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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37화 (37/224)

00037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12)

재접속을 마친 뒤, 나는 곧바로 청학도장에 이변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고자 리나를 정찰로 보냈다.

“바르돈이 한 건 저질러줬어! 청학이 정체불명의 검객과 시비가 붙어서 복부를 강타 당하고 내상을 입었어!”

“좋다. 그럼 남은 건 가토 쪽인가. 카이사르, 가토의 준비는 끝났나?”

“아직 동귀어진의 핵심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청학이 티 나지 않는 부상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적기. 그리 많은 시간을 줄 수는 없다. 가토가 청학을 이길 기회는 아무리 길어봤자 앞으로 이틀이 한계다.”

카이사르는 눈을 감았다.

“아무리 몰아붙여도 녀석에게는 무리입니다. 이틀로는 절대로 강해질 수 없습니다. 보스. 저 풋내기에게는 결정적인 재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대체 그건 어떤 재능이지?”

“자신을 죽이고 깎아내는 재능입니다.”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 재능은 들어본 적도 없다. 설명해라.”

“저나 보스 같은 강자에게는 필요 없는 재능입니다. 힘이 없고 약한 녀석들이 속성으로 강해지기 위한 방법. 그건 바로 자신 안의 나약함을 죽이고 깎아내는 겁니다.”

“그건!”

“살을 주었지만 헛된 희생이 되었을 때를 향한 공포. 뼈를 취했지만 이길 수 없을 때의 공포. 그런 공포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움직임은 더디고 살기는 무뎌집니다.”

“과연. 그런 재능인가…….”

카이사르의 말은 옳다.

약자가 어떻게든 강자를 이기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그때는 목숨 정도는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강자와의 격차가 크다면 부족하다.

그저 목숨을 거는 정도로 끝나면 개죽음이 된다.

무언가를 하나씩 쳐내고 깎아내야만 한다.

공포심, 자비심, 마음에 깃든 모든 감정과 사념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끄집어내 죽인다.

그 끝에 오직 순수한 살의만이 남아야만 이길 수 있다.

망설임 없는 올곧은 살의는 검속을 상승시키고 어떤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적에 맞선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며, 뼈를 주면 목숨을 취한다.

고통내성을 지니지 않은 자라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무자비한 발상이다.

‘카이사르에게 고통내성을 부여한 건 나였지.’

그래, 내가 만들었다.

카이사르라는 괴물 같은 인간이 내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겁을 먹는다면 나는 내 선택을 부정하는 거다.

“마지막이다. 가토와의 대련을 실시해라.”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가토는 포기한다. 녀석의 의지가 부족했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마지막에 검을 겨루는 건 청학과 가토, 당사자들이니까.”

“내기를 포기할 생각입니까?”

“설마. 나는 지는 걸 싫어한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이기고, 또 이겨서 악착같이 증명해 보인다.

내가 어째서 랭커였는지를.

약자는 버림으로서 강함을 증명하지만 나는 다르다.

“강자는 지킴으로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지. 무엇을 지킬지, 어디까지 지켜낼지, 무엇을 걸고 지켜낼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보스가 지키고자 하는 건 무엇입니까?”

“권위다! 내가 하는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루어져야만 한다. 가토가 약해도, 녀석에게는 무리이더라도 이 내기는 반드시 성립시킨다.”

카이사르는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은 보스의 뜻대로.”

카이사르와 가토는 다시금 연병장에 섰다.

“가토. 이번이 네 마지막이다. 이 대결에서 동귀어진의 묘리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다.”

“그건...! 당신들이 나쁜 겁니다! 실패한 거잖습니까! 제가 청학을 이기지 못한다면 내기는!”

“지지 않는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이긴다.”

“그럼!”

“대신 네놈의 가치는 제로로 추락한다.”

“!!”

“너라는 인간은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쓰레기가 된다. 그 하찮은 인생에 찾아온 유일무이한 기회, 일생일대의 기회도 사라진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격하게 선언했다.

“뒤는 없다. 여기서 지면 네놈은 도장을 잃고, 단 한번뿐인 기회를 놓쳤다는 자괴감에 평생을 절망에 빠져 헛되이 보낼 뿐이다. 그저 숨만 붙어있는 실패한 삶을 살게 된다.”

“큭...!”

“할 수 없다면 살아도 의미는 없다. 그러니 걸어라.”

“대체 뭐를!”

“네놈의 목숨을! 이번에야말로 죽을 각오로 가라!!”

대결은 시작되었다.

복잡한 검술도, 치밀한 계산도 필요 없다.

필요한 건 오직 각오 하나뿐이다.

스르릉.

카이사르는 한 손으로 검을 치켜든 채 가토를 겨누었다.

지금까지 가토는 단 한 번도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 많은 동귀어진을 시도하고도 한 번 스치지도 못했다.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니.

각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노력조차도 재능이라는 말은 개소리일 뿐이다.

용기가 없는 겁쟁이의 변명이다.

수없이 깨지고 박살나는 게 두려운 약자의 비명이다.

하물며 노력을 넘어서 결실을 얻고자 한다.

목숨을 거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걸지 못한다면 평생 동안 걸지 못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결실도 없이.

일생에 걸쳐 무력한 자신에게 절망하며 죽는다.

‘넘어라, 가토!’

공포를 떨치지 못한 자는 죽음에 집어삼켜져 죽는다.

패배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모든 걸 잃을 각오가 없다면 정말로 모든 걸 잃는다.

‘이 벽을 넘어서는 자만이 나아갈 수 있다!’

가토는 말없이 진검을 치켜들었다.

더 이상의 연습은 없다.

그 또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 사실을 직감한 거다.

검 끝은 떨리고, 안색은 창백하고, 각오는 흐렸다.

결국 여기까지가 한계인 범용한 남자였는가.

모든 기대를 접으려던 순간이었다.

덜걱

검의 떨림이 멎었다.

창백한 얼굴이 냉혹하게 굳었다.

잠깐이나마 결의가 바로 섰다.

“죽여주겠어.”

모든 공포심을 떨쳐낸 채, 가토가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카이사르의 검이 가토의 한쪽 어깨를 찔렀다.

목검으로 어깨뼈를 탈골시키는 연습 따위가 아니다.

살이 찢기며 피가 튀는 고통이 치미는 부상이다.

“아아아아아!!”

경직되며 멈추었던 팔에 힘이 들어간다.

근육이 찢겨도 아랑곳 않는다.

선명한 살의만이 오롯이 카이사르를 향해 파고들었다.

스캉! 콰가각!

푸확!

교착은 일순간에 이루어졌다.

세 차례의 검합이 끝났다.

무참한 피보라가 입 밖으로 흘러넘쳤다.

“좋은 검이었다.”

“카, 카이사르... 어, 어째서...”

카이사르는 냉혹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허나 부족했다.”

쓰러진 건 가토 쪽이었다.

닿지 못했다.

그의 검은 결국 동귀어진을 이룰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내심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노력 없이 결실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크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다.

그것도 한 순간의 극복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을 쥐고 적의 공격을 받고 자신의 검을 휘두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

가토에게는 불가능했다.

그에게는 노력하는 의지조차도 부족했다.

고통을 견딜 인내심이 있을 리 없다.

결국은 일념을 품어도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인 사내라는 거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무의미한 실전은 아니었다.

‘버림패는 아니다.’

한 순간이라도 그는 싸워나갈 각오를, 자격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그의 각오를 유지하면서도 내기에서 이길 방법마저 존재한다.

바로 서로의 부상을 근거로 한 [대리전]이다.

가토는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청학은 복부에 내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그때는 대리전밖에 방법은 없다.

가토가 누구에게 의뢰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쪽에서 대리전에 나서는 건 전투의 천재, 학살자 클래스의 카이사르다.

청학이 대리전을 받아들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억지를 부려 버틸지도 모른다.

그걸 어떻게든 해내는 건 보스인 내 몫이다.

‘나는 최강의 전사를 만들었다.’

모든 능력치, 모든 특성, 모든 스킬, 모든 칭호, 모든 장비를 하나로 통일시켰다.

카이사르는 오직 전투만을 위해 사는 살인광이 되었다.

전투가 아닌 다른 모든 분야를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만 내 부하가 이길 수 있다면!’

이제는 그 자신감을 증명할 차례다.

[카이사르가 가토를 죽였습니다.]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증명이고 뭐고 잠깐 정지.

시스템님?

지금 뭐라고 했죠??

“카이사르 너. 설마 가토를 죽였냐?”

“예? 물론 죽였습니다.”

“아니, 왜?”

이 타이밍에 걔를 갑자기 왜 죽여.

진짜 뜬금없잖아.

이쯤 되니 화가 나는 것보다 어이가 없을 뿐이다.

“손대중을 하기에는 녀석의 마지막 검로가 너무나도 올곧았습니다.”

“!!”

“보스는 가토를 얻고 저를 버릴 생각이었습니까?”

“아니. 잘했다.”

“설마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풋내기 가토의 전력 따위는 가볍게 막을 수 있다고 막연히 무시한 제 실수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더욱 할 말은 없다.

녀석을 무시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설마 가토가 카이사르를 위협할 정도의 일격을 냈었다니.

“나로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태였다.”

가토는 강했다.

그것도 우리들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결의는 진짜배기였다.

차라리 조금만 덜 강했더라면 감당할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이렇게까지 강하지만 않았다면 죽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덤덤하게 그 사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무슨 비명이라도 지르면서 ‘아아악! 가토를 죽이다니! 이럴 수는 없어!’ 같은 말을 할 이유는 없다.

나는 내 이익을 위해서 가토를 죽였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의니 뭐니 그런 거창하게 포장할 명분도 없다. 죽이지 않으면 카이사르가 살해당했다.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하면 몇 번이고 가토를 죽였을 거다.

“죽여야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다음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겠군. 가토가 죽은 이상, 청확과의 내기는 무조건 대리전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토가 없는 지금 어떻게 거기까지 유도해낼지..”

1%의 동기화 비율로도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

나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정찰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리나가 있었다.

“보스. 방금 돌아왔는데.”

“리나인가.”

“괜찮은 거야? 가토가 죽어도.”

마치 무언가를 시험하는 것 같은 시선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꿰뚫어보려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숨기는 건 무의미하다.

리나는 지금 암살자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지금이 리나와의 관계를 결정지을 분수령임을 깨달았다.

여기서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관계는 파탄난다.

그녀는 다시금 나와 무관계한 NPC가 되며 냉혹한 칼날은 내 목을 꿰뚫으려 들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그렇다면 밝힐 뿐이다.

나의 진심을.

그녀가 원하는 내 진정한 모습을.

“내게 보다 필요한 건 카이사르의 목숨이다. 설령 이 성의 성주, 이 나라의 국왕이라도 해도 카이사르와 맞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그게 가토 한 명이 아닌 백 명이라도?”

흘린 피를 두려워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랭커가 되기 위해 몇 명의 부하를 육성하고 또 잃어왔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건 농담거리조차도 되지 않는다.

“백 명이 아닌 만 명. 아니, 그 이상이라도 변할 건 없다.”

“거기에 인류의 존속유무가 더해진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관계없다. 당연한 거다. 내 것이 아닌 인류라면 존재할 이유는 없다.”

“정말로?”

“내 부하와 내게 굴복한 자를 제외한 나머지 따위. 전부 필요 없다. 방해하지 않는다면 무시한다. 허나 방해가 된다면 그 때에는 누구도 살려둘 수 없다.”

애초에 이건 게임이다. 게임에서 NPC를 하나 죽였다고 꼴사납게 죄책감에 몸부림칠 이유가 없다.

내가 즐기기 위한 게임이다. 설령 다른 게이머들을 모두 죽이더라도 통쾌함 외의 감정이 있을 리가 있다.

이 세상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즐길 수가 없지 않은가.

“만일 리나와 카이사르 중 하나가 남으면. 그때는?”

“물론 카이사르다.”

“역시 보스에게 리나는…….”

“그렇기에 너는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다.”

“!!”

뭘 놀란 표정을 짓는 거냐.

“너는 내 두 번째 부하다. 설령 온 세상을 적으로 돌려 멸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두 번째라는 거다.”

“보스는 역시... 대단해! 리나 감동했어!”

[리나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

품에 와락 안기며 행복에 겨워하는 꼴이라니.

이게 방금 전까지 보였던 냉혹한 암살자랑 동일인물이 맞기나 할까.

뭐, 아무렴 상관없다.

조금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면 어떤가.

나 같은 녀석의 부하인데.

그보다 이 꼬맹이도 만만하게 볼 수 없겠는걸.

‘오른 건 호감도 뿐.’

인간으로서의 내게는 호감을 보일지라도 능력을 보이지 않은 보스에게 지금 이상의 충성은 없다.

무서울 정도의 냉혹함이 이 소녀의 안에 존재한다.

그래, 내 부하라면 이 정도는 되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갈 길은 멀고 시련은 산적해있으니까.

몇 명의 가토 같은 놈들을 더 죽이더라도 상관없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카이사르나 리나 같은 녀석들뿐이다.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Day! (8/8)

폭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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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포인트

-이 와중에 조금도 변하지 않은 카이사르의 호감도와 충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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