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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1화 (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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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1)

돈이 많으니까 초기 플레이에 부족함이 없다. 남들은 푼돈을 벌려고 개고생을 하고 있을 때임을 고급여관을 나선 뒤에나 알 수 있었다.

“크으윽! 젠장, 어렵잖아!”

“미궁도시보다 난이도가 세 배는 올랐어!”

“게이머의 신체반응성이 높아진 건 좋은데 몬스터의 행동까지 정교해지면 뭔 의미가 있냐고...”

“맞아. 애초에 우리는 동기화 비율에 따라서 신체반응성의 효력도 덜 받는데, 걔들은 그런 페널티도 없잖아.”

“설마 잡몹과의 전투부터 매번 레이드 치르는 기분으로 나서야 하다니... 에혀.”

패잔병의 몰골을 한 두 남자가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들은 힐끔 이쪽을 바라보더니 슬쩍 중얼거렸다.

“쳇, 부러운 NPC 녀석들. 고급여관에는 잠자리에서 쥐도 안 나온다던데. 침대도 푹신푹신하다지?”

“애초에 우리 여관이 구리다니깐. 내가 뭐랬어. 요금을 좀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요리를 맛있게 하는 여관을 잡자고 했었지?”

“아아,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저 쩌는 갑옷 입은 남자나 완전 귀여운 여자아이랑 다니는 사람처럼 되고 싶다.”

생활수준은 얼추 가늠 된다.

새벽에 확인한 여관의 숙박비는 일일 30쿠퍼.

최하급 여관이면 20쿠퍼에 불과하다.

남들은 되도록 기피하는 최하급 여관에서 숙박하는 건 수면회복 보너스를 받기 위해서 여관에는 묵고 싶고, 하급여관의 안락한 잠자리는 부담스러운 놈들이 택하는 선택지다.

차라리 욕심을 버리고 마구간에서 자면 푹신한 짚더미에서 잘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마구간에서 받는 수면회복 보너스는 상당히 저조하다.

최하급여관에서의 8시간 수면을 마구간에서 대체하려면 12시간은 자야 한다.

‘잠을 자면 알아서 HP와 MP, SP가 오르는 건 편하지만 건강상태의 회복속도는 돈에 비례한단 말이지.’

최하급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는 돈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10쿠퍼 차이의 하급여관을 선택할 수 없을 정도의 빈곤함이라면 분명 변변찮은 수준이리라.

‘뭐,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이지만.’

당장에 내가 거느린 부하들이 누구인가.

학살자 카이사르, 어쌔신 리나.

전투에 나섬에 있어서 이보다 든든한 인선은 없다.

“뭐야, 이 새끼야. 지금 보스를 째려본 거냐? 앙?”

“앗, 저 사람 내 몸도 훔쳐봤어! 기분 나쁘니까 베어줘!”

이 새끼들은 언제나 전장에 나선 기분이라 문제이지.

상성도 나쁘다.

카이사르의 호전적인 면모를 리나는 적극 이용하고 있다.

“깔깔깔!”

카이사르가 바보짓을 하게 만들고, 리나가 그걸 보며 즐기는 일방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만.

[카이사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2 상승합니다.]

책임은 연대책임이다.

심지어 매번 내 악명수치가 쟤보다 더 많이 오른다.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대체 왜!?

“그만. 오늘은 향후의 방침을 결정짓는다. 이런 중요한 날에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지 마라.”

“알겠습니다, 보스.”

“오오. 보스, 드디어 우리들도 뭔가 저지르는 거야?”

강렬한 열망을 드러내는 카이사르와 호기심 가득 찬 리나.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선언하였다.

“일단 미궁으로 진입한다. 당장은 힘을 키우고 잠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즉각 반발했다.

“보스. 어째서 그런 짓을 해야 합니까!”

“잠적이라니, 누구한테서?”

와, 나 지금 울화통이 터져버릴 것 같네.

누구 때문에 하는 잠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희 둘 때문에 하는 잠적이잖아.

“범죄길드다. 카이사르가 죽인 점원과 그 시체를 훼손하다가 적발된 리나 덕분에 범죄길드는 이 순간에도 열심히 우리를... 정확히는 리나를 쫓고 있겠지. 내 말이 틀렸나?”

리나는 애써 시선을 외면한 채 휘파람을 불었다. 카이사르도 원인제공자라는 자각은 있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도 군말은 않았다.

“너무 아니꼽게 여기지 마라. 어차피 언젠가는 들어가야 했을 미궁이었다. 가벼운 사전적응이라고 생각해라.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냐?”

“그럴 리가. 이깟 미궁은 해가 지기 전에 단숨에 클리어해서 보스의 부하 1호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앗, 그럼 던전 코어는 내꺼!”

속 편한 소릴 하고 있네. 미궁도시에서도 10년 동안 미궁이 클리어 된 적이 없는데.

1 대 10의 시간비율을 고려하면 게임 속 시간으로는 무려 100년. 무려 한 세기가 지나도록 심층지대에 가로막혀서 클리어 되지 못한 게 미궁이다.

하물며 미궁세계에서는 몬스터의 체감난이도가 3배는 상승했다는 모양이니 공략시간이 길면 길어졌지, 짧아지지는 않을 거다.

“오늘 해가 저무는 건 고사하고, 일 년이라는 해가 지나가도 클리어 못할 게 던전이다. 허무맹랑한 소리는 그만 두고 쇼핑부터 한다.”

“바로 미궁에 가는 게 아닙니까?”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과 안에 들고 갈 식량을 모조리 양손으로 잔뜩 끌어안고 다니고 싶은가?”

카이사르는 얌전히 입을 닥쳤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조용해지는 건 대부분의 인간과 별반 다를 바 없구나.

이딴 쫌생이 같은 면모에서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녀석이라는 게 정말 혐오스럽다. 그보다 이놈이랑 있으면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쇼핑? 저기, 보스. 그럼 옷도 사도 돼?”

“네 금발은 눈에 띄니까. 일단은 복장을 달리 할 필요는 있겠지.”

“후훗. 뭐~야. 보스도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거야? 아닌 척 하면서 내 매력에 홀딱 넘어갔을 줄이야.”

이건 뭔 미친 소리지.

허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귀여운 척 애교를 부리는 리나.

그런 녀석의 이마를 한손으로 밀치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떨어져라, 쓰레기녀.”

“쓰, 쓰레기!?”

“아직도 냄새가 덜 빠졌다. 구린 년.”

리나는 완전 충격 받은 모양이었다.

[리나의 호감도가 1 하락합니다.]

호감도 따위 알게 뭐냐.

저런 꼬맹이랑 연애할 것도 아닌데.

충성도만 안 떨어지면 된다.

“가서 최대한 못생기게 위장할 수 있는 옷을 골라라. 덤으로 네 거슬리는 금발을 눈에 띄지 않게 덮어버릴 로브를 뒤집어쓰고 오고.”

“우우우. 너무 해, 보스!”

리나의 항의에 뜻밖에도 카이사르가 동조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보스. 이건 좀 너무합니다.”

“뭐...?”

“사람에게는 모름지기 취향이란 게 있는 법 아닙니까.”

고급 장비를 몸에 떡칠했으니 취향 타령을 할만도 하겠네.

근데 그거 내 취향이다, 인마.

이 자식이 남이 사준 장비로 유세부리고 있네.

“그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라. 어떤 기회를?”

“자신이 탐나는 옷을 입은 여자를 암살할 기회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딴 기회는 두 번 다시 주지 않겠다.

그보다 네놈의 장비, 실제로는 원주인에게서 강탈했다는 설정이었냐!?

지금의 네 대사로 뭔가 엄청나게 불안해졌다고!

“이 멍청이는 무시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갖춰 입어라.”

“우우. 알았어, 보스.”

“그럼 그 동안 우리는 보급품을 구매하겠다.”

나는 카이사를 이끌고 넉넉한 배낭가방과 이틀 치 보급식량, 모험가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품 따위를 구매했다. 카이사르는 내 수행을 들며 의외라는 눈치였다.

“모험가의 준비물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오래도록 준비했으니까.”

“과연…….”

한 세기나 걸쳐서 해온 일이면 어색할 것도 없다.

리나도 일단은 여자니까 쇼핑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릴 터.

내친김에 내 허름한 옷차림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봐. 남성용 옷가게를 찾고 있는데.”

통행인에게 말을 걸자 어째서인지 다들 발걸음을 빨리하며 달아났다.

원인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이사르.”

“무엇이든 명령하십시오, 보스.”

“눈 깔아.”

네놈 눈이 험악하니까 인간들이 얼씬거리지를 못하잖아.

예상대로 다음 통행인은 주춤거리면서도 안내는 했다.

이상하게도 이럴 때의 카이사르는 불만 한번 없단 말이지.

“점원. 기성품 옷이 아닌 모험가 전용 옷을 보고 싶다만.”

“네에? 그런 차림으로 돈은 있으세요? 저기, 좀 더 벌어오지 않으시면 구매는 힘드신데요? 풋.”

어째서인지 태도가 불량한 점원이 나왔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니까 좀 엿먹여주자.

“잘 참았다. 카이사르, 눈 올려라.”

“히이이이익!”

카이사르와 눈을 마주친 점원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감히 보스를 거지 취급하다니.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겨, 경비대를 부를 거예요!”

“얼마든지 불러라! 이참에 브람 시의 경비대도 전부..”

그만 둬, 얼간아!

느닷없이 경비대에 호승심을 불태우지 말라고!

“어제도 리나는 우리를 열두 시간이나 기다렸다. 오늘도 리나를 기다리게 만들 셈이냐.”

“으음.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계집. 목을 베는 건 네놈 하나로 끝내주지.”

조금도 운이 좋아지지 않은 것 같은데!?

확정적으로 저 여자는 죽는 거냐?

나 원 참, 보복하는 방법이 세련되지 못하기는.

“법에 저촉되는 일은 소란을 일으킨다. 이런 대로변에서 목격자를 전부 죽이려면 도시 전체와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지금의 네게는 시기상조이다.”

“으음. 기대에 부응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보스.”

아니.

딱히 네가 도시 전체랑 전쟁해서 이기는 기대는 안했는데.

그딴 거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했잖아.

“네 방식은 언제나 과격하다. 그런 행동이 필요한 때가 있기에 널 부하로 삼았지만, 때로는 다른 행동이 요구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자중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골드주머니를 흔들어보였다.

쩔렁.

묵직한 돈 소리에 점원이 경악했다.

“금화다. 이 돈이면 이 가게의 옷을 몇 벌 살 수 있지?”

“저, 전부 사는 것도 가능합니다.”

“싹 다 포장해. 사람을 보내 찾으러 오겠다.”

점원은 혼비백산하여 어버버 거리다가 하나씩 옷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카이사르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는 다른 가게에서 필요한 옷을 모두 구비했다.

“포장은 어째서 시키신 겁니까?”

“저 년의 어리석음이 내 귀한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들었다. 그 대가로 저년은 가게의 모든 옷을 포장하고 다시 진열하는 수고스러운 시간낭비를 감수한다.”

“과연. 합리적인 방침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원한을 품은 년이 귀찮게 굴지 않겠습니까?”

나는 뭐가 문제냐는 투로 말했다.

“그때를 위해 있는 게 바로 너다.”

“듣기 좋은 말이군요.”

“되도록 빠르게 네 차례가 오기를 기대해주지.”

카이사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표정만 보면 충성도가 5쯤 오를 법한데 1도 안 오른다.

가성비 존나 나쁘네.

별 다른 수고스러움 없이 우리는 리나가 기다리던 옷가게로 돌아왔다.

옷값만 계산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거 봐봐!’라며 옷자랑을 하는 리나를 보니 도저히 계산할 수가 없었다.

“어때? 이쁘지? 그치?”

이쁘기는 하다. 핑크색 로브가 리나의 작은 체구와 어우러져서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당연히 눈에 졸라 잘 띄니까 저런 건 절대로 안 산다.

“점원. 이 가게에서 가장 눈에 안 띄는 로브 색깔이 뭐냐.”

“역시 회색이죠?”

“그걸로 하나. 저 아이의 사이즈에 맞춰서.”

“싫어 싫어! 핑크색이 리나 꺼야! 회색 따윈 우중충한 보스나 가져!”

“놀러가는 게 아니다. 애처럼 굴지 마라.”

리나는 손발을 아등바등 휘두르며 땡깡 부렸다.

“싫어어어어!”

어쩌지. 이 조그마한 녀석을 확 때려버릴 수도 없고.

분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이었다.

카이사르가 내 옆을 뚜벅 뚜벅 걸어서 지나갔다.

“계집.”

“계집 아니다! 리나거든!”

“땡깡은 네놈의 어미젖이나 빨면서 부리고, 닥치고 회색로브를 쳐 입어.”

쿵.

솥뚜껑같은 주먹으로 머리통을 내리쳤다.

리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무력하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불편한 심정으로 리나를 지켜보던 점원과 내 입마저 쩍 벌어졌다.

한 마디의 필터링도 없는 묵직한 돌직구에 돌펀치라니.

이 녀석은 여자나 아이, 심지어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여자아이에 대한 자비심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건가.

‘훌륭하군.’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카이사르 주제에 모처럼 실용적인 부분에서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었군.

============================ 작품 후기 ============================

<잡담>

아냐아아야아

시쪄시쪄

리나꺼야!!!

뿌애애애애애앵

리나꺼어어ㅇ어엉어어어어억!!!!!!

뺴애애애애애애애애액!!!!!!!!!!!! 핑크 로브!핑크 로브!!!!!핑크로브!!!!!!!!!

라고 하려다가 셀프 발암에 걸려서 징징강도를 낮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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