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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함지연(2) (59/107)

61. 함지연(2)

적막이 감돈다. 

쪼르르르- 

미약한 물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수십 명의 시선이 한 여성에게 향한다. 그 여인은 하선율. 

하선율은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테이블 앞에 섰다. 

“화민서를 생포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한 여성이 하선율에게 질문을 해왔다. 

가우희라는 여인이었다. 

가우희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듯, 하품하며 눈에 고인 눈물을 검지로 쓸어내며 눈을 비비적거렸다. 

긴장감 없는 모습에 뭐라 할 만도 했지만, 감히 그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애초에 저런 인물이기도 했고, 여기 있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약간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무슨 소동? 핵심 증인을 잃어버렸다는 거야?” 

하선율의 대답에 가우희의 옆에 있던 사내가 버럭 소리쳤다. 

사내는 사냥을 막 끝내고 왔는지, 전신으로 핏물이 가득했다. 그 사내의 이름은 김강준. 

“갑자기 레이핀이 공격해왔거든요. 믿을만한 분들에게 부탁해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책임지고 내일까지 데려오겠습니다.” 

“레이핀? 조금 전 그 지랄?” 

“네.” 

불만이 가득했던 김강준의 표정이 누그러든다. 조금 전 그 공격을 보았다면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그건 개인의 능력과 별개인 자연재해에 가까운 현상이었으니까. 

“그래서 뭣 때문에 부른 건데.” 

“용건만 말하고 빨리 끝내죠. 저희는 진행하던 레이드도 접고 달려온 거라. 손해가 막심합니다.” 

대부분이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원래라면 가만히 있을 하선율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수십 명 중 하선율과 동급인 인물은 차주성과 랭킹 1위인 강범태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하선율은 평온하게 답을 이어나갔다. 저들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만약, 하선율이 저들처럼 긴급 소집이라는 불합리한 계약 때문에 이곳에 왔다면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냈을 테니까. 

“그러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부신에서 있던 긴급 퀘스트부터 브리핑하겠습니다.” 

하선율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요약하여 전달하였다. 

하나같이 불만과 지루함이 가득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표정이 굳어가며,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몬의 국왕에게 한 것처럼, 영체를 꺼내, 포션을 먹이곤, 모가지를 비틀었다. 

하선율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주황빛 마기를 마력으로 찍어누르며,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입을 쩍 벌리곤, 당황하는 가우희. 앞으로 있을 상황을 예상하며 머리를 굴리는 김강준.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 중 한 사내에게 시선이 꽂혔다. 

우빈이 지목한 이 사건의 배후인 차주성이었다. 

‘진짜인가.’ 

하선율의 눈매가 좁혀진다. 

하선율은 설명을 이어나가며, 차주성의 표정을 주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딱 1번 표정이 바뀐 순간이 있었다. 

우빈이 준 포션을 꺼낸 그때였다. 1초도 안 되는 잠깐이지만,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으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 포션에 반응을 해왔다는 건, 이 포션을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우연? 

“그래서 그게 누구인데요.” 

“네?” 

“히든 퀘스트를 깨고, 화민서를 원래대로 돌려놓은 남자가 있다면서요. 그게 누군데요.” 

“그건···” 

여러 질문에 답을 하려는데, 푸른 하늘 위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최수호 용사님의 악행 수치가 일정 수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수배가 떨어집니다.] 

[최수호 용사님을 처치하세요.] 

“최수호? 누구야.” 

“최수호면 작년 비기너 1등 한 사람 아니야? 세이버의 떠오르는 신예라고.” 

“1등? 세이버에서도 알아줄 정도면 앞날이 창창한 놈인데, 갑자기 웬 수배?” 

모두가 의아함이 차주성에게 쏠리던 그때, 오직 하선율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가 있었다. 

띠링- 

[이태양 용사님이 길드를 탈퇴하였습니다.] 

‘탈퇴···.’ 

하선율의 표정이 무섭게 내려앉는다. 

길드원이 갑자기 탈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이런 식으로 난데없이 탈퇴 메시지가 나오면 열에 열, 전원이 사망했을 정도로 말이다. 

한 사내가 수배에 오르고, 이태양이 길드에서 탈퇴 했다. 

단순한 우연일까? 

너무나도 직관적인 현상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들이···.” 

세이버 녀석들이 이태양을 죽였다는 사실을. 

의심으로 차주성을 경계하던 하선율의 마음이 확신으로 변했고, 

띠링- 

[사탄의 분노가 당신에게 깃듭니다.] 

전력을 담은 공격이 차주성을 향해 쏘아졌다. 

*** 

띠링- 

[수배에 올랐습니다.] 

[타락 용사로 지정됩니다.] 

[수배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경매장 시스템이 제한됩니다.] 

[중립 지역에 입장이 제한됩니다.] 

[길드 시스템이 제한됩니다.] 

[길드에서 추방당하셨습니다.] 

........ 

..... 

.... 

어지러운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망했다···’ 

최수호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바닥에 대짜로 누웠다. 

전신이 후끈거렸다. 

근육이 익어버렸는지, 손가락 한 마디 까딱 움직일 수 없었다. 

특히, 숨을 쉬는 게 제일 고통스러웠다. 

어차피 수배에 오를 거였다면, 다치기 전에 쓰러트릴 걸 그랬다. 아니, 애초에 싸움을 피하는 게 맞았는데. 

‘이제 어떻게 하냐···’ 

수배에 오른 용사는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가만히 있어도 위치가 노출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보상이 붙어 용사들에게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최수호가 죽인 용사는 부려, 랭킹 6위의 괴물이었다. 과연 어떤 보상이 붙었을까. 

‘아파···’ 

최수호는 고통에 허덕이며,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수배고 뭐고, 우선 고통을 그만 느끼고 싶었다. 

일단, 잘려 나간 육체는 없으니, 성배를 마시면 얼추 회복할 수 있을 터. 

판단을 내리고, 인벤토리에서 성배를 꺼내려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의식이 서서히 흐려진다.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HP: 35/2,741] 

실제로 HP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사님.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런데, 성배 좀 먹여주세요. 너무 아파요.” 

최수호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읊조렸다. 

“이사님? 지연 선배?”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고막까지 타버려서 안 들리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자신이 내뱉던 가래 끓는 소리는 너무 생생하게 들렸다. 

설마 수배에 올랐다고 보상 때문에 그러시는건가···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콰직- 

무언가를 뜯는 듯한 파육음과 함께, 함지연의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했는데. 진짜 이겼네. 좀. 살살하지, 그랬어. 지금 죽이면 곤란한데.” 

곤란하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함지연의 목소리는 들뜬 아이처럼 밝았다. 

“그래도 수고를 덜어줬는데,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자, 마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입안 가득 달콤한 액체가 차올랐다. 

띠링- 

[축복의 성배를 사용하였습니다.] 

[HP를 50% 회복합니다.] 

[MP를 50% 회복합니다.] 

[스태미나를 50% 회복합니다.] 

[수배자 페널티로 회복량이 50% 감소합니다.] 

평소보다는 회복량이 줄어들었지만, 확실하게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쭈글쭈글하던 피부가 매끈하게 차올랐고, 빛을 잃었던 망막에 생기가 떠오른다. 

특히, 호흡이 너무나도 편안해졌다. 

아직 주변이 뜨거워서 그런지, 상쾌함은 느낄 수 없었지만, 더 이상 괴롭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꾸벅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최수호의 얼굴이 뜨거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어?!” 

의아함이 가득한 최수호를 함지연이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준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보고 있어.” 

“네?” 

함지연은 최수호를 놔둔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손에 익숙한 물체가 보였다. 

‘저건···.’ 

자신의 붉게 익어버린 팔이었다. 

최수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뭐, 뭐야?!’ 

최수호는 다급히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뜯겨나간 건 오른팔뿐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어깨가 뜯겨나간 채로, 수복되어, 버렸다는 것 정도. 

함지연은 익어버린 최수호의 팔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설익어서 그런지, 핏물이 그녀의 입가로 가득 번져간다. 

“미쳤어요?! 그걸 왜 먹어요!” 

최수호의 다그침에 함지연이 실소를 흘린다. 

“왜 먹긴 배고프니까 먹지. 그런데, 너 성격 하나는 진짜 마음에 든다.” 

함지연이 먹던 팔을 최수호에게 던져준다. 

“아직 늦지 않았어. 회복된 어깨를 뜯어내고, 잘린 팔을 붙여봐.” 

“네? 아, 네!” 

최수호는 다급히 뜯어 먹힌 팔을 주워들곤, 수복된 어깨를 쥐어뜯었다. 

머리로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지만, 지금 중요한 건 고통이 아니었다. 

평생 병신으로 사는 걸, 되돌릴 수 있는 것치곤, 감수할 만한 고통이었으니까. 

철벅- 

그대로 뜯겨나간 팔을 어깨에 대곤, 성배를 들이켜 마셨다. 

[축복의 성배를 사용하였습니다.] 

[HP를 50% 회복합니다.] 

[MP를 50% 회복합니다.] 

[스태미나를 50% 회복합니다.] 

[수배자 페널티로 회복량이 50% 감소합니다.] 

원래라면 한 모금으로 팔을 붙일 회복력을 보여줬겠지만, 무려 3번을 들이켜 마신 뒤에야, 팔을 붙일 수 있었다. 

최수호는 어느샌가 붙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는데,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 함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지연은 처참히 식어가는 이태양의 앞에 서 있었다. 

“마음에 들었으니까. 너한테만 특별히 보여줄게.” 

콰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함지연의 육신이 움츠러든다. 작은 등으로 무언가 꿈틀거리는가 싶던 그 순간, 콰직- 등 뒤로 날개가 돋아났다. 

특이점은 날개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으로는 소름이 끼치는 비늘이, 두 눈은 파충류의 안구처럼 노랗게 번뜩였다. 

“저, 저건···” 

“원래는 컬렉션에 넣을 계획이 없었는데, 이 능력이랑 너무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욕심이 났었거든.” 

콰직- 

함지연의 쇠를 긁는 목소리를 내며, 이태양의 머리로부터 무언가를 꺼내 집어 든다. 

몽글몽글한 걸 망설임 없이 아가리 속에 쑤셔 넣으며,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뭐, 하시는 거예요···.” 

최수호의 기괴한 모습에 되물었고, 함지연은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뿐이었다. 

“랭커는 그냥 올라온 게 아니라 이건가. 사기잖아.” 

함지연이 파충류처럼 변한 손바닥을 펼친다. 

화르륵- 

손바닥으로부터 강렬한 불꽃이 피어오른다. 

손바닥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으로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펼친다. 

펑!!!!! 

익숙한 불기둥이 바닥으로부터 솟구친다. 

“저건···.” 

최수호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바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함지연이 보여준 능력은 이태양이 사용하던 능력이라는 것을. 

지금 변한 외형 역시 익숙했다. 

붉은색 비늘과 노란색 안구. 레드 드래곤과 똑 닮은 모습이지 않은가. 

“원래는 너도 컬렉션에 넣을까 했었어. 이해할 수 없는 순수한 완력. 어떤 특성인지 흥미가 있었거든.” 

함지연이 짐승 같은 울림을 내뱉으며 천천히 다가온다. 

꿀꺽- 

거리가 가까워질 뿐인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열기가 전신을 압도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약해지더라? 지금도 그렇고. 처음 PVP를 했을 때보다 50%는 약해진 거 같은데.” 

함지연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최수호를 내려다본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한번 뜨자. 55전 55패였나? 내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서희빈에게 펜리르를 얻기 위해 제안한 PVP. 그 이후로 함지연은 최수호를 데리고 다니며, PVP를 요청했다. 

그 결과는 모두 최수호의 승리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저장량이 소모되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실제로 최수호의 힘은 약해져 갔고, 함지연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싫어요.” 

“뭐?” 

“싸우기 싫다고요.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 할 텐데. 아등바등 버텨서 뭐 해요. 그냥 포기할래요. 죽이려면 죽이세요. ” 

최수호가 양팔을 대짜로 뻗으며 바닥에 털썩 누운다. 

그 모습에 함지연의 주변으로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든다. 

“뭐야··· 김빠지게.” 

함지연이 볼을 긁적이며, 최수호의 다리를 툭툭 찬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붙자고. 55번이나 이겨놓고 이제 와서 빼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죽이라고요. 이사님 때문에 이미 인생 망했으니까. 죽이고 1승 가져가시면 되겠네요.” 

“순수한 거야, 멍청한 거야.” 

최수호의 단호함에 차갑게 내려앉았던, 함지연의 표정이 누그러든다. 

그간 본 최수호는 눈치가 없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알아차렸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런 상황을 몰아갔다는 것을. 

그런데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대놓고 죽이란다. 

샘솟던 호승심도 사라질 모습이지 않은가. 

‘재미없게···’ 

함지연은 눈매를 좁히며 최수호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싸울 마음이 드러나. 

고민하던 함지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건드려볼까.’ 

최수호가 이상하리만큼 따르던 여자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런 부류의 놈들은 직접적인 도발보단 옆에 사람을 건드리는 게 효과적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차주성이 그 여자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든 되려나.’ 

함지연의 눈꼬리가 사악하게 호선을 긋던 그때였다. 

후웅- 

고요하던 대기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태양 씨!!!!” 

“이게 다 뭐야···” 

이태양을 수색하던 신화 길드로 보이는 인물이 함지연의 앞에 내려앉았다.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이태양에게 다가가더니, 머리가 텅 빈 끔찍한 모습을 보곤, 사납게 표정을 구겼다.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어찌 되었든 살해 현장을 들킨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함지연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씨익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일단 저 녀석들로 몸 좀 풀어볼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새로 얻은 능력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가. 

그렇게 함지연은 자세를 낮췄고, 두 사내가 반응하기도 전. 

화르륵!!! 강렬한 불꽃이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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