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6화 (36/307)

〈 36화 〉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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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버츄얼 유튜버들이 올리는 풀 게임 영상은 짧으면 40분 길면 세 시간 다섯시간을 넘어가는 게 즐비하다.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적기 때문에 재미있는 부분들을 따서 하이라이트를 올리는 게 키리누키 동영상이다.

원본 영상에 자막을 달거나, 상황에 맞는 재미있는 밈을 삽입하는 영상은 해외 팬 확보와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에 큰 역할을 한다.

이런 키리누키 동영상 중에서 드물게 100만을 돌파하는 동영상이 나오긴 하는데…

한 키리누키 동영상이 최초로 200만 돌파를 달성했다.

그 영상은 미국의 키리누키 채널에서 올라온 편집 영상이었다.

30분짜리 동영상 하나와 15분짜리 동영상 하나

그 중 200만을 돌파한 건 15분짜리 편집본이었다.

영상의 원본 방송은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DBD 게임

다섯 명의 버튜버들이 돌아가면서 살인마를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방송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모두 다 유명 버튜버들이고, 평소 합방을 안 하는 유리아가 등장한 것

사람들은 두 가지에 감탄했다.

첫 번째는 분위기다.

무섭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DBD 게임의 분위기를 중화시켜버리는 아카리&유리카의 밝은 분위기

살인마의 칼에 맞으면서 ‘아 가버려엇♡’따위의 섹드립을 말하는 다비와 그걸 태클을 거는 아그니

그리고 적당히 분위기를 풀어주는 클레의 대화는…

살인마에게 쫓기는 스릴러 탈출 게임보다는 귀여운 온라인 술래잡기로 보일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영상에 쓰인 배경음악도 밝고 경쾌한 음악이고, 서로가 실수하는 장면을 재미있게 편집하고 밈도 적절하게 써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아아악 아그니 나만 노려!!”

“그거야 평소 다비 선배님이 신경 긁어서 그런 거잖아요!”

“다비다비~ 업보 청산이라구~”

“아악, 바보아카리한테 저 소리 들으니 열 받아!”

“그것보다 누가 발전기 좀 돌려!!”

“유리아거 80%에요 곧 출구가 열릴 거에요!”

같은 대화가 끊임없이 오갔다.

마치 사이좋은 친구들끼리 심술 궂은 이웃의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것처럼

밝은 분위기로 장난을 치는 그런 분위기가 잘 잡혔다.

그렇게 전반적으로 높은 텐션이면서도, 게임의 진행은 시원시원했고

무엇보다도 모두가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을 하는 모습에 사람들의 미소가 절로 일게 했다.

두 번째는 말도 안 되는 영상 퀄러티

정말 채널 주인장의 본업이 궁금할 정도로 영상 편집 기술이 훌륭했다.

영상의 조형과 컷 하나하나에 쓰인 기술들은 영상을 말도 안 되게 매끄럽게 이어주었다.

이미 대형 방송사에 모셔가도 문제없을 정도로 그 편집에는 재미가 넘쳤다.

특히 버튜버들의 개인 화면들을 적절하게 전환하거나

살인자의 시점을 같이 보여주면서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영상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한 자막이지만

멤버들의 퍼스널 컬러에 맞게 아기자기한 폰트로 잘 꾸며서 멤버들의 목소리를 구분 잘 못 하는 사람들도 누가 말했는지 알기 쉬웠으며

생동감 있게 흔들리는 자막은 마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미 30분짜리 영상도 100만을 돌파 했는데 두 번째는 어떨까?

앞의 영상에서는 다섯 명 중 네 명이 살인자를 플레이하는 분량이 담겨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뒤의 영상은 유리아가 살인자를 플레이하는 영상이라고 모두가 짐작했다.

특히 당시 생방송을 놓친 유리아 팬들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영상을 눌렀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앞의 분위기는 친한 사람들끼리 장난을 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이 동영상에는…

어두운 배경에 흘러나오는 기괴한 배경음악

유리아의 인사가 노이즈가 낀 채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마계의 공주 유리아입니다. 오늘은 사람들을 죽여보게 되겠네요.”

유리아는 아까의 들뜬 목소리는 어디 가고, 그 맑고 귀여운 목소리로 무감정하게 말했다.

마치 낡은 비디오를 재생하는 듯한 화면이 끊기고 일그러지는 연출에

자막 또한 정갈하거나 동글동글한 폰트에서, 호러 게임에 나올법한 기괴한 폰트로 바뀌었다.

거기에 호러 영화에서나 나오는 무서운 배경음악이 겹치니 정말로 무서워 보였다.

유리아의 살인마 플레이 실황 또한 대단했다.

심리의 허점을 노리는 덫 설치?

무빙을 꺾으면서 생존자들의 방심을 유도하는 트릭 무빙?

아니면 생존자들의 연계를 힘들게 하는 넓은 맵 사용?

엄밀히 말하자면 고수의 플레이가 아니다

거기에 두려움을 느끼기에는 DBD는 너무 알려진 게임이다.

사람들은 진짜 살인마가 사냥감들에 보이는 그 집착과

절제하는 감정 사이를 뚫고 나오는 광기의 분노

신이 들린듯한 그 연기에 두려워하면서도 흠뻑 빠져들었다.

특히 버튜버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데뷔 이래 감정 표출에 밋밋한 편이었던 유리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의 표출은 정말이지 예술 그 자체였다.

특히 도망가다가 옷장 사이에 숨은 다비의 캐릭터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면서

“거기 있었네?”

라며 희열에 가득 차서 말하는 그 모습은 마치 스릴러의 한 단면 같았다.

특히 멤버들이 지르는 비명을 좀 더 단말마처럼 편집해서 중간중간에 삽입했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마 플레이가 끝난 후

“있지있지 얘들아 어땠어? 제법 살인마 같았지?”

라고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는 것 또한 압권이었다.

마치 방금 전 까지의 광기를 터트리던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천진난만함이 느껴졌다.

마치 아까의 광기에 가득 찬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온 듯

이중인격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 어마어마한 차이를 대조하고는 영상은 끝이 났다.

이 해외 팬이 열성적으로 만든 키리누키 영상은

일본으로 역수입이 되고, 다시 다른 나라의 자막에 입혀진 후 유튜브에 풀려나갔다.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는 편안한 편집과

1편의 화기애애한 모습과 2편의 광기의 모습이 적절하게 매칭되는 그 영상과 편집 일부분이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 나돌면서 DBD합동 방송 영상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물론 2편에서 광기에 가득 찬 연기를 보인 유리아는 이번에도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그런 유리아를 연기하는 나에는…

내 아래에 헐떡거리고 있었다.

“유나… 언니…죽어.”

“언니는 더 할 수 있어요.”

“나… 이상해져 버려…”

이 언니가 또 운동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나는 언니의 동작이 조금만 틀리면 카운트를 가감 없이 차감했기 때문에

그녀는 비교적 정확한 버피 동작을 몸에 익히게 되었지만…

저런 헛소리를 들으니 괜히 동작에 트집을 잡아서 차감하고 싶어진다.

“언니 하나 남았어요.”

“으…”

“이제 진짜 마지막이에요.”

“흐윽…”

“자세가 틀렸어요. 다시!”

“으아아…”

“우리 하나만 더 해 봐요.”

“흐에에에…”

그렇게 한계까지 운동한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녀의 운동 기록에 그걸 기록하고 오늘의 운동을 마쳤다.

나는 오늘도 힘을 낸 그녀에게 물을 건넸다.

“그래도 언니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이야?”

“네, 열심히 따라와 주신 덕분이에요.”

“죽을 거…같아…”

“언니도 이제 라이브 뛰면서 한 곡 정도는 춤출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심폐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뭐 한 곡 정도는 노래하면서 춤출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회사가 요구한 최소한의 체력이니까 뭐…

의사와 약사의 소견 아래 가장 비싼 영양제를 매일 마셔가면서

정기적으로 온라인 진단으로 의사들과 연락을 하면서

스포츠 과학과 재활학과의 교수님들과 상담해서 만든 내 운동 프로그램과 식단은

마침내 나에 언니의 건강을 크게 회복시켰다.

“언니 이거 봐요. 언니의 살인마 영상 키리누키 영상이 이백만 찍었네요.”

“와아…”

“미국 분이 만드신 건데 각국의 키리누커들이 자막 달면서 엄청 알려지게 됐네요.”

“나도 봤어 그거, 유리아를 엄청 무섭게 표현했던데?”

물을 한가득 마신 나에 언니는 다시 바닥에 뻗었다.

나는 그녀의 뭉친 근육을 마사지로 풀어주면서 물었다.

“…근데 이거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연기를 하신 거에요?”

“음… 유나에게 꼬리치는 애들 다 죽여버리겠다는 마음?”

클레라거나 아그니라던가 다비라던가…라고 중얼거리는 나에 언니의 모습에는 진심이 담긴 것 같았다.

어쩐지 아카리는 안 괴롭히더구만…

앞의 세 사람은 나에게 끈덕지게 콜라보 문의를 하는 편이다.

“이제 가볍게 샤워하고 스튜디오로 출발해요.”

나는 시계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은 스튜디오에 가서 합동 방송을 촬영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가볍게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아침 운동을 끝낸 나에 언니와 나는 늦여름이지만 아직도 더위가 강한 밖을…

아름답기 그지없는 RX 4세대 풀옵션의 승용차를 타고 나간다.

아! 자동차!

그 아름다운 울림이여!

나에 언니는 한심한 변태를 바라보는듯한 시선으로 차체를 쓰다듬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좋아?”

“언니는 애라서 몰라요.”

“…하?”

“자동차의 매력을 모르면 애죠 애.”

이 매끈한 바디

이 우아한 시동음

이 끝내주는 반동과

이 배덕적인 푹신함!

새 차 냄새가 빠지지 않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에어컨 바람

휴대폰과 블루투스 연결을 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빵빵한 스피커

이 자동차는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다.

“언니 뒤에 타셔도 되는데요?”

이런 자동차는 원래 뒷좌석이 훨씬 편하다.

다리도 뻗을 수 있고 여차하면 누워서 잘 수도 있으니 말이다.

“뒤에서는 유나 모습이 안 보여서 싫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 옆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자동차를 잘 타지 않았는지,

안전벨트를 메는 게 어색해 보여서 보다 못한 내가 그녀의 안전벨트를 대신 메어 주었다.

그녀는 내가 방심한 사이에 내 뺨에 뽀뽀했다.

차 안에서 쪽­하는 소리가 앙증맞게 울린다.

그날 이후 나에게 애교가 많아진 그녀였다.

나는 가볍게 꿀밤을 때리는 거로 보복을 완료했고

아이돌을 때리는 게 어디 있냐는 말에, 성추행은 범죄라고 말했다.

그럼 유나도 하던가­라는 칭얼거림을 무시한 나는

평소 듣던 팝송 대신에… 최근에 빠진 아주 유명한 일본 만화의 애니메이션 배경 음악을 틀었다.

두 명의 오타쿠가 달리기 시작한 차 안에서 신나게 음악을 흥얼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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