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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66화 (166/173)

〈 166화 〉 다시 만난 불곰파 ­ 2

* * *

신요현은 우정석이 있다는 회의실을 찾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이쪽을 향해 허리를 90˚로 숙이고 있는 아저씨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을 모아 외쳤다.

­오셨습니까, 형님!!!

“하아. 내가 이 인사를 또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험한 일을 하기 좋게 생긴 덩치들이 자신을 향해 과도하게 몸을 낮추는 광경은 언제 봐도 부담스럽다.

신요현이 한숨을 내쉬는데 남자들 중 한 명이 허리를 숙였던 허리를 펴며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신요현이 익히 알고 있는 우정석이었다.

“이, 이렇게 다시 뵙는군요.”

“네. 다시 찾을 생각은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서요.”

우정석의 인사를 받은 신요현이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그쪽도 저희와 맞닿는 선을 남겨두고 있어서 그걸 되짚으며 따라왔습니다. 주변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예 다른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신요현이 가리킨 곳에 있는 건 레반이 짊어진 포대 자루였다.

그 자루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남자.

이미 한 차례로 손 본 건지 푸르딩딩한 상태의 얼굴을 본 우정석은 옆에 있던 비서에게 슬쩍 물었다.

“기, 김 실장. 저거 혹시…….”

“네, 네. 맹수들 감시를 위해 파견했던 놈입니다.”

비서는 말을 더듬으려는 걸 최대한 억누르며 답했다.

지난날, 신요현은 자신들과 관계되어 좋을 거 없다며 볼곰파와 선을 그어버렸다.

그들의 연락처를 삭제하고, 자신들도 휴대폰 번호를 변경한 뒤 이사까지 갔다.

그러나 불곰파는 영 불안했다.

이대로 기억 속에서 잊으려 해도, 언젠가 한 번 마음 단단히 먹고 자신들의 조직을 꿀꺽하러 나타나는 게 아닌지 불안했다.

그렇기에 감시자를 세워둔 것이다.

신요현 일행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들이 사는 집과 가까운 평범한 주택에 평범한 청년으로 위장 시켜 살게 했다.

그런데 그 감시자가 감시 대상에게 두들겨 맞은 몰골로 함께 나타났다.

감시는 진작에 들킨 거였다.

그것도 서로 관여되지 말자는 신요현의 말을 무시한 셈이라, 저들이 이것을 도발, 혹은 위협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실제로 불곰파 조직에게 그리 고까운 기분은 아닌지, 신요현을 제외한 세 맹수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정석을 비롯한 얼굴이 샐쭉해지는 건 당연했다.

“안 들킬 거라며……!?”

“저, 저도 이렇게 되라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우정석과 김 실장을 다독이듯 신요현은 손을 내저었다.

“뭐, 이 일을 탓하려 온 건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 집을 감시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눈치챘기도 했고, 별다른 피해를 준 건 아니었으니까요.”

“형님이 내버려 두라고 안 했으면 진작 쳐죽였겠지만 말이야.”

레반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포대 속 감시자의 몸이 움찔 떨려왔다.

이미 의식은 혼미해진 상태였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몸을 떨 정도로 그들에 대한 공포는 각인되어 있었다.

신요현은 그런 포대 속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도착했으니까 그 사람은 넘겨드려. 겉만 조금 상했을 뿐이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 걱정 마세요.”

도열해 있던 지부장들 중 몇몇이 달려와 레반이 내민 포대의 남자를 데려갔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고 하기엔 넋이 나가 있는 남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감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만큼 간 큰 놈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도 몇 명 날려버렸으니까 그들도 치료해주세요.”

조직간 항쟁에서 별의별 침범은 경험해봤어도 이렇게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침입자는 처음이었다.

연락책을 확보했다면 굳이 이렇게 쳐들어오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우정석은 살짝 따지듯 중얼거렸다.

“굳이 이렇게 요란하게 들어오지 않아도 붙잡은 놈을 통해 연락했다면 저희가 모셔들었을 텐데요…….”

“조용하게 나오는 것보다 강하게 나오는 게 양쪽에 좋잖아요.”

“그게 무슨……?”

“만만하게 보이면 한 번 건드려 보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요? 쓸데없는 불화는 사전에 차단하는 게 좋죠.”

불곰파는 다 허물어져 가던 예전에 비해 많이 성장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인원들도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과 자신들의 위험성에 대해 알지 못한다.

단순히 첫인상만으론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순 없다.

지금 신요현처럼 예의를 차려주는 걸 ‘상대가 약하다’로 오해한 멍청이가 멋대로 시비를 걸어올지 모를 일이다.

과거 살모사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또 그때와 같은 대량살육으로까지 일이 번지는 게 싫었던 신요현이었기에, 이렇게 방문하면서 자신들의 위험성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다.

그게 자신들에게도, 불곰파의 안위에도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유일하게 순진한 놈인 줄 알았는데 이쪽 물정에 빠삭하잖아!’

우정석이야 원래 인간성의 밑바닥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직업이라지만, 흉악한 맹수 세 마리를 제외하곤 이쪽 일에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신요현이 이런 것까지 고려하고 움직일 줄은 몰랐다.

사실 우정석이 잘 몰라서 하는 생각이다.

인간성의 밑바닥은 굳이 현실이 아니라도 온라인상에서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가상의 공간일수록 다양한 인간성을 나도는 법이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우정석은 이전보다 신요현의 경계 레벨을 한 단계 높이며 바짝 몸을 숙였다.

“이, 일단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여기 앉으시지요.”

본래 회의를 위해 쓰던 테이블 중 가장 상석을 가리킨 우정석이었지만, 신요현은 사양했다.

“아, 괜찮아요. 볼 일만 해결하고 갈 거거든요.”

“볼 일이라 하심은……?”

신요현은 엄지손가락을 등 뒤로 뻗어 레아,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을 가리켰다.

“저 세 사람 신분 증명할 만한 게 필요해요. 위조 여권 만들 수 있나요?”

“위조 여권 말입니까? 그건 왜……?”

“알고 지내는 경찰 한 명이 있는데, 저 녀석들에게 수상함을 느끼고 나중에 다시 접근해 올 거 같거든요.”

하아…….

곤란한 일이라는 듯 신요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전 그 사람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설백호가 자신들을 둘러싼 게임에 일정 선 이상 접근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 쓴 괴이가 무슨 장난질을 쳐올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의문사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정석과 김 실장은 속으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우리보다 더한 놈이잖아!’

‘경찰을 건드는 건 우리도 부담스러운데! 이런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공권력에 속한 인간 지우는 걸 당연한 전제처럼 여기고 있어!’

뭔가 오해가 깊어지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신요현이 알 리는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부탁을 받았으니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당초 거절하기엔 뒤편에서 노려보는 세 마리의 시선이 두렵다.

우정석은 할 수 있겠냐는 듯 비서를 바라보았고, 김 실장은 안경을 고쳐 세우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여권 위조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보다는 난민 신청이 어떻습니까? 심사 전까진 저희가 준비한 자료들을 쓰는 걸로 하고, 일단 통과만 된다면 확실한 신분 증명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거 괜찮겠다고 생각한 신요현이 눈을 빛냈다.

“필요한 게 뭐가 있죠?”

“우선 증명사진을 찍고, 이력 같은 건 저희가 적당히 준비할 테니, 그 다음은…….”

김 실장이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고, 신요현은 그것을 들으며 필요한 정보를 메모했다.

한쪽에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자, 할 일이 없어진 레아, 레반, 레테라 삼총사는 심심한 듯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기강이 딱 잡힌 신병처럼 한쪽 벽에 도열해 있던 불곰파 지부장들은 저들을 이대로 두기도 뭐했는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차라도 내드리깝쇼? 아님 커피라도……?”

한 지부장이 묻자 세 사람이 그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커피는 됐고, 여기 고기는 없냐? 피 뚝뚝 떨어지는 게 먹고 싶은데.”

“난 아이스크림.”

“난 라면. 컵라면이라도 괜찮아.”

“커, 컵라면이라면 있지만, 라면과 고기는 좀…….”

라면이 있다는 말에 레테라는 만족하고 물러났지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던 레아와 레반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아앙? 없으면 가서 사와.”

“네놈들 다리를 뭘 위해 있는 거냐? 쓸모없이 달려있는 거라면 친히 떼어내 줄까?”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사 오겠습니다!!”

생명의 위기를 느낀 지부장은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가버렸다.

그의 위치라면 부하들에게 시켜도 됐을 테지만, 말을 전달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본인의 발로 달렸다.

지부장 한 명이 떠난 뒤에도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너희들 왜 이렇게 약해 보이냐고, 정말 주먹 쓰는 놈들 맞냐는 레아의 호기심 어린 질문이 지부장들에게 이어졌고, 레반은 방 온도가 낮으니 형님을 위해 난방을 틀라고 지시하고 있으며, 레테라는 호기심 많은 여우처럼 회의실 내부를 뒤지고 다녔다.

그들에게 시달리는 지부장들은 실시간으로 영혼이 메말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구원해줄 유일한 인물이 이 소란을 발견했다.

“하아……. 잠시만요.”

신요현은 작게 한숨을 쉬며 대화를 끊었다.

그리고 근처 테이블로 걸어간 뒤 세 사람을 불렀다.

“레아, 레반, 레테라.”

“응.”

“부르셨습니까, 형님!”

“여기 왔어요, 오라버니!”

부름 한 번에 사람은 모여들었다.

그들이 진짜 동물이었다면 지금쯤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신요현은 그들의 어깨를 당기며 각자 테이블 앞 의자에 앉혀 놓았다.

그 뒤 휴대폰을 꺼내며 세 사람 사이에 놓아두었다.

“이거라도 보고 있어.”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은 유튜브에 연결되어 있었다.

주인과 강아지의 일상을 찍는 애견 유튜브 채널이었다.

이거면 자기가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신요현은 다시 우정석과 김 실장에게로 가버렸다.

덩그러진 남겨진 세 사람 앞에 있는 건 그들 보라며 틀어놓은 동영상뿐이었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형님은 우릴 너무 어린애 다루듯이 대하지 않아?”

“맞아. 유튜브라도 보여주면 얌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좀……. 아, 근데 이 강아지 귀엽다.”

“뭐? 어디 어디, 나도 보여줘.”

바로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한 레반과 레테라를 보며 옆에 있던 레아는 한 손으로 턱을 괘며 말했다.

“어린애 맞구만.”

정말이지 저들의 정신 수준에 맞춰준 정확한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은 저런 순직한 놈들과 다르다는 듯 레아는 고개를 돌려 딴 짓을 하였다.

“꼬리 살랑살랑 흔드는 것 좀 봐! 확 깨물어주고 싶어!”

“와, 이 발바닥의 말랑말랑한 젤리, 한 번만 콕 찍어 보고 싶구만.”

“…….”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그들의 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불편한 듯 손가락 하나로 테이블 위를 탁탁 두드리던 그녀는 곧 움직임을 멈췄다.

“야, 나도 보여줘.”

결국 참지 못하고 레아까지 합세했다.

겨우 휴대폰 하나로 레아,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이 얌전하게 되자 한쪽 벽에 도열해 있던 지부장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렀다.

“오오! 과연 사육사야!”

“저 흉포한 맹수들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어!”

언제 터지질 모르는 야성을 한순간의 진정시킨 위용에, 지부장들은 경외심이 어린 시선으로 신요현을 바라보았다.

우정석, 김 실장과 대화 중이던 신요현은 저 아저씨들이 왜 이렇게 뜨드미지근한 시선을 던지는지 알 수 없어 한쪽 눈썹을 찡그릴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반, 레테라, 그리고 금방 합세한 레아까지 휴대폰 화면 속에 보이는 작은 강아지의 애교에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

신요현의 휴대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한쪽에서 튀어나온 알림창이 동영상을 가렸고,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세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였다.

“응?”

“아앙?”

“뭐라고?”

곧 노기 어린 음성이 그들 입에서 흘러나왔다.

절로 사나워지는 기세에 막 들어온 신병처럼 뒤편에 도열해 있던 지부장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단순히 애견 영상 시청을 방해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화면을 가린 메시지 알림.

거기에 적힌 내용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벤트 공지 알림 From. 위드 소프트웨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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