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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20화 (221/263)

#220화

디트마어 람스베르크는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 머리는 불에 그슬려 꼬부라졌고, 재킷은 사라졌으며, 셔츠에는 검댕이 묻어 있었다.

그는 걸음도 제대로 걷기 힘든 듯, 막시밀리안의 부축에 의지해서 비틀비틀 단상 위로 올랐다.

그 뒤를 따라 울리히가 버둥버둥 단상 위로 기어 올라왔다. 그도 부상을 당한 듯, 걷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밧줄을 푸시죠. 이래서는 마녀사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디트마어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수도에서 디트마어와 울리히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시위대의 깃발이었으며, 정제된 언어로 사람들의 감정을 대변해 주었다. 하물며 이 시위 자체가 울리히의 암살 시도로 인해 촉발되지 않았던가.

리나가 막고 있지 않았다면 곧 황후의 가슴을 찔러 죽이기라도 할 기세로 칼을 들이대던 자도 움찔하며 물러섰다.

“재판을 해야 합니다.”

디트마어가 다시 말했다. 정광이 살아 있는 눈빛이었다.

이때까지 그의 연설은 언제나 울리히의 것보다 인기가 없었다.

그는 극적인 톤을 만드는 것에 능숙하지 않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도 부족했다. 그가 가진 대중적 영향력은 주로 글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실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설득력을 가졌다.

“이 중에 사람을 불태워 죽여도 좋을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화재에서 간신히 달아난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기에, 그 말은 더욱더 의미 깊었다. 그는 결코 복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군중의 흥분이 차차 가라앉았다. ‘그렇지’라는 이성적인 동의가 찬찬히 퍼져 나갔다.

그게 우스꽝스러워서 황후는 뾰족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흐. 호호.”

“황후 폐하.”

“그럼 사람 여럿이 의견을 모으면, 사람을 불태워 죽여도 되나?”

황후는 애써 입을 열어, 갈증 때문에 찢어질 것 같은 목으로 소리를 끌어냈다. 디트마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황후는 빈정거리다 말고 몇 번 쿨룩쿨룩, 기침을 했다.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말해 보게, 람스베르크 의원. 사람을 불태워 죽일 권리를 가진 자가 없다면, 재판을 하면 살해할 권리가 생기나? 어차피 그 법을 만드는 것도 다수결에 불과할 텐데.”

아니, 궤변이고 의미 없는 이야기다. 황후는 그것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디트마어와 논쟁하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차라리 군중을 자극하여 폭동을 다시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것도 충동이 문제다. 황후는 피로감에 젖은 채로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복수 쪽이 솔직하지.’

지금의 자신처럼 말이다.

아우구스타가 애절하게 말했다.

“황후 폐하, 부디 안위를 생각하시고……!”

벗어나려고 구슬리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에, 아우구스타는 더 애가 탔다. 어쩐지, 황후가 죽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일단 이 자리를 모면하기만 해도 된다.

물론 황제의 관은 이제 멀어졌다. 하지만 저들이 원하는 대로 재판을 해도, 처형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 있기만 하면 재기할 수 있다.

설령 옥좌에는 오르지 못할지라도, 군사력을 다시 손에 쥐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지금까지 뿌려 놓은 씨앗이 싹틀 것이다.

황후는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 아우구스타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황후가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그 시선은 짧았다. 광적으로 불타고 있는 그 눈동자를 본 아우구스타는 몸을 떨었다.

“아……!”

황후에게는 이미 제 말이 의미 있게 닿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뒤만 따랐으니, 이미 제 것이 된 사람에게 오랫동안 관심 갖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절망감이 아우구스타의 몸을 휩쓸었다.

“그러면, 복수라면 그대의 목을 찔러도 되는가?”

싸늘한 목소리가 밤하늘을 관통한 것은 그때였다.

특별히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웅변조도 아니지만, 여러 사람에게 자기 뜻을 전달할 수 있도록 훈련된 목소리였다.

이제 될 대로 되라며 눈을 감으려던 황후는 번쩍 눈을 뜨고 목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발언한 남자가 천천히 두건을 벗었다. 광택을 잃은 금발이 횃불을 반사하여 불그스름하게 빛났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는 창백하고 안색이 검었으며, 걸음걸이가 다소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는 등을 꼿꼿이 펴고 있었다.

“황제 폐하!”

노이만 의장이 소리치며 무릎을 꿇었다. 하원 의원들이 일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오로지 디트마어만이 그 자리에 무릎 꿇지 않고 서 있었다. 사실 꿇으려고 해도, 무릎이 온전히 움직이지 않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황제?”

“황제라고?”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어?”

경악한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황제가 느릿느릿 단상 쪽으로 다가갔다. 근위대장 로건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를 부축했다.

단둘이 수도로 들어온 것은 에리히의 뜻이었다.

로건은 그것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근위대를 이끌고 가는 것보다 안전하지.]

[습격은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폐하께서 홀로 들어가셔서 무엇을 하실 수 있다는 겁니까?]

[무엇이든 하셔야지.]

그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좋으니 한 가지는 해야 한다는 것과, 할 수 있는 일이 처참한 것이라도 전부 해야 한다는 것.

로건은 그래도 반대였다. 차라리 친위사단의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단장을 비롯하여 많은 장교들이 황후에게 동조하고 있으나 병사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정예, 황제의 친위사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황제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기꺼이 무릎 꿇을 것이다.

하지만 에리히는 싸늘한 태도로 말했다.

[근위대는 따로 쓸 곳이 있네. 폐하께서 황명을 내리신다면 기꺼이 따르겠으나.]

그렇게 말하면서 에리히는 황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황제의 창백하고 우울한 얼굴에 결의는 있었으나 선택은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판단력이 흐리다. 이미 전권을 맡겼으니, 네 뜻대로 하마.]

[한 명의 병력이 아쉬운 상황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는 안으로 들어가 하고 싶으신 일을 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러지 않고 여기에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그게 로건에게는 그가 황제에게 내리는 시험처럼 느껴졌다.

거꾸로 된 일이다. 외삼촌과 조카라는 관계로도, 황제와 공작이라는 관계로도, 당연히 황제가 에리히를 시험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황제는 기꺼이 시험을 받아들였다.

그는 로건과 단둘이 걸어서 산을 넘었다. 평민의 옷을 입고 평소에는 쓰이지 않는 길을 걸어 수도에 숨어든 후,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황제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자칫하면 총탄에 죽을 수도 있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증오가 끓는 눈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얼마 만에 마주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도 5년 만일 것이다. 황제가 아편에 손을 대기 시작한 뒤로는 굳이 만날 가치가 없었으니까.

“드디어 쏘아 죽일 용기가 생기셨나?”

“마르고트.”

“복수라. 제 어리석음에게 복수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은데.”

황후가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거짓이었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목구멍에는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달렸다. 그녀의 모든 계획은 황제가 쓸모없는 상태라는 전제 아래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황제를 암살하는 데 실패했을 때, 자신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

그녀는 이 순간 또다시 제러드를 떠올렸다.

[에른스트를 로멜로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의회를 통한 장기 집권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그는 오늘의 이 사태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마르고트는 등에 총상이 여러 발 꽂힌 제러드의 시신을 떠올렸다. 등의 상처는 달아나다 죽었다는 의미다.

세상에서 제일 정당한 권위를 가진 자리에서 태어나, 능력과 인품까지 겸비했던 청년도 죽음 앞에서는 그저 도망이나 갈 따름이다.

자신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눈을 부릅떴을 때였다.

황제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알아, 마르고트.”

“…….”

“하지만 이게 제일 너에게 미쳐 버릴 것 같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오히려 여기서 총을 쏴서 널 죽이는 것보다.”

“조지?”

황제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단상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리케이드 쪽으로 다가가며 명령했다.

“열어라.”

* * *

누가 미끼였는가.

황제가 나타났을 때 황후도, 다른 이들도 모두 에리히가 미끼고 황제가 진짜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나, 에리히의 속내를 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제 일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는 황제를 보살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안전을 굳이 챙기지도 않았다. 그건 로건의 역할이다.

따라서, 그의 명령에 따라 근위대는 빅토리아 대공과 함께 수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모할머니, 진짜로 우리 둘이 가요?”

그리고 그 품에는 엘리엇이 안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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