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배드 엔딩(3)
우빈이 차주성의 머리채를 움켜쥔 채 걸어 나간다.
“잠깐만! 우빈아!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차주성의 육신이 가득 찬 쓰레기봉투처럼 바닥을 질질 끌며, 딸려온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연결된 문(차주성)을 생성합니다.]
우빈이 손바닥을 펼치며, 스킬을 사용하자, 이 순간을 떠올리며 미리 만들어 둔 문이 쿵! 하고 생성된다.
그대로 문 너머로 집어 던지려는데, 차주성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
“십여 년간 모아온 보물이 있어! 목숨만 살려준다면, 너한테 다 줄게!”
눈엔 공포가 가득한데 입은 애써 웃는다.
‘나쁘지 않은데.’
아주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최소 5억 룬. 급처로 내놓아도 그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우빈이 멈칫하는 걸 느낀 차주성은 ‘이거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보물 창고는 나밖에 몰라. 지금 바로 출발할까? 대신 목숨을 살려주기로 약속해줘. 다시는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나쁘지 않은 제안에 우빈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궁금하네.’
약속을 하는 척 어울려주다가 뒤통수를 때리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흥미로운 제안이었지만, 저 장단에 어울릴 필요 없이 원하는 표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메아로카 세이버 사옥 지하 4층.”
“뭐?! 그, 그걸 어떻게.”
우빈의 말에 차주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미약하게나마 꿈꾸던 희망이 꺼지며, 눈에서 빛이 사그라든다.
두근-두근-
벌써부터,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었다. 저 새끼가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잠깐만!!!!”
끼이익-
우빈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차주성을 집어 던지려는 그 순간이었다.
쿵!!!!!
거대한 충격이 세계수 주변으로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눈앞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긴급 히든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감염된 레이핀][히든]
난이도: UL
제한 시간: 10분
설명: 세계수의 정령 레이핀에게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감지되었습니다! 엘리드의 위협이 되는 레이핀을 처치하여, 엘리드의 평화를 유지하세요!
보상: ???
“히든 퀘스트?”
우빈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미간을 찌푸렸다.
비슷한 퀘스트를 본 기억이 있었다.
아드로스에 감염된 화민서가 부신을 장악했을 당시의 메시지가 딱 이랬었다.
그렇다는 건 레이핀이 아드로스의 정기에 감염됐다는 의미일 텐데.
‘곽정수인가.’
어렵지 않게, 원인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제압해놓았던 곽정수가 레이핀에게 뭔가 수를 쓴 것이다.
‘귀찮게 하네.’
원래라면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해야겠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화민서 당시 얻었던 보상. ‘칭호:구원자’의 효과를 체험하지 않았던가.
모든 능력치를 250 이상 올릴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을 선사해줬다.
그런데 그때보다 무려 한 단계 높은 UL등급의 히든 퀘스트이다.
과연 이번엔 어떤 보상을 줄까?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애초에 우빈이 성장과 보상을 원하던 이유는 전부 차주성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차주성을 제압한 지금. 보상이고 퀘스트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빈은 메시지를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고,
철컹-
문이 굳게 닫히자, 정겨운 장소가 우빈을 반겨주었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입장하였습니다.]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의 특별한 효과가 활성화합니다.]
***
“잠깐만! 하지 마!!!!”
우빈의 발이 차주성의 허벅지를 짓누른다. 가볍게 힘을 주자, 콰드득- 근육이 파열되며 조금씩 짓눌린다.
‘조금 더.’
“으악!!!!!”
우빈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차주성의 표정을 보며,
‘조금 더.’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오직 이 순간을 기다리며 버틴 시간이 얼마나 되던가.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 장면을 떠올리며 바랬다.
‘조금 더.’
콰직-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차주성의 다리가 찢겨 나간다.
“으악!!!!”
차주성이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바닥을 대굴대굴 구른다.
“미친 개새끼야!!!”
우빈은 분노에 울분을 토하는 차주성의 머리를 후려 찼다.
퍽!
경쾌할 정도로 상쾌한 핏물이 팍하고 터지자.
띠링-
[차주성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차주성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허억-”
얼굴이 폭사한 시체 옆으로 상처 하나 없는 차주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뭐, 뭐야?!”
차주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시체를 보곤, 화들짝 놀란다.
“이제 시작인데, 뭘 그렇게 놀라.”
우빈은 놀라움과 의문으로 가득한 차주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자, 잠깐만 우빈아! 으악!!!!”
우빈은 만족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차주성을 향해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를 터트렸다.
***
“허억···허억···”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차주성이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바닥을 기며, 우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수십 시간 동안 우빈은 순수한 폭력을 이어나갔다.
다리부터 머리끝까지, 건드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전부 파괴했다.
우빈은 처절하게 애원하는 차주성을 뒤로한 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재미없어.’
우빈의 시선이 차주성을 향한다.
차주성은 우빈의 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곤, 손을 덜덜 떨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아직 제대로 된 시련도 받지 않았음에도 차주성의 눈빛은 죽어있었다.
오히려 정현태가 더 독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약했다.
여태까지 이런 새끼를 믿고 따랐다는 것 자체가 허무했다.
우빈은 공허함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공에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띠링-
[설정을 완료하였습니다.]
[설정]
크기: 16X16
시련 난이도: 최상
시련 주기: 10초
조작이 끝남과 동시.
“잠깐만, 이게 뭐야.”
띠링-
[감전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콰지직-
“으아악!!!!!!!!!”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차주성의 표정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지가 마비된 듯 전신을 꼿꼿이 피곤 양팔과 다리를 덜덜 떤다. 눈이 뒤집히며, 쪼르르 더러운 체액을 바짓가랑이 사이로 흘려보낸다.
‘나쁘지 않네.’
시련을 직관하는 건,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다른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띠링-
[차주성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차주성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허억-”
되살아난 차주성이 정현태처럼 네발로 기며 우빈을 향해 다가온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제발. 그만해. 제발!!!”
직접 폭력을 이어나갈 때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다급히 애원한다.
우빈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띠링-
[화마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으악!!!!”
차주성의 절규를 천천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
며칠이 지났을까? 10일? 아니 30일 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
“으아아아!!!!!!!”
차주성의 전신으로 불길이 치솟는다.
머리카락이 녹아내려, 대머리처럼 변했으며, 피부가 익어 쭈글쭈글하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이지 않은가.
처음만 하더라도 저 모습에 통쾌함을 느꼈지만, 비슷한 광경이 계속되자 조금씩 싫증이 났다.
그러다 문득 밖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차주성을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놈이 있었다.
‘곽정수.’
저 녀석에겐 특별히 악감정은 없었다.
파티를 하던 그때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은 놈이기도 했으며, 그 당시에도 차주성의 꼭두각시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차주성을 빼돌린 것을 포함, 레이핀을 감염시켜, 끝까지 엿을 먹이려 했던 행동은 값을 치러야만 했다.
우빈은 판단을 내린 듯,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철컹-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서 나왔습니다.]
눈을 뜨기 힘든 빛이 시야로 들어왔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던가.
주변의 지형이 폭발하고 파괴되었다.
그런데도 세계수가 내뿜는 특유의 황금빛 광체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분명 상쾌한 공기가 폐부 가득 들어왔어야 정상이었다.
“뭐야 이게···”
우빈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화르륵-
찬란하게 빛나던 거대한 세계수로부터 강렬한 불길이 치솟는다. 세계수뿐만이 아니었다.
황금빛으로 가득하던 주변 식생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절로,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에 당황스럽던 그때였다.
띠링-
[가이아의 세계수가 생명을 다하였습니다.]
[엘리드를 수호하던 세계수의 빛이 사그라듭니다.]
[엘리드가 멸망하였습니다.]
[미션을 실패하였습니다.]
눈앞으로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멸망했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상황만 보자면, 히든 퀘스트의 제한 시간 내에 감염된 레이핀을 처리하지 못해서 이 지경이 난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애초에 작업실과 밖의 시간은 엄청난 차이가 났다.
작업실에서 있던 시간은 대략 50일 남짓. 분으로 환산하면 대략 7,200분이다.
작업실 안과 밖의 시간 차이는 10,000분의 1.
즉, 우빈이 방에 들어갔다 나온 지금, 밖의 시간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그사이에 우빈 일이라도 터진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나.’
애초에 우빈의 목적은 자신을 배신한 개새끼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정현태와 이세현, 함지연에 이어 차주성까지. 전부 붙잡은 지금. 엘리드가 멸망하던, 소멸하던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곽정수를 직접 손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지옥 겁화가 모든 것을 불태웁니다.]
[칭호:한계를 뛰어넘은 용사가 지옥 겁화를 저항합니다.]
‘지옥 겁화.’
주변으로 가득 차오른 검은 불길이 우빈의 몸에 옮겨붙는다. 마치 살아있는 듯, 점점 퍼져나가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지옥 겁화라하면, 크로노스의 시련 중 가장 고통스럽던 고문 중 하나였으니까.
아마, 이 불길 속에서 살아남을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 어떠한 것도 저항하는 칭호를 가진 우빈조차, 숨이 막혀올 정도로 가장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생명력 하나는 질기네.’
-끼이이이이익
우빈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전멸했을 거란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살아남은 생명체가 하나 있었다.
지금 이 사단을 일으킨 원흉이자, 엘리드를 대표하는 정령. 레이핀이었다.
안 그래도 레이핀의 모습은 보는 순간 코즈믹 호러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느낀 감정은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끼이이익!!!!!
하늘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웅대한 레이핀이 지옥 겁화의 불길에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친다.
쿵!!!
머리로 바닥을 두드리며, 꼬리로 산을 쓸어 갈아낸다.
콰과과과과과-
지축이 흔들릴 수준의 지진이 모든 것을 뒤흔든다.
그야말로 세계의 끝, 종말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지 않은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할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우빈은 아니었다.
애초에 우빈의 목적은 단 하나.
‘마저 할까.’
자신을 배신한 그 새끼들에게 똑같이 갚아주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빈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굳게 닫힌 문을 열었고,
“제발!!! 살려줘!!!”
고통에 허덕이는 차주성을 향해 다가갔다.
***
띠링-
[긴급 히든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감염된 레피핀][히든]
난이도: UL
제한 시간: 10분
설명: 세계수의 정령 레이핀에게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감지되었습니다! 엘리드의 위협이 되는 레이핀을 처치하여, 엘리드의 평화를 유지하세요!
보상: ???
갑작스럽게 떠오른 상태 창과 함께.
끼이익-
쾅!!!!!
레이핀의 꼬리가 세계수를 강타한다.
콰지직-
단단히 대지를 지탱하던 세계수의 기둥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강렬한 진동을 생성한다.
“꺄악!!!!”
민주희는 상상을 초월한 충격에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쿵!!!!!! 구우우우우우-
미칠듯한 진동이 엘리드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도망쳐!”
“저 새끼가 미쳤나.”
성배를 먹여 치료해준 사람들이 난데없는 레이핀의 폭주에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 긴장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은 긴장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뭐야 갑자기···”
하지만 그 두려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쿵!!! 콰지직-
레이핀의 박치기에 세계수의 기둥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펑!!!!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원형을 그린 충격파가 훑고 간 자리로부터 세계수의 빛이 사그라든다.
“아···.”
압도적인 광경에 몸이 굳고 사고가 멈춰버린 그 순간이었다.
띠링-
[지옥 겁화가 모든 것을 불태웁니다.]
화르륵-
“꺄악!!!!!”
세계수 주변으로부터 치솟은 검은 불길이 민주희의 육신을 불태웠다.
피부가 녹아내리며, 시뻘건 근육이 드러난다.
“아파! 아파!!!!”
살면서 겪어본 고통 중 단연 최고였다.
“허억···허억···”
숨을 들이켜 마실 때마다 미칠듯한 고통이 뇌를 후벼 판다.
“제발··· 그만!!!!!”
고통에 허덕이길 수십 초. 강렬히 발버둥 치던, 민주희의 육신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 바닥을 두드린다.
띠링-
[민주희 용사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스르륵-
민주희의 시야가 어둠으로 가득 차오른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메시지로 보아하니, 죽은 것 같은데.
‘뭐야?’
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원래의 차원으로 귀환합니다.]
하나의 간결한 시스템 창과 함께.
화 아악-
어둠으로 가득하던 민주희의 시야로부터 빛이 가득 차올랐다.
“어?!”
민주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번쩍 뜨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웅성-웅성-
물에서 막 나온 듯,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시야 또한 자고 막 일어난 것처럼 뿌옇게 물들어있었다.
그렇게 30초가 흘렀을까.
사물이 또렷해지며, 민주희의 시야로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괜찮으세요?”
한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사내였다.
사내뿐만이 아니었다.
“저 누나 어디 아픈가 봐.”
막대 사탕을 입에 문 남자아이.
“저거 그거 아니야? 귀환자?!”
스마트 폰으로 신기한 장면을 담아내는 여중생.
“돌아왔어···”
우뚝 솟은 빌딩과 익숙한 전자기기를 보며, 민주희는 감격을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