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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41/263)

41화

카탸가 우아하게 손짓했다.

하녀들은 종종 이리스가 저 자신이나 제 딸이기라도 한 것처럼 사랑했지만, 카탸는 어려워하면서 경원시했다.

후처인 카탸가 얕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욱 엄격하게 굴기도 했지만, 하녀들도 고작해야 그녀가 백작 부인이 되기 위해 주인을 꾀어 혼전에 아기를 가진 것이라며 흠을 잡았다.

마치 썰물 빠지듯 하녀들이 방에서 빠져나갔다. 단둘이 되고 문이 닫히자, 카탸가 말했다.

이리스는 엎드린 채로 고개도 들지 않았다. 카탸가 침대 가에 앉아 이리스를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불쌍한 것.”

이리스는 다시 왈칵 눈물을 흘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침실로라도 숨어들어 갈 건데 그랬죠.”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돼. 네가 누구니? 넌 슈나이더 백작가의 고명딸이야. 네가 왜 그런 천한 여자나 하는 짓을 해?”

“고작해야 백작 영애라는 게 뭐가 중요해요? 차라리 아렌의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예요. 그러면 에리히 님이 절 택하셨을 거 아니에요.”

베개에 쓰러지며 그녀가 흐느껴 울었다.

“내가 제일 먼저 좋아했는데. 그런 돈이나 밝히는 천박한 여자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에리히 님 옆에 있을 자격을 얻으려고 노력했는데.”

“걱정 말렴. 그 여자는 공작 부인이 되지 못할 거란다.”

카탸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가에 앉아 다정하게 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리스가 눈물 고인 눈을 들어 카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요?”

“엄마가 그렇게 만들 거야. 믿으렴, 우리 딸. 넌 그냥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숙녀로 있으면 돼. 나머지는 엄마가 어떻게든 할게.”

카탸는 그렇게 이리스를 달랬다.

울다 지친 이리스가 잠들고 나자 카탸는 조용히 일어나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별채로 향했다.

별채에는 초췌한 얼굴의 젊은 여자 하나가 불안한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만 살펴보면 얼굴만 불안한 안색인 것이 아니라 눈빛도 이상하고, 눈동자도 굴리고, 손발이 경련하듯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서 오렴, 노라.”

카탸는 다정하게 그녀를 불렀다.

노라 호프만은 10년 가까이 루이자의 옷방에서 일한 하녀다.

클라우제너의 고용인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카탸로서도 각별히 아끼는 아이였다.

“제발, 제게 궐련을 주세요.”

노라가 바들바들 떨며 카탸에게 대뜸 무릎을 꿇었다. 카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빈센트 말로는, 네가 지난번의 궐련값도 다 지불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도, 돈, 구해 올게요. 무슨 짓이라도 해서 구해 올게요. 요, 요새는 그게 없으면 잠이 안 와요.”

노라가 울먹거렸다.

카탸가 테이블 한쪽에 놓인 나무 상자를 끌어당겨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연잎으로 싼 짧은 궐련 스무 개비가 들어 있었다.

카탸는 그걸 하나 꺼내서 노라 앞에 내밀었다. 노라가 광인처럼 덤벼들었다.

“내 앞에선 안 돼. 감히 지금 내 앞에서 궐련을 피우려고?”

“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백작 부인. 지금 피우려는 게 아니에요.”

노라가 그것을 품에 넣었다. 기어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카탸는 손을 뻗어 노라의 눈가를 다정하게 닦았다.

“저런. 요즘 마음고생이 심한가 보구나. 하지만 너도 알잖니. 이건 아주 비싸.”

“네. 네. 네, 알아요.”

노라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실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고 대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어찌 보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노라가 광망이 도는 눈으로 물었다.

“제가,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돈을 지불할 수 없다면, 일을 하면 된다. 노라는 자신의 위치도 잘 알고 있었다.

루이자에게 직접 속살거릴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흔치 않았다. 루이자의 편지함과 인장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카탸가 웃음을 머금었다.

“뭘 오해하고 있는 거니? 난 대부인께 해가 되는 일을 하려는 게 아니야.”

“네. 그럼요. 백작 부인께서 그러실 분이 아니시죠.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다정한 분인걸요.”

노라는 반쯤 횡설수설하며 아첨을 주워섬겼다. 연잎 궐련을 가진 사람은 그녀에게는 신이었다.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못 할 말이 없었다.

“공작 대부인께서 요즘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계집을 쫓아낼 방법이 있어.”

카탸가 짐짓 은밀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노라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누굴 말하는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요즘 루이자는 델포드 남작 때문에 진정제 없이는 잠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네, 제가 전해 드릴게요. 백작 부인께서 대부인을 아주 많이 염려하신다는 말씀도 함께요.”

“아냐, 노라. 나 말고, 네가 알려 드리는 거야.”

“저요?”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너, 빚이 많잖니? 지금도 이자가 쌓이고 있을 텐데.”

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급료를 잘 받는 축에 속하는 하녀였다. 클라우제너는 고용인을 박대하지 않는 가문이었고, 값비싼 드레스를 관리하는 것에는 전문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옷방 하녀의 대우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연잎 궐련은 아주 비쌌다. 게다가 자제할 수도 없었다.

모아 놓은 돈이 다 사라지는 것에는 채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노라는 가구와 옷을 대부분 팔아치웠고, 그러고도 무거운 빚을 떠안고 있었다.

카탸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진즉 쫓겨났을 것이다. 집세를 내지 못한 지 몇 달이나 지났다.

카탸가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 대부인께서는 인심이 후한 분이시잖니? 네가 공을 세우면 분명히 큰 상을 주실 거야.”

“네. 네, 그렇네요.”

“그러니 내 말을 네 말인 척 전달하렴.”

“네, 감사해요, 백작 부인.”

노라가 멍한 눈으로 대답했다.

카탸의 말이 무조건 옳다. 구멍 난 뇌로는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확실하게 분간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가 카탸의 말을 어길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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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에 도는 소문에는 즐거운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리스 슈나이더에 관한 기사 목록: 클라우제너 공작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클레어의 책상 위에는 그런 보고서가 올라오곤 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리스가 어그로를 끌었다는 것을 알게 된 눈치 빠른 신문사들이 과잉 충성한 것이다.

“미리 대응하라고 보내 준 건 알겠는데.”

사교계의 물밑에 있는 가장 음습한 소문까지 보내 주는 건 과연 자신을 위해서일까?

“제 생각에 이건 남의 뒷소문 이야기를 안 하면 못 견디는 변태 새끼들이 기사를 못 쓰니까 남작님한테 보내는 겁니다.”

로저가 제멋대로 보고서를 들추며 말했다. 찌라시 수준이라 보지 말라고 금지할 만한 것도 아니라서 클레어는 그러든가 말든가 내버려 두었다.

“휘유. 공작님이 엘리엇 도련님을 후계자로 얻은 다음 남작님과 이혼하고 이리스 슈나이더와 재혼 계획?”

“너무 구체적인 망상이라서 헛웃음 나와.”

“그 영애라면 가능해 보이는 망상인데요. 이쪽이 더 대단하네요. 공작님이 성기능 장애라서 기적적으로 생긴 아들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 소문은 숙부님이 출처일 거야.”

클레어는 현기증을 느끼며 말했다. 제임스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자기 나름대로는 어떻게든 현재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쓴 결과라, 진지하게 맞대응하는 것도 이상해서 내버려 두었다. 사실 오해와 소문은 많을수록 좋았다. 진실을 숨기기 쉬워질 테니까.

‘좀 재밌긴 하네.’

에리히가 자기는 성기능 장애가 아니라는 걸 해명한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것 같긴 했다.

“델포드 경은 그렇다 치고요, 공작님은 슈나이더 백작 영애를 이대로 방치하실 계획인 겁니까?”

“음. 진짜 관심 없어 보이더라고.”

에리히는 그런 것으로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다. 진짜면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을 거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발밑에 철저하게 무심한 사람이다. 사교계에서 무슨 소문이 돌았는지 모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보고서를 받는다고 해도 뭘 할 수는 없다. 이리스가 오해를 좀 조장했다고 해서 평판을 조져서 인생을 망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좀 부들대라고 의상실 예약을 취소시키고, 당분간 드레스를 만들 수 없도록 쓸 만한 재단사의 시간을 모조리 사들이고, 구하고 있다는 진주 목걸이를 싹쓸이했지만.

그 정도는 그냥 간접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에 불과하다.

12. 수레국화 목걸이

그렇다고 정말 신경을 안 쓸 수 있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남자 때문에 기를 쓰며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예쁘면 좋겠지만 모델이나 연예인도 아니고, 꾸미는 건 자기가 좋은 날에 좋은 정도로 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시월드에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여주인공을 보면서는, 저렇게 하느니 연을 끊든가 남자째로 갖다 버리는 게 낫겠다고 입에서 불을 뿜었다.

하지만 진짜로 자신의 현실이 되자 독야청청할 수 없었다.

‘적어도 왜 저 여자야라는 말은 안 들어야 할 거 아니야?’

에리히의 애인은 실은 이리스고, 자신은 후계자 셔틀에 불과하다는 소문까지 들어 버린 마당에.

클레어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기 비치는 것은 모처럼 파티 드레스로 치장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약혼 파티였다. 준비되자마자 결혼식 할 건데 굳이 약혼 파티까지 할 것 있냐고 생각했지만, 사교계 모임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게 루머를 부풀리는 것 같아서 결정한 일이다.

수도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참석하는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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