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58화.
* * *
“유나 씨 뭐 하세요?”
코이즈미 언니에게 한참 깨지고 난 이후
매니저들이 머무르는 방에서 운동을 하는 나를 찾은 두 동료 매니저 선배님들의 손에는 목욕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녀들은 맨몸 운동 중 하나인 마운틴 클라이머을 하는 나를 보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보시다시피 운동 중이에요.”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나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불안감을 느끼는 편이기에 기왕 온천에 온 김에 제대로 몸을 혹사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회의를 가장한 코이즈미 언니의 갈굼을 받은 후, 방으로 돌아와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어, 음… 상당히 격렬하네요!”
“어…제가 일본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제 행동이 혹시 폐가 되는 행동일까요?”
나는 두 사람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 것을 감지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혹시 여행에 와서 운동을 하는 게 일본 문화권에서는 무례인가?
같이 여행을 온 사람에게 무관심을 표하는 수단인가?
온갖 고민을 하는 내 운동의 동작이 빨라졌다.
“그, 그, 그 아니에요. 그냥 유나 씨랑 같이 목욕을 하러 가고 싶어서…”
“앗, 그럼 얼른 끝낼게요!”
왕복 운동의 속도를 올렸다.
운동으로 단련된 허벅지 근육과 허리 근육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나의 스텝을 잡아주면서 안정적으로 몸에 부하가 걸린다.
순간 내 귀에 ‘미친…’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착한 선배들이 그럴 리가 없지, 분명 잘못 들은 거겠지?
아무튼 왜인지는 몰라도 나와 거리를 벌린 두 선배와 나는 목욕 바구니를 챙기고 온천으로 향했다.
불쌍한 코이즈미 언니는 또 다른 회의가 잡혀서 아직도 근무 중이시다.
듣자 하니 동남아시아 쪽 자사의 버튜버가 큰 사건을 일으켰다나 뭐라나
비싼 여관에 달린 온천답게
그 온천은 내가 상상하던 일본 온천 그대로를 재현했다.
해 질 녘의 아름다운 풍경
저물어가는 태양 빛을 받아서 아름답게 보이는 꽃들
조형미를 살리는 바위와 나무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장식물들
그리고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우와아아아.”
“그러고 보니 유나 씨는 한국인이셨죠? 일본 온천은 처음이신가요?”
온천 안이라도 안경을 벗을 수 없었는지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아낸에이비 선배가 물었다.
“아, 네. 올해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헉 그래요? 그러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아, 네 부탁드려요!”
내 옆에 선 이시카오 선배님이 온천에 대해서 빠삭하신지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난생처음 보는 일본의 온천의 목욕탕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가 있어서
이시카와 선배님의 세세한 지도 아래에 나는 무사히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얏호! 실례하겠습니다.”
그리도 일본 관광청에서 극찬하던 온천에 처음 입욕했다.
물의 질감
따스한 온천 온도
신비로운 수풀 내음
마치 산림욕 한가운데에 온 듯한 치유되는 기분
그야말로 일본 온천은…
“꺄악! 유, 유나씨?”
“고개! 고개 돌리지 말아요!!”
당황한 일본 선배들의 외침이 가득했다!
“저, 저기 무슨 일이에요?”
“수, 수건 둘러요 빨리! 이 벼, 변태!!”
“에?”
그러고 보니 두 선배님은 모두 수건을 두르고 온천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알몸인 나의 몸을 보았다.
어라? 한국에서는 목욕탕에서 맨 몸인 게 디폴트…
“이, 일본에서는 목욕할 때 수건을 두르는 게 예, 예의에요 얼른!!”
그제야 난 문화적 견해 차이로 인한 이 비극을 알아차렸다.
아 일본에서는 수건을 둘러야 하는구나!
“아, 네, 네 둘렀어요!”
“저, 정말 당황했어요. 그대로 맨몸을 보이실 줄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후 두 선배가 오해하지 않게 한국에서는 목욕할 때 수건을 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제야 오해를 푼 두 선배가 변태를 보는 시선을 그만두고 우리는 평범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흠흠, 그래도 깜짝 놀랐네요.”
“그런데 제 몸이 그렇게 이상해요?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르실 줄은 몰랐는데요…”
“…네? 네?”
이시카와 선배가 되물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비명을 지를 정도로 내 몸에 흉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감탄할 만한 몸매를 갖추었다. 생각하는데…
“… 그게 아니라 유나 씨가 너무 예뻐도 변태적인 행위를 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반응을 하죠. 저희 엘프가 그러잖아요.”
“아.”
단번에 납득이 갔다.
그 후 우리들은 조금 평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에이비씨는 유메미씨가 얼마나 변태스러운지, 방송 송출 도중 로딩 창을 띄우고 그녀의 발언을 제지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한 이야기
이시카와씨는유우키씨가 얼마나 멋진지,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악플이 들어와도 쿨하게 인정하고 스스로를 피드백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케어가 필요 없어 보인다고 고민하는 이야기
나는 나에 언니가 얼마나 귀여운지, 그런 귀여운 사람이 처음 볼 때는 얼마나 상처받은 고양이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의 운동 지도와 식단 지도, 생활 지도에 사람이 바뀌면서…
“그, 그러니까 그게 방송 컨셉이 아니었어요? 매 끼니 손수 식단을 차려 주신다고요?”
“아, 그래도 요즘엔 일본에도 단백질 음식 종류들이 늘어나서 가끔은 닭가슴살 만두나 소시지를 염분을 밴 다음 대충 끼니 때우기도 해요.”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대단하네요. 유나 씨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네요.”
“그, 그런가요? 그냥 제 옆방에 살다 보니 식사는 일 인분보다 이 인분이 계량하기도 편하고…”
“거기에 쿠로가와 씨에세 맞는 운동을 알아보거나 화장품들도 알아보는 게…”
“그건 언니가 워낙 로션이나 화장품에 대해서 몰라서 아무것도 안 해서 되려 제 쪽이 알아보기 편했어요.”
“후우, 그래도 사내 데이터상으로는 건강에 주의가 필요함, 자살 징후…”
그 말을 들은 내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언니가 뭐
자, 자살?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에이비 선배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언, 언니가 자살 징후를 보이셨다고요.”
“소, 손좀.”
아차
당황한 나머지에이비 선배님의 손을 세게 붙잡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만큼 유나 씨가 쿠로가와씨를 아끼고 있다는 증거죠.”
“…. 부럽네요.”
이 일련의 소동을 보던 이시카와 씨가 말했다.
“유나 씨 같은 미인에게 그렇게 아낌을 받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남자였으면 벌써 청혼 했을 거에요.”
“흠흠, 그래도 동성이니까 룸 쉐어를 같이 하는 거죠. 둘의 성별이 달랐으면 같이 살기는커녕 집 계약도 못 했겠는걸요?”
“하긴…”
“그리고 결혼이라뇨, 언니와 저 그런 사이 아니에요. 담백한 매니저와 버튜버 사이죠. 결혼은 무슨! 그냥 평범한 언니 동생 같은 친구 사이에요!”
“나왔다. 무자각 헤테로 인싸 미인의 동성애에 진심인 사람을 후벼파는 그 단어.”
“아니, 그렇다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운동해주고 달래주고 같이 살고 접촉하는 사이가 그냥 친구라고요??”
어쩐지 두 사람의 반응이 뜨겁다.
그리고에이비 선배님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 그냥 친구 사이인데… 그리고 회사 내에서 연애는 금지잖아요. 그리고 여자와 여자가 여, 연애라뇨 그게 무슨!”
내 말을 들은 두 선배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데!?
“두 사람 사이에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유나 씨가 애정을 담아서 대해 주는데 쿠로가와씨가 별다른 행동을 한 적 있나요?”
에이비 선배님의 질문에 나는 무심코 그날의 풍경을 떠올렸다.
언젠가
내가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 그 날
언니는 나에게 월하향과 포도향이 풍기는 그 입술을…
“어머 어머, 유나 씨 설마?”
“했네, 했어. 얼굴 붉어진 거 봐요.”
“아, 아니거든요. 온천에 오래 있어서 얼굴 붉어진 거거든요! 애, 애초에 했다는 사실 말하면 사내 연애 금지 사항으로 쫓겨 나는데 다, 당연히!”
“유나 씨 그거 알아요? 연애는 금지지만 결혼은 금지가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네덜란드였나 뉴질랜드였나 거기서는 동성혼이 합법이라죠?”
두 선배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 후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나는 온갖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버튜버 끼리의 결혼도 예외 사항은 아니니 그냥 부부 버튜버 커플은 어떻겠냐는 에이비씨의 능글맞은 제안과
컨설턴팅 추천과 동성 결혼 사실을 합법적으로 우회하는, 묘하게 지식에 해박한 이시카와씨의 세세한 요령을 들으면서
나는 그녀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그래도 선배와 나의 거리가 좁혀진 거 같아 다행이다.
아무튼 온천을 마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일본 음식은 혀로도 먹는 것이지만 눈으로도 먹는다’라는 말에 걸맞게
보기만 해도 눈이 커지는 아름다운 가이세키(일본 료칸의 저녁 식사)가 나왔다.
해삼을 가볍게 데친 후 달콤한 어묵으로 말은 전채요리와
달짝지근한 과실주를 시작으로
붉고 하얀 알록달록한 회 조각
속에 부담 가지 않는 무조림
새우와 붉은 연근, 토란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계란찜
다시마를 우린 후 해산물로 감칠맛을 더한 미소 국
숯불에 구운 후 탄 부분을 잘라낸 닭 구이와 도미구이
맛있는 등심 한 조각과 함께 구워진 야채
서비스로 나온 달짝지근한 장어구이 한 조각
깨끗한 기름으로 튀긴 야채와 새우
마무리로는 소바나 밥을 먹은 후에
입가심으로 우유 푸딩까지
우리 모두 호화스러운 식사를 즐겼다.
그 후에는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카드놀이를 하거나
혹은 운치를 즐기면서 걷는다면 30분은 즐길 수 있는 정원으로 산책을 하러 가거나
혹은 다도를 즐기러 다다미실로 간다거나
혹은 북 카페에서 도서를 즐기러 가거나
혹은
“요쌰!!! 유리아쨩의 곁은 내 차지다!!”
“말도 안 돼!!!”
아주가다 가끔 있다던 오락실 시설에 갖추어진 탁구장에서
누가 누구의 옆에서 잘 것인가? 를 두고 불 붙은 탁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아하니 승자는 유메미씨인것 같다.
그 앞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탁구채를 바라보는 유우키가 보였다.
다섯 명이서 나란히 잘 수 있는 구조 상, 그녀들끼리 자는 위치를 두고 경쟁이 붙은 모양인데…
귀엽고 예쁜 나에 언니의 곁에 누가 자는 것을 두고 치열하게 다툰 모양이다.
참전 포기를 선언한 언니는 한가운데를 두고
수면 위치는
유우키 호시무라 나에언니 유메미 미우
이런 식으로 된 모양이다.
참고로 미우는 나에게 밤늦게까지 공부 지도를 받기로 약속을 해서 제일 바깥에 자게 되었다.
나는 제일 먼저 탁구 게임을 즐긴 후, 자신의 방에서 공부 거리를 가져온 미우를 바라보았다.
예쁘게 염색한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묶은 미우는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수줍게 미소지었다.
손에 든 가방 속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늘 밤 해야 할 공부가 많은 모양이다.
시계를 보아하니 어느새 저녁 아홉 시
식사 자리와 술로 인한 흥이 끊어지지 않는 가운데 우리 둘은 부대 시설인 북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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