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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인체 실험(3) (42/107)

41. 인체 실험(3)

민주희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피부 봐라, 와··· 빛이 나네.”

“귀족 영애 같지 않아? 역시 운이 좋다니까.”

20여 명의 사내들이 주희를 음흉한 눈으로 보며 입맛을 다신다.

주희의 등골로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떻게 하지.’

주희는 뒷걸음질 치며, 무의식적으로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띠링-

[화마의 유산을 장착하였습니다.]

작은 막대기가 손에 착 감기며 잡히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뭐해? 해보자고? 반항하는 것도 나름, 매력 있지.”

머리가 반쯤까진 사내가 거뭇한 혀로 입술을 핥으며, 주희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주희는 사내와 거리를 두며 뒤로 물러났다.

‘도망칠까?’

주희는 퇴로를 찾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적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뛰어서 도망가는 건 불가능.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2개뿐이었다.

싸우든가 혹은 순순히 당하든가.

꽈드득-

지팡이를 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주희는 스킬 슬롯을 확인했다.

장착된 스킬은 총 3개였다.

띠링-

[스킬 슬롯]

1. [파괴 광선][S]

2. [마력 실드][D]

3. [마력의 샘물][F]

파괴광선을 제외한 나머지 2개는 경매장에서 산 보조 스킬이다.

마력 실드는 마력으로 방어를 하는 스킬, 마력의 샘물은 MP를 회복시켜주는 효과를 지녔다.

둘 다,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 능력이었다.

즉, 지금 가진 무기는 손에 들린 지팡이와 파괴광선뿐이라는 것이다.

두근-두근-

집채만 한 괴물이 눈앞에 있어도, 4M가 넘는 괴물이 트럭처럼 뛰어왔을 때도 주희는 싸울 수 있었다.

파괴광선이라는 능력을 지닌 자체만으로 기관총을 들고 있는 듯한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망설여졌다.

‘죽겠지···’

살인을 한다는 행위가 두려웠다.

주희의 머리속이 살인이라는 행위로 복잡하던 그때였다.

툭- 

뒷걸음치던, 발 뒤로 무언가가 닿았다.

뒤를 돌아보자, 얼굴이 시커먼 아저씨가 주희를 보며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꺄악”

주희는 비명을 지르며 아저씨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도적은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그대로 주희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곤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도적에게 이런 상황은 아주 익숙했다. 

마을을 털다 보면 악바리 있는 년은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으니까.

이런 년들은 대부분 말로는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뺨을 두, 세대 쳐주면 알아서 무릎을 꿇고 빈다.

도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머리끄덩이를 쥐어 잡곤 그대로 뺨을 후려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 뭐지 왜 안 딸려와?’

분명 모든 힘을 다해 잡아당겼지만,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의문의 채 가시기도 전.

겁에 질린 주희의 손바닥이 사내의 복부를 밀었고, 퍽!!! 사내의 상체가 기괴하게 꺾이며 5미터가량을 뒤로 날아갔다.

콰과과과-

쓰러진 사내의 움직임이 없다.

“뭐, 뭐냐···”

“평범한 년이 아닌가 본데요.”

그 모습을 본 도적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모험가라면 낼 수 없는 무력이었다. 

저런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는 건 이계에서 온 용사 새끼들 뿐.

“아무래도 용사 같은데요. 그냥 도망치죠.”

“맞아요. 싸울 의사도 없어 보이는데.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좋아 보입니다.”

눈칫밥으로 살아온 인생이지 않은가. 부하들은 바로 상황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씨발···’

두목은 부하들의 수군거림에 이를 갈며 여인을 바라봤다.

“허억···허억···”

새파랗게 질린 표정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 하며. 공포에 질린 년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아니, 도망은 안 간다.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붙잡아.”

“네?!”

두목은 판단을 내렸다.

-용사를 잡아 오면 이것에 1,000배를 드리겠습니다.

노예를 사가는 놈들이 말했던 말이다. 

저년이 정말 용사라면 좀 전에 팔았던, 모녀의 1,000배를 받을 수 있을 터.

그 액수면 도적질 따위는 접고 1년 동안은 먹고 놀 수 있는 금액이었다.

“뭐해, 붙잡으라고.”

“두, 두목 용사라고요···”

“쪼다 같은 새끼가, 내 말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잊었어?!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붙잡으라고!”

두목의 윽박에 부하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판단을 내린 듯 주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주희는 압박해오는 도적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전까진 희롱에 가까운 분위기였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칼을 들고 경계하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찌를 기세였다.

‘어쩔 수 없어.’

주희의 떨리던 손이 조금씩 멈춘다.

이런 상황이 찾아올 거라는 걸 어렴풋이 예상하였다.

여기에 온 지는 보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큰 틀의 법칙이 있었다.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지배당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처음 산속에 떨어져 괴물들에게 사냥을 당할 때도, 도움을 준다던 사내가 동료의 목을 벴을 때도. 주희는 힘이 없었다. 갈취당하고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꽈드득-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할 건 타인의 생사가 아니다. 오직 자신만을, 미래를 그려나갈 뿐.

주희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판단을 내린 듯 도적들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다.

“잡아!!!”

때마침 도적들이 주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주희의 지팡이로 거대한 마력이 차오르던 그 순간이었다.

후웅-

바람이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펑-펑-펑-펑- 도적들의 머리가 그대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스르륵- 주희의 지팡이 앞으로 우빈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빈이었다. 우빈은 주희의 지팡이를 밑으로 내리며 입을 뗐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빈씨···.”

긴장이 풀린 주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우빈은 그런 주희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데리고 다닐만하네.’

마음만 같아선 주희가 전부 처리할 때까지 지켜보고 싶었지만, 파괴광선을 쓰게 놔둘 수는 없었다.

쓰는 순간 그 녀석에게 누군가 왔다고 광고하는 꼴밖에 안 될 테니까.

우빈의 시선이 살려둔 도적의 두목으로 향한다.

“히익! 잘,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한 번만 살려주세요···”

머리가 반쯤까진 도적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생명을 구걸한다.

『역시 용사 새끼들이었어. 그냥 도망칠걸··· 젠장. 젠장!!!』

녀석의 마음속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떠오른다.

원래라면 굳이 귀찮게 살려 둘이 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희를 구경하던 와중, 도적들의 내면 메시지 중 특정 단어가 튀어나왔다.

『저년이 정말 용사라면 좀 전에 팔았던, 모녀의 1,000배를 받을 수 있어.』

여러 메시지로 미루어보아 도적들은 지금 막 노예를 팔고, 하산하는 길인 걸 알 수 있었다.

이 부근에 차주성의 실험실이 있을 텐데, 단순한 우연일까?

‘마침 잘됐네.’

정현태의 기억을 따라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실험실의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엿봤다고는 하나, 영상 속에 나온 길은 온통 숲뿐, 지형이 많이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우빈은 도적의 뒤통수를 움켜쥐곤, 칭호의 효과를 활성화했고,

띠링-

[대상의 기억을 엿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

매캐한 곰팡이 내음. 어둠이 가득한 창고 안. 붉은 횃불이 활활 타오르며 주변을 밝힌다.

이 어둠 속엔 50여 명의 엘리드 주민이 모여있다.

“엄마. 여기 뭔가 무서워···.”

“걱정하지 마. 용사님이 이제 먹을 거 걱정 없고, 괴물들 없는 왕국으로 들어가게 해주신데.”

“우와! 진짜? 저기 가면 왕자님이랑 공주님도 볼 수 있어?”

“물론이지.”

10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의 말에 활짝 웃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를 가진 산모, 1살이 채 되지 않는 미취학 아동까지. 이 장소엔 마을 사람 전원이 따라온 상태였다.

이들을 끌고 온 건 세이버 소속 용사 이상혁이었다.

원래라면 무력이나 협박을 통해 강제로 데려와야 정상일 것이다. 

아무리 용사라는 타이틀이 있다고 한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 어떠한 말을 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오늘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메아로카에서 새로운 주민을 받겠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저를 따라오세요.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상혁의 말을 믿었다.

“용사님도 같이 가는 거야?!”

“그럼! 용사님도 같이 갈 거야.”

이상혁과 마을 사람들은 일면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에 들락거렸다.

주변의 몬스터를 처리해주었으며,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하며 신뢰를 쌓았다.

전부 오늘을 위해서 한 일이었을까?

‘젠장···’

아니었다. 

이상혁은 애초에 실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엘리드의 주민이라고 한들, 살아있는 인격체이다. 

쓰다 버리는 장난감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실험용 쥐로 이용하는 행위는 양심을 건드렸다.

그러나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세이버는 이상혁에게 있어, 전부이자 힘을 주는 원동력이었으니까.

철컹-

이상혁은 이세현의 명령을 받곤 방에 들어섰다.

50여 명의 주민이 이상혁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용사님!”

두 팔을 활짝 벌려 뛰어오는 아이.

“왕국 입성이라니, 제 인생에서 용사님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미래를 그리는 청년.

이상혁은 그런 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띠링-

[수면 연기를 사용하였습니다.]

파스스스-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자, 하나둘씩 정신을 잃으며 쓰러진다.

마음이 쓰렸지만, 이상혁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저 자신은 주어진 명령을 따르는 부하일 뿐이었으니까.

이상혁이 타당성을 부여하며 행동에 나섰다.

한 명씩 실험 방으로 옮기려는데, 방 중앙으로 잠들지 않은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뭐야? 너무 멀어서 안 걸렸나.’

의구심을 품으며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스킬을 사용한다.

파스스-

뿌연 연기가 더욱 짙게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 사내는 잠들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으로 이상혁을 뚫어져라. 노려볼 뿐.

‘그러고 보니까, 저런 주민이 있었나?’

이상혁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너도 참 쓰레기구나.”

그 사내의 낮은 음성이 울려퍼지는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사내의 육신이 사라지는 듯 흐려졌고, 빠각!!! 강렬한 충격이 얼굴을 강타했다.

***

썩은 내가 진동하는 지하실.

서걱-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날카로운 칼날이 피부를 베고 근육을 자른다.

핏물이 왈칵 쏟아지자, 【으아아아아아!!!!!】 섬뜩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칼질은 멈추지 않는다. 

상하 운동을 이어나자, 철벅- 거대한 살덩어리가 적출된다.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1초도 되지 않아 스르륵-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한다.

이세현은 익숙하다는 듯, 회복된 육체를 뒤로한 채, 뽑아낸 살덩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띠링-

[연금]

종류: 특성

등급: S

효과

-대상과 대상을 혼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합니다. 

그녀의 특성은 대상을 혼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몬스터와 용사를 융합할 수도 있었고, 주민과 몬스터를 혼합해, 상급 몬스터를 제작할 수도 있었다.

지금 적출한 이 살덩이는 이세현의 야심작이었다.

무려 월드 보스 아드로스와 용사를 혼합해, 창조한 연금술의 결정체였으니까.

이세현은 자신의 손바닥을 벴다. 

후우욱-

핏물이 흥건하게 테이블 위에 쌓이자, 바로 특성을 활성화했다.

띠링-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합니다.]

도려낸 살덩이와 피가 융합하며, 주황빛 액체가 생성된다.

[혼탁한 종언 아드로스의 정기]

종류: 포션

등급: A

설명: 종언 아드로스의 정기에 혼탁한 기운이 서렸습니다. 마기의 농도가 감소하였습니다.

요즘 주로 연구하고 있는 포션이 완성되었다. 

이 포션으로 일주일 동안 계속 같은 실험을 반복하였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확실히 순도 높은 정기보다는 효과가 덜했다. 그러나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번에는 어떤 걸 창조해볼까.

‘이럴 때 실험용으로 쓸 용사가 있으면 참 좋은데.’

이세현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그때였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상혁이 세팅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가겠습니다.”

이세현은 막 만든 포션을 챙겼다. 실험 내용을 기록할 종이를 세팅했다.

깊은 계단을 지나 위로 올라가자, 이상혁이 익숙한 포즈로 서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네.”

여태까지 그래왔듯 이상혁은 실험실로 안내를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허억···허억···”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호흡을 내뱉는다.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네? 아니요. 왜 그러시나요?”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괜찮습니다. 근래 잠을 좀 못 잤더니. 하하하.”

이상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어느 한 문에서 멈추어 선다.

“이번에 새롭게 방을 세팅해봤습니다.”

“새로운 세팅이요?”

굳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명령이라면 목까지 바칠 정도로 수동적인 인물이었으니까.

‘흠···’

이세현은 문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이런 방이 여기에 있었던가?’ 

애초에 다른 문이랑 디자인부터 달랐다. 그런데 이 문양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이세현이 의아함을 느끼던 그 순간이었다.

철컹- 

이상혁이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실험만 이어갈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이세현의 머릿속엔 온통 실험을 진행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이세현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방에 들어섰다.

철컹-

굳게 닫히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이 찾아왔다.

“뭐에요? 세팅 끝났다면서요?”

이세현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입장하였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와 함께. 화르륵- 횃불이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고,

“······”

방 중앙으로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본 이세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내려앉는다.

“오랜만이네, 세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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