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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0화 (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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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0)

결국 리나를 끄집어낸 우리는 모험가 길드 휴게실에 죽치고 있던 사이에 일어난 일을 들을 수 있었다.

“보스가 떠난 뒤에는 일단 길드에 있는 값진 물품부터 싹 긁어모았어. 보관이 조금 문제였는데, 마침 지부장도 자리를 비웠기에 지부장실에 있는 아공간 주머니에 다 넣었지.”

“그리고는?”

“시체는 아공간주머니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냅두고, 대신 용병길드에서 들이닥친 것처럼 도끼랑 검으로 흔적을 만들고 있었어.”

묘한 타이밍에 말이 끊겼다.

“작업을 끝까지 하지 못한 건가?”

“어... 그게 말이지?”

리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참 카운터를 박살내고 점원의 시체를 도끼로 찍던 참에 지부장이 돌아왔지 뭐야?”

“…….”

“마침 아공간주머니도 갖고 있었고. 영락없이 현행범으로 찍혀서 그대로 달아났어.”

결국 증거인멸은커녕 진범으로 찍혔다는 얘기였다.

“음?”

듣고 보니 딱히 나쁜 얘기도 아니다.

카이사르가 한 짓을 리나가 한 짓이라고 착각했다는 건...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웠다.”

“뭘 잘라내는 거야, 이 망할 보스가! 댁을 위해서 일하다가 진범으로 찍힌 거잖아!”

“무능한 것. 첫 번째 임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일을 꼬아버리다니.”

리나는 침울해졌다.

딱히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케 그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군. 아공간주머니를 들고 도망쳐도 됐을 텐데. 어째서 혼자 떠나지 않았지?”

“그야 공범을 만들… 려고 한 건 아니고 모처럼 보스의 부하 2호가 되기로 했잖아? 거물의 곁에서 보호… 아니, 등쳐먹기… 아니, 키잡이라고 해야 하나……?”

옆에서 보기가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만 둬.

변명이 갈수록 지리멸절해지잖아.

“왔으면 됐다. 식사를 마치면 씻고 잠이나 자라.”

“응!”

여관주인에게는 방을 빌렸다.

“2인실 하나, 1인실 하나.”

“없어요. 시간이 시간이니까, 남는 건 1인실 두 개에요.”

“그럼 그걸로. 덤으로 저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날이 차가우니까 뜨거운 물이면 목욕을 하기에도 좋겠지. 종업원은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1인실 방 번호 두 개와 씻을 수 있는 뜨거운 물을 실은 대야를 올려 보냈다.

뭐, 대야 정도가 어딘가.

생각한 것처럼 몸을 푹 담가서 씻지는 못해도 잘 아껴 쓰면 몸을 씻기에는 부족함 없는 양이다. 몸도 조그마하니까 어려울 건 없겠지.

“그럼 방 분배인가.”

방은 두 개고 인원은 셋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엄청난 난제에 사로잡혔음을 말이다.

‘리나는 여자애. 당연히 방 하나를 줘야지.’

그건 당연하다.

‘카이라스는 존나게 귀한 내 하수인. 충성도 관리를 위해서 방 하나를 줘야지.’

그것도 당연하다.

‘그럼 난 어디서 자는 거지?’

돈이 있는데 방이 없다.

한 방에 두 명이 잠들려면 한 명이 서서 자거나 둘 다 불편하게 몸을 말고 자야한다.

이 경우,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카이라스와 같은 방을 쓰고 잠드는 것이지만……. 저 놈이랑 몸을 말고 자면 둘 다 만족스레 자지 못하고, 충성도에도 악영향이 생긴다.

‘감히 나 정도의 고급인력을 불편하게 자게 하다니!’ 같은 반응이 예상된다.

녀석을 서서 자도록 만든다면 나야 편하게 잘 수는 있지만, 그게 이번 게임에서의 마지막 잠이 될지도 모른다.

자는 사이에 홧김에 저놈이 날 걷어차서 사망해버리면 어떡해. 악수로도 사람 죽이는 생또라이라고.

‘결국 내가 서서 자는 수밖에 없는가.’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을 상상해보니 엄청나게 싫어졌다.

부하는 편히 누워서 자는데 왜 나는 서서 자야 되냐.

심지어 누워서 자는 놈을 내려다보면서 자야 되는 거잖아.

“카이라스. 이만 잠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보스.”

“참고로 묻겠다만, 잠버릇은 있는가?”

카이라스는 피로에 쩐 눈으로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지금이라면 잠결에 사람 하나는 죽일 수 있습니다.”

“…….”

절대로 안 된다!

이놈이랑 같은 방을 쓰는 건 절대로 안 된다!

“넌 이 방에 들어가라.”

카이사르는 빤히 날 쳐다보다가 엄지를 내밀었다.

“남자다우시군요. 어쩐지 보스답지 않게 목욕물을 올리는 자비심을 보인다 싶더라니, 그런 어린 소녀부하의 처녀를 취하고자 하셨을 줄이야.”

“틀리다!”

“일단은 키워서 잡아먹으려는 속셈입니까? 그렇다면 열두 시간이나 쓰레기통에 박혀 고생한 리나를 선잠을 들게 괴롭힌 뒤, 의지력을 꺾고 몸을 지배하려는 계획이군요.”

네놈의 보스에 대한 인상은 뭐냐.

그런 쓰레기는 여기에 없다고.

“나는 방을 사용하지 않는다.”

“후우. 여관주인을 살해하는 건 곤란합니다. 소란이 벌어지면 오래 잠들지 못합니다.”

“여관주인을 죽이지도 않는다!”

카이사르는 시큰둥하니 물었다.

“그럼 어떻게 주무시겠다는 겁니까.”

하루를 자지 않으면 SP(Stemina Point)가 하락한다. 이틀부터는 HP(Health Point)와 MP(Mana Point)가 하락하고, 삼일부터는 능력치 감소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래도 하루만 날을 새는 정도면 상태이상 [수면부족]은 악화되지 않는다.

그런 계산이 선 내 말에 카이사르는 인상을 구겼다.

“이상합니다. 누구보다도 냉혹한 보스가 방 두 개를 모두 넘기고, 여관주인을 죽이지도 않는다면... 설마 부하인 저희들에게 잠자리를 양보한다는 겁니까?”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무슨 피에 굶주린 희대의 미치광이이자 싸이코패스 성격파탄자로 여기며 모시고 있는 카이사르에게, 방을 양보한다는 배려심 넘치는 행동은 납득이 안 가는 행동이다.

납득이 안 가면 나를 보스로 모시지도 않을 것이고, 보스가 아닌 내 목숨을 살려두어야 할 이유를 찾지도 못한다.

‘방을 양보하면 죽는다!’

그딴 착한 행동은 나한테 어울리는 게 아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방을 양보한다니.”

“그럼 오늘은 어디서 주무실 계획입니까?”

“이딴 비좁은 여관이 아닌 다른 여관에 갈 거다.”

카이사르는 한방 먹었다는 듯이 피식 거리며 말했다.

“역시 보스다우십니다. 설마 부하들만 싸구려 여관에 박아두고 스스로만 고급여관에 몸을 눕히겠다니. 불순한 착각을 해서 죄송합니다.”

네놈의 상상력이 훨씬 더 불순해.

이 녀석은 진짜 헷갈린다.

바보 취급하는 건지, 보스 취급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깐.

* * *

나른한 햇볕 아래 취침을 만끽하던 도중,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까닭모를 불안함을 느끼는데 대뜸 귓가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십시오. 보스.”

“!!”

나는 기겁하며 눈을 부릅떴다.

참 더러운 꿈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침대시트에 검날을 닦던 카이사르의 모습이 보였다.

이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잠시 꿈속의 꿈이 아닌지 고민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급한 용건이 있는 와중에 보스의 호출이 늦었던지라, 실례됨을 알면서도 몸소 찾아왔습니다.”

창밖을 보니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이다.

나, 기껏해야 3시간도 못 잤네.

그래서 세 시간 만에 내 잠을 깨운 용건이라는 건 뭘까.

“아침식사는 비프수프로 하시겠습니까, 으깬 깻잎을 넣은 샌드위치로 하시겠습니까?”

“...뭐?”

“아침식사를 수프와 샌드위치 중에 어느 걸로 드시겠냐고 물었습니다.”

이거 좀 빡치네.

“그게 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나를 잠자리에서 깨워야 할 정도로 급한 용무였는가?”

“그렇습니다.”

“…….”

빡친다.

이 녀석을 어떻게든 한 번만 아주 세게 때리고 싶다.

뭐 이런 또라이 같은 녀석이 다 있지?

“먹지 않는다.”

“보스. 아무리 허접한 식사메뉴에 분노하셨어도 끼니를 거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빈약한 몸에 근육이 붙지 않을 겁니다.”

“딱히 그딴 일로 화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화나는 겐 네놈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다.

하아, 누굴 탓하랴.

모든 건 너라는 녀석을 이 세상에 만들어낸 내 업보지.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이렇게 와 닿는 경우도 처음이다.

다음에 하수인을 만들 일이 있으면 살인병기는 두 번 다시 만들지 않을 거다.

겁나 착하고 온순한 새끼 고양이 같은 걸 만들어야겠다.

“난 지금 피로하다. 방해하지 말고 꺼져.”

“...알겠습니다.”

축객령을 내리자 고분고분 말은 잘 듣는다.

말도 안 들었으면 이딴 새끼 진즉에 갖다버렸지.

“잠깐.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 거냐.”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놈 성격에 사람들과 정상적인 회화가 가능할 리가 없다.

정신이 확 깨어나자 코를 자극하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가만 보니 놈이 칼을 닦은 침대시트의 색깔이 새빨갛다.

“몇 명을 죽였냐.”

“한 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바꾸지. 몇 명을 그 검으로 베었냐.”

“일곱 명입니다.”

“…….”

경비대 플래그가 섰다!

이거 걸리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체포당하게 생겼잖아!

“목격자는?”

“없습니다.”

“입막음은?”

“확실하게 했습니다.”

긴장한 것도 잠시, 나는 간신히 안도하였다.

“그럼 되었다. 사고치고 다니지 마라.”

“예.”

하는 짓은 난폭해도 이 녀석에게는 최소한의 사리분별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막무가내로 미쳐 날뛰면 경비대에 체포당해 감옥에 갇힌다, 정도의 기초상식은 있다.

정말로 그런 종류의 기초상식밖에 없어서 문제이지만.

“저기, 보스.”

천장이 불쑥 열리며 리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냐.

저년은 왜 천장 열고 나오는 건데.

“뭐냐.”

“방금 전의 대화, 도대체 어떻게 성립되는 거야?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아.”

“우선 네가 거기에 있는 이유부터 설명해라.”

리나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스는 장차 거물이 될 몸이잖아? 어제의 행동을 보니 혼자 두면 자는 사이에 암살이라도 당할 것 같아서 경호를 서줬어.”

“그거 참 고맙군.”

나를 암살이나 당할 것 같은 거물로 봐주다니.

이거 참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물론 저딴 말 들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다.

“그 위에는 어떻게 올라간 거냐.”

“빈 방이기에. 들어갔어.”

산이 있어서 오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하지 마라.

하아, 진짜 골 때리네.

이거 카이사르랑은 다른 의미의 바보가 늘었잖아.

“천장의 그 구멍은?”

“아래가 안보여서, 잘랐어.”

“...”

이 녀석에게 질문을 하는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든다.

상식이 부족하기로는 카이사르와 막상막하다.

문득 나는 이 상황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서 간단한 삼단논법을 따라가 보자.

상식이 부족한 학살자와 상식이 부족한 암살자가 나를 보스라고 부르며 따라다닌다.

부하의 행동은 전부 주인의 묵인이나 허가 하에 벌어진다.

상식이 부족한 학살자와 암살자가 저지르는 악행은 전부 내가 지시하거나 허락한 걸로 여겨진다.

위층 빈방의 천장 바닥에 네모반듯한 구멍을 뚫은 것도.

침대시트에 시뻘건 피를 닦아댄 것도 말이다.

“...일단 여길 벗어난다.”

범죄현장의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돌아오려던 잠기운마저 싹 달아났다.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침상을 벗어나자 카이사르가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침은 뭘로 드시겠습니까?”

안 먹는다고.

니 처먹고 싶은 거나 먹으러 꺼져,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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