건보다 수십 배는 무겁다.

통! 통! 통!

떨어질 때의 가속도가 검면을 미끄러지면서 줄지 않고 더 해졌다.

지면에 닿자 통통 튀어 오른 원통은 곧장 검극이 향하고 있던 방향, 레아와 스콜이 있는 방향으로 굴러간다.

도중에 큰 충격파가 덮쳐와 한 번 주춤거리긴 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화약통은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응?”

“으음?”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상대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던 레아와 스콜은 화약통의 접근을 늦게 알아챘다.

내 행위 자체에 살의도 없을뿐더러, 서로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 말곤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으로 대응이 늦어진 그들의 눈앞에서 화약통은 보란 듯이 주변에 흩뿌려져 있던 불꽃 속으로 정확히 들어갔고…….

퍼어어어어어어어엉!!!!!!!!

폭발했다.

그것은 열기만으로 넓은 구덩이 안을 가득 메울 정도의 대폭발이었다.

화약통이 폭발하기 직전, 나는 연성화를 데리고 미리 소환해두었던 무쇠 그리브 뒤편에 바짝 달라붙어 폭풍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인근에서 폭발에 휩싸인 두 사람은 달랐다.

폭음과 열기가 한결 가신 그 자리에서 온몸이 검게 그을린 레아와 스콜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대체!”

“웬 화약통이…….”

폭발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그것에 의해 둘의 머리는 냉수를 끼얹은 것처럼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이열치열이라고 하던가.

나는 냉정을 되찾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얌전히 좀 있으라고, 이 멍멍이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

하도 화가 나서 율이 캐릭터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애칭인지 멸칭인지 모를 호칭까지 튀어나왔다.

정말로 주인에게 혼나는 강아지처럼 두 사람이 어깨를 움찔거린 건 덤이다.

“단서를 찾았다고 아까부터 말했잖아!! 계속 그렇게 싸우고 있을래!?”

“다, 단서를 찾았다고?”

“정말입니까!?”

“그럼 뻥이겠냐!! 당장 내 앞으로 튀어와!! 그리고 무릎 꿇고 반성하고 있어!!!”

척하고 내 앞을 가리키며 내지르는 호통에 그들은 부상당한 몸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내 캐릭터인 레아는 물론이고, 연성화의 캐릭터인 스콜까지 내 말에 따라 바로 앞에 착석하는 게 묘한 기분이긴 했다.

“아하하하!”

그때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쇠 그리브 뒤편에서 걸어 나오다 나와 캐릭터들의 행태를 연성화가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뭐랄까. 그녀와 현실에서 만난 뒤 처음으로 평온하게 웃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왜 웃어?”

“아니……. 처음부터 너다운 모습 본 거 같아서. 역시 점잔 빼는 것보다 이렇게 막 나가는 게 너지.”

“대체 네 안에서 난 어떤 이미지인데?”

“으음~. 약자에겐 무르지만 강자에겐 한없이 과격해지는 놈?”

“칭찬이냐, 욕이냐?”

“칭찬 혹은 욕이라기보단, 팩트를 말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별 이상한…… 야, 늬들은 왜 또 찬란했던 학창시절 비디오를 본 우리 아버지마냥 눈물을 참고 있어? 제대로 반성하고 있으라고.”

캐릭터들 앞에선 연성화와 가벼운 잡담도 함부로 못할 거 같다.

무슨 말을 나누든 ‘아, 옛날에도 이랬지’라며 제멋대로 향수에 젖어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쨌든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고. 레테라. 날뛰는 레아와 스콜 진정시켰으니 이제 말해봐. 에이드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데?”

[날뛰는 그 둘을 어떻게……. 아, 아뇨. 오라버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아무튼 에이드멀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휴대폰 너머의 레테라가 다른 캐릭터들의 대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연성화도 하티와의 통화를 끊고, 레아, 스콜과 함께 스피커폰으로 전환된 내 폰을 주시하였다.

[사건 당일, 에이드멀은 드디어 멸신검을 완성했어요. 100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아 당장 지쳐 쓰러지고 싶은 상태지만, 제련된 무구를 주인에게 건네줄 때까지 잠들 수 없다며 오라버니나 연성화 씨가 올 때까지 계속 버티고 있었죠.]

“그 영감님, 그 정도로 우리 의뢰에 신경 써 준 거냐? NPC가 그런 식으로 사람 감동먹이지 말라고.”

“쉿. 계속 들어보자고.”

[아무튼, 그렇게 기다리다 드디어 누군가 멸신검을 찾으러 왔어요. 에이드멀은 그 자가 남성이라고 말했고요.]

남성이라는 말에 우리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멸신검을 찾으러갈 인물 중에 남성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전 아닙니다!”

스콜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아. 여기까지만 들으면 가장 먼저 네가 떠오르지만, 스콜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레테라 쪽도 제 3의 인물을 언급했다는 거 아냐?”

[네. 맞아요.]

전해지는 레테라의 목소리가 긍정한다.

[스콜의 외형을 보면 가장 먼저 회색머리가 특징이겠지만, 에이드멀에게서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어요. 아니, 애초에 에이드멀은 멸신검을 가져간 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말을 듣고 있던 우리들 네 사람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어났다.

멸신검을 건네주었는데, 건네준 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니.

[왜냐하면 얼굴에 투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멸신검은 전신을 중갑으로 중무장한 전사 계열의 남자였어요.]

“……뭐가 어째?”

전신을 중무장한 전사?

스콜은 전형적인 마법사 캐릭터다.

중갑을 입을 일도, 입는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움직일만한 체력도 없다.

마법사 캐릭터가 체력에 투자한다니, 그건 명백한 스탯 낭비였다.

상대를 속여 멸신검을 독점하기 위해서 아까운 스탯을 낭비하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멸신검을 가져간 상대를 모르는 판국에 굳이 일부러 중갑으로 변장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게 이들이 제 3자의 존재를 확신한 이유일까?

“잠깐. 그럼 이상하잖아?

그때 연성화가 의구심을 담은 표정으로 물어왔다.

“멸신검 퀘스트를 가지고 있는 건 우리들뿐이었다고. 그런데 에이드멀은 퀘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제 3자에게 멸신검을 넘겨줬다는 거야? 저쪽 세계 NPC들이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이제껏 한 번도 게임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보인 적이 없었어.”

날카로운 지적이다.

레테라 일행들도 그 점을 알고 있는지 혼란스러움을 떨쳐내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도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선 알아보고 있는 중에요. 에이드멀의 말로는 멸신검을 찾으러 온 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자는 퀘스트를 공유하고 있는 길드의 ‘증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넘겨주었다고 말했어요.]

“길드의 증표?”

긴 게임 생활 동안 처음 듣는 요소에 의아함을 표하고 있을 때 레아가 나서서 설명했다.

“플레이어들이 길드를 맺으면 캐릭터들이 하나씩 갖게 되는 증표야. 그걸로 같은 길드원이라는 걸 구분하는 거지. 플레이어의 시점에선 볼 수 없고, 우리도 그걸 복제, 위조하는 건 불가능해.”

캐릭터의 시점으로만 보이는 물건인 건가.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알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것은 안 좋은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인식도,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건…… 제 3자설이 약해진다는 의미잖아?”

““……!””

내 말에 두 캐릭터가 긴장한다.

겨우 가라앉은 갈등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연성황의 말은 그러한 불안을 종식켰다.

“하지만 그날 누군가가 굳이 할 필요도 없는 행색을 가지고 멸신검을 가져간 건 분명해 보여.”

“그럼 길드의 증표 위조, 혹은 에이드멀의 눈을 속인 트릭이 뭔지 알아내기만 한다면……!”

제 3자설은 확실시 된다.

새로운 길을 찾은 나와 연성화가 처음 보다 활기를 띈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잠깐. 그럼 율의 말은 어떻게 되는 거지?”

“율? 무슨 말?”

“‘멸신검을 가져간 자와 만나게 해준다’는 말 말이야.”

“……!!”

연성화도 그 말을 기억해낸 듯 눈을 번뜩였다.

만약 우리 둘 중 하나가 멸신검을 가져간 게 맞다면, 이렇게 서로 마주친 것만으로도 율의 말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가져간 게 제 3자라면?

그 제 3자도 이 자리에 나타나는 것인가?

“……레아.”

“응.”

상황을 파악하고 한껏 무거워진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레아가 낮아진 목소리로 답했다.

“이 주변에 다른 사람의 기척, 느껴져?”

“아니.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율이 되도 않는 거짓말로 우리를 속인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진범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스콜.”

“예, 주인.”

“책임은 내가 질게. 그러니…….”

조용하지만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래. 나도 오랜만에 만나며 잠시 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 당장 이곳으로부터 반경 1km 이내를 전부…….”

연성화, 그녀는…….

“……불태워버려.”

한 번 뚜껑 열리면 나와 맞먹을 만큼 과격해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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