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습격(1)
따사로운 햇볕이 스며드는 성안.
중세식 갑옷을 입은 중년이 이정훈에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읊조린다.
“김백청은 위쪽에서 따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보고하세요. 진짜, 이래서 용사들이 싫다니까. 황금 서신까지 봤으면 알아서 잘 넘겼어야 할 거 아니야.”
중년은 부신의 고위 관계자. 이정훈이 마음에 안 드는 듯,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떠난다.
이정훈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뒤, 밖으로 나왔다. 한 소리 듣긴 했지만, 화난다거나 그런 감정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만을 응시할 뿐.
띠링-
[마스터]
-계속 주시해주세요. 특이 사항이 생기면 보고 부탁 바랍니다.
이정훈은 메시지를 끄곤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이정훈은 우빈이 화민서의 자필을 꺼낸 시점 화민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제가 점찍어둔 관심 인물입니다. 일단은 최대한 요구를 들어주세요.
점을 찍어두다니. 마스터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거지꼴인 행색은 그렇다 치는데, 마력의 흐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칼날처럼 오싹하면서도 피부를 찌르는 듯한 섬뜩함.
타락 직전의 용사가 가지는 특유의 느낌이랑 유사했다. 하지만 마스터의 명령을 절대적.
이정훈은 욕먹을 걸 각오하고 김백청을 구속했다. 그 결과가 조금 전 들었던 질타였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마스터가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걸까.
‘구경 좀 해볼까.’
화아악-
마음을 정한 이정훈은 마력을 넓게 펼쳤다.
정훈의 특기는 색적. 수천 명의 인파 중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넓어진 감각으로 수백, 수천의 마력이 느껴졌다.
마력은 개인마다 전부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중 정훈이 찾아야 할 대상은 용사 특유의 마력을 지녔고, 언제든 폭발할 듯, 날카로운 마력을 품은 자.
‘찾았다.’
십 분도 되지 않은 시점, 이정훈은 우빈의 기척을 포착했다. 위치는 플레이어들의 성지로 꼽히는 도박장.
‘그런데 이건 뭐지.’
기척을 감지하던 도중 도박장 부근에서 이상한 기운이 포착되었다.
끈적하면서도 소름 돋는 이 기운은···
‘마기?’
부신은 치안이 준수한 성이다. 사방이 성벽으로 막혀있으며 입국 절차 또한 까다롭게 진행한다.
그런데 어떻게 마기를 품은 존재가 성안 쪽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두근-두근-
미묘한 압박감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정훈의 신형이 미친 듯한 속도 쏘아졌고, 순식간에 도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건 뭐야···”
이정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르르르-
짐승이나 낼법한 숨소리가 대기를 타고 울려 퍼진다.
3M에 육박하는 거대한 몸집, 근육이 가득한 인간의 형태.
마족 특유의 불과 검은 날개가 육체로부터 퍽-하고 튀어나온 그 순간이었다.
띠링-
[종언 아드로스의 심복이 부신에 출현했습니다!]
-으아아악!!!!!!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
크르르르르-
숨소리와 함께, 철벅-철벅- 간단한 걸음에 미묘한 울림이 대지를 두드린다.
“괴, 괴물이다!”
“어떻게 마을에··· 도망쳐!”
주민들이 혼비백산 자리를 피한다.
10년 전만 해도 마을에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일은 흔했다.
몬스터는 계속해서 증식했지만, 그를 처리해줄 기사는 계속해서 죽어 나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뭐야? 아드로스? 아드로스면 5년 전 처음으로 공략했던 월드 보스 아니야?”
“저런 쫄다구가 있었었나? 애초에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용사들의 등장으로 일대 몬스터의 씨가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를 증명하듯 도박장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전부 엘리드의 주민들 뿐.
도박을 즐기던 용사들은 놀라긴커녕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보스가 뒈졌는데, 살아남은 개체니까. 뭔가 짭짤할 거 같은데.”
“내거니까. 건들지 마라.”
“언제부터 그딴 거 따졌다고.”
서로 저 몬스터를 잡겠다 아우성이었다.
말로는 자기 거라고 우기고 있었지만, 용사들은 알았다.
몬스터의 소유권이란 자고로 먼저 죽인 놈이 임자라는 사실을.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치기 위해 서로 눈치를 보던 그때였다.
스릉-
깔끔한 검격이 선을 그으며 마족의 육신을 갈아낸다. 그 앞으로 하나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조차 입지 않은 흰 티셔츠. 그 위로 두툼한 근육이 호선을 그린다.
“내가 침 발랐다. 방해하는 새끼는 기억해서 이뻐해 줄 테니까. 자신 있으면 나대봐.”
사내의 엄포에 용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종구잖아.”
전 랭킹 152위이자, 신화 길드 소속 용사.
작년에 랭킹전을 죽 쒀서 현 랭커는 아니었지만, 5세대 용사였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거물이었다.
“침은 무슨, 몬스터에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난 포기. 저 새끼 독하기로 유명하다. 잘못 찍히면 평생 레이드는 못 뛴다고 보면 돼.”
이종구의 엄포에 무기를 들던 용사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는다. 이종구의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걸로 소유권은 먹었고..’
이종구 역시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았다.
이제 남은 문제라면 이 몬스터를 어떻게 처리하냐는 건데.
이종구의 시선이 몬스터를 향한다.
‘종언 아드로스라···’
인간 같은 이족보행의 외형.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있었으며, 마족 특유의 뿔과 날개가 인상적이다.
‘분명히 죽였었는데.’
5년 전, 10대 길드가 손을 잡고, 3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월드 보스전.
이종구도 참여했기에 아드로스를 잘 알았다. 하지만 그 당시엔 저런 심복 같은 존재는 없었었다.
아드로스가 죽고 새롭게 생성된 개체일까.
약간의 의문이 들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성벽을 뚫고 시스템 메시지까지 뜬 이상, 저놈이 줄 보상은 꽤 짭짤하리라는 것.
-으아아!!!!!
이종구가 몬스터의 전력을 파악하던 그때였다.
아드로스의 심복이 비명을 지르며,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다.
이종구는 검을 양손으로 잡으며 자세를 낮췄다.
첫 일격은 녀석의 피부 하나조차 베지 못했다. 흘러나오는 마기 또한 상당한 게, 수준이 꽤 높아 보인다.
‘그래봤자 쫄따구지.’
이종구는 판단을 내린 듯, 두 다리를 넓게 펼치곤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운디네의 축복을 사용하였습니다.]
-반응 속도가 50% 상승합니다.
[검투사의 결의를 사용하였습니다.]
-데미지가 50% 상승합니다.
........
.....
....
.
전신으로 힘이 들끓어 오른다.
첫 일격이 막힌 건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일 뿐!
이종구가 전투 준비를 끝낸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때마침 심복이 미친 황소처럼 앞으로 달려들기 시작했고, 스릉- 이종구의 검은 심복의 육신을 갈랐다.
***
양손으로 잡은 검이 허공을 수놓는다.
그때마다 마족의 육신은 베이고 찢기며, 핏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이종구의 전신으로 핏물이 자욱하다.
-으아악!!!
심복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손아귀를 내지른다.
하지만 공격은 이종구에게 닿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공략이 이어졌다.
“와··· 확실히 세다.”
“괜히 랭커까지 올라간 게 아니라니까.”
사냥을 구경하는 용사들의 표정에 경외심이 서린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정훈의 표정은 조금씩 경직되어갔다.
유엔 가입으로 인한, 임시 경비 대장이라고는 하나, 이정훈은 부신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나서지 않은 건 이종구의 실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종구와 이정훈은 랭킹전에서 자주 만나는 경쟁 상대였으니까. 그 누구보다 서로의 실력을 잘 알았다.
‘위험한데···’
이종구의 전투를 보는 이정훈의 눈매가 좁아진다.
확실히 외관상으론 이종구의 사냥은 완벽에 가까웠다.
합이 길어질수록 대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집요하게 관절을 노려 기동성을 낮춘다.
그렇게 생긴 빈틈을 정확히 꿰뚫으며 급소를 노린다. 쌓인 데미지는 상당해 보였다.
그를 증명하듯 바닥을 적힌 피의 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으아아악!
서걱-
공격을 전부 피하던 이종구의 몸으로 심복의 공격이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이종구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느려지고 있다.
저건 마치···.
‘드레그마···.’
지금도 처리 못 한 월드 보스인 흡혈 몬스터가 존재했다.
피를 흡수하며 끝없는 재생을 이어나갔으며 죽은 용사를 부하로 종속시켜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현 외곽 최강의 존재.
그 녀석의 싸움이 딱 저랬다. 쓰러질 것 같으면서 계속해서 일어서는 집요함.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상대하는 대상의 혈액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드레그마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드레그마는 피만 제한시킨다면 성장을 막을 수 있었지만, 저 녀석은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 힘을 빨아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건이 최악인데.’
저런 종류의 몬스터는 레이드를 하기 까다롭다.
레이드란 자고로 인원으로 찍어누르는 게 정석. 그러나 흡혈형 몬스터에겐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 없었다.
용사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먹이만 늘려주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이정훈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던 그때였다.
콰직-
심복의 손톱이 이종구의 육신을 강타한다.
“윽!”
이종구의 자세가 무너지며,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심복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이종구의 육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이종구가 검으로 열심히 막아보지만, 살갗이 찢어지고, 근육이 드러나며,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짓이겨진다.
“씨발, 구경만 하지 말고 좀 도와!”
위기를 느낀 이종구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에 구경하던 용사들은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입꼬리를 올렸다.
“뭐야, 언제는 침을 발라놓았다면서. 잘난척하더니, 어이없네.”
“보스급인가···. 혼자서 보스급은 잡기 힘들지.”
보스급은 최소 4인 파티를 꾸려서 잡는 것이 정석. 아무리 개인이 강하다고해도 한계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상황 파악을 끝낸, 용사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기다리세요!”
이정훈은 다급히 용사들을 말려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담했다.
“또 뭐?! 침 발랐으니까 줄을 서라고? 욕심부리면 저 꼴 난다.”
“점심도 못 먹어서 배고파 죽겠는데, 그냥 빨리 잡고 끝냅시다.”
“기다리라니까요!”
이정훈이 애타게 용사들을 말려보았지만, 그 누구도 이정훈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고요하던 부신은 전쟁터로 바뀌고 있었다.
***
“씨발! 점점 강해지잖아.”
“으악! 내 팔. 힐! 힐 달라고!”
건물이 부서지고 폭발이 계속된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중심 속.
“우빈씨, 어떻게 해요.”
민주희가 다급히 우빈을 불렀다. 하지만 우빈은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저 민주희가 준 쪽지를 꽉 움켜쥐곤, 섬뜩하게 미소 지을 뿐.
‘여기 있다는 거지.’
우빈의 입술이 사악하게 올라간다.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쳤다.
어떻게 괴롭혀줄까. 우선 복부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서 보여주자. 그리곤 내장을 불에 지져 주는 거야. 그런데 재수 없게 죽으면 어떻게 하지. 아, 작업실이 있었지. 절대 편하게 죽게 할 수는 없지.
“우빈씨!”
민주희의 외침에 우빈의 상념이 깨진다.
순간 분노가 가득 차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침착하자.’
그 새끼가 여기 있다는 걸 안 이상 조급하게 행동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판단을 내린 우빈은 전장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어디 가세요?”
“식사나 하러 가죠.”
“네?”
“계속 굶어서 배고프잖아요? 제가 사겠습니다.”
***
수십의 용사가 전력을 다해, 아드로스의 심복을 공격한다.
그때마다 심복의 육신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듯 아팠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넘쳐흘렀다.
‘이게 내 힘···’
아드로스의 심복, 정확히 김백청은 넘쳐흐르는 힘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음 포션을 받았을 땐 함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고작 포션 하나 먹었다고 이렇게까지 힘이 넘쳐흐를 줄이야.
띠링-
[종언의 아드로스가 몸을 잠식합니다.]
약간 거슬리는 게 있다면 미칠듯한 마기가 뇌를 헤집어 놓는다는 것 정도인데.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허억-”
“씨발, 일단 도망쳐!”
공격해오던 용사들이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래 도망가라.’
처음 느껴보는 우월감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힘. 늘 꿈꿔오던 능력이었다.
김백청이 강렬한 힘에 도취된 그 순간, 시야로 한 사내의 모습이 포착됐다.
짧은 스포츠머리, 두 자루의 단검, 재수 없는 저 얼굴은···
‘이정훈···’
모든 게 저 새끼의 변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개처럼 처맞은 것도 비굴하게 바닥을 긴 것도 전부. 저 새끼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저 새끼만큼은 어떻게든 짓밟아 주어야 했다.
-으아악!!!!
김백청은 포효를 내뱉으며 이정훈에게 달려들었다. 격렬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김백청은 이를 바득 갈며 정신을 붙잡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땐.
“허억-허억-”
자신감 넘치던 이정훈이 피를 토하며 발밑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죽이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포션을 마신 뒤론 용사들을 공격해도 선악 수치에 변동이 없었다. 그렇다면 죽여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
씨익-
김백청의 얼굴이 악마처럼 구겨진다.
‘궁금해.’
이놈의 비굴함은 어떤 모습일까.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 죽이는 거야.’
판단을 내린 김백청의 거대한 손아귀가 이정훈의 육신을 찢어발기려는 그때였다.
“밥맛 떨어지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퍼억-
경쾌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