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환생(3)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장소로 쏠린다.
“와··· 멋있다.”
시선이 쏠린 장소엔 스포츠카 한 대가 주차하고 있었다.
“저거 이번에 나온 신형 멕라렌 아니야?”
“존나 멋있네. 저게 장갑차보다 더 단단하다며, 와··· 최소 10억은 넘을 텐데.”
“누굴까? 재벌이겠지.”
“대낮에 할 일 없이 시청에 올 갑부가 헌터 말고 또 있겠냐.”
부러움과 호기심 섞인 시선 너머. 한 사내가 자동차로부터 내린다.
“누구지?”
“몰라.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사내는 유명한 헌터가 아니었다.
‘짜식들 멋있는 건 알아서.’
사내는 멋스럽게 쓴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려 쓰며, 한 건물을 바라봤다.
[서울 시청]
이 사내의 이름은 김오준.
신화 길드 소속 헌터로서 올해 급부상 중인 프로 헌터였다.
‘개 피곤하네.’
김오준이 인상을 찡그리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김오준은 어제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서울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원래라면 오늘은 비번인 날.
‘진짜, 귀찮아 죽겠네.’
DM으로 연락하던 애들이랑 즐거운 연휴를 즐기려고 했는데, 마스터에게서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지금 시청으로 가서, 누굴 좀 찾아줘야겠어. 우리 길드로 영입시킬 녀석이 있거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길드에 내로라하는 스카우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은가. 그런데 굳이 왜 비번인 나한테 일을 주는 건지.
“싫어요. 어제까지 죽어라 게이트 돌고 이제 막 서울에 도착했단 말이에요. 길드에 딴 놈들 시켜요.”
당연히 거절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날카로웠다.
-그래? 오준이 많이 컸네. 내 말에 토를 달 줄도 알고. 모래까지 휴가라고 했지? 그냥 쭉 쉬어. 계약 파기 위약금은 오늘 바로 붙여 줄 테니까.
고작 1번 투덜거렸다는 이유로 바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시청이라고 했죠?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지? 농담이지? 나는 또 오준이가 머리 좀 컸다고 미쳐서 개기는 줄 알았지.
섬뜩하면서도 소름 돋는 마스터의 웃음소리에 김오준은 저항할 수 없었다.
“누군데요? 이름이랑 얼굴은 알아야 찾죠.”
-강우빈이라고 어제 S급 판정을 받은 헌터야. 지금 시청에 있다니까. 어떻게든 붙잡아 놓아. 절대 다른 길드 새끼들한테 빼앗기면 안 돼.
“S급 판정을 받은 헌터요?”
그러고 보니, 서울로 오는 길에 인터넷 포털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전투력 측정 기록을 전부 갈아치운 괴물 신예라나?
인터넷 기사는 대부분 부풀리고 과장하지 않는가.
당연히 저 기사 역시 어그로를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썼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스터의 행동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저 새끼가 도대체 누군데 그래.’
도대체 누구길래, 마스터가 직접 나서서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이는 것일까.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스터의 다음 말이었다.
-딱 1시간이야.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시비를 걸던, 아부를 떨던 어떻게든 붙잡아 놓아.
“네? 직접 오신다고요?”
그 바쁘신 마스터가 고작 신입 길드원을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이 자리에 온다고 한 것이다.
시청으로 향하는 김오준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마음에 안 들어.’
김오준은 프로 헌터로 데뷔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신입 헌터였다.
지금이야 나름 능력을 인정받아 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각성 판정을 받았던 그 당시는 아니었다.
판정받은 등급은 고작 E급.
그 당시 누구도 김오준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오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끝없이 노력하고 성장해 신화 길드에 입사했다.
정말 노예처럼 일했다. 까라면 까고, 죽이라면 죽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자리였다.
등급은 E급에서 A등급으로 올렸으며, 레벨은 160에 육박했다.
‘재능이라 이건가.’
그런데 이제 막 등급 판정을 받은 녀석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는 게, 아니꼬웠다. 그동안 노력했던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김오준은 우빈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고,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정면을 바라보는 김오준의 눈빛이 흔들린다.
“잠시만, 따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야! 내가 먼저 왔어. 순서 안 지며?”
“6개월 계약금 10억! 지금 바로 계약하시면 15억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15억? S등급 헌터가 개 좆밥인줄 아나. 저희 길드는 30억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한 사내의 주변으로 수십 명의 사람이 붙어있었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룬’ 길드를 시작으로 가이아 길드에 이어 소울 길드까지.
마스터가 다른 길드에 들어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신입 헌터한테, 6개월에 30억을 부른다고?’
아무리 S등급을 판정받았다고는 하나, 제대로 실력검증도 되지 않은 신입 헌터에게 과분한 계약금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에 짜증이 울컥 올라왔지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봐! 잠깐만 비켜봐.”
“이 새끼는 또 뭐야! 줄 서라고!”
이미 김오준의 앞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스카우터만 40명이 넘어간다. 그걸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거기다 이 새끼는 또 뭐냐니.
“나 몰라? 프로 헌터잖아!”
“프로는 개뿔, 새치기하지 말고 꺼져!”
“뭐? 꺼, 꺼져?!!! 야, 너 어디 소속이야.”
스카우터라는 작자가 요즘 떠오르는 천재도 못 알아보고, 저번 주에 급부상 중인 헌터라고 기사까지 나갔었는데 말이다.
김오준이 울컥하며, 앞의 스카우터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그때였다.
처벅-
김오준보다 더 당당하게 새치기를 하는 사내가 있었다.
“이봐요······.”
사람들이 버럭 소리치다, 사내의 정체를 알아보곤 입을 꾹 다문다.
“와···.”
그건 김오준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우빈의 앞에선 인물은 평범한 스카우터와는 존재감 자체가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내는 한국 5대 길드 중 하나의 척결 소속 헌터. 아니 그냥 헌터가 아니었다.
한국 최후의 귀환자 중 하나로써 한국 랭킹 3위에 오른 괴물.
“어제 시키신 일은 전부 처리하고 왔습니다.”
고지태가 우빈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실내를 가득 메운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현대식 운동 기구가 가득 들어선 체육관.
수십 명의 아이가 횡과 열을 맞춘 채, 줄 서 있다. 아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엔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헌터 양성학교의 교관.
“자, 그러면 10분 뒤에 대진표대로 대련 평가를 시작하겠다.”
교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의 표정이 급변한다.
“빨리 시작해요! 배고파요.”
“하~ 암. 졸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여유롭게 대련을 기다리는 상위권.
“후우···.”
“제발··· 한판만 이기자. 한판만.”
극도의 긴장감으로 경직된 표정을 짓는 하위권.
두 부류로 나뉘었지만, 유독 아이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아이가 있었다.
“오유성, 너 첫판 지우랑 한다며? 내가 잘 찍어 줄 테니까. 잘 해봐.”
한 아이가 오유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친절하면서도 나긋한 말이 응원하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잘하긴 뭘 잘해. 내가 지우랑 첫 대련이었으면 깔끔하게 기권하고 밥 먹으러 갔다.”
“야, 유성이가 너랑 같냐. 쟤는 이번에 F 받으면 퇴학당한다고.”
“아! 그래? 그러면 열심히 해야겠네. 그런데 뒈지게 맞고 입원할 거면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더 현명한 거 아니야?”
당연하게 질 거라고 예상되는 오유성을 비꼬며, 조롱하고 있던 것이었다.
“유성아, 영상 찍은 거 너튜브에 올려도 되지?”
“당연히 되겠지. 저번 주도 허락해 줬잖아. 개처럼 처맞는 거 조회 수 잘 나왔더라.”
키득대며, 조롱을 이어가던 그때였다.
“야! 내가 애들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한 여자아이가 오유성의 앞으로 뛰어나오며, 조롱하던 아이들을 다그쳤다.
여자아이는 오유성과 같은 학급의 반장이자, 김지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엘리트. 최아랑이었다.
“누가 괴롭혔다고 그래.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하겠다. 응원한 거잖아. 응원.”
“맞아. 우리가 영상도 찍어주기로 했어.”
“내 말이 우습지?”
“알겠어. 가면 되잖아.”
“유성아 화이팅! 영상은 우리한테 맡겨!”
조롱하던 아이들이 너스레를 떨며, 자리를 피한다.
오유성은 익숙하다는 듯 덤덤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드렸다.
평소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풍경이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 괴롭히며 유희를 즐기는 풍경은 굳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광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딱 1명 평소와 다른 아이가 있었다.
대련을 준비하던 수십 명의 시선이 그 아이에게 쏠렸다.
“지우 왜 저래?”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원래라면 망나니처럼 나대며, 아이들을 놀려야 했을 녀석이 아무 말 없이 오유성의 앞으로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오유성의 첫 번째 대련 상대이자, 어제 던전에서 만났던 김지우였다.
김지우가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오유성을 내려다본다. 오유성이 그런 김지우를 올려다보며, 입을 뗐다.
“왜? 무슨 일 있어?”
“······”
오유성의 물음에 김지우는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이내 두 눈으로 강렬한 살기가 떠오른다.
“있지. 전력으로 밟아줄 테니까. 단단히 각오해.”
마치 분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며,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왜 저러지?’
오유성은 멀어져가는 김지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던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건가?’
이유를 찾기 위해, 의문을 품는데, 주변의 이상함을 감지했다. 원래라면 시끌벅적해야 할 체육관으로 고요함이 감돌았다.
“지우, 개빡친 거 같은데.”
“갑자기 왜 저러냐. 유성이 좆된 거 아니야?”
“씨발, 오유성이 문제냐. 지우 다음 상대가 나라고. 기권해야 하나.”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김지우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김지우는 이 학급의 최상의 포식자이지 않은가. 심각한 분위기에 알아서 머리를 숙인 것이다.
그건, 학급의 반장인 최아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아랑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위험한데.’
최아랑은 김지우를 잘 알았다.
김지우를 본 기간만 3년을 넘었으며, 언제나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여줬던 저 모습은 낯설었다.
평소의 장난기 넘치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전 오유성에게 한 경고. 그건 진심이었다.
“오유성.”
“어? 왜?”
“기권해.”
“뭐?”
“죽고 싶지 않으면 기권하라고.”
최아랑은 오유성을 생각해서 조언해줬다.
오유성은 학급에서 최하위에 머무는 낙오자이다. 그에 반해 김지우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천재.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재능의 차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우 진심이야. 기권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걸. 그리고 너 헌터에 재능 없어. 그냥 받아들이고 포기해.”
냉정한 판단을 내려, 단호하게 말해줬다.
그런데 오유성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고마워. 역시 아랑이는 착하구나.”
“뭐?”
너무 태연한 대꾸에 최아랑의 눈이 파르르 떨렸고,
-오유성! 다음 시합이니까. 빨리 와!
“다녀올게. 위에서 만나자.”
멀어지는 오유성을 보며, 최아랑의 표정이 흔들렸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는데, 왜일까.
“오늘따라 뭔가 달라 보이네.”
***
“오유성, 김지우 앞으로.”
아이들의 시선이 대련장 위로 향한다.
“야, 찍어.”
“몇 초 컷 날 거 같냐?”
“원래는 10초 컷 예상했는데, 지우 표정 보니까. 5초 컷도 날 수 있을 거 같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대련장 위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반짝인다.
“후우···”
오유성은 그런 시선을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꽈드득-
오유성의 손에는 연습용 검이 들려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머리론 헤드기어가 전신으론 데미지를 흡수하는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두근-두근-
오유성은 심장 소리를 들이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대련이라면 학교에 입학하고 수십 수백 번도 더 해봤었다.
깨지고 짓밟히고 패하길 수백 번. 익숙할 대로 익숙한 PVP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PVP 대련은 학교 측에서 지급하는 장비로 진행된다.
어찌 보면, 동일한 조건에서 공평하게 시작되는 것 같지만, 아니다.
특성, 스킬, 레벨 등 그 어떠한 제한도 없었다.
즉, 막대한 자본적으로 스킬을 세팅해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게 가능한 구조라는 것이다.
참으로 불합리한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평할 수 없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터로서 살아남으려면 자본력 혹은 그런 자본력을 찍어누를 수 있는 재능.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오유성 역시 저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부자인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한 장에 수백, 수천에 달하는 스킬을 펑펑 써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화가 나면서도 탐이 났다.
두근-두근-
‘궁금해.’
오유성의 반짝이는 눈으로 한 장의 스킬 카드가 반짝인다.
오유성은 오늘 아침 우빈에게 하나의 부탁을 했다.
“형, 스킬 카드 1장만 빌려줘.”
-스킬 카드? 어제 검 줬잖아.
“대련에선 스킬 카드밖에 못써.”
-뭐? 그걸 왜 지금 말해. 가져가.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맨몸으로 가는 것보다는 뭐라도 슬롯에 넣고 싶어서 말한 것뿐이었는데.
‘이거 꿈 아니지?’
띠링-
오유성의 동공으로 기다란 텍스트라 떠올랐다.
[스킬 카드: 아그니스의 불꽃]
종류: 스킬 카드
등급: UL
레벨: 10
형태: 액티브
효과
-아그니스의 불꽃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추가 효과
-모든 능력치 10% 증가.
-모든 능력치 20% 증가.
-불꽃 화력 50% 증가.
-화염 데미지 50% 증가.
-메가 버스터 활성화.
-모든 능력치 30% 증가.
-메가 버스터 데미지 100% 증가.
-메가 버스터 범위 50% 증가.
-‘화력 개방’ 활성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등급과 효과가 가득 쓰여있었다.
두근-두근-
너무나도 궁금했다.
오유성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스킬 카드를 장착했고,
띠링-
[스킬 카드: 아그니스의 불꽃을 첫 번째 슬롯에 장착하였습니다.]
기분 좋은 알림이 눈앞에 떠오른 그 순간.
“시작!!!!”
시합을 알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