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5)
한참 사고를 치고 있을 카이사르와 어떻게 합류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리나가 코를 킁킁거렸다.
“어라. 피 냄새?”
“…….”
맡을 수 있는 거냐!
어떤 의미로는 암살자다운 예민한 감각이다만.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깨는 느낌이다.
“살인광 놈의 피는 아닌 것 같은데. 어때, 보스?”
뭐라고 대답해줄까.
이 피 냄새는 카이사르의 것이 아닌 게 확실하다?
내 코는 네년처럼 피에 굶주리지 않았다?
“쫓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는 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그 살인광이 혼자라서 힘들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대신 우릴 지상으로 보내줄 유일한 구명줄이 잘려나가고 있지.”
리나는 기겁하며 추적에 나섰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추적은 어떻게든 성공했다.
대신 가는 동안에 모험가 두 명이 더 죽었다.
“제, 제발 살려줘...”
세 구의 시체 너머, 카이사르는 마지막 모험가의 목을 분지르기 직전이었다.
“멈춰라, 카이사르.”
“보스. 이 녀석들은 같은 모험가를 전문적으로 털어먹는 모험가 킬러입니다.”
“뭐...?”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이해가 안 되는군. 모험가 킬러면 왜 우리들을 보고 그냥 지나친 거냐.”
“그거야 당연합니다. 얼굴만 반반한 계집과 달리, 저는 한눈에 봐도 위험합니다. 덤으로 보스는 더 위험합니다. 자연스레 저희를 털어먹기를 포기한 겁니다.”
“아니, 잠깐. 지금의 설명으로 더 이해가 어려워졌다.”
나는 진심으로 의문에 빠졌다.
“이봐, 모험가 킬러.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놈. 보스의 질문에 잘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그 혀가 남아있는 이유는 보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니까.”
“네, 넵. 말씀만 해주십쇼.”
카이사르의 박력 넘치는 협박 때문에 괜히 질문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결국은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내가 저놈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고?”
모험가 킬러는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 그렇습니다.”
“방금 뭔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딴 생각은 다 집어치우고 내 얼굴을 똑똑히 들여다봐라.”
나는 모험가 킬러를 빤히 내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지?”
“좆 됐다?”
“…….”
진짜로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내 얼굴은.
보자마자 좆 됐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외모라잖아.
리나에게도 들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훨씬 충격이 더 크다.
“아아... 뭐 됐어. 뒤는 알아서 처리해라.”
“괜찮겠습니까?”
“한 놈이면 됐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고.”
이놈을 사로잡았으니 지상까지 가는 건 어떻게든 되겠지. 어르고 달래서 질질 끌고 가는 건 피곤하니까 그 부분은 카이사르한테 맡기자.
“보스도 참 해학적이시군. 네놈의 처지가 좆 됐다는 걸 알려주고자 시간을 들이시다니.”
“으으으.”
“이걸로 네놈의 쓸모는 다했으니 죽어라.”
푸슉.
[카이사르가 모험가 한 명을 죽였습니다.]
[파티경험치로 극미량의 경험치를 습득했습니다.]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스킬 포인트가 1 제공되었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사용하여 새로운 직업스킬을 습득하거나 기존의 스킬을 강화하실 수 있습니다.]
[직업스킬 ‘보스의 기백’의 스킬숙련도가 대량 상승합니다.]
[Tip> 패시브 스킬(Passive Skill)은 해당 스킬에 걸맞은 행동을 할 시, 스킬숙련도를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대량의 알림창에 멍해지기도 잠시.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저 새끼가 갑자기 저걸 왜 찔러 죽여?
“보스의 가학심을 충족시켰으니 녀석은 이제 가치를 다했군요. 참 덧없는 목숨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런 미친.
이 새끼의 충성심이 존나 왜곡됐다는 걸 잊고 있었다.
본래 의도야 물론 밖에 나가게 살려둬라, 였다.
그걸 이 녀석은 괴롭힐 만큼 괴롭혔으니 이제 죽여라, 라고 초월번역을 해서 들어버린 거다.
이 무슨 인상파 번역가란 말인가. 같은 나라 말로 하는데 왜 이 멍청한 새끼는 알아듣지를 못하는가! 심지어 충성심이 깎일까봐 뭐라고 말도 못하겠다!
“이걸로 만족하십니까?”
얼굴에 피칠갑을 한 카이사르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꿈에 튀어나올까봐 무서운 꼴이다.
저 싸이코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았다.
“잘했다.”
나도 모르게 쫄아서 칭찬해버렸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걸로 한계였다고.
무슨 말을 내뱉는지는 알게 뭐야.
“놈들이 모험가 킬러라 생각한 이유는... 이거였군.”
피 묻은 무기가 몇 자루, 배낭에서 나왔다.
신입 모험가들이 종종 구매하는 상점표 싸구려 아밍소드.
보통은 같은 걸 몇 자루나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다.
이건 전부 전리품일 거다.
혹시나 싶어 품을 뒤지니 수상한 주머니가 나왔다.
안에는 사람 손톱이 가득 담겨있었다.
‘킬러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맛이 가있군.’
문득 무기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리나. 이 피 냄새를 기억할 수 있는가?”
“가능하긴 한데. 왜?”
“냄새를 쫓으면 모험가가 살해당한 현장을 찾을 수 있다. 그런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미궁의 입구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리나의 머리 위에도 작게 느낌표가 떠올랐다.
“좋은 생각! 역시 보스는 대단해! 한번 해볼게!”
리나는 피 냄새를 양껏 음미하더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는 두 팔과 두 다리로 땅을 짚으며 독특한 자세로 수 미터를 움직이다가 멈췄다.
“이거 같은데?”
리나는 주검이 된 시체를 발로 툭 걷어찼다.
“...”
그러겠네.
아밍 소드에 묻은 피는 무기 주인의 피가 아니겠지.
그걸로 베는 건 이쪽에 있는 모험가 킬러잖아.
개쪽팔리네 진짜.
나는 애써 머쓱함을 감춘 채, 쓰러진 그놈의 허리춤에서 무기를 뽑았다.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녀석이라면 그만큼 모험가들을 상대할 때 격전을 치렀겠지. 무기에 묻은 피도 가장 많고 냄새도 짙을 거다. 이걸로 추적을 해라.”
“응? 그런 이유라면 저걸 수색해야 하지 않아?”
리나는 다른 시체를 가리켰다.
‘너덜너덜하잖아!!’
지금 녀석이 입은 검상이 큰 거 두 개라면, 저쪽의 녀석이 입은 부상은 자잘한 것과 큰 걸 모두 합쳐서 무려 열 개가 넘어갔다.
“...그럼 그걸로.”
모험가 킬러들의 소지품과 전리품은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담았으니 모험가 길드에 증거제출과 보고를 하고 포상금을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리나를 앞세워 수색을 개시했다. 그리고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계단이군.”
“에헴, 역시 난 대단하지? 그렇지, 보스?”
“확실히 대단하군.”
나는 한 마디마다 잘근잘근 씹어내듯 말했다.
“이번에도 아래로 가는 계단을 찾아내다니. 그렇게나 B3층이 가고 싶었던 건가.”
“틀려! 피 냄새를 쫓아왔을 뿐인걸!”
생각지도 못한 맹점이었다.
설마 모험가 킬러들이 이미 한 건 저지르고 올라오는 중이었을 줄이야.
신입 모험가는 당연히 허접이니까 우리보다 위에서 살해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오산이었다.
“아니. 여기도 나쁘지 않겠어.”
“보스?”
“모험가라면 분명 계단을 종종 이용하겠지. 만일 이 장소를 사용하는 모험가들이 있다면 다른 통로에 있을 때보다는 여기에 있는 게 마주칠 확률이 더 높다.”
“오오, 그럴싸해!”
“보스. 습득한 전리품의 가치를 높일 겸, 피 묻은 장비들이나 닦고 있는 건 어떻습니까?”
카이사르가 간만에 좋은 의견을 내놓았다.
“좋은 생각이다, 카이사르.”
“별 말씀을.”
나야 원래 대단한데 뭘 새삼스레 칭찬이냐는 투다.
역시 이 새낀 뭔가 띠꺼워.
리나랑은 다르게 도통 정이 붙지를 않는다니깐.
슥슥. 슥슥.
마른 천에 피를 닦는데, 얼마나 피를 철철 흘리며 싸웠는지 천이 피범벅이 되었다.
여분의 천도 전부 피범벅이가 될 것 같아서 비싼 값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천 옷 하나를 찢었다.
“전리품을 포기하고 만든 천이니 깨끗하게 닦아라.”
그렇게 셋이서 사이좋게 무기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와중이었다.
“%^&$──!”
“@#$^$#────!”
멀리서 희미하나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계단 아래에서 모험가들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드디어! 해방이다! 얏호!”
리나의 외침을 듣고 저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멎었다.
“여기야! 길을 잃었어! 누가 좀 도와줘!”
일단은 여자아이의 목소리라서 그런 걸까. 발소리들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거의 뛰어올라오는 속도다.
나무로나마 방패를 든 전사가 선두로, 단검을 역수로 든 도적이 다음으로, 마지막은 조잡한 활을 든 궁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예상대로 모험가들은 셋 다 남자였다.
“우왓, 살았다...”
“어휴. 진짜 무서웠다고.”
“꼬마야, 그쪽은 괜찮아?”
어째 반응이 죽다 살아난 자들의 것이다. 깡충깡충 뛰며 기쁨과 안도를 표현하려던 리나도 제가 취해야 할 반응을 저들에게 빼앗기자 적잖이 당황했다.
“어... 괜찮은 것 같아. 두 가지만 빼고.”
“어떤 거?”
“길을 잃은 거랑 너한테 꼬마라고 불린 거.”
전사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래, 꼬마아가씨. 아무튼 요 밑에는 굉장한 일이 있었다고. 모험가 몇 파티가 시체로 발견됐는데, 아무래도 실력 있는 모험가 킬러들이 돌아다니는 모양이야.”
“저런!”
“무기도 싹 다 털린 걸 보니까… 다 합치면… 아마 저 정도 숫자의 검이지 않을까 싶은ㄷ……”
리나의 뒤에서 검을 닦던 나와 카이사르를 보더니, 전사남자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어 개미만도 못하게 되었다.
“어, 저기, 아저씨?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전사남자의 뒤로 도적남자가 단검을 치켜들고, 궁수남자는 활시위에 화살까지 매겼다.
“제이슨. 저길 봐. 피를 닦은 천이 한 가득이야.”
“맙소사. 아무래도 저놈들이…….”
도적과 궁수의 대화를 들으니 제대로 오해한 것 같다.
전사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꼬마아가씨, 이쪽으로 와.”
“왜?”
“저 놈들은 위험한 놈들이야.”
리나는 웃음을 참느라 힘껏 입술을 악물었다.
그 모습을 본 전사의 오해는 한층 더 커졌다.
“이런 비열한 녀석들. 꼬마아가씨의 약점을 잡았구나!”
“아, 아니. 딱히 그런 게.. 좀 그만두면 안 돼?”
“괜찮다, 꼬마아가씨. 동료가 잡혔다면 우리가 구해줄게! 저 비열한 악당들에게 굴해서는 안 돼!”
듣다 못한 카이사르가 벌떡 일어났다.
“네놈들. 지금 보스를 비열하다고 했냐?”
어째서 비열함에만 스위치가 켜진 거냐.
부정할 거면 악당이라는 부분도 좀 부정해 달라고!
“헉! 저놈의 장비 좀 봐!”
“미친. 보통 모험가 킬러가 아니잖아.”
“맙소사. 우린 다 죽을 거야.”
남자들의 사기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카이사르는 이죽거렸다.
“이 꼬맹이를 구한다고 큰 소리 뻥뻥 치더니, 꼴이 말이 아니군.”
“으으으, 모두 물러서지마! 어차피 퇴로는 놈들이 가로막았어. 작정하고 여길 사냥터로 삼은 거야.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꼬마아가씨가 도망칠 기회 정도는 만들어보자고!”
“제이슨, 너 이 자식! 고향에 두고 온 그녀는 어쩌려고 그래! 이런 곳에서 죽어도 좋은 몸이 아니잖아!”
도적은 전사를 밀치며 앞장섰다.
“꼬마아가씨는 네가 데리고 도망쳐. 여긴 우리가 맡겠어!”
“홀란...!”
이놈들이 아주 드라마를 찍고 앉아있네.
하도 상황이 재밌어서 구경만 하고 있었지만, 이러다가 진짜로 일이 터질까봐 무섭다.
“카이사르. 장난 그만하고 제대로 해명해라.”
“알겠습니다, 보스.”
카이사르는 전사를 향해 걸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장난감 칼은 집어넣지 그래.”
“멈춰! 더 이상 다가오면 베어버리겠어!”
카이사르는 전사의 외침을 무시했다.
전사는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검을 휘둘렀다!
콰직! 챙강!
카이사르는 짜증스레 검을 쥔 손을 낚아채 벽에 휘둘렀다.
순식간에 전사의 검이 부러졌다.
연달아 팔을 꺾고 무릎을 걷어차자 전사가 쓰러졌다.
“애송이들. 함부로 무기를 겨누지 말고 잘 들어라.”
카이사르는 장난기 하나 없는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스랑 나는 전리품을 닦는 중이고. 그 계집은 우리 거다. 이해했냐?”
도적과 궁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이사르는 전사를 퍽 걷어차고는 말했다.
“보스. 분부대로 해명을 마쳤습니다. 이놈들은 굳이 세 명이나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두 명은 죽입니까?”
[카이사르의 악명이 5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5 상승합니다.]
전혀 해명이 되지 않았잖아!! 악명만 엄청나게 올랐어!!
엄한 소리도 말라고!
그렇게 말하면 누가 들어도 우리가 범인인 것 같잖아!
“세 명 다 살아있는 채로 같이 올라갈 거다.”
“노예로 팔아넘기려는 겁니까?”
[모험가 파티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카이사르가 공포유발 스킬을 습득합니다.]
오, 제발.
이 빌어먹을 카이사르야.
“하아.”
제발 그 입 좀 닥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