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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마음을 추리하다 (77/110)


#77화. 마음을 추리하다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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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고가 쓰기로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있다고 하던데? 자두 쿠키 말고는 없는 건가, 우리가 서로에게 약속한 것이?”

진은 마치 내 눈동자 속에 답이 있다는 듯,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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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많으시네. 쿠키 소녀의 정체 따위 별로 궁금하지 않았나 봐?”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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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그건 아니야. 그때 그 소녀가 당신이란 걸 알게 돼서 기쁘고 다행이야. 진심으로. 그리고 당신이 그자들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 아파.”

낯선 여자에게 갑자기 말랑한 소리를 늘어놓자니 쑥스러웠는지, 진의 표정과 말투는 말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뻣뻣하고 어색했다.

당신이 미안할 일이 아닌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꾹 삼키고 독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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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정말 미안하다면, 그자들에게 정말로 화가 난다면, 복수해 줘. 당신이 황위를 되찾는 게 나에게도 훌륭한 복수니까. 그래, 우린 같은 자들을 적으로 두고 있어.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사실 그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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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협력하기 위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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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도 얻고자 하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공들여 당신을 설득하는 거 아니겠어. 다 그런 거잖아.”

냉정하게 잘하고 싶었는데, 혹시 눈동자가 어설프게 흔들린 걸까. 진이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들통 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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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미고가 쓴 말 중에는 ‘연인’, ‘키스해’도 있었는데. 그 말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한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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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 아이 바람이야. 봐, ‘키스’가 아니라 ‘키스해’, ‘해’가 붙었잖아? 걔는 엉뚱한 사람들을 엮어서 키스하라고 조르는 게 취미였어. 아주 말썽꾸러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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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연인’은? 거긴 다른 말이 안 붙었는데?”

지금 황위 탈환이니 반정이니 쿠데타니 하는 엄혹하고 중차대한 일을 얘기하다 말고, 왜 저런 하찮은 일에 집요하게 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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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엔, 쿠키를 약속했던 어린 시절뿐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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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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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당신의 그 말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게 그처럼 스스럼없이 반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극히 드물거든. 그것도 만나자마자 대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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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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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말린에 대한 내 감정을 아는 걸 보면, 꽤 내밀한 얘기까지 나눈 사이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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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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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사람 패는 솜씨를 보니까 보통이 아니던데. 주춤하거나 망설이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 손이 죽죽 나가는 게, 어째 매우 잘 알고 있는 몸을 다루는 느낌이었단 말이지.”

잘 아는 몸이라니, 큰일 날 소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 누구보다 훤히 알기야 알지만…… 아니, 당신이야말로 얻어맞으면서 뭘 느끼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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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하는 소릴 들으니, 내 따귀에도 이미 손댄 적이 있는 것 같던데. 내가 아무한테나 따귀 맞고 살 사람은 아니거든.”

정보 길드 수장이라 그런지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고 감이 좋단 말이지. 미고 그 녀석은 왜 그런 말을 써서는. 나도 이제부터 말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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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황위에 오를 분이라 그런지 명석하시네요. 맞아요, 우린 잠시 연인 사이였어요. 계약 연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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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계약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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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혼하는 데 필요해서요. 일이 좀 꼬여서 페가수스에 이혼 소송을 의뢰했거든요. 골치 아픈 사정이 생겨서 부득이 가짜 연인이 필요했어요. 그 왜 있잖아요, 급행으로 이혼하는 철컹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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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만하군. 말보르크 그 사기꾼의 작품이라면.”

진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눈을 집요하게 마주쳐 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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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계약뿐인 관계였다?”

제발 그만 좀 추궁해. 나더러 뭘 어쩌라고?

지난 생에 우리가 서로 사랑했다고? 결혼도 한 사이라고?

기억도 못 하는 전생의 일로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라고? 나에 대한 감정을 강요하라고? 당신은 진이면서 진이 아닌데…….

진이 그런 이유로 내게 특별한 감정이나 부채감을 갖는 건 싫었다. 그런 식으로 애정을 구걸하는 건 사양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진이 억지로 나를 좋아하려고 애쓴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진을 사랑한 만큼 비참해질 것 같았다.

혹시라도 진이 내게 어떤 관심이나 감정을 새로이 갖게 되더라도, 그 감정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로지 이번 생에 한정된 것이길, 이번 생의 로제트를 향한 것이길 바란다.

맞다. 나는 욕심 많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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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생각해 봐요. 계약 말고 뭐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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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참 이상하군. 내 느낌엔, 내가 당신에게 꽤 호감을 품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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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어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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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고서야 수장인 내가 굳이 직접 가짜 연인 행세를? 여자라면 마다 않는 말보르크나 다른 녀석들도 득실득실한데? 그런 의뢰는 받은 적도, 받을 생각도 없거든.”

아니, 기억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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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죠! 당신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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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같은 걸 했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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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같은 건 없었어요! 아니, 이봐요,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당신 앞엔 지금 훨씬 더 중대한 일이 있다고요!”

자칫하면 진의 페이스에 말려들 것 같아 일부러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선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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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앞으로 상대할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요?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줄 아냐고요! 괴물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그러나 진은 눈곱만큼의 동요도 없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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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평생 그들의 암살 위협을 피해 살아 왔는데. 그런 미친놈들을 건드렸다가는 죽기 딱 좋다는 것도. 그런 사지로 나를 내몰고 있는 게 당신 아닌가?”

아니라고. 사지로 내몰기는커녕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당신 목숨을 구한 게 나라고. 지난 생엔 한 번밖에 못 구했지만, 이번엔 반드시…….

이런 사정을 까맣게 모르는 진은 끈질기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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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미친놈들 손에 죽기 전에 진실이라도 알고 싶군.”

허, 원래 저렇게 집착하는 인간이 아닌데? 뭔가 평소의 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집착은커녕 만사가 귀찮고 심드렁한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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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속이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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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다 말하지 않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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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네요. 그래 봐야 지난 생의 일이니, 사실상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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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그런데 기분이 이상해.”

진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으니 또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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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할 만도 하죠. 소녀 유령부터 해괴한 말을 늘어놓는 수상한 여자까지, 하루 동안 별별 일을 다 겪었잖아요. 당신이니까 이 정도지, 보통 사람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걸요? 역시 황제의 재목이십니다.”

줄줄 늘어놓는 영혼 없는 말에 진이 황당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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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쉬세요. 긴 하루였잖아요. 말이 좀 엉뚱한 데로 샜지만, 그 일에 관해 심사숙고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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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수 없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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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결단을 내린다면 나도 최대한 돕고 싶어요. 몇 가지 쓸모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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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레이디, 당신 정보를 폄하하는 건 아닌데, 황위 쟁탈전이란 대개 아주 난폭하고 야만적인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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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어차피 언제 죽어도 죽을 목숨이라면.”

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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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대부분은 자기 목숨에 대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 두 번 사는 레이디.”

허허, 두 번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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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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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들은 다 뭐지?”

카를슈테인 공작이 얼핏 무감하게 물었지만, 보좌관인 레이놀 백작은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음을 감지했다.

가십지에 공작 본인에 관한 기사가 실린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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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지 기자들의 입방아야 오히려 기대했던 바가 아닙니까. 법적인 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이혼 수속을 마쳤고, 과분한 대가도 지불했으니까요. 카를슈테인에 나쁜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혼 과정에 거리낄 만한 점은 없었다. 더욱이 기사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전 공작부인 역시 이혼에 동의했다고.

사실 보좌진은 가문에서 관리하는 기자들에게 일부러 기삿거리를 흘리는 것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아서 이리 소상하게 기사가 났으니.

앰브로시아 후작가에서 이의를 제기할 명분도 사라졌다.

물론 가십지 기사가 흔히 그렇듯, 부분적으로는 흥미를 자극하는 쪽으로 왜곡되거나 부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레이놀 백작이 보기에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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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예상 가능한 기사들이지. 하지만 좀 이상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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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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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가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처럼 보이잖아. 한데, 그녀는 그런 여자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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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지 특유의 화법이 아니겠습니까. 둘러댈 근거는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발언의 출처를 알아보면 허위인 경우가 태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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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제트가 직접 밝히지 않으면 도저히 알기 힘든 내용도 포함돼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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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앰브로시아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일 수는 있지만, 인터뷰에 자발적으로 응하기야 했겠습니까. 보나 마나 집요한 기자들의 유도 질문에 넘어갔겠지요. 그들이 작정하고 덤빈다면 물정에 어두운 부인이 당해 낼 재간이 없지요.”

공작도 보통은 자신의 보좌관과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하지만 영 찜찜했다. 자신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뭔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만 같은, 중요한 일을 그르친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나쁜 느낌.

남들이 보기에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공작은, 사실 자신의 동물적인 감을 그 무엇보다 신뢰했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비이성적인 판단이라 비웃었다.

인간은 그저 동물이었다. 자신을 봐도, 자신의 주변을 봐도 그러했다. 동물을 지배하는 건, 오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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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가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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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치로 가는 열차를 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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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로시아 본가로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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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앰브로시아 영지 중에서도 후미진 지역에 있는 컨트리 하우스가 부인의 소유라고 합니다. 그곳에 거처를 마련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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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도 넉넉히 내어줬는데, 정말로 그 사기꾼들에게 전부 쏟아 부을 생각인가 보군.”

공작은 전 부인의 동태를 파악하라고 이미 일러 둔 터였다. 이혼한 후에도 감시를 아예 놓을 수는 없으니. 쓸모가 거의 다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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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그리치라면 그자의 본거지 아닌가? 진 시더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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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합니다. 마음에 걸리시는 점이라도?”

없다. 로제트와 그자의 접점은 없었다.

하지만 왜 하필. 손아귀에서 놓자마자 가장 불길한 곳으로 날아간 거지?

불현듯 이혼 문제가 예상보다 쉽게 해결됐다는 생각이 공작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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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의 정보 길드에 로제트의 뒷조사와 감시를 의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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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 쪽 사람들을 붙여 두었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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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야 많을수록 확실하지. 잘하면 양쪽 모두를 감시할 수도 있겠지.”

반쪽짜리 시더우드들이 황제와 그 측근들에게 눈엣가시인 것은 분명했다. 황제의 최측근인 공작이 그리치의 방탕 황자를 견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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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일부러 둘을 엮으려는 건가? 그렇다면 공작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다. 이미 내친 여자를, 감시를 붙인 것도 모자라 저렇게까지.’

은밀한 속사정까지는 모르는 레이놀 백작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이렇게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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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에 의뢰를 넣겠습니다.”

백작이 물러간 후, 공작은 다시 가십지들을 노려보다 헛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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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작부인이 밝힌 불화의 진짜 이유? 공작은 내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고개 숙인 제국 최고의 남자?’

가십지 기사라는 게 순전히 싸구려 창작물이지만, 그걸 고려한다 해도 쓰레기 같은 상상력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두고 저런 설득력 없는 이야기를 뽑아낼 생각을 했는지. 도리어 참신하다고 해야 하나?

선친은 로제트를 가리켜 평생 신경 써야 할 독초라고 당부했지만, 카를슈테인 공작은 이제야 그 독초가 처음으로 거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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