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선이란 지키는 걸까, 넘는 걸까 (53/110)


#53화. 선이란 지키는 걸까, 넘는 걸까
2022.06.03.


16584348200588.jpg

 

16584348200593.jpg

“레이디 앰브로시아,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진이 허리에 손을 얹고 물었다.

근육마다 송골송골 맺혀 있는 물방울들이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했다.

영혼의 형상은 잘 모르겠지만 육체의 형상만큼은 솔직히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흠흠, 잠시 갑판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하려는데.

16584348200598.jpg

“화물 상자 뒤에 한참 웅크리고 계셔서 말임다. 어디 다치신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말임다.”

아까 그 눈치 없는 선원이 먼저 나불거렸다.

16584348200598.jpg

“난간 앞에서 목을 죽 빼고 서 계실 때부터 지켜봤는데, 갑자기 상자 뒤로 다급히 뛰어가시더니 픽 쓰러지시는 게 아닙니까.”

그만! 게다가 사실과 미묘하게 어긋나면서도 디테일한 설명은 뭐냐고!

내가 눈짓을 보내는데도 그 떠벌이 선원은 닥칠 줄 몰랐다.

16584348200598.jpg

“차암 이상하다 생각했지 말임다. 배가 기우뚱거려 중심을 못 잡으시기엔 수면이 잔잔했는데. 연약한 분이 저러다 어디 부러지시지 싶어 식겁했지 말임다.”

진이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16584348200593.jpg

“굼벵이 레이디가 왜 그리 무리했을까? 몸은 괜찮아? 어디 부러진 데는 없고?”

저건 분명 걱정하는 게 아니라 놀리는 말투였다.

16584348200614.jpg

“오해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항변했다.

16584348200593.jpg

“뭘 오해했다는 거지? 난 아무 생각 안 했는데?”

저 야릇한 눈빛과 입가에 묻은 비웃음은 상대의 약점을 잡아 옳다구나 기뻐하는 자의 것이 분명한데!

16584348200614.jpg

“이 밤에 바다에서 헤엄치는 게 사람일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어. 돌고래인 줄 알고 본 거라고.”

16584348200593.jpg

“뜀박질은 왜 한 거야. 깜깜한데 넘어지면 어쩌려고.”

16584348200614.jpg

“돌고래라고 생각했던 게 배로 점점 다가오고 말소리 같은 것도 들리니 무서워서 그랬지. 가뜩이나 바다엔 괴물이 많다고 하잖아. 당신 말대로 깜깜해서 보이는 것도 그다지 없었고.”

나는 반 정도만 진실을 말했다. 쓸데없이 길게 주절거린 탓에 괜히 더 의심을 산 건 아닌지 마음에 걸렸지만.

16584348200593.jpg

“이제 괴물이 아니라 우리란 걸 알았으니 더 이상 거기 숨어 있을 필요 없어, 레이디.”

진은 자상한 척 손까지 내밀었지만 나를 놀리는 게 분명했다. 그럴 때만 짓는 진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나는 좀 더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6584348200614.jpg

“그럼 설명을 듣고 싶네. 대체 왜 캄캄한 밤에 괴상망측하게 돌고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건지.”

16584348200593.jpg

“괴상망측하다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16584348200614.jpg

“설마 나 때문이라고?”

진이 저쪽에 서서 쭈뼛대고 있는 헐벗은 직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16584348200593.jpg

“매일 몸을 단련하던 장정들이 배 위라고 얌전히 있을 수 있겠어? 원래는 대낮에 수영으로 몇 시간씩 단련하던 이들이라고.”

그런데 나 때문에 밝을 때 못 하고 어두컴컴할 때 몰래 한다는 거야?

16584348200593.jpg

“사내들끼리 있을 때야 거리낄 게 없지만 레이디 앞에서 그야말로 괴상망측한 몰골을 보일 순 없잖아.”

하말린으로 가는 엿새 동안 페가수스 직원들은 좀이 쑤실 때마다 주로 수영으로 몸을 단련해 왔다고.

보통은 뜨거운 햇볕 아래 새파란 물살을 가르며 바다를 누볐다면, 이번엔 나 때문에 부득이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밤바다를 은밀히 헤엄쳤다는 얘기.

16584348200593.jpg

“일부러 피했는데도 기어코 찾아내다니, 정말이지 귀신이 따로 없군.”

익숙한 진의 농담이었지만 맞춰 줄 기분이 아니었다.

돌고래 소동이 있기 전 내가 어떤 다짐을 했는지 모르면서…….

평소라면 나도 지지 않고 되받아쳤겠지만, 오늘은 그저 얼굴을 붉힌 채 서 있다 힘없이 돌아서 내 방으로 뛰었다.

16584348200593.jpg

“이봐!”

등 뒤에서 당황한 게 분명한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설 때 울음을 참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잘 보였는지 모르겠네.

방으로 뛰어 들어온 나는 조그마한 침대 위로 풀썩 몸을 던졌다. 그러게 진지한 결심을 한 레이디를 왜 건드려서는.

16584348200614.jpg

‘내 딴엔 힘들게 마음을 다잡았는데…….’

침대에 누운 채 왠지 허전한 마음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니 노란색 오징어들이 춤추고 있었다. 다른 객실에는 다른 물고기가 그려져 있을까? 아니면 전부 다 오징어일까?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객실 문을 세게 두드렸다.

쾅쾅.

이 배에서 내 방문을 저리 사납게 두드릴 사람은 하나밖에 없지.

16584348200593.jpg

“나야. 할 말이 있어.”

역시나 오징어, 아니 진이었다. 2차전인가.

문을 열었더니 옷을 입은 진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16584348200593.jpg

“사과를…… 하고 싶어서.”

진의 입에서 예상과는 다른 말이 나오자 기껏 사납게 치켜뜬 내 눈초리가 갈피를 잃었다.

진은 상체를 조금 숙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배의 객실들은 크기가 아담하고 천장도 낮은 편이었는데,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진이 들어오니 안 그래도 비좁은 방이 더 비좁게 느껴졌다.

진은 구부정하게 서서 다시 한번 말했다.

16584348200593.jpg

“방금 전 일 사과하고 싶어서.”

떨떠름한 표정이나 어색한 목소리를 보니 마지못해 온 것 같았다. 보나마나 직원들에게 등 떠밀려서 왔겠지.

16584348200593.jpg

“방금 한 말들은 다 농담이었어. 그냥 당신 반응이 재밌어서.”

사과하러 온 거 맞나? 내가 무표정하게 쳐다보자 진이 급히 시인했다.

16584348200593.jpg

“맞아, 내가 선을 넘었지. 우리가 격의 없는 사이라고 착각했어. 제국을 떠나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나 봐.”

그런 것 때문이 아닌데. 어차피 이러든 저러든 상관없는 사이가 될 테니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과하러 온 사람을 계속 구부정하게 세워 두긴 그렇고, 일단 하나밖에 없는 의자를 권했다. 진이 의자를 당겨서 엉거주춤 걸터앉는 동안 나는 가방에서 수국차를 꺼내 우렸다.

간만에 제도에 간 기념으로 플럼 하우스에 필요한 물건들과 사용인들에게 줄 선물을 신이 나서 사들였다. 요리사 한스를 위해서는 몇 가지 향신료와 차를 샀고.

토버마리에 채 부치기도 전에 그만 나와 함께 배에 실리고 말았지만. 불과 며칠 전 일이 아득한 꿈만 같았다.

차를 내놓자 진이 멀거니 바라보았다. 은 스푼으로 차를 휘저어 볼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다.

서슴없이 휘젓지 않고 망설였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흡족했다.

16584348200614.jpg

“그 정도 농담 때문에 당신을 독살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나도 찜찜한 건 싫으니 스푼 꺼내는 걸 허락할게.”

진이 픽 웃으며 찻잔에 입을 가져갔다.

어? 진짜 은 스푼을 안 쓰는 거야? 그러다 큰일 나려고.

16584348200593.jpg

“향이 좋네. 이렇다 할 독성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고.”

진이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볼거리도 없는 방을 괜히 이리저리 살펴보다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16584348200593.jpg

“내가 너무 성급했어. 당신한테는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진의 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6584348200593.jpg

“당신은 이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텐데…….”

16584348200614.jpg

“아니, 나 시간 안 필요해.”

진도 내 말이 무슨 뜻일까 곱씹어 보는 듯했다.

16584348200593.jpg

“그 말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란 뜻인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16584348200593.jpg

“그렇군…….”

기왕에 그를 끊기로 결심했으니 내가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왜냐하면 진은 겉보기와는 달리 동정심이 많은 남자였다. 당장 황후에게 해 온 것을 보라. 동정심과 호감을 혼동하기 쉬웠다.

그간 모른 척했지만, 나를 보는 그의 눈에 동정의 빛이 깃드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심지어 그 동정심을 이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동정은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동정이라니, 싫었다.

이 모든 것은 나만 아는 이야기일 뿐. 지금 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 역시 자신만 아는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16584348214874.png

 

* * *

페가수스 직원들과 선원들이 쉬고 있는 휴게실.

우락부락한 장정들 중 한 사람이 오늘 잡담의 운을 뗐다.

16584348200598.jpg

“헷갈린단 말이야. 보스가 레이디를 좋아하는 게 맞지?”

16584348200598.jpg

“헷갈릴 것도 더럽게 없네. 척 보면 모르겠냐?”

16584348200598.jpg

“레이디도 보스한테 마음이 있는 거고?”

16584348200598.jpg

“안 그럼 귀족 레이디가 뭐가 아쉬워서 이 험한 데 있겠냐.”

16584348200598.jpg

“허어, 그런데 왜 저 모양이냐고! 아주 답답해 미치겠네.”

한 사람, 두 사람 수다에 끼기 위해 어슬렁거리며 모여들었다.

16584348200598.jpg

“보마나마 뻔하지. 보스가 정 떨어지는 말로 레이디 속을 뒤집었겠지.”

16584348200598.jpg

“하긴 보스 특기지. 그 저번에 누구냐, 마릴린이랑 안나도 보스 때문에 울면서 뛰쳐나갔잖아.”

16584348200598.jpg

“어젯밤에 봤어? 보스가 레이디한테 싹수없이 구는 거.”

장정들이 낮게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6584348200598.jpg

“레이디에게 모욕적인 말이긴 했지. 우리 같은 뒷골목 건달들이랑 어울릴 때나 쓰는 말을 아무데나 갈긴다니까.”

16584348200598.jpg

“더 심각한 건 뭔지 알아? 보스는 자기가 재밌는 농담을 한 줄 알더라고.”

16584348200598.jpg

“어이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견적이 안 나오네.”

16584348200598.jpg

“보스 말이야, 자기도 저 잘난 걸 알고 저러는 거 아냐?”

16584348200598.jpg

“에이그, 저런 몸은 보기에만 좋지. 사내는 자고로 좀 작고 짧아도 속이 땅땅하게 들어차야 힘을 쓰는 건데.”

순식간에 만인의 안줏거리가 되어 지탄을 받게 된 진이었다.

그때 누군가 테이블을 탕 치면서 일어났다.

16584348236753.jpg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나서서 두 분을 도와드려야지.”

뱃멀미가 조금 가라앉아 오랜만에 휴게실에 나온 플록스였다.

그는 장정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강구한 뒤, 신중하게 역할과 임무를 나누었다.

* * *

낮에는 하말린의 사정에 대해 교육을 받거나 낚시를 배우고, 인간 돌고래들이 체력 단련을 하는 밤에는 객실에 틀어박혀 버섯을 그리는 하루가 느릿느릿 흘러갔다.

그날 이후 진과는 말 섞을 일이 거의 없었다.

다만 의도가 빤한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예를 들면.

16584348200598.jpg

「레이디, 저쪽 방 욕조에 따끈한 물 받아 놨습니다. 부족하나마 피로를 푸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서.」

그래서 가 보면.

16584348200593.jpg

「뭐지…… 레이디 앰브로…….」

꽝. 그 욕조에 이미 들어가 있는 진의 말을 끝까지 못 듣고 황급히 문을 닫아야 한다든지.

갑판을 걷는데 느닷없이 진이 내게 사납게 달려들어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지게 되고, 상기된 얼굴을 한 진이 이를 악문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든지.

16584348200593.jpg

「어떤 놈이…… 발 걸었어…….」

아무래도 플록스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하려면 제대로나 하든지. 정말이지 엉성해서 못 봐 줄 노릇이었다.

오늘은 몸이 찌뿌드드해 갑판을 걷는데 그 눈치 없는 ‘말임다’ 선원이 슬며시 다가왔다.

16584348200598.jpg

“두 분 사이가 좋으시지요?”

16584348200614.jpg

“……?”

16584348200598.jpg

“에이, 제 눈은 못 속이시지 말임다. 미소는 살살 녹고 눈빛은 막 달큼하던데 어떻게 모릅니까. 보스의 그런 모습 처음 보지 말임다.”

그날 밤에도 내 행적에 대해 제멋대로 떠벌리더니. 그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눈이 달린 게 분명했다.

다정한 미소에 꿀 떨어지는 눈빛이라니. 오만한 비웃음에 사냥감을 갖고 노는 맹수의 눈빛이었지.

이어진 교육 시간에 플록스에게 한마디 따지려는데, 그가 눈치를 챘는지 오늘따라 무게를 잡고 말했다. 제국과 하말린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광물에 대해 소개하겠다고.

‘흑금’이라 불리는 페트룸은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 광물로, 열원, 광원, 동력원으로 다양하게 쓰였다.

문제는 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전쟁과 산업화에 열을 올리느라 영토 내에 매장돼 있던 페트룸을 무분별하게 채굴했고, 그 탓에 지금은 고갈 직전이라는 것.

자연을 무리하게 착취하는 것은 순리에 어긋난다는 게 일반적인 정서였던 하말린에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엄청난 양의 페트룸이 지금도 얌전히 묻혀 있었다.

그 때문에 제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하말린의 영토를 탐내고 있었다. 프러너스도 하말린 왕가에 줄을 대려고 공을 많이 들이던 기억이 났다.

16584348200614.jpg

“페가수스도 다른 제국 상인들처럼 페트룸을 노리는 거예요?”

16584348236753.jpg

“흑금이야 황실과 고위 귀족들이 강탈하려고 이미 눈이 벌건데요. 저희는 정령의 돌을 노립니다.”

16584348200614.jpg

“정령의 돌이요?”

16584348236753.jpg

“정령의 축복을 받은 땅인 하말린에서만 구할 수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16584348200614.jpg

“어디에 쓰는 돌인데요?”

플록스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16584348236753.jpg

“레이디께서도 곧 통역 수행을 하실 테니 알아 두시는 게 좋겠지요. 정령의 힘이 깃든 광물이라 영원한 젊음을 가져다주는 영약의 재료로 쓰인다고도 하고요.”

돌팔이 약장수 같은 소리에 내가 미심쩍은 얼굴로 빤히 쳐다보자 플록스가 실토했다.

16584348236753.jpg

“실은 제국에서는 금지된 흑마술의 재료로 쓰인다고 합니다. 암시장에서 고가의 사례비를 내걸고 구해 달라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어서요.”

16584348200614.jpg

“흑마술?”

16584348236753.jpg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정신을 조종하는 흑마술이 아직도 암암리에 행해지는 걸로 압니다.”

뷰글라스와 시아의 심령술을 보지 않았다면, 미고의 영혼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돌고래 해초 뜯어먹는 소리라 생각했을 법한 말이었다.

16584348200614.jpg

“그럼 결국 암거래에 쓰일 정령의 돌을 빼돌리러 가는 건가요? 영혼의 형상도 영롱하신 분이?”

16584348236753.jpg

“물론 그것만 하러 가는 건 아니지만요. 정령의 돌은 부르는 게 값이라 꽤 쏠쏠하거든요. 요즘 들어 이상하게 주문이 늘어서요. 남을 저주하려는 자들이 부쩍 많아졌나?”

플록스, 그렇게 성실해 보이는 얼굴로 악당 같은 소리 말라고.

그 후로 버섯의 갓, 대, 주름살, 턱받이, 대주머니를 몇 번 그리고 나니 하말린 왕도에서 멀지 않은 항구인 탄탈에 도착했다.

제국보다 기후가 따뜻한 하말린의 항구에 정박하자마자 특유의 향긋하고 달달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내가 멀고 먼 외국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리니 왕궁에서 보냈다는 우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물소가 끄는 탈것이었다.

말 대신 큰 뿔이 달린 검은 물소가 서 있는 광경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16584348200593.jpg

“우차를 보낸다는 전언은 없었는데?”

진이 미심쩍은 얼굴로 차체에 드리운 휘장을 들추었을 때였다.

16584348262641.jpg

“진!”

누군가 우차에서 튀어나와 진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하말린의 따뜻한 기후를 고려한다 해도 몹시 헐벗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