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6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16)
헤오라츠 후작을 마족 그레이에게 던져주고 오우거의 처분에 대해 고민하는 도중이었다. 고위 뱀파이어 이즈라크가 쟁쟁한 실력자들을 잔뜩 이끌고 나타났다.
“빌헬름 마이어 시장. 브람 시를 대표하는 브람이십강의 일원으로써 묻고 싶은 게 많다.”
“뭐냐.”
“알폰스 왕국의 수도를 단신으로 초토화시키고 중앙정계의 실력자인 헤오라츠 후작을 좀비로 만들어 사육하고 있다는 정보가 정말인가?”
어떻게 된 소문이 오우거가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네.
“그렇다.”
“그럼 집결한 병력은 수도를 제외한 대도시들을 습격하면 되는 것인가.”
“병력?”
“흑오문과 브람 시 공무기관, 연합기관에서 대규모 병단을 구성했다. 브람 시 전력의 80%가 왕국과의 전쟁마저 불사하며 군단을 일으켰다. 출병 준비는 이미 끝났다.”
“…….”
왜 또 당사자는 모르는 이야기가 멋대로 진척되고 있지. 이제 한 건 마치고 돌아왔다,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쟁준비는 또 무슨 소리냐.
동기화 비율 1%만 아니었으면 얼빠진 표정이 그대로 들어났을 거다.
그 정도로 지금 나는 당혹스러웠다.
“너희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지?”
“인근 다섯 영지는 이미 멸혼객과 카이사르에 의해서 점령작업을 마쳤다. 국경수비대를 상대로 단 둘이서 전쟁을 벌이고 영토를 점령하기까지 했는데 우리라고 뒤처질 순 없지.”
“…….”
충격적인 보고를 전해 듣기가 무섭게 시스템 알림이 떴다.
[원거리 원정을 마친 뒤, 본거지 및 인근지대에서 일어난 이벤트를 보고받습니다.]
[카이사르와 멸혼객이 국경수비대를 상대로 전쟁에 돌입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3개 군단의 국경수비대들은 군단유지가 불가능하게 되어 해산됩니다.]
[카이사르의 레벨이 8이 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레벨이 9가 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레벨이 10이 되었습니다.]
[흑산회의 조직평판(악명)이 300000 상승합니다.]
[조직칭호 ‘일국을 집어삼키는 암흑조직’을 습득합니다.]
[조직칭호의 효과로 인해 흑산회 조직원들이 위엄+5 및 공포 +10 효과를 부여받습니다.]
[카이사르가 실전경험을 통해 개량된 백보권을 한층 더 고차원적인 경지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백보권>이 급격히 발전하여 <백보무투술>이 되었습니다.]
[백보무투술은 권각 및 18 종류의 무기술을 모두 포함한 희대의 마공입니다. 백보무투술을 대성하는 자는 높은 확률로 초절정지경(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카이사르의 모든 능력치가 3 상승합니다.]
[현격히 높은 수준의 무학의 이치를 섭렵하며 지고한 무술을 완성시킨 결과, 카이사르가 기를 다루며 운용하는 방법을 자력으로 터득했습니다.]
[무술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과 절대자 멸혼객의 보조, 극한의 실전경험이 기연을 만들었습니다. 백보무투술과 쌍이 되는 <백보심공>이 탄생합니다.]
[카이사르의 SP가 3000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특성 <견고한 신체>가 두 단계 승급하여 <굴강한 신체>가 됩니다.]
[당신의 하수인이 절세무공과 절세심공을 만들었습니다. 2000점의 무공 포인트와 1500점의 심공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포인트를 소모하여 무공과 심공을 개량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하수인이 세계최초로 새로운 절세무공과 절세심공을 만들었습니다. 경이로운 위업을 이룬 부하를 거느린 보상으로 카리스마가 10 상승합니다.]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카리스마의 한계치(30)를 돌파하였습니다. 당신은 ‘격’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내면에 깃든 격에 도전하여 승리할 시, 막대한 보상을 얻으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단, 격과의 도전에 패배할 시에는 주화입마에 빠집니다.]
[Tip> 주화입마에 걸릴 시, 적게는 능력치 중 일부를 상실하고 크게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격에 도전할 경우에는 만전의 채비를 갖춘 뒤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 전리품으로 국경수비대의 물자 및 인근 다섯 영지가 브람 시에 편입되었습니다.]
[당신을 대신하여 다섯 영지를 지배할 대리인을 선정할 수 있습니다. 브람 시의 많은 권력자들이 대리인으로 선정되기를 희망하며 당신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카이사르가 다섯 영지 중 하나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국경수비대의 물자가 브람 시 흑의군에 지급되었습니다. 흑의군의 사기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흑의군의 무장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흑의군의 전쟁수행력이..]
미친. 이게 다 뭐야.
수도에서 깽판친 거에 못지않게 엄청나게 깽판 쳤잖아.
“보스.”
이즈라크의 뒤로 살벌한 눈매를 띈 카이사르가 나타났다.
안 그래도 무섭던 새끼가 이제는 괴물처럼 보인다.
카이사르는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흉악하게 웃었다.
“낙마한 저를 버리고 수도로 떠날 때를 기억하십니까.”
머릿속에 미친 듯이 경각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켜졌다.
싸이코 플래그가 켜졌어.
죽는 건가. 여기까지인가. 한 많은 인생이었다.
기어이 유언까지 생각하려다가 진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그 말, 네가 채찍으로 후려쳐서 죽였잖아 새꺄.
“보스의 매정한 결단을 보고 저 또한 결의를 다졌습니다. 고작 말 한 필조차도 뜻대로 다루지 못해 낙마한 저 따위는 필요 없다며 버림받지 않으려면 공을 세워야 한다고.”
“그래서?”
“국경수비대를 몰살시키고 다섯 영지의 지배를 강화했으며 백보권을 백보무투술로 승화시킨 데다가 새로이 백보심공마저 만들었습니다.”
말에서 낙마했다는 이유만으로 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엄청난 일들을 저질러주었다.
“물론 반나절 만에 수도를 흔적도 남김없이 멸망시킨 보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이걸로 제 유능함은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절 용서해주십시오.”
“…….”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근데 주변에서 보기에는 뭔가 다르게 보였나보다.
“뭐지? 저 정도로도 충분한 공을 세우지 못한 건가?”
“맙소사. 절세무공을 만들어낸 공으로도 과를 상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에서 낙마한 게 그렇게까지 엄청난 중죄는 아니잖아.”
“아니, 그건 아니지. 빌헬름 마이어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고 낙마한 거다. 자신의 이름값과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절세무공의 창설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실력자들은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깜빡 잊고 있었어. 빌헬름 마이어가 희대의 슈퍼빌런이었다는 사실을.”
“악당은 원래 속이 좁고 비열하며 잔인하기에 부하의 죄를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고 들었지.”
“이거 어쩌면 여기서 카이사르가 처형당하는 거 아니야?”
누군가의 한 마디에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앞둔 것처럼 모두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안됩니다! 보스, 제발 큰형님을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갑자기 인파 너머에서 마크가 뛰쳐나와 바닥에 엎드렸다.
“큰형님이 보스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죽을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오를 충분히 뉘우치고 뛰어난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 아닙니까.”
“흠.”
뭔가 상황이 재밌다. 이건 카이사르가 지금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건가.
무심코 추임새를 넣었더니 장내가 부산스러워졌다.
인파를 밀치며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사이토가 뛰쳐나왔다. 그는 마크의 옆에 나란히 엎드리며 간청했다.
“지금 카이사르 친위대장을 벌했다간 흑산회의 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겁니다! 어떤 공을 세워도 과를 상쇄할 수 없다면 조직원들은 실수를 저지르기를 두려워할 겁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임무의 성공확률을 상승시키지만 과도한 긴장감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게 만들 겁니다. 부디 너그러운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데이고르 또한 나란히 나서서 포권을 취하며 간청했다.
“카이사르는 절세무공을 완성시킨 일대종사이면서도 보스를 향한 충심을 잊지 않은 순수한 무인입니다. 무에 홀리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그 의지를 높이 여겨주십시오.”
카이사르가 부하들에게 이 정도로 존중받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광경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실력자들 또한 적잖이 감탄함과 동시에 과연 내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처럼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소리까지 들었는데 내가 대뜸 ‘그렇군. 네 공이 뛰어나니 고통 없이 일장에 죽여주마. 잘 가라, 카이사르!’하면서 단숨에 쳐 죽일 것처럼 싸이코로 여겨지고 있는 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자가 있다면 그건 저희 모두입니다. 저 또한 목을 걸고 간청하겠습니다.”
“저, 저도 주인님이 죽는 것만은 원치 않아요. 보스의 세력이 부족할 때부터 곁을 지켜온 일등공신을 이런 식으로 죽여서는 안 돼요. 제발 카이사르 주인님을 살려주세요.”
“부군을 보필할 아내로써 해드린 건 아무것도 없는 몸이기에 더욱 간절히 충언을 올리겠습니다. 카이사르님을 잃는 건 흑산회를 잃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를 헤아려주십시오.”
칼잡이 잭과 모자이크 녀, 도로시 이지스까지 흙바닥에 무뤂을 꿇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브루투스가 대뜸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흙바닥에 무릎 꿇기 싫은데. 불결하잖아.”
“…….”
넌 시발 눈치가 없냐?
남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던 광경이 갑자기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불결한 광경으로 변했잖아.
실력자들마저 차게 식은 눈으로 브루투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면 싸이코라고 불릴 이유도 없었다.
“이거 알아? 흙에는 수많은 생물과 미생물이 사는데, 온갖 더러운 곳을 오가는 인간들의 신발로 짓밟은 토지에는 타지에 사는 생물과 미생물도 잔뜩 고이기 마련이야.”
“…….”
“땅에 떨어뜨린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리는 거 알지? 그거 3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다는 것도 다 뻥이야. 병균 중에는 0.1초 만에 30c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것들도 있거든.”
“…….”
“근데 쟤들은 지금 땅에 무릎 꿇고 엎드리기까지 했잖아. 온 몸에 보이지 않는 병균들이 뛰어서 달라붙어있을 거라고. 어휴 끔찍해. 벌써 몇 만 마리쯤 몸 안에 들어갔을지도.”
무릎을 꿇고 간청하던 부하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엑? 에에엑? 하는 표정만 봐도 알겠다.
브루투스의 헛소리 때문에 슬슬 쫄리는 모양이었다.
“아. 병균이 온 몸에 달라붙고 체내에 들어오는 것마저도 각오하면서 무릎을 꿇은 건가? 흑산회 부하들의 충심은 정말 굉장하구나! 나도 이젠 흑산회 일원이지만. 하하!”
다들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브루투스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대뜸 데이고르를 딱 가리켰다.
“근데 넌 왜 무릎 안 꿇어?”
“그, 그건... 포권으로도 예를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카이사르 따위는 예의만 차리고 목숨은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카이사르의 눈에 사람 몇 천 명은 가볍게 죽여본 기백이 묻어나왔다. 데이고르는 펄쩍 뛰며 브루투스의 발언을 부정하였다.
“아니다! 평소에는 포권을 하면 뭐지 저 진지충이라는 시선을 받으니까 이런 보기 드문 기회를 틈타서 포권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결코 병균 따위가 무서운 게 아니다!”
“병균이 무서워서 안 꿇었냐고는 말한 적 없는데? 카이사르를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없는 거냐고 물어봤지. 흐음. 너 의외로 겁쟁이였구나?”
“나는 겁쟁이가 아니다! 봐라. 이렇게 무릎을 꿇지 않았는가!”
데이고르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야 무서울 만도 했다.
카이사르가 두 눈을 부라리면서 노려보고 있잖아.
‘시발. 뭐 이런 무서운 새끼들이 다 있지?’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조합은 싸이코에 싸이코를 더하는 수준이 아니라 곱하는 수준이었다.
미친 존재감에 미친 논리가 더해지자 불쌍한 데이고르는 주변 권력자들에게 ‘포권성애자’나 ‘병균을 두려워하는 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었다.
카이사르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냥 데이고르가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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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고르 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