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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함지연(3) (60/107)

62. 함지연(3)

화르륵-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다.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열기였다. 

“아, 뜨거워.” 

최수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열기의 근원지로부터 몸을 피했다. 겸사겸사 옆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화민서를 데리고 말이다. 

화민서는 최수호의 손길에 약간의 거부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하긴, 힘을 제어하는 구속 장치 때문에 저항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풀어줄까?’ 

최수호는 화민서의 양손과 몸에 감겨있는 구속 장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세이버의 일원도 아니지 않은가. 

이사님, 이제 아니지. 저 사이코패스는 자신을 도와줄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더 이상 세이버에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었다. 호감을 가지고 도와줄 이유 따위도 없었고. 

콰드득- 

최수호의 악력에 화민서의 손을 구속하던 장치가 박살 난다. 몸을 칭칭 감고 있던 쇠사슬이 뜯겨나가며 화민서의 마력이 돌아온다. 

실로 엄청난 마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억눌려있던 힘이 돌아왔을 뿐인데, 대기가 휘청거리며, 은은한 오오라가 전신으로 흘러나온다. 

화민서가 최수호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최수호는 시선을 무시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엉덩이를 털털 털며 몸을 돌린다. 

“도망치든 복수를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굳이 아득바득 살 생각은 없었지만,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많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수배에 올라도 선행을 이어나가다 보면, 수배에서 내려오는 일도 있다고 들었기도 했고. 

잘만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최수호가 막연한 앞날을 그리며 걸어 나가는데, 화민서가 최수호의 손목을 붙잡았다. 

“함지연한테, 세이버한테 이용당하신 거 아닌가요?” 

함지연과의 최수호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용당한 게 맞았지만, 함지연에게 불만은 없었다. 

함지연을 따라다닌 것도, 이태양과 싸운 것도 전부 스스로의 판단에서 나온 결과물이었으니까. 

“그래서요?” 

“저랑 같이 복수해요. 저도 세이버한테 쌓인 게 많거든요.” 

“복수요?” 

화민서의 제안에 최수호의 시선이 함지연을 향한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고생한 보람이 있지!” 

함지연이 섬뜩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펼친다. 

화르륵- 쾅!!!!!!!! 

손바닥이 향한 대지가 강렬하게 폭발하며, 모든 것이 불타 녹아내린다. 

분명 이태양의 능력과 똑같았지만, 위력은 달랐다. 

이태양이 보여줬던 화력의 3배는 넘는 위력이지 않은가. 

‘어떻게 이겨.’ 

감히 싸워서 이기겠단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를 증명하듯. 

“미친년이!” 

“아저씨! 일단 후퇴하죠. 우리가 상대할 수준이 아니에요!” 

이태양의 동료로 추정되는 두 사내가 함지연에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솔직히 함지연이 전력을 다했다면 5초도 되지 않아, 전투는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함지연은 즐기고 있었다. 

화르륵- 

조금씩 화력을 올리며, 저 둘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도망치지 못하게 퇴로를 차단하며 천천히 죽여가고 있었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섬뜩했다.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저는 됐어요. 할 거면 혼자 열심히 해보세요.” 

살고 싶은 의지는 꺾였지만,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최수호는 단호하게 거절하곤, 숲속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귀찮게 계속 붙잡을 줄 알았는데, 화민서는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낼 뿐이었다. 

화민서라면 얼마 전에 신입 영입을 하던 그때, 바이올렛 산림에서 만난 인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풍채부터 남달랐다. 

랭커라 그런지, 착용한 가죽 슈트는 용의 비늘처럼 우아했으며, 반지와 액세서리는 가치를 증명하듯 황홀한 광채를 내뿜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넝마가 된 누더기 옷하며, 지금 꺼내는 아이템은 빛을 머금지도 않은 하품이었다. 

‘진짜인가 보네.’ 

소문으로 듣긴 했다. 

화민서가 이끌던 척결이 해체될 정도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그 과정에서 진범인 화민서는 생포. 부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사에게 먹혔다고 들었다. 

설마 했는데 저 모습을 보니, 소문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추락한 것일까. 

-저랑 같이 복수해요. 저도 세이버한테 쌓인 게 많거든요. 

최수호는 함지연에게 다가가는 화민서를 보며, 화민서의 말을 곱씹었다. 

세이버에게 쌓인 게 많다? 복수? 

정말을 풀이해보자면 화민서의 길드가 해체되고 이렇게 바닥으로 추락하는데 전부 세이버 때문이라는 건데. 

‘·········’ 

당장 최수호가 처한 상황만 하더라도 저 말의 신빙성을 더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이버에 충성을 다하고 함지연의 말을 따랐는데, 결론은 처참했다. 

수배에 오르고, 랭킹 6위를 죽인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컬렉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컬렉션에 넣을 생각이었다고 위협까지 했다. 

“아, 진짜. 나랑 뭔 상관이냐.” 

최수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쾅! 화르륵- 

“으악!!!” 

처참한 전쟁의 비명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붙잡았다. 

최수호의 걸음이 멈춘다. 

솔직히 복수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함지연에게 세이버에게 화도 나지 않았고. 

그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문제였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젠장···.” 

척결이 해체된 것도, 부신이 멸망한 것도. 최수호 본인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역시 그러했다. 

이태양을 죽여 함지연을 돕지 않았던가. 그렇게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양심이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소한 노력을 봐야 했으니까. 

판단을 내린 최수호의 눈에 빛이 서린다. 

[인피티니 가드] 

종류: 특성 

등급: S 

효과 

-퍼팩트 가드에 성공 시 데미지를 축적합니다. 축적한 수치에 따라 특별한 효과를 얻습니다. 

-현재 축적된 데미지: 774,671,279,811 

(축적된 데미지는 초당 100씩 감소합니다.) 

[추가 효과] 

-방어력 100% 증가. 

-퍼팩트 가드 시 방어력 150 증가. 

-모든 스테이터스 5 상승. 

........ 

..... 

.... 

.. 

아직도 7천억가량의 저장량도 있겠다. 

“한번 해볼까.” 

판단을 내린 최수호는 함지연을 향해 뛰어나갔다. 

*** 

구우우우- 

대지가 요동친다. 

잔잔한 샘물로 물결이 이는가 싶더니, 흙탕물로 변해간다. 

하선율의 전신으로 붉은 오오라가 넘실거린다. 

특유의 마기가 주변으로 퍼지며, 드라이아이스처럼 수면 위로 번진다. 

이마로 두꺼운 뿔이 자라나며, 흰 부피 부로 검은 기운이 확산해나간다. 

“갑자기 왜 저래?” 

모두의 시선이 하선율에게 쏠리던 그 순간이었다. 

펑!!!! 

하선율로부터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이미 인지를 한 그땐. 

퍽! 

하선율의 육신은 차주성의 얼굴을 후려친 뒤였으니까. 

차주성이 바닥에 처박히며, 아름답던 셀로니의 샘을 박살 낸다. 

“개새끼가!!!” 

하선율은 멈추지 않았다. 두 자루의 장검을 꺼내 들곤, 차주성을 향해 쏘아졌다. 

펑!!! 

대기가 폭발하며, 모습이 사라지듯 흐릿해진다. 

그대로 차주성을 난도질하기 위해 검을 내질렀다. 

만약, 하선율이 하몬에서 폭주했다면 그 누구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하선율의 무력은 하몬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인 이들은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만하시죠.” 

“미친 거 아니야? 갑자기 왜 이래.” 

하선율의 육신이 거대한 사내에게 막힌다. 이윽고, 목과 어깨, 양다리와 팔이 짓눌리며, 완벽하게 제압당한다. 

“이거 안 놔?!!!” 

하선율은 6명의 사람에게 짓눌린 채, 처절한 절규를 내뱉었다. 

“진정하세요.” 

“구속 장치 없어? 수면이나 마비라도 걸어봐!” 

무려 엘리드를 대표하는 상위 6인이다. 

그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짓누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하선율은 달랐다. 

“걸리적거리니까. 놓으라고!!” 

악에 받친 절규가 터지는가 싶더니. 

“으악!” 

짓누르는 악력을 무력으로 밀어낸다. 

팔을 제압하던 사내, 김강준이 하선율의 팔 힘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하선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유로워진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제압하던 용사들이 하선율로부터 멀어져 거리를 유지한다. 

“진짜 미쳤어? 갑자기 왜 그래?” 

“뭣 때문에 그러는지 이야기 좀 들어보자.” 

모두가 경계 가득한 시선으로 하선율을 쏘아보던 그때였다. 

“아야야야.” 

하선율의 분노가 향하는 원인, 차주성이 볼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에 흥분했던 하선율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아프잖아. 갑자기 왜 그래?” 

차주성이 눈웃음을 치며 말하자.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하선율의 표정이 구겨진다. 

“끝까지 잡아떼겠다?” 

“뭘 잡아떼?” 

“이태양이 죽었어. 그리고 세이버 소속 길드원이 수배에 올랐고.” 

“그래서?” 

히죽거리는 웃음에 하선율의 이마로 굵은 핏줄이 솟구친다. 

대화를 이어갈 정도로 하선율은 이성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대로 각오를 다잡고, 차주성을 난도질하기 위해, 튀어 나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하선율의 앞으로 익숙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엘리드 역사상 최강의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이자, 현 랭킹 1위인 강범태였다. 

“일단 눈 좀 붙이면서 머리 좀 식혀. 대화는 일어나서 다시 하도록 하지.” 

강범태의 낮은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쩡!!!!!! 

강렬한 충격과 함께. 

하선율의 의식이 뚝 끊겼다. 

*** 

화르륵-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다. 

더 이상 주변에서 푸른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붉게 달아오른 대지가 용암처럼 보글보글 기포를 내뿜을 뿐. 

“허억···허억···” 

지옥에 서 있는 건 3명뿐이었다. 

호흡하는 것조차 힘든지, 입을 틀어막고 고통스러워하는 화민서. 

“젠장···” 

특성의 힘과 성배의 회복력으로 간신히 버티는 최수호. 

“그래. 진즉 이렇게 나왔으면 좋았잖아. 뭣 좀 더 해봐.” 

드래곤의 날개를 펄럭이며, 이 상황을 즐기는 함지연. 

신화 길드 사람으로 추정되던 두 사내는 용암처럼 들끓은 대지 위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두 사내의 호흡이 조금씩 약해져 간다. 

이 정도 불길에 버티는 육체를 보아하니, 두 사내 역시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굳이 도와줄 이유는 없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젠장!!!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판단을 내린 최수호는 쓰러진 둘에게 다가갔다. 

그저 뛰어갔을 뿐인데, 치지지직- 발이 익으며 미칠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생각보다 둘의 상태가 심각했다. 

이 불길이 없다고 해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아리스의 성배] 

종류: 성배 

등급: S 

충전: 2/8 

효과 

-HP/MP/스태미나 50% 회복. 

-섭취 시 회복력 50% 증가. 

최수호는 성배를 확인하곤 입술을 잘근 씹었다. 

성배의 남은 사용량은 딱 두 모금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최수호는 망설임 없이 성배를 사내들의 입속에 들이켜 부었다. 

띠링- 

[아리스의 성배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리스의 성배를 사용하였습니다.] 

두 사내의 화상이 누그러든다. 호흡 역시 확연하게 좋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회복하기 무섭게 피부가 붉다 못해 검게 타버리는 지경에 도달하였으니까. 

최수호는 바로 두 사내를 밖으로 집어 던졌다. 

“허억···허억···” 

100kg도 안 되는 두 사내를 집어던지는 것만으로 호흡이 가빠졌다. 

“뭐야? 나 선악 수치 생각해주는 거야?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함지연이 파충류처럼 노랗게 변한 동공을 번뜩이며, 히죽 입꼬리를 올린다. 

그녀의 두 눈으로 소름 끼치는 주황빛 광채가 번뜩인다. 

“그럴 리가요.” 

최수호는 무릎을 짚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최대한 여유롭게 답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호기롭게 나선 화민서는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띠링- 

[축적된 데미지를 50,000 소모하였습니다.] 

[축적된 데미지를 50,000 소모하였습니다.] 

[축적된 데미지를 50,000 소모하였습니다.] 

........ 

..... 

.... 

.. 

이태양의 염화에는 10,000씩 줄어들던 저장량이 지금은 초당 50,000씩 줄어들며, 최수호를 압박해왔다. 

[인피티니 가드] 

종류: 특성 

등급: S 

효과 

-퍼팩트 가드에 성공 시 데미지를 축적합니다. 축적한 수치에 따라 특별한 효과를 얻습니다. 

-현재 축적된 데미지: 315,290,103,298 (459,381,176,513↓) 

(축적된 데미지는 초당 100씩 감소합니다.). 

특히 저장량의 소모가 말도 안 되게 빨리 줄어들었다. 

고작 10분 채 되지 않아 무려 4천억가량의 저장량이 증발하다니. 

실제로 초반엔 호각을 다툴만한, 힘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숨조차 쉬기 점점 힘들었으며, 특성으로 활성화된 능력치 또한 절반가량 하락해 버렸다.

막연하게 못이길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함지연은 더 강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 

엘리드에 넘어온 뒤로 언제나 생각했었다. 

내 마지막은 어떨까. 몬스터한테 잡아먹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렴풋이 예측하며, 덤덤하게 받아드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떠받들며 모시던 상사에게 불타 죽는 운명이었다니. 

“뭐야. 이게.” 

최수호가 허무함을 느끼며, 죽음을 각오하던 그때였다. 

“못 보던 사이에, 많이 추해졌네.” 

등 뒤로부터 한 사내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쩡!!!!!!! 

미칠듯한 충격과 함께, 주변을 불태우던 열기가 거짓말처럼 소멸한다. 

그러자 어디선가 많이 본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최수호에게 첫 죽음을 선사한 인물이자, 서희빈의 소중한 아이템을 빼앗아 갔던 인물. 

강우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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