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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67화 (167/173)

〈 167화 〉 다시 만난 불곰파 ­ 3

* * *

세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주인인 신요현의 폰으로 온 문자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틀림없이 두 번째 이벤트라고 적혀 있었다.

위드 소프트웨어에서 보냈다는 표시와 함께.

“이거 그거 맞지? 그 율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주기적으로 연다는 거.”

“그래. 그때 뭣도 모르고 참가했다가 큰일 날 뻔했지.”

“그런데 갑자기 두 번째 이벤트라니?”

캐릭터들이 가장 먼저 드러내는 건 불신감이었다.

율.

일인기업인 위드 소프트웨어의 수장이자 그 자체.

정체를 알 수 없고, 근원을 알 수도 없다.

그들이 아는 거라곤 그가 신에 가까운 권능으로 게임 속 세계와 신요현이 있는 현실 세계를 이어놨다는 것.

그리고 그가 원하는 건 그저 자신들을 지켜보며 즐기는 것뿐이라는 것.

캐릭터들의 마음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인 플레이어와 만나게 해주었다는 건 고맙지만, 동시에 그 플레이어들을 강제로 위험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병 주고 약 주고의 화신이었다.

무력이 통하는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캐릭터들의 오랜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그런 종류의 방법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고.

그러니 최대한 상관 안 하는 게 가장 나은 대응법이었건만,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세 사람은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이번에도 예전과 같이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의 링크 주소만 덩그러니 있었다.

“아버지를 부르는 게 좋겠지?”

“잠깐. 형님은 지금 바빠 보인다.”

레반의 말대로 신요현은 우정석, 그의 비서와 함께 모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끼어들어서 방해하면 안 될 거 같다.

“스트리밍 동영상이라면 나중에 다시보기가 가능하잖아. 우선 내용을 확인한 이후에 오라버니께 보여드리자고.”

합의를 본 세 사람은 우선 영상을 신청하기로 했다.

잠시간의 로딩이 흐르고, 곧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율의 얼굴이 화면이 비춰……지진 않았다.

가장 먼저 화면에 떠오르는 건, 세 사람도 익히 알고 있는 율의 비서 오서연의 모습이었다.

­아, 저, 저기, 안녕하세요? 제 얼굴을 아시는 분도 있을 테고, 모르시는 분도 있을 텐데, 일단은 ‘내부고발자’라고 말해둘게요.

평소 율이 지내는 삭막한 사장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어둡고 좁은 장소.

어딘가에 창고에 몰래 숨은 오서연이 카메라와 노트북을 하나씩만 가지고 몰래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저도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돌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할지 속으로 전혀 정리가 안 되는데……. 우선 이 말부터 할게요.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을 피해 저돌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자각은 하는지 불안 듯 좌우로 흔들리는 눈을 한 오서연이 곧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우리 사장님이 미쳤어요!!

어째 어딘가의 폭탄 세일 현장에서 나올 법한 멘트였다.

보는 사람들도 하여금 이거 게임 공지가 아니라 광고 방송이었나 착각이 들만큼.

뒤늦게 자신의 언변이 부족했다는 걸 느낀 오서연은 추가 설명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 양반은 원래 미쳐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작정하고 미친 게 분명해요!

그래도 미쳤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건 시청자들도 인정할만한 일이었다.

­그 양반이 이번에 준비하는 두 번째 이벤트. 여기에 혹여 호기심으라도 참가할 사람은 없기에 바래요! 첫 번째 이벤트를 생각하고 임했다간 큰일 나요! 이번 이벤트는…… ‘캐릭터의 강함과 상관없이’ 플레이어가 죽을 위험에 노출되게 되어있다구요!

“……!”

“뭐가 어째?”

오서연의 말에 세 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율이 만든 이벤트라는 점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들은 내심 이번 이벤트가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로 자기 외의 두 명에게 아니꼬운 감정을 가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강함 자체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최근 합류한 레아의 힘만 보태진다면 첫 번째 이벤트와 같은 고난을 다시 만나더라도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서연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캐릭터의 강함에 상관없이 플레이어가 위험에 노출된다?

율 이놈은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잘 들으세요, 사장님이 꾸미는 두 번째 이벤트는……!!

오서연의 입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치직…! 치지지지직!!!

순식간에 화면을 뒤엎는 노이즈.

오서연의 모습은 벌레처럼 우글대는 흑과 백의 노이즈의 가려져 사라졌다.

그리고 몇 초 뒤, 그 노이즈마저 사라진 후에 나타나는 건 보기만 해도 복장이 뒤집힐 거 같은 짜증나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오케이. 스포성 발언은 여기까지.

화면이 바뀌었다.

이제는 눈에 익숙해진 삭막한 사장실.

그곳 한가운데 놓인 사장용 의자와 삐딱하게 몸을 눕히고 있는 남자.

율이었다.

중요한 부분만 딱 자르고 등장하는 그에 행태에 세 사람은 이대로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싶어졌지만, 이것이 신요현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참았다.

­원망 어린 아우성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지만 참으라고. 본래 드라마는 진실이 밝혀지려는 극적인 순간에 끊어줘야 더 애가 타는 법이잖아? 안 그래?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오서연이 제멋대로 하게 놔뒀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실제로 이미 입과 손발이 포박되어 애벌레처럼 변한 오서연의 화면 한구석에서 항의하듯 굴러왔고, 율은 그런 그녀를 발끝으로 툭 밀며 화면 밖으로 밀어내버렸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비슷비슷한 면면들이 모였구만. 마트에서 장보다가 이 영상 시청하고 있는 너, 네가 찾는 물티슈는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째 떨어진 블록에 있다. 애인이랑 므흣한 시간을 보내려 하던 전(?) 돼지 현(?) 근육맨에겐 미안하게 됐어. 일부러 타이밍을 노린 건 아니야. 진짜라구?

율은 화면 밖에 사람들을,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똑똑히 보고 있는 듯 하나하나 짚어주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걸 보고 있는 멍멍이 놈들은 어서 밖에 나가서 자기 바이크를 울며 불태우는 놈 좀 위로해줘라. 불쌍하게 못 봐주겠더라.

이건 누구에게 하는 소릴까.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던 세 사람은 얼른 율이 잡소리를 끝내고 본론으로 넘어가길 기다렸다.

자기들 애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그들에게 유감을 표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율은 곧 주위를 환기시키듯 손뼉을 마주쳤다.

짜악!

­자아, 두 번째 이벤트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놈들아. 즐겁냐? 기대 되냐? 엿이나 까 잡수라는 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난 상큼하게 무시하련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던 율은 한쪽에 놓여 있던 달력을 꺼내 한 날짜에 표식을 남겼다.

­개최일은 오는 12월 1일 정오다. 지난 번 장소는 신월시였으니 이번엔 그 옆에 무재시에서 모이는 걸로 하지. 참가 희망을 원하는 놈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영역 내에 있으면 돼. 이벤트 내용은 이번에도 비밀. 참가했을 때의 재미로 생각하라고.

어째 장소만 제외하곤 첫 번째 이벤트와 다를 게 없었다.

시작 시간은 정오.

영역 내에 있으면 자동 참가.

실제로 참가하기 전까진 이벤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아아! 그러고보니 중요한 얘기를 안 했네. 이번 이벤트에선 너희가 명심해야 될 사실이 하나 있어.

이야기를 마무리 하려는데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솔직히 이 놈이 하는 행동은 죄다 가식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깜빡한 게 아니라 깜빡한 척을 하고 있었으리라.

그런 율은 어딘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화면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이벤트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캐릭터는 하나뿐이다.

……!!

레아, 레반, 레테라 사이에서 동요의 기운이 흐르고 지나간 건 착각이 아니었다.

놀라는 그들 앞에서 율의 말이 이어진다.

­가진 캐릭터가 하나뿐인 녀석은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다수의 캐릭터를 가진 녀석은 신중하게 결정해서 데려가라고. 말 그대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멍멍이로 데려가는 게 좋을걸?

마지막 말은 일부러 덧붙였을 것이다.

이놈은 그러한 분쟁의 씨앗을 좋아했다.

­그럼 안녕~!

뚝.

율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영상 송출은 끊겼다.

까맣게 변한 화면을 보며 세 캐릭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신요현이라면 무슨 위험이 기다리고 있든 이 이벤트에 참가하리란 걸.

율을 쓰러뜨릴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될지 모르고, 못해도 캐릭터를 크게 성장시킬 기회가 될지 몰랐다.

단, 데려갈 수 있는 캐릭터는 한 명뿐이다.

플레이어의 목숨이 직접적으로 위험해질지 모르는 이 중요한 이벤트에서 한 명밖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덜컹.

레아,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은 동시에 의자를 뒤로 빼내며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우선 신요현의 휴대폰을 훼손 하면 안 되니, 마지막까지 휴대폰을 쥐고 있던 레테라는 조용히 안전모드로 돌리고 한쪽에 고이 내려놓았다.

그동안 다른 두 사람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한 명뿐이라…….”

그 말을 누가 중얼거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신호탄이 되긴 충분한 소리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회의용 탁자를 통째로 날려버리며 치고 박는 혈전이 시작되었다.

***

그간 경험으로 생각하면 귀여운 동물 영상 틀어주는 것으로 앞으로 15분 정돈 얌전하겠다고 생각한 신요현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니 웬걸.

본디 회의실로 사용해야할 공간 한가운데에선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때 뒷세계를 주름잡으려 했던 덩치들은 전쟁터에서 몸을 숨긴 아녀자들처럼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정도로 레아,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이 일으키는 싸움은 평범한 사람이 범접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 서 있었다.

“저, 저게 무슨…….”

저들이 가끔 서로 싸워댄다는 이야긴 보고로는 들어보았지만, 그저 보고로 듣는 것과 실제로 목격한 것의 충격은 달랐다.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형광등이 깨져나가고, 다리가 부딪칠 때마다 바닥에 쩍쩍 금이 갔다.

아니 그런데 이들은 왜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단 말인가?

그것도 남의 회의실 한복판에서!!

“…….”

말없이 경악하는 우정석의 앞을 신요현이 조용히 지나쳤다.

한쪽으로 걸어간 그가 손을 뻗는 건, 바로 우정석이 사용하는 골프가방이었다.

그곳에서 적당한 골프채 하나를 뽑아 두어 번 휘둘러 본 신요현은 우정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거, 잠시 빌려도 될까요?”

“네? 네, 네. 물론이죠.”

“하는 김에 이것도.”

좀 더 옆 선반으로 걸어간 신요현이 쥔 건 손도끼였다.

사업을 전향하려 해도 불곰파의 근본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고, 만일을 대비한 무기 정도는 준비해놓고 있었다.

한 손에는 골프채, 한 손에는 손도끼를 쥔 신요현은 세 마리의 맹수가 뒤엉켜 싸우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얌전히 있으라는 말은 귓등으로 쳐들었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당탕탕!! 쿠과광!!

세 맹수가 싸우는 장소에 분노한 사육사가 회초리를 들며 달려들었다.

실제로는 회초리라고 표하기엔 너무나 흉측한 연장이었지만, 맞는 대상에겐 상대적으로 회초리였다.

신요현이 강제 진압을 시작하고, 그 여파에서 몸을 피해 우정석 근처까지 기어온 지부장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예전부터 느꼈는데, 저 양반 진짜 평범한 사람 맞습니까? 아무리 봐도 우리 쪽 냄새가 진하게 나는뎁쇼?”

“특히 연장 다루는 폼이 아주 그냥 예술입니다.”

“…….”

연장으로 세 캐릭터를 폭행하는 신요현의 모습을 보며, 우정석은 이번 일만 해결해주고 저들과 확실히 연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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