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가 분명해-250화 (251/263)

#250화

59. 복수

아우구스타가 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마르고트의 재판 3심 전날의 일이다.

그 자리를 주선한 것은 경시청장이었다.

아우구스타는 그 한 번의 만남을 위해 비밀리에 갖고 있던 저택 두 개와 가진 보석 대부분을 사용했다.

인정하기는 싫으나, 돈이면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클레어 델포드의 말을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그 어떤 인연도, 권력을 통해 입혀 온 은혜도 싹 사라진 지금, 남은 것은 돈뿐이었고 그것은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그렇습니다만, 레이디 아우구스타, 그냥 포기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경시청장은 아우구스타가 뇌물로 건넨, 금에 노란 다이아몬드를 둘러 장식한 시계를 앞주머니에 꽂고 있는 주제에 희한한 사람을 보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우구스타가 황후를 배신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있는 것에는 자신도 모를 만큼 ‘윗분’의 지시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분명히 거래가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만나 보자 그 생각이 사라졌다.

아우구스타의 머리칼은 고통으로 희게 세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 져서, 이 몇 달 사이에 수십 년은 늙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재산이 아직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은퇴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호의를 가지고 해 주는 충고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청장. 하지만 내겐 이미 남은 게 거의 없답니다.”

이번에 경시청장에게 준 뇌물을 마지막으로 재산이라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알게 되면 마지막까지 남은 하녀들도 모조리 도망가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타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제국 의회와 내각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경시청과 치안대도 무능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지금까지 자신은 그렇게까지 일을 대충 해 오지 않았다.

노예 거래는 제멋대로 생긴 일이지만, 연잎 궐련은 그렇지 않았다.

신중하게 통제하고 있던 다른 수면제와 진정제들은 그렇다 쳐도, 광범위하게 유통한 연잎 궐련을 다루는 조직은 장부만으로는 전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약에 대한 권리도 그렇다. 30년에 걸쳐 연구된 아편 제제다.

이 중에는 진짜 쓸 만한 약도 많았으며, 연구 과정에서 얻은 화학과 약학에 대한 특허도 있었다.

그것으로 거래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처형만 피하면 된다.

그 이야기를 먼저 마르고트에게 전하여, 3심에서 올바른 발언을 하도록 설득할 작정이었다.

1심에서 했던 발언은, 그녀도 전해 들었지만, 너무 위험한 수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황후 대신 자신이 모든 걸 알아서 하고 싶었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기에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에서 마르고트가 직접 발언하는 것은 무시되지 않을 것이다.

‘황제에게는 전달되지 않겠지만 빅토리아 대공과 클라우제너 공작이라면…….’

탑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림자가 길게 벽에 너울거리며 아우구스타의 불안한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듯했다.

“20분만입니다.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경시청장이 말하면서 손수 감옥 문을 열었다. 미리 다른 일을 시켜 보냈으므로 간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경시청장이 계단을 내려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아우구스타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르고트는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 빛내며 팔짝 일어섰다.

“아우구스타, 왔구나!”

“……황후 폐하?”

아우구스타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황후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끔찍하게.”

“끔찍하다니요.”

“조지랑 결혼하게 된단 소린데, 그것보다 끔찍한 소리가 어디 있어? 그보다 이거 부탁 좀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마르고트가 스스럼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에두아르트 교수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대신 좀 부쳐 줄 수 있어? 아무래도 아버지가 또 화가 나신 모양이라…….”

“마르고트, 님?”

“왜? 아, 왜 근신령을 받았느냐고?”

마르고트가 소녀처럼 깔깔 웃었다.

“또 멍청한 오토와 조지 때문이지. 둘 다 과제 따윈 팽개쳐 놓고 나갔는데, 내가 해서 칭찬받았으니까.”

아우구스타는 숨을 꺽꺽거렸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게 몇 년 전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옛날이다.

이것은 기억 상실이 아니다. 마르고트는 늙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우구스타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마르고트의 손발은 여전히 떨렸다.

목소리는 명랑한 듯했으나 눈알은 쉬지 않고 굴렀고, 말하다 말고 깜박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조차 잊은 듯 갑자기 잠잠해졌다.

“마르고트 님…….”

“……아파. 가려워.”

마르고트가 제 몸을 감싸고 발발 떨었다. 아우구스타는 저도 모르게 달려가 제 외투를 벗어 그녀를 덮어 주고 끌어안았다.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을 잃은 몸은 추위와 더위를 동시에 느끼기라도 하는 듯, 피부에서 땀을 흘리며 동시에 소름도 돋았다.

“나는 누구의 밑에도 있지 않을 거야. 누구도 날 내려다보지 못하게 만들 거야.”

마르고트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의 떨림이 추위 탓인지 두려움 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돌아올 수 없다. 지금까지 약을 직접 썼고, 연구를 관리해 온 만큼 아우구스타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상태는, 그저 좋은 곳에서 요양하며 더 고통받지 않도록 또다시 약으로 관리해 주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 마르고트 님…….”

그녀가 탄식했을 때, 감옥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과응보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나?”

쿵!

말한 자가 지팡이로 돌바닥을 내리찍었다.

아우구스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렌 공왕이었다. 그 뒤에는 무어 공작이 시립해 있었다.

그 순간에 아우구스타는 누가 이 일에 개입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누가 자신을 무시하도록 하고, 누가 진짜로 감옥의 문을 열어 주게 했는지.

경시청장에게 뇌물이 통했던 게 아니다. 그저 이 상태를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거다.

아우구스타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공왕의 말이 맞다. 이런 결과가 오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교수대에 목이 걸리거나 총탄을 맞아 죽는 일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망칠 줄은 몰랐습니다. 명예를 위하는 분들이.”

“하. 염치도 없이.”

무어 공작이 헛웃음을 쳤다. 아우구스타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염치 따위가 문제인가. 마르고트가 제 품 안에서 비참한 몰골로 벌벌 떨고 있는 판에.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하기로 한 저 같은 자와는 달리, 정의로운 분이 아니셨습니까?”

“재밌군, 레이디 아우구스타. 나처럼 정의 따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겪어 온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렌 공왕이 말했다.

“참는 건 진즉 그만두기로 했다네. 두 번이면 충분히 참았어.”

클레어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었다.

황실이, 왕가가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이제 시민과 부딪쳐서는 안 된다.

군사력으로 지배를 유지하기에는 나라가 너무 커졌고, 부유한 자가 너무 많이 생겼다.

그러니 엘리엇을 위해서라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가문의 명예, 사적 복수, 이런 것은 모두 늙은이의 생각이 되어야 한다.

권력은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엘리엇의 미래에는 명예만 남고 권력은 남지 않는 쪽이 좋다.

지배력은 평화롭게도 유지할 수 있다. 클라우제너와 델포드의 돈은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아렌 공왕은 끝끝내 그것을 마음속으로 전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딸이 죽었어도 참았고, 손자가 죽었어도 참았다

. 딸은 선량했었기에,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제 팔을 잡고 그러지 말라고 호소할 것 같아서. 손자는 희망을 가진 아이였기에, 그가 꿈꾸는 미래에 피가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라서.

그러니 증손자의 미래를 위해서도 참을 작정이었다.

음모를 꾸미고 손을 더럽히는 할아비보다 정의롭고 명예로운 할아비가 나을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세 번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증언도 있었다.

[헨리에타 황후를 죽인 것은 단추였을 겁니다.]

그에게 그 말을 해 준 것은 리누스였다.

클라우제너 공작의 다급한 호출을 받아 갔을 때, 리누스는 고열에 들떠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눈을 뜬 참이라고 들었다.

[말할 수 있을 때 하고 싶다고 해서 모셨습니다. 제가 전달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빅토리아 대공과 베티나 공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 공왕은 스스로는 평생 관심을 둔 적 없는 손자의 의붓동생을 처음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는 열에 갈라진 입술로 말했다.

[증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몸에 닿는 옷에는 단추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끈도, 매일 입기 전에 하인이 전부 손으로 훑었습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이제 와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던 심증이 생긴 것도 아니다.

옷은 황제도 의심했던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정보라고는 그 무엇 하나 없었는데도, 아렌 공왕의 머릿속은 그 순간 끓는점을 넘은 것처럼 열에 곤죽이 되었다.

‘나는 늙은이이지.’

이게 늙은이의 생각이라는 게 무슨 상관인가.

마르고트를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꼴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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