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PVP(1)
띠링-
[스킬 슬롯 확장권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킬 슬롯이 1칸 증가합니다.]
손에 들린 카드가 빛무리로 변하며 몸에 스며든다.
[스킬 슬롯]
1. [스킬 카드: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
2. [스킬 카드: 대지진]
3. [상급 무투]
4. [-]
우빈은 민주희에게 뜯어낸 스킬 슬롯 확장권을 사용한 뒤, 바닥을 내려다봤다.
바닥엔 4개의 아이템이 놓여있었다.
띠링-
[마검: 기간테스+8]
종류: 대검
등급: S
내구력: 143/150
공격력: 9(+8)
근력:+5
기량:+3
감각:+1
룬석: [증폭] [파괴] [절삭]
효과
-마기 속성 생성.
-마기 속성 데미지 150% 증가.
-마검: 기간테스는 외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확인한 아이템은 마검이다.
강화 작업은 물론, 룬 작업까지 끝내놓은 끝판왕같은 무기였다.
‘개 사기네.’
마검:기간테스는 전설급이라 불리는 엘리드 최강 아이템 중 하나. 명성답게 옵션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마기 속성은 속성 중 최상급으로 꼽힌다.
마기는 단순한 속성을 뛰어넘어 착시, 혼란, 마비 등 추가적인 디퍼프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검의 진정한 사기성은 따로 있었다.
띠링-
[마검:기간테스를 장착하였습니다.]
손잡이가 묵직할 정도로 대검은 거대했다.
띠링-
[외형을 변환합니다.]
약간의 마력을 흘려보내자 스르륵- 거대했던 마검이 작은 단검처럼 손아귀 속으로 착 빨려 들어온다.
띠링-
[외형을 변환합니다.]
이어서 검심이 길어지며, 손잡이가 두꺼워진다. 기다란 장검 같은 외형으로 변한다.
던전에 갇히기 전만 해도 우빈은 장검을 쓰는 검사를 지향했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그립감이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얼마 정도 하려나.’
기본적으로 S급 아이템은 중복 매물이 없다고 보면 될 정도로 희귀하다.
마검:기간테스는 그런 S급 아이템 중에서도 손꼽히는 히든 아이템.
시장에 내놓으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만약, 주먹 강타가 없었다면 일말의 고민 없이 메인 무기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빈에겐 필요 없었다.
검술 스킬 카드도 없을뿐더러, 검만 고집하다 보면, 혹시 모를 상황에 주먹 강타를 사용할 기회조차 만들 수 없을 테니까. 여유가 될 때 격투기에 익숙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우빈은 마검의 확인을 마치고, 다음 아이템을 확인했다.
[룬석:뇌격]
종류: 룬석
등급: S
대상: 무기
효과
-100%의 확률로 천뇌격 발동.
도민준을 처치해, 현상 수배지 시스템에서 지급한 특별 아이템이었다.
‘좋은 건가?’
룬석은 아이템에 끼워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졌다.
당장 마검:기간테스에도 3개의 룬석이 박혀있다.
[룬석:증폭][S]-데미지 60% 증가.
[룬석:파괴][S]-파괴 속성 부여.
[룬석:절삭][S]-절삭력 100% 증가.
‘진짜 구하기 힘든 것만 끼워놓았네.’
마검에 박힌 룬은 우빈이 던전에 갇히기 전에도 유명했던 룬석이었다.
사냥에 필수로 손꼽히는 데미지 증가를 시작으로 파괴 속성 부여에 절삭력증가까지.
당장 룬으로 환산해도 1,000만 룬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얻은 룬석:뇌격은 처음 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천뇌격이 발동된다니. 정확히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걸까.
‘나중에 확인해보자.’
마땅히 장착할 아이템도 없었기에, 우빈은 다음 아이템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확인할 아이템은 총 2개.
도민준을 죽이고 랜덤하게 루팅한 아이템뿐이었다.
띠링-
[헤츨링의 비늘]
종류: 재료
등급: A
설명: 헤츨링의 비늘입니다. 마력을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아이템은 그야말로 꽝이었다.
도민준은 무려 8천만의 경험치를 준 괴물이다.
인벤토리엔 마검:기간테스에 필적하는 아이템이 가득 들어있었을 텐데, 나온 아이템은 제작에나 쓰일법한 잡템.
무적 아쉬웠지만, 2번째 아이템은 뜻밖의 아이템이었다.
띠링-
[18회차 용사 전용 보급 상자]
등급:S
효과
-랜덤 무기 1종을 획득합니다.
-랜덤 스킬 카드 1종을 획득합니다.
-랜덤 탈것 1종을 획득합니다.
-스킬 슬롯 확장권 1장을 획득합니다.
“이건···.”
이건 민주희의 인벤토리에서 들어있었던 보급 상자와 똑같은 아이템이었다.
이게 왜 도민준의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것일까.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다 빼앗았구나.’
우빈이 도착하기 전, 신입 용사들에게서 아이템을 전부 빼앗은 것이다.
‘그래도 하나는 건졌네.’
원래 목표였던 3개의 지원 상자가 날아간 건 아쉬웠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인 것은 분명했다.
과연 이 상자는 어떤 아이템을 품고 있을까. 이미 한번 민주희의 상자깡을 봐서 그런지, 기대감이 남달랐다.
꿀꺽-
우빈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상자를 열었다. 아니 열려고했다.
띠링-
[18회차 용사 전용 상자입니다. 상자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참으로 기운 빠지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아예 못여는 건 아니니까.
민주희에게 부탁을 하려는 찰나.
‘벌써 30분이 됐나?’
저 멀리서 아이템을 조공하러 오는 최수호가 보였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
잘 익은 육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기다란 뼈끝으로 윤기가 좔좔 흐르는 고깃덩어리가 붙어있다.
“우선 먹죠.”
모두가 눈치를 보던 그때, 처음 입을 뗀 건 민주희였다.
“지아씨 한번 드셔보세요.”
민주희는 고기를 한 덩이 집어 들어 윤지아에게 건넸다.
윤지아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로 저은다.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어서 엄청 배가 고플 텐데. 먹을 의지가 없어 보인다. 하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오죽할까.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만 더 빠르게 행동했다면 지아씨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빈씨가 없었다면 나도···.’
우연히 숲속에서 우빈과 마주치지 못했다면 자신 역시 윤지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민주희는 덜덜 떨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윤지아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여기선 얕보이는 것만큼 병신 취급당하는 짓도 없습니다.]
우빈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주희씨가 넘기는 물건이 목숨을 지켜줄 물건일지도 모릅니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일지도 모르죠.]
그냥 물건을 요구했어도 됐을 텐데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전부 주시죠.]
‘시험한 거겠지.’
민주희는 알았다.
우빈은 부당한 요구에 어떻게 행동할지 실험한 것이다.
그 당시엔 너무 무서웠다. 부탁을 안 들어주면 어떻게 하지 두려웠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이 물건이 목숨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라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지켜내야만 했으니까.
‘얕보이는 것만큼 병신 취급당하는 짓도 없다.’
민주희는 뭔가를 느낀 듯 우빈의 말을 곱씹으며 고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육즙이 입안으로 퍼지며 입안 가득 차오른다. 적당한 짠기와 달콤함의 조화가 일품이다.
민주희가 음식을 먹자, 빤히 지켜보던 2명의 사내 역시 고기를 뜯기 시작한다.
“맛있네.”
“후우···”
상당히 분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뜯는다.
저들 역시 생각이 많을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한 채, 맞으며 동료가 겁탈당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던가.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이 미각을 자극하자,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풀린 듯 보였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안경을 쓴 사내, 조기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같이 고기를 뜯던 김호준이 답한다.
“뭘 어떻게 해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요.”
“······.”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김호준이 입을 뗀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거죠?”
“조금 전 여자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죠.”
서희빈의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하긴 사후 세계라고 생각하라는 데 쉽게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희는 그 여자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조금 전 단발머리 여자분을 따라가 보려고요. 1위라잖아요. 그리고 뭔가 친절하기도 하고.”
“저는 저분이 더 믿음직스러운데. 우리를 치료해주셨잖아요.”
조기훈은 서희빈을, 김호준은 화민정을 가리켰다.
“주희씨는 누가 괜찮아 보이나요?”
조기훈의 물음에 민주희가 시선을 옮긴다.
단발머리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은 서희빈. 나이는 20초 초반으로 어려 보였지만, 언행은 어른스러웠다.
복잡한 상황을 간결하게 비유하는 설득력, 소속 집단의 장점을 강조하는 호소력. 고개를 끄덕이게 만큼 유려했다.
두 번째로 눈이 가는 사람은 거대한 활을 등에 멘 화민서였다.
별다른 대화는 나눈 적이 없지만, 흘러나오는 풍채부터 달랐다.
마치 전쟁에서 살아 나온 영웅 같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든든했다.
그러나 민주희의 마음속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인물은 따로 있었다.
“저는 저분이요.”
민주희의 시선을 따라가자, 한 사내가 구석에 앉아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부서져 가는 갑옷에 상의조차 입지 못해 완전 거지꼴인 사내였다.
“네? 저 사람이요?”
조기훈과 김호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눈을 가려진 채로 폭행을 당해 우빈이 자신들을 구해줬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저분께서 저희를 구해주셨어요.”
“네? 저분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괴한들을 주먹 한 방에 터트려 죽였다고 말하면 믿을까? 직접 눈으로 봤는데도 믿기 힘들었는데?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그때였다.
“어? 저분이죠. 서희빈 씨랑 같은 길드라던.”
우빈의 곁으로 다가가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차갑게 내려앉은 표정, 손에 들린 날붙이는 지금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말하는 듯싶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데요.”
“설마 또 싸우려고 그러나···”
고함을 지르며 싸운게 10분 전이다. 대화로 잘 해결된 줄로만 알았는데, 흉기까지 들며 달려들다니.
꿀꺽-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냉기가 감돌던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죠?”
서희빈이 씽긋 웃는 얼굴로 상체를 숙이며 튀어나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재미있는 경기가 시작될 거예요.”
“네?”
신입 용사들의 의문에 서희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입을 뗐다.
“세이버의 힘을 보여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