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49화 (49/307)

〈 49화 〉 48화.

* * *

단언하건대

내 삶은 아름답게 깎아지는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삶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비록 꿈이 한 번 깨어진 적이 있으나, 언제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언제나 타인에게 우러름을 받는 삶을 살기를 욕망하였다.

마치 오래전 옛사람들이 신상(??)에 자신들의 신앙을 바치듯

나는 누군가의 우상(Idol)이 되고 싶었다.

나의 유년 시절은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대하였고

비록 꿈이 꺾여서, 미디어 속의 우상이 되지는 못해도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의 우상이 되고 싶었던 나는

타인에게 찬사와 질시, 찬양을 받으며 살고 싶었기에

외모와 센스를 위해서 식사, 수면, 운동, 패션, 인간관계, 유행 그리고 교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완벽하게 관리된 몸과 건강한 생활 습관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렇기에 이국의 땅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병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낯선 불청객이었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신체의 균형을 흔드는 듯한 상실감

귀에 울리는 이명

늘 맑은 이성이 고통으로 인해서 총명함을 잃게 되고

아무리 휴식을 취해도 피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식욕이 없어져서 무언가를 먹는데 속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자

완벽하게 스스로를 관리했다는 그 자부심이 상처를 받으며

내 몸을 좀먹어가며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잊힌 줄 알았던 애향심을

향수병을 떠올리게 한다.

타국에서

바다 하나 건너 땅에서 느끼는 이 아픔은

나에게 철저한 고독감과 고통을 선사했다.

감기가 무엇인지 알고 몸살감기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나는 그간의 공부를 통해서 일반인들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이 무력감과 고독감이 나아지지 않았으며, 나의 이해와 신체의 감정의 차이로 오는 공포가

내 정신을 좀먹는다.

일단 기운을 내서 병원으로 가야 한다.

병원에 가서 진단서와 처방을 받고…

어라 학생 보험 가입을 했는데 어떻게 쓰지?

보험증… 어디에다가 두었더라?

기억이 길을 잃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어떻게 해야 좋지

일본도 응급 번호가… 119 던가?

일단… 일어나자

제발 내 다리야 말 좀 들어

이불 밖으로 나와…

잠깐 이불?

나는 분명히 거실 바닥에…

어라?

그제야 나는 내가 낯선 천장 아래에 있다는 것과

내 위에 포곤히 자고 있는 나에 언니를 발견했다.

그리고 여기는 내 생각이 맞는다면… 병원이다.

나는 내 팔에 꽂힌 링거 주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복부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눈이 퉁퉁 부은 언니를 바라보았다.

전과 달리 린스와 컨디션, 영양제를 듬뿍 먹어서 윤기가 흐르는 그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삐져나온 게 신경을 써서 습관대로 손으로 빗을 만들어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언니가 일어났다.

그녀는 놀란 표정과 눈물을 품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아무 말이나 했다.

언니의 매니저는 멀쩡해요! 라는 걸 전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언니 병원에는 마스크 착용 안 하시면 큰일…”

“이 바보야! 깨어나서 할 말이 그거뿐이야?”

언니가 화를 낸다.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붓고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나의 몸을 앙증맞은 두 주먹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언니의 슬픈 표정보다 차라리 화를 내는 표정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바보 바보 바보!”

“아야 언니 저 환자예요 포, 폭력 멈춰요!”

농담 아니라 내 몸을 갑옷처럼 지키던 근육들이 단체 휴가를 간 듯

언니가 내 가슴을 치는데 그 충격이 제대로 전해져서 제법 아프다.

깨어나자마자 매서워진 나에 언니의 원망 담긴 주먹을 받아내는 나를 구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 언니, 유나 언니는 아직 환자라고요.”

나는 고개를 돌려 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로손 편의점의 봉투에 마실 것을 사 온 미우가 보였다.

맑은 가을의 날씨 아래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미우는…

잠깐 맑은 하늘?

오늘이 며칠이지?

스마트폰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미우가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역시 센스 넘치는 아이… 라고 생각하며 받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내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들이 장난을 치듯 휴대폰을 치웠다.

“유나 언니, 또 일 할 생각이죠?”

정곡이다.

“응, 일단 보고도 해야 하고… 메일도 확인해야 하고.”

경과보고와 소통

방송 스케줄 조절과 콜라보 일정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 했다.

“언니 쓰러졌다는 보고는 제가 회사에 대신 전달 했어요.

언니는 지금 병가 상태라서 그냥 쉬는 것만 생각하시면 되요.”

“아 미우야 고마워… 근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다행이다… 회사 측에서도 알고 있구나…

정신이 명료해지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나에 언니가 쓰러진 나를 발견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미우는 어째서?

한숨을 쉰 미우는 내가 쓰러진 직후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즐겁게 방송을 진행한 미우는 자신도, 시청자도 적절하게 집중력을 잃어갈 때 방송을 마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늘도 좋은 반응과 자기가 생각해도 괜찮은 클립 각을 생각하면서 헤실헤실 웃으며 말이다.

그때였다.

밤에는 울릴 리 없는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나에 언니

방송인임에도 불구하고, 낯가림이 심한 나에 언니는

채팅으로 이루어지는 라인으로만 소통하지

이렇게 전화를 직접 거는 사람이 아니다.

목소리로 의사 전달을 한다고 해도 게임 채팅 프로그램의 보이스 채팅으로만 하지

직접 전화를 건 일이 드물어서 미우는 호기심에 전화를 받았다.

“유,유나가, 유나가 쓰러졌어! 어, 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도와줘 도와줘.”

언젠가 영화에서 본 적 있는

패닉에 빠진 배우의 연기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내용도 범상치 않았다.

나에 언니의 매니저인 ‘그’ 유나가 쓰러졌다고?

맨날 자신의 육체미를 뽐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건강하던 그 사람이?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질이 낮은 장난이고

진실이라고 믿기에는 지나치게 허황된 소문이다.

“수,수, 숨은 쉬고 호, 호흡은 하는데… 어, 어떻게 하지? 인, 인공호흡 해야 해?”

“일단 나에 언니부터 진정해봐. 일단 119에 신고를 했고?”

“아, 마,마, 맞다 119에 시, 신고…”

“이럴 때 부르라고 있는 게 앰뷸런스에요 언니, 일단은…”

사람이 쓰러졌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은 초등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사회지식이지만

사람이 진짜로 당황하게 되면 상식에 의거한 행동보다 믿음 가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같은 글을 읽은 적 있는 미우는

내심 나에 언니에게 있어서 자신이 꽤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점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튼, 미우는 가능한 침착한 목소리로 나에에게 사실을 알린 후

자신은 비상 연락망을 통해서 자신의 매니저…의 윗사람인 코이즈미 총괄에게 보고했다.

아무래도 이런 야밤에 사사로운 일로 부르기에는 자신의 매니저에게는 미안했다.

“뭐, 뭐라고요?”

야근하던 코이즈미씨가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방금 나에 언니가 앰뷸런스로 같이 가는데, 감기 몸살로 인한 탈진과 몸살이래요.”

“다행이다… 나는 혹시 유나가 큰 병에 걸린 줄 알았지.”

“…3대 350 친다면서 근육 자랑하던 그 사람이요?”

물론 근육이 많다고 무조건 건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직접 듣고 ‘체험’ 비스름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미우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 그건 그렇긴 해도… 아무래도 개학을 하고 나서 많이 바빠졌나…봐?”

“유나 언니네 대학은 휴교령이 안 내려졌어요?”

“응, 듣자 하니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을 해서 2학기는 정상적으로 하나 본데…?”

애초에 1년씩 수업 진행이 멈추면 그건 재앙이다.

상반기에 교내 단체 감염 및 사망자만 아니었으면 1학기도 정상 진행되었을 거라고 푸념을 하던 유나의 모습을 떠올린 코이즈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그러면 매일 수업을 하면서도 인싸 생활 유지하고 거기에다가 나에 언니 매니저 일을 하면서도 글로벌 프로젝트 쪽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고…요?”

자국민도 아닌 한국인에, 무려 대학년 2학생의 신분이다.

숙련된 회사인도 기겁할만한 스케줄을 말없이 소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코이즈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그, 그러…게?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말해놓기는 했는데…”

“그러신 분이 4기생 단체 합동 방송에 MC 게스트로 유나 언니를 넣는 방송을 기획해요?”

“…”

“그, 제가 여러모로 알아본 결과 유나 언니 아직 외국인 학생 비자 신분이라 사내 입지가 좀… 다르다고 하잖아요?”

유학 비자로 취업을 하는 건 주 20시간 이내의, 학업에 지장이 가지 않는 업무 쪽에 국한되어있다.

선라이즈 프로덕션은 엄밀히 말해서 연예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이고, 유나를 고용하는 건 불법이다.

처음에는 버튜버로 데뷔시키기 위해서 업계에 ‘끈’을 만들어둔다는 느낌으로 인턴쉽 느낌으로 채용했던 유나가

이렇게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여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코이즈미는 그제야 좀 심각하게 일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나가 유학 비자가 아닌 취업 비자로 전환을 하면 되지만…

그녀가 여태껏 아무리 대단한 실적을 쌓았다고 한들, 정식 사원의 신분이 아니다.

즉 유나는 정식 고용된 ­정식 정사원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은 유나의 의사에 따라서 그녀는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이다.

느슨한 회사 초창기에 구렁이 담 넘듯 ‘인턴’ 계약으로 들어온 유학생

그것이 유나였다.

“언니가 이 일 피곤하고 싫다고 때려치운다면요? 물론 우리 회사가 지닌 가치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제가 잘 알고 있는데… 유나 언니가 싫다고 떠난다면요? 만약 회사 소속 버튜버가 아니라 개인 버튜버로 시작을 한다면요?”

유나는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 있다.

회사에서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허스키한 중성적인 목소리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들으면 독특하게 들리는 억양과 이질적인 표현들

선라이즈 프로덕션에서 게임 재능이 뛰어난 이들도 혀를 내두르는 게임 실력

절망적인 센스를 가지고 있는 오타쿠들과 차별되는 패션 센스

누가 보더라도 예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 실력과 나에의 생활 개선을 통해서 증명된 가사 능력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게 하는 빠른 눈치와 인싸 특유의 감각으로 거리낌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친화력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매끄럽게 구사하는 언어 능력

무엇보다도,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빛내는 그 마음가짐

이런 인재를 버튜버 프로덕션 회사에서 놓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극단적인 예시로, 유나가 선라이즈가 아닌 다른 사무소로 간다?

굉장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놓치는 손실에 그치지 않고

회사 소속 버튜버들에게 회사의 능력에 대한 불신감을 줄 수 있다.

그 최악의 변수를 떠올린 코이즈미는 야근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은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일단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나가 이 회사에 붙어있게 해야 했다.

인턴쉽?

아니다. 그냥 회사에서 지원 가능한 모든 리소스를 끌어모아서

그녀에게 영주권을 주는 것 까지는 무리더라도

합법적으로 급료를 줄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게 해야 한다.

불과 반년 만에

유나는 업계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네~ 라는 생각을 들게 하던 원석에서

이미 자신의 가치를 빛낸 업계의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일단, 그래 도게자부터.”

“하아, 코이즈미 씨 야근으로 머리가 망가진 거 같은데… 일단 제가 가서 달래볼게요. 저 이래 보여도 유나 언니에게서 꽤 호감과 신뢰를 받고 있다고요.”

미우와 유나

클레와 메이드 라

이 둘의 사이는 좋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친밀한 사이다.

“일단, 저는 외국에서 쓰러져서 불안해하는 유나 언니하고, 유나 언니 쓰러져서 패닉 중인 나에 언니 좀 달래러 갈게요.”

다행히 아직 역 앞 택시가 운영하는 시간이다.

시계를 본 미우는 급히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미우야 정말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저도 언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신경이 쓰이네요.”

나에 언니

그리고 유나 언니

둘 다 미우에게 소중한 존재다.

“코이즈미씨는 유나 언니를 영원히 이 회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계약서나 만들어주세요.”

거듭 고맙다고 말하는 코이즈미에게 미우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언젠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만 같은 유나에게

‘어른의 사정’으로 벗어날 수 없는 법적 속박을 걸어주는 것

미우가 회사에 바라는 유일한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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