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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무너지는 균형(2) (45/107)

44. 무너지는 균형(2)

유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앞의 상태창을 응시했다.

띠링-

[오유주]

3회차 용사

레벨: 1

HP: 50/50

MP: 5/5

스태미나: 5

생명력: 5

정신력: 5

지구력: 5

근력: 5

기량: 5

체력: 5

지력: 5

감각: 5

행운: 5

“레벨이 1···.”

기억 속 유주의 레벨은 166이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 세월만 무려 10년이 넘어가기도 했고, 그런데 레벨이 1로 초기화 된 것도 모자라, 노력해서 얻은 아이템 또한 없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우빈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야기했다.

우빈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크게 3가지로 압축되었다.

1. 우빈은 차주성에게 배신당해, 던전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2. 우빈의 죽음을 의심한 유주는 차주성에 의해 제거 대상이 되었다.

3. 그 과정에서 유주는 실험체로서 끔찍한 실험을 당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나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고?’

만약,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왜 아무렇지도 않지?

유주는 몸을 더듬어보며, 상태를 살폈다.

전신으로 가득하던 흉터가 하나도 없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피부 같다고 해야 할까. 

믿을 수 없는 말뿐이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오유주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피부가 검게 변해, 녹아내린 여인. 그 여인의 품으로 내장을 흘리며 식어가는 아이가 있었다.

시체는 두 구뿐만이 아니었다.

어림잡아도 200명 이상. 전원이 기괴한 모습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주성이 오빠가 이걸 전부 했다고···.’

보고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빈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조금씩 상황이 파악되던 그때, 유주의 시선으로 특이점이 들어왔다.

띠링-

특성: [피의 재생] [종언 아드로스의 핵][NEW]

특성은 전이된 용사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힘이다. 

지문처럼 개인마다 특징이 달랐고, 오직 하나만 가질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주의 특성이 하나 추가되어있었다.

오유주는 바로 특성을 확인했다.

[종언 아드로스의 핵]

종류: 특성

등급: L

효과

-종언 아드로스의 핵이 생성됩니다.

“우와···L등급?!”

등급도 등급인데, 효과가 의미심장했다.

핵이 생성되다니, 어디에?

유주는 손바닥으로 몸을 여기서기 만저보았다. 

“어?!”

분명 부드러워야 할 부분으로 딱딱한 무언가가 손끝을 스친다.

“이, 이게 뭐야···”

****

철그럭- 철그럭-

고요함이 감도는 방 안으로 아이템이 하나둘씩 쌓여간다.

각종 방어구와 무기를 포함, 제법, 가치가 높은 아이템들이었다.

“형! 전부 옮겨놓았어.”

정현태가 마지막 장비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우빈에게 다가간다.

‘역시 좋네.’

우빈은 고분고분한 정현태를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정현태의 특성이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효과를 체험해보자, 피부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 대상이 아이템을 빼앗는 능력이라니.

‘얼마쯤 하려나.’

각종 S급 장비를 시작으로 상급 영체까지.

우빈은 수많은 아이템 중, 비싸 보이는 아이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세현이 처음 꺼내 들었던 지팡이였다.

띠링-

[헤일로의 지혜+9]

종류: 지팡이

등급: S

내구력: 145/145

공격력: 10(+9)

근력:+1

지력:+6

행운:+2

룬석: [연사] [증폭] [활력]

효과

-스킬 카드 공격력 80% 증가.

-데미지 80% 증가.

-추가 데미지 30%.

“좋다.”

민주희가 가지고있는 화마의 유산보다, 2배 이상 좋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기적인 옵션이었다.

아무런 제약 없이 데미지 80% 증가 옵션에, 30% 추가 데미지.

얼마에 거래될까. 아무리 못해도, 1,500만 룬. 아니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우빈이 만족스러운 보상에 기뻐하던 그때였다.

“형 이제 뭐 할까?”

정현태가 우빈의 눈치를 보며 질문을 해왔다.

“이거 치울까?! 창고 같은데, 냄새나면 그렇잖아?”

바닥에서 썩어가고 있는 유주의 전생 시체를 향해 다가가며 말을 해왔다.

『제발··· 다시 들어가기 싫어. 뭐라고 하지. 괜히 이상한 말 하면, 화만 더 낼 거 같은데···』

정현태는 속마음으로조차 우빈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처음만 하더라도 평생 저주할 것처럼 짓거리더니. 

하긴, 시련을 끝낼 수만 있다면 원수의 발바닥이라도 핥을 수 있게 만드는 게 바로 시련의 고통이다.

저렇게 비굴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건 안 치워도 돼. 들어가.”

끼이익-

우빈은 정현태가 있어야 할 방의 문을 열며 말했다.

“형··· 제발. 내가 진짜, 잘못했어. 내가 도와줄게. 차주성 유인해서 일로 데리고 와줄까?”

정현태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애원한다.

“들어가.”

“······.”

차가운 우빈의 음성에 정현태가 흠칫 어깨를 떨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씨발··· 아이템 하나 정도는 빼돌려놓을걸.』

약간 거슬리는 생각을 하는 게 문제였지만, 녀석과 약속한 게 있었다.

띠링-

[시련 주기가 161초로 변경됩니다.]

“형! 고마워. 다시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정현태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방에 들어선다.

철컹-

문이 닫히자.

띠링-

[9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바로 들어오는 포인트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네.’

정현태의 이용 가치는 높았다. 

마음만 같아선, 최고의 지옥을 선사해주고 싶었지만, 당근을 줄 필요성이 있었다.

조금 전 행동만 봐도 그렇다. 약간의 보상만으로 이렇게까지 충성을 다할 줄이야.

우빈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쯤이면 끝났겠지.’

철컹-

띠링-

[룸3:이세현에 입장하였습니다.]

시야가 바뀐다. 

탄내와 오물이 뒤섞여 역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 냄새의 중심엔 이세현이 구속되어있었다.

“전부 다 끝마쳤습니다.”

우빈이 들어서자, 이상혁이 비장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건넨다.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크로노스의 버프. 

이 방의 시간만 빠르게 흐르도록 설정해놓았다. 잠깐 밖으로 나갔다 온 사이, 많은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흠칫-

우빈을 보는 이세현의 눈빛이 바뀌어있었다. 

독기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우빈은 필요 없어진, 이상혁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왜, 왜 그러세요! 시키는 데로 전부 했잖아요! 저는 풀어주셔야죠.”

“내가 풀어준다고 했던가?”

“네···?”

이놈은 아직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시키는 대로 뭐든 하는 수동적인 인간이지 않은가. 

그런 것 치곤,

띠링-

[살해] [강간] [노예 거래] [인체 실험]······

머리 위로 많은 죄목이 떠오르는 게 문제였지만.

끼이익-

옆에 있는 문을 열자,

“으아!!!!!!!!!”

“제발···제발!!!!!!!!!!!!!!!!!”

이세현의 부하 5명이 처절한 절규를 내뱉고 있었다.

“제발···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저는 제발···”

처절한 광경에 이상혁이 빌고 또 빌었지만, 우빈은 망설임 없이 이상혁을 집어넣은 뒤 문을 닫았다.

철컹-

고요한 적막이 일었다.

“흐읍-”

이따금 이세현의 호흡만이 들려올 뿐.

우빈은 이상혁이 쌓아놓은 서류에 앉아 이세현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이세현이 다급히 입을 뗐다.

“우빈아, 그만하자.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뭐가 충분한데.”

“우리라고 뭐 마음이 편한 줄 알아? 던전에서 탈출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정현태의 말과 기억에 따르면, 우빈을 던전의 제물로 바친 것과 던전 탈출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우빈을 제물로 바친 건 그저 아이템을 가져가기 위한 조건이었을 뿐.

우빈의 표정이 싸늘해지자, 이세현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뗐다.

“복수 때문에 그래? 우리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애초에 죽지도 않고 살아있었으면서 왜 이러는 건데!”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내가 주성이 오빠한테 잘 이야기해줄게. 그만하자. 어?”

하긴 5년 동안 어떤 지옥에서 버텼는지, 모르니 저딴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것이다.

꽈드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얼굴에 주먹을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띠링-

[설정이 변경됩니다.]

[시련 난이도가 최상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시련 주기가 20초로 설정되었습니다.]

그저 우빈이 겪었던 지옥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면 그만이었으니까.

“이, 이건 또 뭐야. 우빈아! 그만하라고!!!”

이상한 기류에 이세현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감히 나한테 이런 짓을 해?! 죽여버릴 거야!!!!!!!』

이세현의 앞으로 소름 끼치는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네가 실험했던 사람들의 고통이었고, 이제부턴 내 거야.”

“뭐?!”

이세현의 의문이 끝나기 무섭게.

띠링-

[감전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콰지지직-

“으악!!!!!!!!!!! 그, 그만!!!”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파스스스- 이세현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세현이는 얼마나 가려나.’

우빈은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라면 5대 왕국중 하나에 들어가서 길드라도 창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척결이 왜 해체되었는지, 유주의 몸에서 나온 주황빛 파편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끼이익-

생각을 마친 우빈은 굳게 닫힌 문을 열었고,

철컹-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서 나왔습니다.]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이게 핵이라고···”

오유주는 명치 부근에 튀어나온 주황빛 구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진짜 몸에 뭐가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드로스면 월드 보스 아닌가?’

종언 아드로스.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메아로카와 러우신 경계 부근에 서식하는 괴물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왜 월드 보스의 핵이 특성으로 발현된 것일까.

‘실험···.’

우빈이 말했던 실험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유주는 고민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민주희][LV.125][HP:1,650/MP:165]

벽 너머로 한 여인의 위치가 표시된다. 유주는 우빈에게 파티를 받은 상태였다.

-파티원이 있어. 생각이 정리되면, 가서 인사라도 하고 있어.

우빈이 파티원이 있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여자일 줄이야.

복도를 지나 문을 열자, 한 여인이 수십 명의 사람에게 포션을 먹이고 있었다.

“어?!”

유주가 나오자, 민주희가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쁘다···’

오유주는 민주희를 보곤, 그대로 입을 벌리곤, 감탄을 내뱉었다. 

“누구신가요?”

놀란 유주에게 민주희가 말을 걸어왔다. 민주희의 눈빛이 흔들린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저는 오유주라고 합니다. 우빈 오빠랑 같은 길드에 있었어요.”

“네? 우빈 씨랑요?”

“네.”

소개에도 경계하는 눈치이다. 어차피 우빈이 오면 알아서 수긍할 터.

“뭐 하고 계신 건가요?”

유주는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다.

“우빈씨가 이분들을 깨우고 있으라고 하셔서요.”

유주의 시선이 사람들에게 향한다.

“엄마! 일어나.”

“으, 머리야.”

엘리드의 주민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주민들을 깨우라고 하셨다고요?”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때마침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전부 깨우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우빈이었다. 

우빈이 민주희에게 칭찬을 하곤, 바로 입을 뗐다.

“전부 모여 주시겠습니까? 할 말이 있습니다.”

****

찌르르르-

풀벌레가 가득한 숲속. 상쾌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자, 짙은 꽃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 있는 사내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이 사내의 이름은 차주성.

‘············.’

차주성은 눈매를 좁히며 정면을 응시했다.

분명 1년 전만 해도 굳게 닫혀있던 던전의 문이 작렬하게 폭발해있었다. 

‘진짜, 너냐.’

처음 서희빈의 입에서 녀석의 이름이 튀어나올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 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설마 5년 전에 던전에 제물로 바쳤던 놈이 던전을 탈출해서, 복수를 꾀할 줄이야.

“어떻게 한 거지.”

탈출은 그렇다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강우빈이 유능했던 건 사실이다. 특히 특성으로 레벨을 끌어올린 스킬은 지금까지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현태도 모자라서 세현이까지 죽였을 줄이야. 거기다 서희빈의 말에 따르면, 주먹 한방으로 아드로스의 감염체를 폭사시켰다고 했다.

‘그런 스킬은 없었는데······. 신경 쓰이게 하네.’ 

처음부터 우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선을 떠는 모습 하며, 다 같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자고 나대는 행동은 심기를 건드렸다.

도대체 던전에서 어떤 능력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디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현태가 죽어도, 세현이가 죽어도, 세이버 모두가 사망해도 상관 없었다.

띠링-

차주성의 시선이 손바닥으로 향한다. 그의 손아귀로 하나의 아이템이 들려있었다.

우빈을 제물로 바친 이유. 그리고 세이버를 이 자리까지 올리게 해준 원동력.

[크로노스의 회중시계]

종류: 액세서리

내구력: 5/10

등급: UL

효과

-사망 시 10일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쿨타임: 10일)

전부 이 아이템 하나에서 나온 위력이었다.

이 아이템만 있다면, 최악의 상황이 찾아와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었다.

“까불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꽈드득-

차주성은 회중시계를 꽉 움켜쥐었고, 두 눈빛에 강렬한 분노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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