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무너지는 균형(3)
“우웩-”
“이, 이게 무슨!!”
막 잠에서 깬 주민들의 표정에 경악이 서린다.
전신의 피부가 녹아내려 죽은 여인. 비명을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듯 굳어버린 사내.
충격적인 건, 죽어간 이들의 연령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10살 정도로 어린아이를 시작해서 1살이 채 되지 않은 영유아까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토가 쏠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개새끼들···.”
“이게 다 뭐야···”
분노에 이를 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 장소에 데려온 우빈을 보며, 공포를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우빈은 두 시선을 느끼며 입을 뗐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실험실입니다.”
“사람을 가지고 실험을요?”
“그러면, 왕국에 데려다주신다는 이야기는···”
“여러분들을 속이려고 한 거짓말이죠.”
우빈의 말에 주민들의 표정에 공포가 서린다.
“여기를 떠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시설을 관리하는 놈들이 지금쯤이면 이쪽으로 오고 있을 거거든요. 붙잡히면 살아서는 돌아가실 수 없을 겁니다.”
“······”
“이건 같은 용사로서 드리는 사죄의 선물입니다.”
우빈은 당황하는 주민들의 앞에 3개의 아이템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서쪽에 세계수의 수호자를 처치하고 새로운 왕국을 건립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다시는 없을 기회이니,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민들 중, 한 사내가 우빈을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새로운 왕국이라니, 진짜인가요?”
“네.”
사내의 표정에 의구심이 가득하다. ‘세계수의 수호자’는 주민들이 월드 보스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주민들에게 있어 월드 보스의 존재는 다양하게 받아드렸다.
신처럼 경배하기도 했으며, 악마와 같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괴물을 쓰러트린 인물이 새로운 왕국을 설립한다? 소속 국가가 없는 자유민 입장에선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믿음이 안 갔다. 고작 말 한마디만 믿고 움직이기엔, 이들은 너무나도 약했다.
“그걸 어떻게 믿죠?”
“안 믿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답해드리겠습니다.”
우빈은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띠링-
[다크 피닉스를 소환하였습니다.]
강렬한 빛무리가 모여들더니, 거대한 불사조의 모습이 드러낸다.
“우와···”
흡사 전설 속에나 등장할법한 신수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강렬한 위압감에 주민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걸 가지고 가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우빈은 피닉스의 깃털 하나를 뽑아, 의문을 던진 사내에게 쥐여주었다.
“아··· 네.”
더 이상 주민들은 감히 우빈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마치 전설 속 영웅이라도 만난 듯, 그저 우빈의 모습을 두 눈에 새길 뿐이었다.
***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쩡!!!!!!!!
거대한 충격과 함께, 대지가 요동친다.
“우왓!”
지축이 뒤틀린 듯한 울림에 주민들이 나자빠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후웅- 거대한 새가 하늘 높이 사라진 뒤였다.
주민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어져가는 우빈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도대체 뭐야···.”
주민들은 어리둥절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용사가 메아로카로 이주시켜주겠다며, 쓸데없는 기대를 품게 했다.
그렇게 도착한 건물에선, 갑자기 마을 사람 전원이 잠에 빠져들었다.
겨우 잠에서 깨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처음 본 사내가 끔찍한 광경을 보여주며, 도망치란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두가 머리로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던 그때였다.
“엄마, 왕자님이랑 공주님 못 보는 거야?”
“······.”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곤 물었다. 아이의 엄마는 답을 해주지 못했다.
기대감 넘치면서도 반짝거리는 눈빛을 망가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보죠.”
한 사내가 적막을 깨며 주민들 앞에 나섰다.
우빈의 말에 의문을 품고, 다크 피닉스의 깃털을 받았던 마을의 주민, 제이스였다.
“붙잡히면 전부 죽는다잖아요. 한번 가보죠.”
“미쳤어? 저 말을 믿는 거야? 그리고 서쪽 어디인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가자고?”
“맞아, 자살행위라고.”
제이스의 제안에 대부분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당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마을에만 있어도 위험한 곳이 바로 엘리드이다.
그런데 수십 명에서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내의 말 한마디에 목적지도 확실하지 않은 장소를 찾아 움직인다?
차라리 원래 마을로 돌아가, 시설을 관리하는 놈들이 오길 기다리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이스의 표정은 확고했다.
“저는 갈 겁니다. 돌아가실 분들은 마을로 돌아가세요.”
제이스는 우빈이 바닥에 내려놓은 아이템 3개를 집어 들었다.
푸른 빛이 감도는 돌, 짐승의 송곳니를 떠올리게 하는 이빨.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처음 보는 물건이었지만, 소문으로 들어본 적이 있었다.
‘보물.’
용사들은 하나같이 신비한 힘을 지닌 보물을 지니고 있다고.
소문에 따르면 보물은 우리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쓰는 거지?’
제이스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푸른색 돌을 움켜쥐었고,
우웅-
돌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온 그 순간, 하나의 문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띠링-
[비탈의 영혼석을 사용하였습니다.]
***
눈을 뜨기 힘든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꺄악!!!!”
유주는 우빈의 허리를 꽉 움켜쥐며, 눈을 질근 감았다.
‘이거 날것 맞지?’
생전 이렇게 빠른 날것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날것의 외형 또한 심상치 않았다.
5미터에 육박하는 크기 하며, 깃털 하나하나로 흘러나오는 검은 광채 하며.
‘몇 등급이지?’
절로 의문이 들 정도로 좋아 보였다.
우빈에게 궁금한 게 많았지만, 가장 강렬했던 건, 출발 직전 보여준 스킬의 위력이었다.
가볍게 건물 외벽을 친 것 같았는데, 건물이 통째로 증발해버렸다.
원래 우빈이 강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괴물은 아니었다. 도대체 배신을 당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주는 이상한 지하실에서 우빈을 다시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얼굴을 본 순간 우빈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순간 당황했다.
평소에 느껴지던 따뜻한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인형처럼 차가운 표정은 순간 다른 사람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했다.
하지만 우빈은 바뀌지 않았다.
엘리드의 주민들을 구해준 것은 물론, 아이템까지 나눠주며 선행을 베푸는 모습은 그때와 똑같았으니까.
오유주가 우빈의 무력과 과거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던 한편.
우빈은 부서진 건물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누굴 보내려나.’
차주성의 계획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실험실이 박살 났다. 지금쯤이면, 사람을 꾸려, 실험실로 인력을 보냈을 터.
마음만 같아서는 실험실에 함정이라도 파서, 기다릴까도 했었다. 하지만 우빈은 차선책을 선택했다.
‘조금 더 천천히.’
정현태와 이세현을 붙잡은 지금.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탬포를 더 천천히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빠르게 무너트리는 것보다는 그 녀석이 쌓아 올린 탑을 하나하나 망가트리는 편이 더 의미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빈은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시스템창을 활성화했다.
띠링-
[마스터 지도를 활성화합니다.]
우빈의 위치를 표시하는 붉은 점이 빠르게 이동한다.
지금 가는 곳은 부신.
‘어떻게 된 거지.’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하루아침에 대형 길드 하나가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하나의 시스템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구경이나 볼까.’
지금 있는 장소에서 부신까진 제법 거리가 있었다. 아무리 빠르게 이동한다 해도 3시간 이상은 걸릴 터.
[커뮤니티를 활성화합니다.]
-남부지역을 개척할 딜러분을 모십니다. 레벨/3대 전력/장비 세팅을 댓글로 적어주세요.
-심심한데, 낚시하실 분 계신가요?
-A급 탈것: 라이언드 팝니다. 룬[email protected] 가능.
-진짜, 나인테일 죽었네. 누구냐? 또 차주성이야?
-A급 도검, 스로어드 팝니다. 상세 설정은 답글로 남겨두겠습니다. 제시 부탁드려요.
-씨발, 하몬 왕국 망하는 거 아니냐? 몬스터 개 많은데. 그런데 몬스터가 이상하다. 존나 안뒤져.
........
.....
....
.
수많은 글 중 몇 가지 글이 눈에 띄었다.
-서북부의 월드 보스. 나인테일 공략 성공. 다음 목표인 월드 보스: 백귀를 처치할 분을 모십니다. [가디언]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글은 구시현이 올린 글이었다.
‘잘하고 있네.’
우빈이 구시현에게 부탁한 건 이러했다.
-국가 단위의 세력을 모아주세요. 용사와 NPC 모두 필요합니다.
아무리 주먹 강타라는 강력한 스킬이 있다고는 하지만, 혼자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당장 용사들이 왕국에게 빌빌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왕국이 숫자로 찍어누른다면 용사는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물량에는 장사가 없었으니까.
우빈은 이어서 커뮤니티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원하는 정보를 추려낼 수 있었다.
-히든 퀘스트[빼앗긴 부신] 파티 모집해요.
-조만간 하몬도 먹힐 거 같은데.
-하몬이 먹히겠냐? 지금 왕한테서 명령 떨어져서 ‘신화’ 출격했다.
-신화? 히든 퀘스트라고 했지. 숟가락 얹어야겠다.
내용을 종합해보자면 이러했다.
부신이 무언가에 의해 멸망했고, 위기를 느낀 하몬이 대형 길드 중 하나인 신화를 보냈다.
‘신화···’
5년 전 우빈이 던전에 갇히기 전에도 존재했던 길드이다.
그 당시 2위 길드였으며, 그 당시 랭킹 1위인 하선율이라는 괴물이 속해있었다.
지금은 몇 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하몬의 왕이 부탁할 정도라면 세이버에 견주어도 꿀리지 않은 힘을 지녔다는 것.
생각이 많아지던 그때, 하나의 문구에 시선이 꽂혔다.
-씨발 새끼들아!!! 부신에 오지 말라고! 오면 전부 죽여버린다!!!!! [고지태]
‘고지태.’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무려 S급 영체인 드래고닉을 선물해준 고마운 인물이지 않은가.
우빈이 기억하기로 고지태는 척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랭킹 또한 5위라고 그랬었고. 그렇다는 건, 척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같이 있지 않을까.
특히, 척결에 맡겨놓았던 백발의 NPC.
‘댓글이나 달아보자.’
우빈이 고지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게시글을 클릭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후웅-
짙은 구름을 뚫고 나오자, 저 멀리 하몬 왕국의 모습이 드러났다.
5대 왕국 중 하나인 하몬.
다른 왕국에 비해 비옥한 토지를 가졌으며, 특유의 보랏빛 대지는 묘한 따뜻함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거대한 세계수, 굳건한 하몬의 장벽 너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확실히 뭔가 있나 보네.”
그 광경에 흥미를 느끼는 그 순간, 눈앞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히든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
쿠르릉- 콰과과과과-
검은 먹구름을 뚫고 번개가 터져 나온다.
쾅!!!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으며 찌잉한 충격이 대지를 타고 흐른다.
쏴아아아-
통쾌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뚫고, 수십 명의 용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신을 뒤덮는 육중한 갑옷, 날카로운 무기가 소름 끼치게 반짝인다.
이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괴수 위에 올라타 빠른 속도로 쏘아지고 있었다.
“진짜, 영감탱이가 귀찮게.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지랄이야.”
그중 선두에 선 여인이 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비에 젖은 머리를 쓸어올린다.
이 여인은 신화 길드의 마스터 하선율.
“어차피 오늘 내로 가려고 했잖아요. 저희 길드 분들도 여럿, 연락이 끊겼습니다.”
“나도 알아, 안 그래도 가려고 했는데, 시키니까 괜히 하기 싫은 거 있잖아.”
불평하며 가다 보니, 어느샌가 부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저건 뭐냐···”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자, 한 장소에 시선이 꽂혔다.
부신의 입구로부터 무언가 쏘아진 듯한 흔적이 보인다. 그 자취의 끝엔 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것 같은 거대한 폭발의 상흔이 있었다.
“설마, 몬스터가?”
정보에 따르면 부신은 어떤 몬스터에 의해 함락당했다고 들었다.
저 정도의 위력이라면,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월드 보스급.”
신화의 전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월드 보스를 상대하기엔, 전력이 너무 부족했다.
“주성 씨한테 연락해볼까요?”
“월드 보스면 이 전력으론 어림도 없어요.”
같이 온 길드원 역시 판단을 내린 듯 의견을 피력했다.
“······”
하선율은 대답을 망설였다.
하몬의 왕에게 떵떵거리면서 온 원정이다.
이제 와서 공략할 수 없다고 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세이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더욱더 싫었고.
‘어떡하지.’
하선율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였다.
“씨발! 꺼져! 안 꺼져?!!!”
“아니, 성 하나가 함락당했는데, 왜 막는데요!”
“왜 막겠어. 히든 퀘스트 나눠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꺼지라고!!!”
부신의 성문까지 이어진 길목으로 수십 명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가까이 도달하자, 익숙한 사내가 길목을 막아 세우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병신 새끼들이 역시 말로는 안 듣지. 이제부터 한 걸음이라도 나서면 그때는 뒤질 줄 알아.”
길을 막고 있는 인물은 고지태였다.
전신으로 피어오르는 적의가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진짜, 적당히 하라고!”
고지태에게 불만을 품던 한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서자. 후웅- 고지태의 주먹이 쏘아졌다.
“어?!”
고지태의 랭킹은 5위의 괴물이다.
여기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 실력자.
당연히 불만을 품던 사내 역시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대로 고지태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하려는 찰나.
스르륵-
사내의 눈앞으로 무언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사내보다 머리 2개는 작은 여인이 고지태의 주먹을 막아 새웠다.
순간 고지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못 보던 사이에 더 추해졌네?”
“하선율···.”
고지태와 하선율은 구면이다.
그도 그럴 게, 랭킹전에서 고지태를 처참히 짓밟고 우뚝 서, 오른 존재가 다름 아닌 하선율이었기 때문이다.
“좀 비키지. 저기에 볼일이 있는데.”
“꺼져.”
“싫은데?”
꽈드득-
하선율의 비아냥에 고지태는 그대로 무릎을 내질렀다.
깔끔한 선으로 하선율의 작은 얼굴을 그대로 강타하려는 순간. 빠각- 강렬한 충격이 고지태의 머리를 타격했다.
콰과과과과-
고지태의 육신이 진흙으로 가득한 대지를 뒹군다.
후웅- 퍽!
또다시 강렬한 충격이 복부로부터 터져 나온다.
“커헉-”
연속적인 충격이 고지태의 전신을 후려친다.
고지태의 육신이 터져버린 풍선처럼 바닥을 구른다.
정신을 차렸을 땐, 고지태는 부신의 무너져가는 성문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비키지.”
하선율이 고지태의 앞에 우뚝 서 하찮다는 듯 내려다본다.
고지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각을 잡고 싸워도 이기지 못한 상대이다. 그런데 영채와 PVP 전용 방패까지 없는 지금. 하선율을 저지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싫은데?”
하지만 막아야만 했다.
이 문 너머엔, 꼭 지켜야만 할 존재가 있었다.
고지태가 판단을 내린 듯, 서브용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하선율 역시 두 자루의 장검을 빼 들었다.
당장이라도 피가 낭자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였다.
“뭐야, 저건···”
하선율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시선이 고지태의 등 뒤를 향한다.
“어?!”
고지태가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려는 그 찰나.
【시끄럽네.】
섬뜩한 울림과 함께.
펑!!!!!
부서져 내리던 문이 활짝 열리며 그대로 폭발했고,
“뭐, 뭐야!”
고지태와 하선율의 전투를 지켜보던 용사들의 시선이 성문으로 쏠리자 볼 수 있었다.
매혹적인 굴곡. 붉은 생머리가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를 가린 여체의 신형.
그 신형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그 존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띠링-
[히든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