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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비상계단에서… (38/110)


38화. 비상계단에서…
2022.04.11.


살을 녹일 듯 뜨거운 시선이 눈에서 코로, 코에서 입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안은 작은 어깨를 한껏 웅크린 채 숨을 꾹 참았다. 조금 전 식당 안에서 한 남자를 완전히 녹다운시킨 당차고 야무진 여자는 거기에 없었다.

그저, 제 몸의 몇 배는 될 법한 커다란 남자의 품에 가려 숨죽이고 있는 작은 여자만 있을 뿐.

두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비추던 비상계단 조명이 툭 꺼지는 순간, 지안은 두 눈을 꾹 감았다.

도하가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자, 은은한 조명이 다시금 두 사람을 비췄다.

들키고 싶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의 떨림이 훤히 드러나자, 지안은 연신 고개를 숙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턱선을 가볍게 쥐어 집요하게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놀란 지안의 눈동자가 요동치는 사이, 도하의 시선은 그녀의 가느다란 턱선 바로 위 싱그러운 입술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고개가 밀어낼 수도 없이 가까이 날아왔다.

귓가에 가까이 들려오는 숨결, 움직이면 닿을만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숨결은 그녀가 알던 것과 매우 달랐다.

폭주하는 기관차의 소리처럼, 포효하기 직전의 짐승이 으르렁대는 소리처럼. 목 끝까지 뜨겁고 거친 열기가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지안이 생각하는 사이, 뜨거운 열기를 가득 문 입술이 단숨에 날아와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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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순식간에 겹쳐진 입술에 놀란 지안이 그의 상체로 팔을 휘저었지만, 단단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뜨거운 입술.

쿵쾅쿵쾅.

걷잡을 수 없이 방망이질해대는 심장 소리에 귓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가쁜 숨을 내쉬려 살짝 입술을 벌렸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뜨거운 숨결이 거칠게 밀려 들어왔다.

지안의 가녀린 어깨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도하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떨고 있는 작은 몸을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두 사람을 비추는 비상계단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 한동안 쉼 없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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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턱 끝까지 찬 하린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을 빠르게 훑던 시선 끝에 저만치 먼 곳에 홀로 앉아 있는 세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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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어디 가고 혼자야!”

바람의 현장을 제대로 습격하고 싶었던 하린은 조금 김이 샌 듯한 얼굴로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또각또각.

날카로운 구둣발 소리가 가까워지자, 멍한 눈길로 허공을 보고 있던 세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눈앞의 하린을 발견하고는 귀신을 본 듯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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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린아.”

하린은 그를 날카롭게 쏘아본 후, 맞은편 자리에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와 사용 흔적이 역력한 식기구를 차례대로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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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도 되지?”

날이 선 목소리에 세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은 자리에 앉자마자 숨을 돌릴 여유 없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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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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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맥락 없이 묻자, 세준은 눈에 힘을 바짝 넣고 하린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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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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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올린 거 봤어. 당신 앞에 웬 여자가 앉아 있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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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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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둘이 오붓하게 식사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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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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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냥 아는 사람이랑 이런 데를 온다고. 반년을 기다려야 겨우 올 수 있는 이런 데를? 그 말을 나보고 지금 믿으라는 거야?”

조금 전 지안이 남기고 간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린이 나타나 따따따 쏟아대자 세준은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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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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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는 사람이 누군데? 어디 한번 이름이라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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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민하린.”

세준이 해명은커녕 제 입을 막으려 하자 하린은 분노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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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했다고 그만해? 진짜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지? 말해 봐. 누군데? 그새 세컨드라도 만든 거야? 그런 거야? 응?”

하린의 목청이 올라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꽂혔다.

세준은 주변을 의식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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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게 하지 말고 목소리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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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 지금 나보고 창피하다고 했어? 더러운 짓은 당신이 해놓고 내가 창피해?”

하린이 이성을 잃은 듯 날뛰자 세준도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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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짓? 방금 더러운 짓이라고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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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약혼녀 두고 다른 여자랑 이런 데 와놓고 누군지 알려주지도 않잖아. 떳떳하면 왜 말을 못 하겠어? 더러운 관계니까 못 밝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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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더러운 짓은 민하린 네가 하고 다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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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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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하! 그 자식은 왜 보러 간 건데!”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하린의 안면이 경직된 채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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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세준 씨가 그걸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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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자식 깨어났다니까 다시 마음이 동하기라도 했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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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동하긴 누가 동했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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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거긴 왜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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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냥 갔어.”

하린은 바짝 마른 입술을 연신 달싹이다가 별안간 눈썹을 추켜들며 날카롭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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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세준 씨! 설마 지금 나 뒷조사하고 다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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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조사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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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안 건데! 뒷조사가 아니면 대체 어떻게!”

그때 두 사람 앞으로 단정한 정장 차림의 매장 지배인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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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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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세준이 멋쩍은 듯 대답하자, 지배인이 격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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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레스토랑은 실내 정숙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주변 고객님들께서 두 분 대화 소리 때문에 식사에 지장을 받고 계셔서, 혹시 식사를 마치셨다면, 그만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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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인은 교양있는 말을 썼을 뿐, 두 사람을 쫓아내고 있었다.

체면을 구긴 세준이 바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린도 마지못해 엉덩이를 뗐다.

두 사람이 퇴장할 때, 주변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준이 계산을 하고 나가자, 매장 지배인과 카운터 직원은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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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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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배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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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나간 그 손님, 예약 정보 확인해서 블랙 리스트에 올리세요. 다신 우리 가게 예약 안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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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지배인은 조금 전 세준과 하린이 나간 문 쪽을 보며 혼잣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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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격 떨어지는 사람들이 여길 어떻게 알고 예약한 거야.”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공기는 어색함으로 가득했다.

지안은 마네킹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고정한 채 창밖만 볼 뿐, 운전석 쪽으로는 잠시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실수라도 도하와 눈이 마주치면, 조금 전 나눈 뜨겁고 아찔했던 입맞춤이 떠올라 눈코입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도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입꼬리를 올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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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보이긴 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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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를 찌르는 지적에 지안은 당황한 듯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그러다 순간 놀라 입술을 뗐다.

아.

도톰하고 뜨거운 입술에 제대로 물려, 붉게 부풀었던 여린 살이 여전히 후끈하고 얼얼했다.

또 한번 소나기처럼 찾아온 뜨거운 입맞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난감했다.

여전히 널을 뛰는 맥박과 입술 곳곳에 남은 그의 온기.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저를 바라보는 달라진 그의 눈빛, 끝없이 타오르는 뜨거운 눈동자를 어떻게 볼지 걱정이었다.

어둠뿐이던 차창 밖 풍경 속에,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환한 조명이 켜진 저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가 완전히 멈춰 서고, 먼저 안전벨트를 푼 도하가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려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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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줄게.”

그의 팔이 제 몸 위로 날아오는 순간 지안은 그대로 바짝 얼어버렸다.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작은 솜털까지 긴장한 듯 굳었다.

점차 잠잠해지던 심장도 다시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세준이 벨트를 채워주려 했을 때, 그녀의 몸은 위기 경보라도 내린 듯 철저히 그의 손길을 차단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몸이 반응했다.

방어는커녕,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으니.

그의 상체가 작은 몸을 완전히 포갤 듯 가까이 다가왔다. 커다란 그림자가 다시 한번 그녀를 훅 덮쳤다.

도하는 그녀의 작은 몸을 보호하고 있던 벨트를 푼 뒤, 겁먹은 아이처럼 움츠러든 그녀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코끝으로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아기의 뽀송뽀송한 살결에서 날 듯한 기분 좋은 향기.

솜털이 남아 있는 희고 고운 살결을 손으로 쓸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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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요.”

그의 몸에 살짝 눌려 있던 지안이 눈썹 사이를 좁히며 신음했다.

도하는 얼른 몸을 떼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멋쩍은 듯 딴 곳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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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까?”

지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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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평소라면 정순도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귀가 소리에도 저택 안은 무슨 일인지 고요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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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도하가 안방으로 가 노크를 해봤지만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그때 메이드 하나가 도하와 지안을 보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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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도련님, 사모님.”

도하는 안방을 다시 한번 살핀 뒤 메이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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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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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은 지금 2층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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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이요?”

무릎이 안 좋은 정순은 주로 1층에서만 생활했었다. 그런 그녀가 2층에 있다는 소리에 지안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 3년간 정순이 2층에 올라간 걸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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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가볼게요.”

지안이 말하며 계단 쪽으로 몸을 틀자, 도하가 붙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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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지. 회사 관련 보고도 드려야 하니까.”

지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함께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도착하자, 복도 끝에서부터 정순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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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아니 이쪽.”

도하와 지안은 눈을 크게 뜨고 소리가 난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다른 어느 방 앞.

그 안에서 정순의 목소리가 전보다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도하는 문 앞에서 가볍게 노크를 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놀랐는지, 문 너머에서 잠시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방 안에서 정순이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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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벌써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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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할머님.”

지안이 밝게 인사하자 정순은 따라 미소 짓다가도 난처한 듯 자꾸 뒤를 돌아봤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도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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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2층엔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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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그게 말이다.”

정순은 주섬주섬 방문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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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금만 더 늦게 오지 그랬어. 그럼 완벽하게 정리를 끝냈을 텐데.”

지안이 눈썹을 하늘 방향으로 높이 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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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순의 손끝에서 스르륵 열리던 방문이 완전히 오픈되는 순간, 도하와 지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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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우중충한 병실에 신혼부부를 넣어둘 순 없잖아. 그래서 한번 꾸며봤다. 두 사람, 신혼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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