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00)

                                            44악장 3화

촤아아∼ 

소나기‥ 멀리서부터 비가 뛰어오는 듯한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소나기다.  때문에 비를 맞기 싫으면 여행자들도 

열심히 뛰는 게 좋다. 

"헉헉!" 

세 명의 여행자들은 나무 밑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은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서 젖먹던 힘을 다해서 전력질주를 했기 때문에 몹시 지쳐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시즈. 소나기라는 말은 안 했잖아." 

"아리에, 어쩔 수 없어요. 소나기가 몰려올 경우에는 비를 품은 바람이 늦게 불어오기 시작해서 제가 알아챘을 때는 

이미 비구름이 머리 위까지 몰려온 상태라고요." 

시즈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리에는 쳇쳇거리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즈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비를 

닦으며 그들을 지켜보던 보를레스가 구원에 나섰다. 

"아리에, 여름철에는 비가 왔다고 하면 장마가 아니면 소나기라고." 

"나도 알아!" 

"아는데 왜‥. 아! 세이탄 사람들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와서 화를 내는 거로군. 아니, 그렇게 떠나야 했던 시즈가 걱

정 되서?" 

"아니야!" 

부정은 했지만 아리에의 얼굴은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솔직히 시즈가 세이탄에서 나가지 않

으려고만 했다면 국왕도 그를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별다른 항의도 없이 짐을 싸들고 나오다니‥. 못마땅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시즈가 수건을 내밀었다. 

"그보다 어서 비부터 좀 닦아요." 

"앞으로 마을이 보일 때까지는 닦나 안닦나 똑같아." 

"걱정 말아요. 앞으로 한 시간만 더 걸으면 마을이 보일 테니까요." 

"흥!"하고 무시하는 듯 하면서도 아리에는 거칠게 수건을 빼앗아 들었다. 하지만 화난 표정마저도  시즈에게는 색다

르게 보였다. 물기에 젖어 맑은 반사광을 띈 검은 머리카락이 물방울들과 하얀  피부를 흘러내리자 그는 어느 사이

에 넋을 잃고 아리에를 바라보았다. 

저게 바로 콩깍지가 씐 인간들의 말로가 아니겠는가. 보를레스가 히죽 웃고는 중얼거렸다. 

"홀려도 단단히 홀렸군." 

"보를레스, 지금 뭐라고 했어?" 

"아무 것도 아니야." 

칼날 같은 아리에의 눈초리에 보를레스는 당황한 손짓으로 부인했다. 도대체  여자같은 면이라고는 날이 갈수록 사

라져가는 그녀의 어디가 좋다고 시즈는 꿈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걸까? 보를레스는 땀인지 빗물인지 차게만 느껴지

는 등을 나무에 기대고 한숨을 쉬었다. 

물기를 거의 닦아낸 아리에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너무나 온화해서 온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

이다. 오래된 경험으로 누구의 짓인지 알고 있는 그녀는 주동자의 배려에 고마움보다는 심술이 돋았다. 

"흥! 이렇게 한다고 해서 시즈의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네에‥. 그럼 어떻게 할까요?" 

시즈는 순순히 긍정했다. 심술을 부리는 아리에가 그에게는 귀엽게만 보였다. 그러자 시즈의 귀여운 그녀는  갑자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돌변해서 말했다. 

"노래 불러줘." 

"하아‥ 원래부터 목적은 그거였군." 

"오랫동안 못 들었는 걸. 듣고 싶지 않으면 보를레스는 다른 곳으로 가버려." 

"다른 곳으로‥?" 

보를레스는 주위를 휭 둘러보았다. 어딜 보아도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는 포기하고 아리에에게 항

복을 표했다. 

"난 조용히 있을게." 

아리에는 이렇게 일행에서의 절대자라는 위치를 공고히 했다. 

"시즈, 넬피앙을 연주할 수 있겠어?" 

"아무래도 무리겠죠." 

짐에서 꺼낸 넬피앙을 다리에 올려놓고 시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따랑∼ 

"이 정도로도 충분해요." 

따랑∼ 

계절을 적시는 비가 내려‥. 

이리저리 분주한 거리‥. 

슬슬 걷기로 했어. 

그냥 맞아보려고‥. 

니가 좋아했던 비잖아‥. 

잊을 만 하면 또 넌 어느새‥. 

추억 속에 나를 떠밀고‥. 

이젠 포기해야지 너를 지운다는 건‥. 

내내 소용없었잖아. 

시간이 흐르면 다 잊혀지는 빗물에 떠가는 약속들‥. 

우린 왜 다시는 만나진 말자는 약속 그것만 지키며 살아가나 

추억은 추억으로 머물 때 아름답다 믿어왔지만 

후회하게 된대도 이런 비오는 날엔 너와 다시 걷고 싶어 

- 유리상자, 비오는 날엔 - 

슬픈 듯 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조가 한 번씩 튕겨지는 넬피앙의 맑은 소리를 감싸며 빗소리에 섞이자 두 명밖에  없

는 청취자의 마음 속까지 비가 내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비를 맞고 싶은, 아니 이미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리에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에서 생각했다. 

'시즈와 함께라면 비를 맞아도 후회하지 않아.' 

벌떡 일어서서 그녀는 비를 향해 뛰어나갔다. 화를 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녀의 연인은 팔을 잃고 자신의 나라

에서 외면당했어도 저렇게 웃고 있는데‥. 아리에는 비가 시즈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크게 외쳤다. 

"시즈, 우리 악단을 만들자! 악단의 이름은! '실리미엔 에이아!'" 

"실리미엔 에이아?" 

보를레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반문했다. 뜻이 어떻게 보면 정말이지 광오했기 때문이다. '실리미엔  에이아', '마땅찮

은 이'의 뜻을 가진 시즈의 이름처럼 고대어인 그것의 뜻은 바로‥. 

"그래! 유혹하는 여신과 같이‥!" 

"흐음‥ 좋군. 재미있겠어." 

"그렇지?" 

확실히‥. 감미로운 시즈의 목소리에 맞춰 하늘하늘하는 춤을 추는 아리에의 모습은 유혹하는 여신 같았다. 곧 보를

레스도 비속의 댄스를 시작하면서 유혹이라기보다는 광란하는 남녀처럼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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