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습격(2)
철그럭- 철그럭-
고요한 성안으로 발소리가 메아리친다.
“베드로 님, 용사가 연설에 앞서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들어온 사내가 고개를 조아리며 부신의 영주, 베드로 남작에게 보고한다. 그 말에 베드로가 혀를 찬다.
“정말 귀찮게 하는군. 요즘 같은 때에 무슨 동맹이 필요하다고.”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허나 적대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비위만 맞춰주고 보내는 게 어떠실지요.”
베드로가 그 말에 인상을 찡그린다.
‘협정이라···’
유엔이라고 했던가. 재수 없는 용사들이 몬스터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준다며 협정을 제안해왔다.
베드로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절.
굳이 협정을 맺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길드라는 사회 시스템으로 용사들이 알아서 주변의 몬스터를 토벌한다. 그로 인해 세계수 주변엔 몬스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몬스터는 멸종한 상태이다.
굳이 협정까지 맺으며 안전을 챙길 이유가 있을까?
‘5년 전이었다면 또 모르지.’
과거라면 모를까, 굳이 용사들에게 굽신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몬스터면 몰라도 용사를 견제할 무기라면 준비를 끝마쳐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에선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해왔다.
-바로 결정 내리 지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저희의 마음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 고려가 됐으면 좋겠네요.
최상급 장비 10정과 5,000만 골드를 즉석에서 건넸다.
이해가 안 됐다.
용사 무리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5대 왕국 전체를 파멸시킬 힘이 있다 판단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협정 같은 걸 맺자고 하는 것일까.
‘수상하군.’
판단을 내린, 베드로가 입을 뗐다.
“일단은 경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네.”
“옳으신 판단이십니다. 용사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나려는 그 순간이었다.
“남작님!!! 큰일 났습니다!”
밖에서 한 사내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성이 요동쳤다.
“이, 이게 무슨!”
깜짝 놀란, 베드로 남작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살려주세요!”
“으악!!!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불타는 건물, 피 흘리는 사람들.
설마 용사끼리 싸움이라도 난 것일까.
두근-두근-
차라리 그랬으면 오히려 좋았겠지만, 베드로의 시야로 한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날개와 뿔.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한 저 모습은···
“마, 마족?!”
성안으로 괴물이 흘러들어온 건 무려 5년 만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몬스터가 들어온 것일까. 경비는 완벽했을 텐데.
당황하는 베드로의 옆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참. 큰일이네요.”
베드로의 시선이 사내로 향한다. 새롭게 창설된 유엔이라는 단체에서 파견을 나온 용사였다.
“뭐 하는 건가. 빨리 가서 저걸 처치해주게나!”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용사에게 요구했다. 몬스터는 용사가 처리해야 할 대상. 여태까지 십여 년간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베드로를 당황하게 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유엔에서 내려온 지침이 있어서요.”
“지침?”
“협정을 맺은 동맹국만 돕기로 하는 조약이죠.”
“뭐시라?!”
그 말에 베드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경직된다.
그 말을 풀이해보자면, 손을 잡지 않은 국가를 버리겠다는 말이지 않은가.
“이놈들이···”
베드로가 용사의 제안에 부들거리던 한편.
유엔에서 파견을 나온 용사, 정현태는 베드로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의심 많은 노친네 같으니라고.’
냉담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아드로스의 심복.
“일단, 후퇴해!”
“씨발, 저 새끼한테 붙지 마! 마력을 흡수하니까!”
자신감 넘치던 용사들이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수가 무려 오십 이상.
이미 충분할 정도로 마력을 흡수했단 걸 의미했다.
그걸 증명하듯.
“허억- 저 새끼한테 붙지 말고 도망쳐! 길드에 도움 요청해!”
랭킹 181위이자, 척결 길드의 실세인 이정훈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부신에서 저걸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내일이면 끝나겠군.’
정현태는 확신했다.
내일쯤이면 저 남작이 바닥을 넙죽 엎드려 도움을 요청할 거란 사실을 말이다.
정현태의 표정이 인위적일 정도로 차갑게 내려앉던 그때였다.
펑! 하는 파열음와 함께.
이상할 정도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응?”
***
-으아악!!!
아드로스의 심복이 비명을 지르며, 이정훈에게 달려든다. 이미 수십 명의 용사한테 힘을 흡수해서일까.
‘젠장!’
스피드는 물론, 파괴력까지 필드 보스급 몬스터와 비슷한 수준의 위력으로 느껴졌다.
당장 필드 보스를 처치하려면 최소 50명의 용사가 투입된다. 그마저도 공략이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필드 보스는 미친 듯이 세다.
그런 존재가 성 내부에 등장했다. 어떻게 될까. 당장 부신이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분명 그러리라 생각했었다.
띠링-
[부신을 침략한 종언 아드로스의 심복이 사망하였습니다.]
펑-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뭐, 뭐야···”
노상에서 고기를 뜯던 사내가 주먹질을 하자, 그토록 강력하던 심복이 풍선처럼 터져나간 것이다.
엘리드에 처음 전이됐을 때보다 비현실적이었다.
‘저 사람은···.’
강우빈.
마스터가 왜 저 사내를 주시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훈의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던 그때였다.
“여기다!”
“대장님! 괜찮으세요!”
지원을 온 척결 길드원들이 정훈에게로 모였다.
“갈비뼈 골절에 장 파열··· 빨리 회복부터!”
“역시 대장이야. 이종구도 못 잡을 걸 혼자서.”
“현 랭커는 다르다니까. 대단하십니다!”
길드원들이 이정훈을 치켜세워주며 감탄한다. 아무래도 심복을 잡은 걸 정훈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내가 처리한 게···”
이정훈이 심복을 처치한 사람을 가리키며, 사실을 정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심복을 처치한 우빈의 눈이 정훈을 직시했다.
텅 빈 듯 공허했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눈빛. 뭔가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조용히 해라. 이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목을 받는 걸 꺼리는 것 같았다.
대략적인 치료를 받은 이정훈은 멋쩍은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로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움직이자고. 주민들을 구출하고 복구작업에 투입한다.”
“네!”
***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부서진 건물 잔해 속에서 여인의 흐느낌이 흘러나온다.
“사람 살려···”
몬스터는 사라졌지만, 여기저기서 도움을 갈구한다.
그 모습에 민주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우빈씨, 저분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걸 왜 저한테 묻죠?”
“아···. 혹시 다녀와도 될까요?”
김백청 때의 일이 마음에 걸렸는지, 우빈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우빈이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희가 꾸벅 인사를 하곤 무너진 건물로 뛰어간다.
“조금만 참으세요.”
도착한 민주희가 눈을 질끈 감곤, 거대한 벽을 움켜쥔다.
분명 꿈쩍도 안 할 거로 생각했다. 한데 이게 웬걸.
“어?”
주희의 작은 손으로 거대한 벽이 덜컥 올라간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굳이 무게를 비유하자면 약간 무거운 나무판자를 들어 올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괜찮으신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희가 스테이터스의 위대함을 깨닫던 한편.
우빈의 시선은 허공을 향했다.
‘이건 뭐야···’
[종언 아드로스의 심복을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을 지$합@! 니@다.]
지이잉-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오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메시지가 파르르 떨리더니, 팟- 하고 멈춘다.
‘오류?’
오류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게임과 비슷한 세계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계속 기다려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바닥으로 하나의 물건이 눈에 띄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타원형의 돌이었다. 몬스터의 명치에 박혀있던 걸 본 것 같기도 하고.
‘재료 아이템인가?’
우빈은 무의식적으로 황금빛 구체를 집어 들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것이 아이템이 내뿜는 포스를 뿜었지만, 시스템창은 뜨지 않았다.
‘그냥 시체 파편인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옆에 멀뚱히 서 있던 백발의 NPC가 황금빛 구체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야?”
우빈은 반사적으로 여자의 얼굴을 밀며, 떼어 내려 했지만, 집요하게 달려든다.
‘그러고 보니 왜 따라다니는 거야.’
정보 수집, 정현태의 행방에 집중한다고 저 NPC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희를 졸졸 따라다녔다. 도대체 뭐 하는 NPC지?
“잠, 잠깐만 볼게요!”
NPC의 여린 손에 황금빛 돌이 톡- 닿자, 순간 빛이 번쩍인다.
“어?”
우빈은 그 반응에 밀던 손을 치웠다. 자연스럽게 NPC의 손이 돌을 움켜쥔다.
“······.”
NPC는 황금빛 돌을 들곤, 품속에 꼭 안 는다. 이윽고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며 울먹인다.
‘또라이인가.’
이상함을 넘어 수상함에 이르렀다.
“됐죠? 내놔요.”
우빈은 바로 NPC의 손에 들린 돌을 빼앗았다.
“안, 안 돼요. 주세요!”
여인이 애타게 양손을 뻗어 허우적거린다. 우빈은 NPC를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한번 아이템을 바라봤다.
우빈의 눈썹이 움찔거린다. 좀 전엔 나오지 않던 시스템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공 마정석][종언]
종류: 마석
등급: A
설명: 종언 아드로스의 힘이 깃든 인공 마석입니다. 인위적으로 제작된 만큼 불안정합니다.
“인공 마정석?”
의문을 채 가시기도 전,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띠링-
[오류를 해결하였습니다.]
[히든 업적 달성!!!]
[동족을 버린 타락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칭호: 동족을 지킨 수호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종언 아드로스의 심복 김백청을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55,000,0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110,000,000의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800,000룬을 획득하였습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1,600,000의 룬을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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