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아버지!”
난데없는 상황에 놀란 에녹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물론 아브로고는 품속에 잘 넣어둔 채였다.
그가 서둘러 제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아이작은 좀처럼 몸을 가누지를 못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그런 사람이 수도에서는 꽤 떨어져 있는, 말을 타고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곳에 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때의 에녹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 부모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
“정신 좀 차려보세요, 아버지!”
에녹이 아이작의 등을 받치고 그의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혹시나 탈이 나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그 간절함에 아이작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잠시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아이작이 그제야 제 아들을 찾았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에녹, 내 아들…….”
“네, 아버지. 저예요.”
재빨리 아이작의 몸 곳곳을 살핀 에녹이 그와 눈을 맞추었다.
녹색 눈동자 안에 선명하게 드러난 걱정스러움에 감격한 것인지, 아이작은 잠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다가 입을 열었다.
“쿨럭. 내가, 내가 속았다.”
“네?”
“그, 그 여자의 말을 ……쿨럭. 듣는 게 아니었는데.”
그 여자.
몇 안 되는 그 글자에 에녹의 머릿속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아이작이 그렇게 칭할만한 사람은 애초부터 한 명밖에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그의 여동생. 셀리아 데프론.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 무언가 했나요? 좀 더 정확히 말……. 아니지, 우선 의사부터 불러야…….”
아이작의 어깨를 감싸 쥐고 있던 에녹이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백작가가 있으니 도움을 요청하면 의사는 금방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달려서…….
‘아니야. 그럼 아버지를 여기에 혼자 남겨두고 가야 하잖아.’
이곳은 숲의 경계. 즉 동물들의 서식지와 가까운 곳이다.
어쨌든 백작가가 관리하는 곳이니 맹수가 나타날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면, 제 아버지는 죽는다. 이 상태로 맹수와 맞서 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안 되겠어요, 아버지. 제가 업고 뛸 테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생각을 마친 에녹이 아이작을 잡던 손을 놓고 등을 내보이며 돌아앉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런 제 아들의 팔을 붙잡으며 그를 돌려세웠다.
미약한 움직임이었으나 그것을 용케 알아챈 에녹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럴…… 필요 없다.”
“무슨 소리세요. 빨리 치료를 해야…….”
“의사한테, 보인다고 해서. 쿨럭. 나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 병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분명 원인이 무엇인지만 알면 나을 수 있을…….”
거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묘한 기시감에 에녹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 언젠가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대가 편지에 쓴 ‘아브로고’라는 꽃. 그 꽃을 찾아와.’
‘로레이나에게 필요할지도 몰라. 반드시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
그래. 분명 로레이나도 그렇다고 했다. 특이한 병이라서 아브로고 외에는 어떠한 약도 들지 않는다고 했지.
‘……설마, 아니겠지.’
갑작스레 마음속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왜 아버지는 하필 여기에서 쓰러지신 걸까? 왜 하필 저런 말을 하고, 왜 로레이나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거지?
이제는 비명을 내지르는 아이작의 모습에 에녹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괴로운지 제 몸을 박박 긁던 아이작이 신음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주, 이건 저주야!”
“……저주라고요?”
“그래, 내가, 내가 속았어. 애초부터 그 여자는 나를 이용만 하고 버릴 생각이었던 거야. 쿨럭.”
아이작의 입술 사이로 지나치리만치 붉은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뒤이어서 몇 번 잔기침을 한 그가 몸을 덜덜 떨었다.
“치, 치료할 방법은 마법을 무력……쿨럭. 무력화시킨다는 그 꽃, 그거뿐이다!”
“…….”
“아브로고라고 하는데, 혹시 알고 있느냐?”
아이작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이름에 에녹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신은 어쩌면 이리 가혹하신가.
“내, 내가……쿨럭. 내가 다 잘못했다.”
“…….”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지금껏 잘못 생, 생각하고 살았어. 흐윽. 그런 자리가 다 무슨 소용이라고…….”
흐느끼며 우는 아이작의 눈에 전에 없던 공포심이 자리했다. 늘 곁에서 그를 보아온 에녹은 그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저와 꼭 닮은 녹색 눈이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이 엇나가는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제, 제발. 나 좀 살려줘.”
다시금 연이어 기침한 아이작이 에녹의 바짓가랑이를 쥐었다. 점점 창백해져 가는 얼굴에 에녹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온몸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방황하던 시선이 제 품 속을 향했다. 아까 소중하게 넣어둔, 찬란하게 빛나는 그 꽃으로.
‘……아니야, 정신 차려. 이건 로레이나를 위한 거야.’
아무래도 의사에게 가야겠어.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다. 그럴 거야.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해.
애써 마음을 굳힌 에녹이 아이작의 몸을 들어 옮기기 위해 그의 허리 뒤로 팔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곧 아이작이 발작을 일으켰기에 별 소용은 없는 일이었다. 몸을 파르르 떨며 숨을 거칠게 내쉬던 아이작이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에녹의 심장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하고, 구름 뒤에 숨어있던 달이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아버지……?”
에녹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다급하게 아이작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자 다행스럽게도 미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에녹은 더는 결정을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두면 아이작 데프론은 죽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건 저주였다.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그 곁의 다른 이에게도 전이되는, 아주 끔찍한 저주.
이렇게 중대한 일의 결정권이 오로지 에녹의 손에 달려있었다. 그의 품 안에서 유일한 희망이 되어줄 꽃이 반짝거렸다.
모순되게도, 그 선택을 좌우할 당사자에게 그것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지만.
‘이, 이건 로레이나에게…….’
머리로는 분명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자꾸만 손이 덜덜거리며 품 안으로 향했다.
‘아이고, 우리 착한 아들.’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에녹.’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 반복해서 되풀이되었다. 내내 따스하게 내려앉던 그 말은 점점 크기를 더해가더니 종국에는 다른 것으로 변질되었다.
‘……에녹.’
더 잔혹하고.
‘나 좀, 살려……다오.’
더 처절하게.
‘제, 제발 나 좀 살려줘!’
아아.
순간, 에녹의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그 뒤는 어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서,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렸다.
* * *
“침대 밖으로 나와 있지 말라니까.”
창밖을 내다보며 있으려니 어느새 뒤로 다가온 레오나드가 말했다. 담요로 꽁꽁 싸매져 있던 몸이 그에 의해 위로 쑥 들렸다.
“……방금 나온 거예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잖아요.”
“당연하지. 아직 환자잖아. 더 누워있어도 모자라.”
나를 안은 채로 걷던 레오나드가 조심스럽게 나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내 목 부분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주고 나서야 다 되었다는 얼굴로 내 옆에 걸터앉았다.
“황궁 정원에 꽃이 예쁘게 피었길래 구경하고 싶었는데.”
“다 나은 뒤에 하자. 날 잡아서 같이 산책해.”
레오나드가 흐트러진 내 머리를 정리해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나는 그 다정한 손길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다 나은 뒤라.’
여느 때였으면 그러자고 하면서 방긋 웃어 보였을 테지만 이번에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그로부터 열흘이던가.’
그래. 황궁으로 불려와 제럴드와 만난 에녹이 아브로고를 구하러 간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아멜리오 백작저까지는 걸리는 이틀을 제외하더라도 시간이 꽤 지났는데, 에녹은 이상하게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아직 찾지 못해서 그러는 건가 싶어서 백작가로 연락을 보내보았으나 돌아오는 답은 뜻밖이었다.
‘에녹 님은 백작가에 도착한 날 밤에 사라지셨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길래 급하게 황궁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고. 길버트의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설마 에녹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터라 황궁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혹시 몰라 사람을 여럿 붙이기까지 했는데 전부 그를 놓쳤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아이작 데프론까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지.’
에녹이 떠나고 이틀 뒤. 데프론 공작가에 심어놓은 첩자로부터 아이작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정말 아이작은 그 이후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귀족들은 아이작이 제 아들과 함께 있다가 사고를 당하기라도 한 것이 아니냐며 떠들어댔다.
물론 그 기저에는 레오나드를 향한 의심도 담겨있었다. 물론 당사자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느낌이 안 좋아.’
자꾸만 불안해졌다. 어쩌면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서일지도 몰랐다.
레오나드가 계속해서 생명력을 부어주는 탓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불과 열흘 만에 음식도 제대로 못 삼킬 지경이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니까.
‘뭐, 백작가로 사람을 보냈으니 곧 무언가 소식이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있자, 신경이 쓰였는지 레오나드가 몸을 기울여 내게 이마를 맞대며 입을 열었다.
“또 이상한 생각하지.”
……눈치는 귀신같이 빨라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별 소용없는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레오나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
“…….”
“다 잘 될 거야.”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그가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법 평온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게 닿는 손이 이따금 떨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내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걸.
그러니, 나는 놀라지 않았다.
백작가에 다녀온 기사가 근처 숲에서 무언가를 파낸 흔적을 발견했다고 보고해도.
에녹과 아이작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황궁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다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