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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1) (29/107)

28.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1)

이정훈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그게, 무슨···”

“훼손된 안구과 장기를 포함. 양다리와 팔 전부 복구할 방법이 있습니다.”

“진, 진짜 가능한가요?!”

이정훈이 엘리드 바닥에 구른 세월만 10년이 넘어간다. 

지운성의 육체는 절대 평범한 스킬론 회복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까. 들어본 적은 있어.’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시전자의 육체를 대가로 대상을 치유하는 특성이 있고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설마 비슷한 특성이 있는 건가?

“믿지 못하시겠다면 됐습니다. 저도 아쉬울 게 없으니까요.”

“잠,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이정훈이 보따리를 들고 떠나는 우빈은 다급히 붙잡았다.

“마스터를 뵙고 싶다고 하신 거 맞으시죠? 마침 잘됐네요. 이제 몇 시간 후면 도착하실 겁니다.”

저 사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후에 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사실. 굳이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저 사내가 가져온 아이템은 아니었다. 

저 아이템은 이정훈이 수년간 목숨을 걸어가며, 얻은 인생의 전부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주운 아이템은 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건 안되는데요.”

“네?”

“조용히 숨길 수도 있는데, 굳이 왜 가져 왔을까요?”

“······.”

날카로운 질문에 이정훈의 입이 닫힌다.

물론, 아이템을 파는 과정에서 이정훈의 정보망에 걸렸겠지만, 저 사내의 말이 맞았다. 

“따로 원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그건 마스터한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거듭되는 단호함에 짜증이 날 법도 했다. 그러나 정훈의 표정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정훈의 기억 속, 마지막 장면엔 우빈이 있었다. 

지운성을 지독하게 고문하던 사내가 폭발하듯 터져나가고, 우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마비 독에 중독돼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어났을 당시, 정훈의 앞에 처음 나타난 건 우빈이었다.

-도망쳤습니다.

도망쳤다고 말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저 사내가 정현태를 어떻게 했다는 사실을. 

“숙소에 가셔서 쉬고 계세요. 마스터가 오시면 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이정훈이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자리를 떠나려 한다.

우빈은 그 앞으로 보따리를 내밀었다. 이정훈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우빈을 바라본다.

“일단 가지고 있으세요. 거추장스러워서요.”

우빈이 보따리를 넘기곤, 그대로 자리를 떠난다. 이정훈은 멀어져가는 우빈을 보며,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

우빈은 방에 양반다리로 앉아 머리를 말렸다. 씻는다는 건 단순히 몸을 깨끗이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머리를 말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며, 머리를 맑게 해 주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데.’

우빈은 이번에 얻은 아이템을 바닥에 나열하였다.

[레피드 스타+6][A]

[마비의 독니][S]

[레테의 성배][S]

[아드로스의 정기][A]

이 밖에도 정현태가 이정훈에게 빼앗은 아이템까지 더하면 훨씬 많은 아이템이 있었지만, 이정훈의 아이템은 전부 돌려주었다.

‘이거면 충분하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척결 쪽에서 정현태가 도망쳤다는 말을 믿을 리가 없다. 

당연히 아이템의 행방을 추적하다 보면 의심의 화살이 우빈을 향할 터.

쓸데없는 욕심으로 적을 만들 바엔 아이템을 되찾아줬다는 명목으로 빚을 만드는 편이 더 유리했다. 

아무리 즉사기 급 힘을 가졌다고 한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현태 쪽은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띠링-

[마비의 독니]

종류: 완드

등급: S

내구력: 140/140

공격력: 8

지력:+5

체력:+3

효과

-공격 시 마비 효과 부여.

-마비 중독확률 70% 증가.

-마비 중독 저항력 70% 증가.

정현태에게 얻은 아이템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최소 S급 아이템 20개는 들고 있었을 거 같은데.’

정현태는 물질에 병적인 집착을 보였다. 

아무리 못해도 인벤토리에 최소 30개 이상의 고급 아이템을 가지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빼앗을 방법이 없었다. 

마검을 이용한 뇌섬격으로도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작업실의 시련조차, 보호막에 가볍게 막혀버렸다.

만약, 우빈이 조금이라도 방심했더라면 방에서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사람은 우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실망하긴 일렀다.

‘창고가 있겠지.’

인벤토리는 간편하지만, 최대 저장량이 존재했다. 

병적으로 수집하는 정현태에겐 보관하기 턱없이 부족한 공간. 

막대한 수집물을 보관하는 개인 창고가 따로 있을 예상할 수 있었다.

우빈은 나머지 아이템을 마저 확인하였다.

[레피드 스타+6]

종류: 검

등급: A

내구력: 82/115

공격력: 6(+6)

근력: +3

체력:+3

룬석: [강화] [화염] [냉기]

효과

-급소 타격 시 데미지 70% 증가.

그리운 무기였다. 

‘아직도 가지고 있었구나···’

엘리드 7년 차에 레피드의 유적을 공략해 얻은 무기였다.

이 무기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지. 

다시 보니 반가웠지만, 마검에 비교하면 효과는 물론, 룬석조차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레테의 성배]

종류: 성배

등급: S

충전: 8/8

효과

-HP/MP/스태미너 50% 회복.

-섭취 시 10초 동안 모든 능력치 50% 증가.

[종언 아드로스의 정기]

종류: 포션

등급: A

설명:종언 아드로스의 정기가 담긴 병입니다. 강력한 마기가 농축되어있습니다.

남은 2개의 아이템은 정현태가 육성하던 놈이 떨군 아이템이었다.

‘미쳤네.’

성배에는 다양한 능력치가 붙는다. 

성배를 먹으면 효과가 발현되는데, 효과 중 최고로 쳐주는 것이 바로 모든 능력치 증가 옵션이었다.

10초 동안이기는 하나 능력치가 무려 50%나 증가하는 옵션이라니.

이것보다 좋은 성배를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옵션이 사기적이었다.

졸업급 성배를 인벤토리에 넣곤, 다음 아이템을 바라봤다.

주황빛 액체가 가득 든 병이었다.

“아드로스···”

종언 아드로스. 들어본 적 있는 월드 보스이다. 북동쪽을 장악한 괴물로서 엄청 질긴 생명력을 소유한 괴물이었다.

어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미 공략된 보스인 것 같은데.

‘뭘 하고 있는 거지.’

세이버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

굳이 추측할 필요는 없었다.

‘한번 들어가 볼까.’

모든 답이 적힌 해답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우빈은 모든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생각보다 밖에 있던 시간이 길어졌다.

10시간이 지난 지금. 

과연 정현태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씨익-

우빈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고,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연결된 문을 생성합니다.]

허공으로부터 이질적인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

1일 차.

띠링-

[화마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으아!!!!”

전신이 타들어 간다. 근육이 익어가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근육을 수축한다.

“씨발! 씨발!!!”

폐가 타들어 가 숨조차 쉴 수 없었지만, 악을 쓰며 비명을 토한다.

‘씨발! 내가 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죽인다! 강우빈! 개새끼. 죽인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새끼를 찢어 씹어먹고 싶었다.

띠링-

[정현태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정현태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30일 차.

띠링-

[소양감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온몸이 미친 듯이 가렵다.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격통이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손톱 사이로 살점이 파고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긁고 또 긁고, 어느샌가 시뻘건 근육이 훤히 드러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제발··· 제발 그만.”

더 이상 정현태의 표정에서 분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하라고!!!”

애절하게 우빈을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끝없는 긁음의 끝에 팔이 떨어져 나간다. 

‘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간지러워!’

그러나 간지러움은 멈추지 않았다. 없어진 육체 너머로 간지러움이 밀려들었다.

더 이상 긁을 수도 없는데 이 간지러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제발! 제발!!!!!”

정신이 미치기 일보 직전인 그때였다.

띠링-

[지옥겁화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에 정현태는 입꼬리를 올렸다.

‘죽을 수 있어.’

화르륵-

띠링-

[정현태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정현태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100일 차.

“제발··· 살려줘!!!”

200일 차.

“내가 잘못했어. 우빈이 형! 나랑 이야기 좀 하자!!!!”

300일 차.

“죄송합니다. 내가 다 말할 게 형!!!!!”

4,161일 차.

“으아!!!!!!!”

정현태는 더 이상 빌지 않았다.

“아파, 아파!!!!”

그저 고통을 받아들이며 이 지옥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죽고 싶어.’

차라리 그냥 죽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어 올랐다. 

띠링-

[정현태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정현태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지옥은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순간 끔찍하게 밀려오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싹 가신다.

분명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그러나 정현태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제발··· 소양감만 나오지 마라.’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시련이 시작되기까지 30초.

이 평온함은 그 어떠한 시간보다 두려운 시점이었다.

“제발··· 제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멈출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 불을걸.’

만약, 처음부터 질문에 전부 답했다면 이런 지옥을 안 겪었어도 되었을까.

후회스러웠다. 괜한 자존심에 객기를 부리면 안됐었다.

이제 10초 뒤면 다시 지옥이 시작되겠지.

정현태가 끄윽거리며 울먹이던 그때였다. 

철컹-

절대 안 열릴 것 같던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아주 그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현태는 본능적으로 바닥을 기며 우빈에게 다가갔다.

“형.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제발 살려줘. 그만하고 싶어. 전부 말할게.”

지옥이 시작되기 전 어떻게 해서든 설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우빈은 그 어떠한 말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 볼뿐.

“형! 제발···”

정현태의 처절한 애원이 이어졌지만, 

띠링-

[압박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어김없이 메시지가 떠올랐고.

“으아!!!!!”

정현태는 고통에 허덕였다.

***

띠링-

[정현태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정현태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허억-”

정현태가 가쁜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린다.

“형, 주성형님, 아니 차주성 씹새끼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동부 엘드 산맥에서 레드 드래곤 레이드 중이야. 10년 동안 못 잡았으면 그만할 만도 한데, 진짜 멍청하지 않아?”

벌써 4번을 죽고 살아나길 반복했지만, 전에 보여준 악바리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유주는 미안해. 진짜 나는 그러기 싫었는데, 차주성이 형 캐고 다닌다는 게 아니꼽다고 어쩔 수 없었어.”

조잘거리며 열심히 사과한다.

『제발··· 그만. 제발···』

마음까지 꺾였는지, 별다른 꿍꿍이 역시 없었다.

띠링-

[감전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으악!!!!!!!!!”

『제발··· 그만. 제발···』

띠링-

[정현태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정현태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우빈은 양반다리로 앉아, 턱을 괴곤 그런 정현태의 고통을 감상했다.

10번을 죽고, 100번을 살아나며, 비굴하게 비는 모습을 전부 눈에 새겼다.

“제발··· 아! 내가 여태까지 모아놓은 금고가 있어! 전부 줄게. 제발 그만해줘.”

애절하게 빌고 알고 있는 모든 걸 분다. 그러나 우빈의 표정은 더욱 내려앉았다.

‘고작 10시간 가지고 이 지랄인가.’

우빈은 이 지옥을 5년이나 당했다. 그런데 고작 10시간만 이 꼴이라니.

부족해.

너무 부족했다. 당장 나머지 새끼들을 이곳에 처넣어야 기분이 풀릴 것만 같았다.

후우-

우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원래라면 궁금한 걸 물으려고 했지만, 100번을 죽는 과정에서 전부 해소되었다.

그대로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정현태가 바닥을 개처럼 기며, 다가온다. 

“전부 말해줬잖아. 제발···.”

이대로 그냥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현태는 쓸모가 많았다. 

세이버에게 있어 가장 신뢰가 두터운 인물이지 않은가. 잘 교육해놓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계략으로 쓰일 터.

“시간, 고통, 휴식. 셋중 하나만 골라.”

“뭐?!”

“싫음. 말고.”

“고통!!! 제발. 그만 아프고 싶어.”

띠링-

[시련 난이도가 변경되었습니다.]

[최상 → 상]

우빈은 난이도를 설정하곤 바로 문을 열었다.

“형!! 잠깐만!”

애절하게 손을 내미는 정현태를 뒤로한 채, 철컹- 문이 닫히자 다시금 고요함이 찾아왔다.

‘확실하네.’

하루 정도면 마음을 꺾기에 충분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잘 먹혔다. 

다른 새끼들은 며칠이면 될까.

‘궁금하네.’

특히 차주성의 표정이 제일 궁금했다. 

언제나 웃으며 든든한 지주처럼 행동하는 이중성이 역겨웠다.

우빈의 표정이 섬뜩해져 가던 그때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번엔 과연 어떤 능력이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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