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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돌연변이(2) (48/107)

47. 돌연변이(2)

쏴아아- 

눈을 뜨기도 힘든 빗줄기를 맞으며, 수십 명의 용사가 고개를 높이 치켜든다. 

“저게 뭐야···” 

“와···” 

입을 쩍 벌리곤, 감탄을 금치 못한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부신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는 어림잡아도 수천 마리 이상. 

그나마 한방에 픽픽 쓰러져서 몰이사냥을 하는 맛이 조금 있긴 했지만, 방심할 때면, 휘이익- 퍽! 저 멀리서 보스가 화살을 쏘며 방해를 해왔다. 

그 공격으로 잃은 용사만 10명이 넘어갔다. 

한계라고 생각하고 퇴각하려는 찰나. 

띠링- 

[용의 진노가 당신을 압도합니다.] 

후웅- 

하늘 높이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과 동시, 압도적인 광경에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화르륵- 전신으로 피어나는 불꽃. 이따금 거대한 발로 몬스터를 짓밟으며 살육을 이어나간다. 

“야! 정신 안 차려!” 

넋을 놓고 드래곤을 보던 수십 명의 용사가 한 사내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몬스터를 경계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몬스터 수천 마리의 시선이 전부 용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닿을 수 없는 공중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몰려간다. 

“뭐야, 왜 저러냐.” 

의문이 떠오르는 그 순간이었다. 

띠링- 

[드래곤이 메가 파이어 브레스를 사용합니다.] 

거대한 용의 아가리 속으로 강렬한 불꽃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화르륵-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전장의 중심. 하선율은 드래곤의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대한 용의 전신으로 푸른 빛이 가득하다. 영체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이었다. 

그렇다는 건 저 용을 소환한 용사가 있다는 건데. 

하선율의 시선이 어두운 하늘 위로 향한다.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크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새가 검은빛을 흩날리며, 비행한다. 

‘도대체 누구지.’ 

호기심이 차올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저 멀리 용사를 보며 조롱하던, 여체의 악마가 용을 응시한다. 

가녀린 팔을 들어 올리곤, 꽈드득- 용을 향해 화살을 겨눈다. 여체의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으로 적의를 품던 몬스터 군단 역시 용이 튀어나오자마자, 개미 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한다. 

띠링- 

[용의 진노가 당신을 압도합니다.] 

‘이것 때문인가.’ 

당장 하선율조차 용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아마 어그로를 가져가는 스킬을 가진 모양이었다.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 

끝없는 소모전을 빠르게 끝낼 방법은 몬스터 군단을 이끄는 숙주를 제거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판단을 내린 하선율은 자세를 낮췄다. 

여태까진 적당히 했다면 지금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서, 속전속결로 끝낸다.’ 

파스스- 

하선율의 작은 육신으로 강렬한 마력이 피어오른다. 화려한 푸른빛이 검은 기운으로 치환되며, 불길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두근-두근- 

호흡이 가빠지는가 싶더니, 하선율의 두 눈으로 붉은 광채가 떠오른다. 

악귀. 

하선율의 닉네임은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그 의미를 증명하듯. 콰드득- 그녀의 가녀린 목 위로 검은 반점이 피어오른다. 이마로 두 개의 뿔이 솟아오른다. 

띠링- 

[사탄의 분노가 당신에게 깃듭니다.] 

펑!!! 

하선율의 신형이 그대로 쏘아진다. 

대기가 휘청거리며, 촤좌좌좌좌- 빗줄기가 증발하더니, 펑!!! 원형을 그리며 폭발한다.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스르륵- 

하선율은 여체의 악마에게 순식간에 도달한다. 

잡몹이 까다롭긴 했지만, 보스 자체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가까이 도달했는데,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걸 보아하니. 

씨익- 

하선율의 입꼬리가 악마처럼 올라간다. 

있는 힘껏 땅긴 팔이 후웅- 쏘아지자. 쑤걱- 기분 좋은 절삭음이 손끝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하선율의 표정은 차갑게 내려앉았다. 

“커헉-” 

하선율의 검은 여체의 악마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고지태가 몬스터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띠링- 

[선악 수치가 10 감소합니다.] 

기분 나쁜 메시지와 함께, 고지태의 육신이 쿵!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이 새끼가 아까부터 왜 이래.’ 

처음 부신의 입구에서 사람들을 저지하고 있을 때만 해도, 그저 히든 퀘스트를 독점하고 싶어서인가 했다. 

보스의 능력을 보곤 위험해서 막아 세웠나, 착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행동으로 확실해졌다. 

‘왜 보호하는 거지?’ 

고지태는 저 여체의 악마를 지키고 있었다. 

의문을 채 해소할 겨를 도 없이. 

스르륵- 

여체 악마의 시선이 하선율을 향한다. 

감정 하나 없는 내려앉는 눈으로 주황빛 광채가 가득하다. 

애초에 몬스터라고 생각해서 몰랐는데, 헝클어진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특유의 붉은 머리카락. 모델 뺨치는 키, 특히, 재수 없이 볼륨감 넘치는 저 몸매. 

저 존재가 누구인지 드러내고 있었다. 

“화민서?” 

**** 

후훙-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와!!!” 

“진짜 빠르다!” 

펜리르의 등 위로 최수호와 서희빈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속도를 만끽했다. 

그런 둘의 앞. 흡사 사자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짐승에 올라탄 여성이 있었다. 

세이버의 원년 맴버이자, 우빈의 복수 대상 중 하나인 함지연이였다. 

함지연은 서희빈과 최수호를 힐긋 보더니, 상념에 잠겼다. 

-앞으로 서희빈은 끝까지 데려간다. 알아서 교육 좀 해놓아. 

차주성이 함지연에게 한 말이다. 

‘현태랑 세현이 때문이겠지.’ 

차주성은 가까이 두는 사람이 적었다. 같은 길드원이라해도, 사무적인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 

지금 함지연을 따라오는 저 둘 역시 비슷한 관계였다. 

그저 같은 길드의 부하. 딱 그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 차주성은 서희빈을 직접 언급까지 하며, 교육해놓으라고 했다. 

‘특성 때문인가.’ 

서희빈. 

소문으로 들어본 적 있다. 

접촉하는 것만으로 대상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나. 

비전투 특성이긴 해도, 엄청난 효과라는 건 확실했다. 

“선배! 제가 뭐랬어요. 펜리르 구해준다고 했죠.” 

“네가 웬일이냐. 기특한 짓도 다 하고.” 

“화기의 반지도 꼭 찾아줄게요!” 

함지연은 실실 웃으며 서희빈과 대화를 나누는 최수호를 응시했다. 

차주성의 말대로라면 서희빈만 데려와야 했다. 

하지만 함지연은 최수호까지 같이 데리고 온 상태였다. 

이유는 이러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함지연이 쉬고있는 데, 최수호가 대뜸 찾아와선 PVP를 신청했다. 

자기가 이기면 펜리르를 달라나? 어이가 없었다. 

길드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신예라고 치켜세워주는 것 같았지만, 길드에 들어온 지 3년 정도밖에 안 된 신입이지 않은가. 

감히 이길 생각을 하는 것도 건방진데, 이기면 펜리르까지 달라? 

오랜만에 신입 교육이나 시킬 겸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PVP에서 패배하였습니다.] 

제대로 합도 나누지 못한 채, 져버린 것이다. 

스킬부터, 장비까지 아무리 세팅을 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졌다고? 

‘열받아.’ 

당장이라도 다시 PVP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차주성의 호출이 있었다. 

-세현이가 당했다. 실험실 좀 확인해줘. 서희빈 교육하는 거 잊지 말고. 

어쩔 수 없이 PVP는 미룬 채, 서희빈과 출발하려했다. 

-저도 같이 갈래요! 

그때, 최수호가 눈치도 없이 끼어들었다. 

지금 가는 장소는 차주성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진행하는 실험실. 세이버의 간부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중요한 장소였다. 

당연히 놔두고 가는 게 마땅했지만, 함지연의 생각은 달랐다. 

‘나름 쓸만하려나.’ 

정현태를 시작으로 이세현까지 당해버렸다. 

어떤 개새끼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잃은 전력을 보충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하나, 함지연을 순간적으로 이긴 괴물 신예이다. 

서희빈을 교육할 겸 같이 양성한다면 든든한 아군이 될 것 같았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던 그때, 실험실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야?” 

거대한 사자에서 내린 함지연은 볼을 긁적였다. 

분명, 이 자리에 4층 빌딩보다도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횅한 공터만이 존재했다. 이따금 무너진 건물과 피자국들이 보이기는 하는데. 

‘잘못 찾아왔나?’ 

고개를 갸웃하는데, 저 멀리서 최수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이사님! 일로 와보세요!” 

그 불음에 함지연과 서희빈이 최수호에게 다가간다. 

도착한 함지연의 표정이 사늘하게 굳어갔다. 

이를 바득 갈며, 입술을 잘끈 씹는데, 옆에 있던 최수호마저 그녀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최수호가 발견한 장소엔 두 명의 시체가 존재했다. 

기다란 두 개의 나무 기둥. 

그 나무 기둥엔 각기 남녀의 시체가 양팔을 벌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남성의 시체엔 정현태의 트레이드마크인 방패 브로치가. 여성의 시체엔 실험실 가운이 입혀져 있다. 

마치 이 시체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해놓은 장치 같다고 해야 할까. 

그를 증명하듯. 시체가 있던 바닥에 피로 쓰인 글귀가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다음은 너야.】 

**** 

띠링- 

[HP를 50% 회복합니다.] 

[MP를 50% 회복합니다.] 

[스태미너를 50% 회복합니다.] 

입속 가득 포도 향이 차오른다. 아찔하던 복부로부터 편안함이 찾아온다. 

‘젠장···’ 

고지태는 아직도 얼얼한 복부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화르륵- 

등 뒤로 강렬한 불꽃이 터지는가 싶더니. 

끼에에엑!!!!!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불에 타 죽어간다. 

고지태는 하늘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용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뭐야 저건.’ 

뭔가 묘하게 익숙했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끄는 패시브하며, 전신으로 은은하게 타오르는 범위 스킬하며. 

특히, 입안 가득 불꽃을 머금고, 전방의 몬스터를 불태우는 스킬은 드래고닉의 스킬과 판박이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저 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고지태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펑! 펑! 펑! 

연속적인 충격에 대기가 휘청거리며, 충격에 날아든 빗물이 얼굴을 때린다. 

두 존재가 격렬히 부딪히며,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 

고지태조차, 여체의 악마를 상대하기엔 벅찼다.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하선율은 달랐다. 

촤좌좌좌좌- 

수백 수천의 검격에 여체의 악마가 난자되며, 곤죽이된다. 

그렇게 자세가 무너질 때면, 퍽!!! 하선율의 팔이 악마의 복부를 후려친다. 

쾅!!!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바닥에 처박힌다. 

싸움이라기보단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웠다. 

‘젠장···.’ 

고지태는 처참히 당하는 여체의 악마를 보며 입술을 잘끈 씹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고지태는 이 사단의 시작점을 떠올렸다. 

강우빈이라는 그 새끼가 떠나고, 고지태 역시 부신을 떠났다. 

굳이 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부신에 왔던 이유였던 지운성도 멀쩡히 회복됐겠다. 잃어버린 아이템을 빠르게 복구할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탈것을 타고 1시간을 뛰어갔을까. 

길드 메신저로 이상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부신으로 전원 지원을 요청합니다! 당장 부탁드려요!!!!![채수연] 

고지태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귀찮게 또 뭐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뭔데 그래. 야, 누가 답 좀 해봐.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씨발, 별거 아니면 전부 각오해라. 

그렇게 고지태는 가던 길을 돌려, 다시 부신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부신은 절망적이었다.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듯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있었으며, 불길이 치솟았다. 

오직 저 존재만이 성 위에 앉아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을 뿐이었다. 

“마스터?” 

이질적인 분위기에 못 알아볼 법도 했지만, 고지태는 화민서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몬스터에게 완벽하게 동화되었지만, 처음엔 아니었으니까. 

【도망쳐···】 

약간의 이성도 있었으며, 이따금 말도 내뱉었다. 

고지태는 그 모습에 모든 시도를 다했다. 

대화를 시작으로 각종 회복 포션. 무력으로 제압까지 해보려 했다. 

하지만 전부 실패했다. 

그 어떠한 노력을 해도 화민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의를 내뿜을 뿐.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다 문득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구를 적출당하고 장기까지 잃어버린 지운성을 원래대로 되돌린 그 힘만 있다면. 

마스터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고지태가 절망 속에서 한 줄기의 희망을 떠올리던 한편. 

하선율의 앞으로 여체의 악마가 여유롭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잘린 근육이 슬라임처럼 붙는다. 이윽고, 피부가 차오르며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처럼 돌아온다. 

“허억···허억···더럽게 질기네.” 

그에 반에 하선율은 거친 숨을 내쉬며, 헐떡였다. 

‘역시 혼자서는 힘든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혼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체의 몬스터는 하선율의 공격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으며, 도망치며 상처만 늘어가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전부 계획된 행동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처음엔 두부를 썰 듯 잘 베이던 피부가 지금은 질긴 강철을 베듯 베이지 않았다. 

공격을 당해 상처를 치유할 때면, 주변 몬스터로부터 힘을 흡수하며, 성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체의 악마가 지친 하선율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뭐해? 벌써 끝이야?】 

섬뜩한 울림을 내뱉으며 다시금 조롱을 이어나간다. 

“·········.”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냉정할 필요성이 있었다. 

‘일단, 빼자.’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스크롤을 꺼내려는 그 순간이었다. 

후웅- 

어둠이 가득한 하늘로부터 한줄기의 선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처벅- 

한 사내가 여체의 악마 앞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뭐야?” 

자연스러운 의문이 떠올랐지만, 감히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찢고 베고 짓밟으며 강철처럼 강력해진 여체 악마 육신이,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펑!!! 

마치 풍선처럼 터져 터져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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